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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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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서 읽어가면서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 책이었습니다. 총 10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1921~1937년 오키나와 민속학 연구를 진행했던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진행됩니다. 가마쿠라는 류쿠 왕국의 옛 왕족부터 민속학자, 화가, 기자, 사진사, 공예가 등 다양한 현지인과 교류하면서 류큐·오키나와의 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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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서 읽어가면서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 책이었습니다총 10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1921~1937년 오키나와 민속학 연구를 진행했던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진행됩니다가마쿠라는 류쿠 왕국의 옛 왕족부터 민속학자화가기자사진사공예가 등 다양한 현지인과 교류하면서 류큐·오키나와의 문화와 역사를 채록해서 81권의 답사공책과 수많은 고문서 필사본·복사본, 1236장의 유리 건판, 1296장의 사진, 1114점의 전통 염색물, 627점의 천조각 등을 남겼습니다그의 기록들은 규모도 엄청났지만 그 기록의 치밀함도 대단해서 후대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류큐왕국과 슈리성의 역사가 가마쿠라의 발자취와 함께 계속 언급이 됩니다슈리 성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고 13세기 슌텐 왕조의 왕인 슌바준키가 건설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오키나와판 삼국시대인 삼산시대에는 중산 왕조의 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쇼하시 왕이 우라소에를 함락시키고 중산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에 수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류큐왕국은 오랫동안 한중일의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번영했습니다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부터 접촉이 있었고 조선왕조시대에는 그 교류가 활발해서 조선왕조실록에 류큐의 관계를 기록한 기사가 437건에 이른다고 합니다류큐에는 조선에서 들어온 물건들이 많았는데목화와 비단 등의 직물류와 공예품종이나 붓 등의 문구류 그리고 불교에 대한 서적이 눈에 뜁니다그래서인지 류큐 전통의상 중에는 조선과 유사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1453년 왕위다툼인 시로·후리의 난 당시 슈리성이 불타 없어진 적이 있고 쇼네이 왕 치세인 1609년에는 사츠마 번의 침략으로 류큐 왕국은 사츠마의 속국이 되었으며 이후 류큐 처분과 폐번치현을 거쳐 쇼타이 왕이 도쿄로 압송되어 왕궁의 역할을 상실하게 됩니다일제에 의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 당시 육군 제 32부대의 총사령부로 쓰이다 미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현재 성은 그 후 47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재건 된 것이 현재의 슈리성입니다.

 

