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나은 일터와 노동을 꿈꾸다. E.F.슈마허의 <#굿워크> 오늘도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합니다. 표정은 생기가 없고 어둡습니다.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일을 하고 급여도 상당한데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왜 항상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은 ‘일’. 만족하며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요? 일터가 재미없다고 하면 직장 동료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욕심부리지 말고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들 합니다. 물론 감사합니다. 하지만 돈을 받으며 하는 일이라도 즐겁게 하고 싶다는 것은 정말 과한 욕심일까요. 직장이 고통과 돈을 바꾸는 곳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만족스러우며 창조적인 노동을 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세상. 천국에서나 가능할 법한 모습입니다만 이 세상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이런 모습의 사회를 추구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로 유명한 E.F. 슈마허입니다. ![]() 책 표지ⓒ 느린걸음 흥미와 품위, 재미가 사라진 일터 1970년대 중반 슈마허가 미국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묶은 책 <굿워크>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노동하는 삶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슈마허는 불가피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든, 원해서 하는 일이든 노동을 삶의 중심에 놓고 바라봤습니다. 그렇기에 노동에서 재미와 의미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마도 요즘 사람들이 일하는 곳에 슈마허가 방문한다면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역시나 안타까워할 것 같습니다. 슈마허가 우려했던 것처럼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정신과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터에서 만족스러운 노동이라는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노동생산성 향상만이 추구해야 하는 덕목으로 남았습니다. 슈마허는 노동자들이 흥미나 품위를 잃은 이유를 산업사회의 독재적 운영방식에서 찾았습니다. 현대기업들은 인간을 책임 있는 개인이 아니라 ‘생산의 요소’로서만 취급합니다. 요즘 회사들은 여기에서 한 술 더떠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자원으로 취급당하는데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책에서 슈마허가 언급한 산업사회의 복잡함, 탐욕, 규모 확대로 인한 권위주의는 과거보다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때문에 일을 하면서 품위를 유지하고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은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실현될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산업사회의 거대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노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현대 산업 사회가 노동을 황폐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노동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요. 직장에서 마주하는 답답한 현실에 비판과 푸념을 반복하기는 하지만 내가 바라는 노동과 그 의미에 대해선 더이상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슈마허가 책에 쓴 것처럼 저 역시 공리주의적 노동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슈마허는 노동이 세 가지 역할을 한다고 봤습니다. 1) 자신의 잠재력을 사용하고 계발할 수 있는 기회 제공, 2)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자기 중심주의 극복, 3) 품위 있는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이와 같이 노동이 제 역할을 하는 사회라면 일터로 가는 사람들 표정이 밝을 것 같습니다. 노동의 역할이 회복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법, 규칙, 협약, 세금, 복지, 교육, 건강 서비스와 같은 ‘상부구조’를 바꾸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슈마허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는 완벽한 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개인의 역할도 강조합니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니까요. 더 나은 노동과 일터를 상상하자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본주의와 이윤추구 동기를 없애자’, ‘다국적 기업을 해체하고 관료주의를 폐지하자’, ‘교육을 개혁하자’와 같은 주장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슈마허는 “약자들이 자기 힘으로 생산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새로운 형태의 기술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슈마허는 자본, 기술, 조직 등이 점점 더 거대해지는 방향을 거슬러 보다 작은 규모로 인간뿐만 아니라 환경까지 고려하는 기술을 추구했습니다. 이 제안도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더 관심이 가는 내용은 슈마허가 말한 ‘자유’와 ‘자발성’입니다.
