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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일상의 감각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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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한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루한 영화가 좋다.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이 그저 일상적인 삶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주는 영화, 그런 영화가 좋다. 그 일상의 틈 속에서 삐죽이 새어나오는 의식의 면면을 느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고. 이 책이 마음에 든 것도 어쩌면 그때문이었을까.   별다를 것 없이 무의미한 일상들, 운전교습을 시작하게 된 그가 운전학원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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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한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루한 영화가 좋다.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이 그저 일상적인 삶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주는 영화, 그런 영화가 좋다. 그 일상의 틈 속에서 삐죽이 새어나오는 의식의 면면을 느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고. 이 책이 마음에 든 것도 어쩌면 그때문이었을까.

 

별다를 것 없이 무의미한 일상들, 운전교습을 시작하게 된 그가 운전학원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파스칼이라는 이혼녀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그녀와의 자잘한 일상들, 이를테면 그녀의 아들 피에르를 데리러 학교에 가기도 하고 빈 가스통을 채우러 돌아다니는 그런.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 게다가 문득 문득 끼어드는 음울한 사색의 편린들. 어쩌면 이렇게 문득 문득 끼어드는 냉소적인 또는 다소 절망적이기까지 한 그의 의식마저 없었다면 더 지루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 한가지 더. 이 소설은 조금 우울하기까지 하다.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하루 하루의 일상 속에서도 가끔씩 몰려드는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있지 않은가. 그런 우울, 나른한 일상의 한켠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그런 우울함들이 소설의 중간중간에서 스며나온다. 나른하다는 느낌, 그 느낌에도 슬픔이 배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즐거웠던 기억들이 한 순간의 시간에 고정되어 버린 사진 속에서 왠지 모를 우울한 기분을 느꼈었던, 언젠가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면서 느꼈었던 그런 감정들과도 비슷한 느낌이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 어두운 새벽길을 혼자 나설 때의 그 느낌, 혹은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그 기분 같은.

 

"너와 현실과의 싸움에서 의욕을 버릴 것"
집요한 공격으로 저항을 잃고 흐물흐물해지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그의 상념을 느릿느릿 따라간다. 캄캄한 사진 박스, 주유소 화장실, 마치 세상과 격리된 듯한 어둠 속의 컴컴한 공중전화 부스같은 고립된 장소만 있으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상념들. 그 고립된 세계 속으로 끊임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우울한 내면 풍경들. 더이상 가라앉을 찌꺼기마저 없을 것 같은 그런.

 

이렇게 우울하면서도 이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여행 중에 충동적으로 남의 사진기를 훔치고 남은 필름으로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그리고 바다에 사진기를 던져버리는 장면, 깊은 밤 공중전화 부스에서 깊은 사색에 빠져드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나른하면서도 감각적인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이 소설은 "언어 기호가 영상 기호보다 화면적으로 풍부한 울림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소설가 윤대녕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이 뚜생의 소설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데에 수긍할 수 있었던 것도 나른한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감각적인 사유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a*****1 2007.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묘사로 드러내는 심연
"묘사로 드러내는 심연" 내용보기
이 소설은, 지금은 몹시도 구하기 힘든 작품이 되어버렸다. 이상하게도 장 - 필립 뚜생의 작품은 모두 절판되었다. 그의 책을 구하는 분들에게는 몹시도 아쉬운 점이다. 나도 뚜생의 작품을 귀로만 듣다 힘들게 발품팔아 얻고, 읽게 되어 몹시 기뻤으나 아직 그의 다른 작품 - 도대체 <욕조>나 <망설임>을 어떻게 구한담! - 들을 읽어보지 못해 딱히 뭐라고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
"묘사로 드러내는 심연" 내용보기
이 소설은, 지금은 몹시도 구하기 힘든 작품이 되어버렸다. 이상하게도 장 - 필립 뚜생의 작품은 모두 절판되었다. 그의 책을 구하는 분들에게는 몹시도 아쉬운 점이다. 나도 뚜생의 작품을 귀로만 듣다 힘들게 발품팔아 얻고, 읽게 되어 몹시 기뻤으나 아직 그의 다른 작품 - 도대체 <욕조>나 <망설임>을 어떻게 구한담! - 들을 읽어보지 못해 딱히 뭐라고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그의 작품은 각각의 작품의 실험성이 너무나 강해서 서로 비교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기도 하고, 전체의 작품에 흐르고 있는 작가의 특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매우 특이한 소설이고,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게 집중력을 강요하는 작품이다. 몹시 매력이 있으나 막상 대하고 보면 무척이나 까다롭게 느껴지는 사람을 처음 만난듯한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시점은 완전한 1인칭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나 화자이자 주인공의 행동이 다소 어긋나는 점도 있지만 소설 전체가 완전한 롱테이크 작품처럼 이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잠깐동안이라도 호흡을 놓치게 되면 앗차, 다시 몰입해서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실제상황>처럼 실험성이 강한 작품같은 느낌의 소설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94년 7월 20일에 발간된 초판인데 당시 출판되었을 때만해도 치밀한 묘사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끌었을만한 작품이다. 섬세하고 꼼꼼한 묘사 능력만으로 뛰어난 소설이라고 평가받기에는 한국문단은 많이 발전하고 성숙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묘사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잘 쓰여진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묘사를 통해 얼마나 소설적인 완성도를 이루어내는가이기에, <사진기> 역시 약간의 혐의는 벗지 못할 수밖에 없다. 즉, 소설 전체의 내용이나 사건이 너무나 평범하고 무의미해보인다. 소소한 일상의 치밀함은 소름끼치게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너머의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담아내기에는 아직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따름. 하성란보다는 좀 깊고, 조르주 페렉보다는 좀 못한 정도라 할 수 있겠다. 뒤에 나온 윤대녕의 후기는 좀 어리버리하다. 단숨에 집중해서 읽어야 할 소설이다. 꿈 속으로 완전히 빨려들어 매혹당하지 않으면 순간 현실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처럼 정신 바짝 차리고 몰입당해야 한다. 끊임없이 내가 꿈꾸고 있다는 것을, 잠 속에서 정신 차려야 하는 모순으로 읽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분명 다음에 정독하게 된다면 지금의 느낌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작품이리라. 한 편의 몰래카메라를 극장에서 훔쳐 보고 새벽에 나와 휘휘 집으로 가야만 하는 느낌, 허전하고 몽롱하고 조금은 알싸하다.
n******s 2005.01.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