요즘 여행프로 등에서 오키나와가 많이 소개되고 있고 오키나와에 대한 방문도 꾸준히 느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오키나와는 불과 백여 년 전만해도 지금 일본과는 독립된 왕국이었고 조선과도 많은 교류가 있었던 나라입니다이 책이 류큐왕국의 수도였던 슈리성을 중심으로 그러한 역사와 가마쿠라의 유물들을 바탕으로 추적한 수십 년간 진행한 민속학 연구의 결실입니다류큐왕국의 역사에 대한 흥미를 넘어서 민속학 연구의 전범으로서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k******g 2018.05.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슈리성등 오키나와의 문화를 기록하기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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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대학생 때 잠시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오면서 정말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자연환경 못지 않게 오랜 역사를 담은 유적들을 방문하면서 오키나와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억을 안고 이번에 접한 이 책은 오키나와에 있는 슈리성을 기록하고 직접 사진을 찍으면서 정리한 가마쿠라 요시타로를 중심으로 일본의 제국주의가 만연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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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 대학생 때 잠시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오면서 정말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자연환경 못지 않게 오랜 역사를 담은 유적들을 방문하면서 오키나와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억을 안고 이번에 접한 이 책은 오키나와에 있는 슈리성을 기록하고 직접 사진을 찍으면서 정리한 가마쿠라 요시타로를 중심으로 일본의 제국주의가 만연한 20세기 초반의 오키나와의 상황을 다루면서 전쟁의 비극으로 인한 문화재의 파괴와 그 보존을 위한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교사로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그는 그런 안정된 삶에만 매몰되지 않고 오키나와 출생이 아니었지만 젊은 시절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강렬한 인상을 가지게 된 오키나와에 다시 자원하여 교사로서 근무하면서도 오키나와의 오랜 역사와 그 유산을 연구하면서 또한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을 옆에서 경험하면서 다양한 기록과 사진을 남기게 됩니다. 지금이야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간단하게 찍을 수 있지만 20세기 초반 사진은 결코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기술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기술을 익히면서 슈리 성등 오키나와의 역사와 환경을 기록하여 남기게 됩니다. 그의 열성적인 기록은 후일 슈리성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쓰이게 되며 오키나와의 역사와 당시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이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은 가마쿠라의 노력 뿐만 아니라 당시 오키나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당시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문화유산이 그대로 남았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태평양전쟁 중 일제의 만행은 오키나와의 민간인들, 특히 힘없는 이들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오키나와 자체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합병당한 처지에서 이러한 비극은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님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슈리성도 전쟁중 일본군의 사령부로 쓰이면서 처참하게 파괴되고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 파괴해야 하는지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후일 슈리성이 복원되면서 가마쿠라의 기록이 중요하게 쓰이게 됨은 정말 다행입니다. 비록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의 영토이며 미군기지등 여러가지 문제로 오키나와가 완전히 평화롭다고 하기 어렵지만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가마쿠라등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알 수 있음에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j*****1 2018.06.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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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 역사와 오키나와 문화의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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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키나와 지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그리고 이를 연구한 사람들, 특히 ‘가마쿠라 요시타로’라는 류큐 문화 연구가이자 빈가타 기술 전수자를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시기적으로는 일본의 류큐 왕국 지배가 시작되는 에도시대 이후부터 2차 대전 종전 후 미군정에 의한 일본 반환시기까지 다루고 있다. 역사 속의 현장에서 특정 지역인 오키나와 지방과 오키나와 주민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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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키나와 지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그리고 이를 연구한 사람들, 특히 가마쿠라 요시타로라는 류큐 문화 연구가이자 빈가타 기술 전수자를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시기적으로는 일본의 류큐 왕국 지배가 시작되는 에도시대 이후부터 2차 대전 종전 후 미군정에 의한 일본 반환시기까지 다루고 있다. 역사 속의 현장에서 특정 지역인 오키나와 지방과 오키나와 주민들과 이들을 연구하는 외지인이 몸소 숨가쁘게 벌어지던 역사적 사건들의 생생한 체험의 순간들이 묘사된다. 류큐왕국은 15세기 중반부터 성립되어 19세기 후반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의해 일본국의 영토로 강제 편입되기까지 유지되었으며, 영역은 오키나와 지방(오키나와 제도, 아마미 제도, 미야코 / 아에야마 제도 등)에 해당된다고 한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문부성 회화 전시회에서 오키나와 지방의 소재를 다룬 작품 류큐의 꽃을 우연히 보고 난 후,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인생은 달라지게 된다. 도쿄 미술학교를 갓 졸업하고 오키나와현 여자사범학교/고등여학교 교사로 부임해온 가마쿠라는 류큐 왕국의 문화, 역사, 예술에 점차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게 되어 평생의 연구 과업으로 삼게 된다. 그러면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수많은 평생의 고마운 인연들이 함께 소개가 된다. 가마쿠라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특히 2명의 인물이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한명은 류큐왕국의 상위 귀족가문 출신의 스에요시 바쿠몬토와 다른 한 명은 현직 내대신의 조카였던 이토 주타이다. 류큐 문화를 문헌학적으로 잘 정리한 연구 결과와 다양한 류큐 문화의 전문가 인맥들을 가마쿠라에게 소개해주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는 바쿠몬토와의 인연이 딸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인생의 오묘함을 느끼게 된다. 이토를 통해 본격적인 류큐문화 연구에 들어서게 되고 무엇보다 관동대지진 이후 이토와 가마쿠라가 벌인 이른바 슈리성 철거 취소 작전의 긴박함은 한편의 영화 속 장면을 연상케 한다.
도쿄로 돌아와 시작하게 된 가마쿠라의 도쿄 미술학교 미술사 연구실의 연구생활은 점점 일본정부의 군국주의 정책에 휩쓸려 뜻하지 않게 중단되는 시련을 맞게 된다. 이후 2차 대전의 격전지가 되어 폐허로 전락한 오키나와 섬의 소식을 듣고, 가마쿠라는 젊은 교사 시절 하숙집 아주머니를 통해 알게 된 류큐 전통 수공예품 빈가타의 전승을 위해 매진하게 된다. 가마쿠라는 노년에 젊은 시절 수집했던 류큐문화 관련 취재 자료와 직접 찍은 사진들을 정리한 책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 하는데, 이 때 출간한 책이 나중에 류큐 왕국의 슈리성 복원 사업에 귀중한 자료로서 쓰이게 된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은 둘이 아닌가 싶다. 하나는 류큐 문화로 일컬어지는 오키나와 지방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를 추적하여 연구하고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했던 미술연구가 가마쿠라 요시타로’.