이런 꿈을 꾸며 일하고 싶습니다. 비록 현실의 직장에선 자발성을 발휘할 공간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자유를 포기해 버린다면 그 또한 비극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결국엔 조직도 활기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슈마허의 이 말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꼭 생각하며 일하면 좋겠습니다.
|
|
“노동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인간은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또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태생적인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협력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 일을 하고 있어도, 일을 하지 않아도 불안한 시대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탄생한지 이미 오래고, 과연 내가 무엇 때문에, 왜 일을 하는지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의 노동이 좋은 노동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 생각할 여유는, 물론 없다. ‘역사상 가장 창조적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슈마허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릇된 가치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던 선구자적 인물이다. 현대산업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죄악, 즉 종교화되어버린 경제성장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정작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 되어 버린 인간의 본성, 행복을 되찾을 것을 제안한다. 그는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지금의 모순과 고통을 예언했던 ‘특별한’ 이였다. 그는 현대 문명의 가장 큰 죄악이 인간의 노동을 파괴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책은 그가 눈을 감은 1977년까지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했던 내용을 사후에 정리했다. 마치 강연장에 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대화체 그대로 책에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책의 곳곳에는 그의 성찰과 지혜와 철학이 빛을 발한다. 규모,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외눈으로는 그의 메시지가 다소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파국’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고,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한 세대라 할 수 있는 30년을 훌쩍 넘겨 전해지는 그의 메시지는, 이 세상이 뒤틀린 딱 그만큼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좋은 노동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좋은 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슈마허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지금 젊은이들이 갈망하는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가면이 아니라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말년에 교육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슈마허는 “노동이란 삶의 즐거움이자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노동은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점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득 생각해본다. 지금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무의미’하다못해 매우 ‘나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과연 그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인해 고통을 입을 이들을 생각해 봤을까. 우리 사회는 점점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고, 착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변태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우리는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로지 지식의 축적으로만 학생들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시스템 속에서 과연 아이들은 자신의 공부가, 자신의 노동이 어떠해야 한다는 자각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타인을 누르고 올라서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현실의 공포가 더 강하게 그들을 억누르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 교육은 지금 정상일까. 정당한 노동이 천시 받고, 세습귀족들이 정직한 노동을 욕보이는 시대다. 가진 자들의 횡포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그들에게 끝은 보이지 않는다. 대한항공 후진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대한민국 지도층, 지배계급의 본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그들은 타인을 인격적 존재로 생각하기보다는 마치 노예처럼 생각한다. 그런 이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것은 나름 아닌 우리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출한 정부 권력이다. 규모에 압도당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노동을 거부하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적정한 기술을 통해 결국 좋은 노동, 좋은 삶을 이뤄낼 수 있다는 슈마허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단순하고도 명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물질의 축적과 소비의 무한한 반복으로 이 세상이 지탱될 수는 없다. 한 번 소비되면 다시는 재생될 수 없는 화석연료를 마구 낭비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속도를 더 내려한다. 흡사 지옥의 끝판을 보자는 것처럼 보인다. 매우 적긴 하지만, 더구나 지금과 같은 시대엔 더욱 찾기 힘들지만, 분명 더 나은 삶을 위한 지혜를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느냐는 온전히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슈마허의 철학과 사상이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그와 같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 어떻게 비관하든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파국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도, 도저히 인간에게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해도, 멈춤 없이 생각하고 또 행동해야 할 이유다. 좋은 노동은 결국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전염성은 생각보다 클 것이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을 다시금 진정한 노동으로 이끄는 시대, 임금이 아닌 노동 그 자체로 자신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시대 그리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진정한 교육. 그것은 우리의 손으로부터,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쉽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책임감과 고귀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타인을 숫자로 평가하는 비정상적 사회에서 최대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소중한 책이다. |
|
슈마허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유명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막상 그 번역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이번에 이계삼을 읽다가 이런 책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선택했습니다. 먼저 번역이 참 마음에 듭니다. 쉽고 친근한 말투와 경어체로 마치 슈마허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만듦새도 마음에 듭니다. 한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와 부담없는 활자크기와 여백,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는 지질도(재생지였다면 더 좋았겠습니다).
슈마허는 원시로의 회귀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기술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잘 활용하면 된다는 쪽입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희망이 없으며 정신적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찌보면 뻔한 얘기같지만 중간중간 번득이는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또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람만이 전해줄 수 있는 힘이 느껴집니다. '노동'과 '교육'이라는 키워드로 고민을 키워가기에 좋은 책입니다.
돌림병과 무더운 날씨로 인해 삶의 의욕마저 위협받는 요즘, 잠시 짬을 내어 선배의 조언에 귀기울여보면 어떨까요? 그것이야말로 굿워크의 시작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