이 책을 읽는 내내, 역사적 사건과 그 속에서 직접 현장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묘사에 몰입되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치 한편의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의 원고를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책의 번역도 깔끔하고 일본 문화나 용어, 인물에 대한 자세한 해설도 각주로 표시하고 있어 유용했고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근대 일본 역사와 오키나와 지방의 류큐 문화와 역사에 관해 탁월한 개설서라고 생각된다. 일독을 권한다.


m****y 2018.06.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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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순풍이 되어 기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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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는 날은 길일을 택할 것.밧줄을 풀고 항구를 떠나면바람은 순풍이 되어 기쁘옵니다.   왕국 시대, 사족 남자들에게는 길을 떠나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로 가는 여행은 때론 수년이 걸리기도 했고, 객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마미가에도 중국에서 객사한 조상이 있어서 메이지 중반에 조주가 습골拾骨을 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가라타비唐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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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는 날은 길일을 택할 것.


밧줄을 풀고 항구를 떠나면


바람은 순풍이 되어 기쁘옵니다.




   왕국 시대, 사족 남자들에게는 길을 떠나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로 가는 여행은 때론 수년이 걸리기도 했고, 객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마미가에도 중국에서 객사한 조상이 있어서 메이지 중반에 조주가 습골拾骨을 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가라타비唐旅'라는 말은 지금도 중국으로 가는 여행뿐만 아니라 명토(저승)으로 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p. 68






   '오키나와' 하면 역시 태양이 내리쬐고, 파도가 넘실대는 남도의 해변이 생각난다. 당장 돈과 시간이 생긴다면 가보고 싶은 곳,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양지의 이미지가 강하다. 오키나와의 이국적인 정취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곳은 본토와는 다른 매력이 있네' 정도의 사소한 감흥을 이끌어 낸다. '씨줄과 날줄로 깊게 엮인' 그 저면의 깊은 과거를 망각한 채 말이다.




   오키나와는 다른 46개의 광역자치단체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1879년, 강제로 일본에 편입되고 나서 이전 시기의 전통은 철저히 '일본화'되어 희미해지고 사라져 갔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 옛 왕국의 번영을 구가하던 붉은 색의 슈리성과 슈리 시가지는 쇠퇴하여 활기를 잃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는 빛나던 류큐왕국의 잔재에 일격을 가했다. 모든 것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요나하라 케이의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의 주인공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이다. 오키나와(류큐)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고, 노력했던 보통의 오키나와 사람들 말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격 인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은 부제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가마쿠라 요시타로이다.  교사였던 그는 오키나와 연구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학자이다. 가마쿠라 요시타로가 남겼던 사진, 메모들은 1980년대 이후 사라졌던 슈리성을 복원하는 프로젝트에서 빛을 발했다. "가마쿠라는 우리의 은인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발화되었다. 요나하라 케이는 이 책에서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아름답고도 슬픈, 오키나와의 근대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류큐 서쪽 끝의 요나구니시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었던 성종실록의 내용을 일부 발췌한다.




섬의 이름은 윤이시마(閏伊是麿)라고 【그곳 풍속에 섬을 일컬어 시마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인가(人家)가 섬을 둘러 살고 있고, 둘레는 이틀 길이 될 듯하며, 섬사람은 남녀 1백여 명으로 풀을 베어 바닷가에 여막을 만들어서 우리들을 머물게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제주(濟州)를 출발한 때로부터 큰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파도가 이마[顙] 위를 지나고, 물이 배 가운데 꽉 차서 뱃전이 잠기지 않은 것은 두어 판자뿐이었습니다. 김비의와 이정이 바가지를 가지고 물을 퍼내고, 강무는 노(櫓)를 잡았으며, 나머지는 모두 다 배멀미를 하여 누워 있어서 밥을 지을 수가 없어 한 방울의 물도 입에 넣지 못한지가 무릇 열나흘이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섬사람이 쌀죽[稻米粥]과 마늘을 가지고 와서 먹였습니다. 그날 저녁부터는 처음으로 쌀밥 및 탁주(濁酒)와 마른 바다물고기를 먹었는데, 물고기 이름은 다 알지 못했습니다. 7일을 머문 뒤에 인가(人家)에 옮겨 두고서 차례로 돌려가며 대접을 하는데, 한 마을에서 대접이 끝나면 문득 다음 동네로 체송(遞送)하였습니다. 한 달 뒤에는 우리들을 세 마을에 나누어 두고 역시 차례로 돌려가며 대접하는데, 무릇 술과 밥은 하루에 세끼였으며, 온 섬사람의 용모(容貌)는 우리 나라와 동일(同一)했습니다. 


...술은 탁주(濁酒)는 있으나 청주(淸酒)는 없는데, 쌀을 물에 불려서 여자로 하여금 씹게 하여 죽같이 만들어 나무통에서 빚으며, 누룩을 사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많이 마신 연후에야 조금 취하고, 술잔을 바가지를 사용하며, 무릇 마실 때에는 사람이 한 개의 바가지를 가지고 마시기도 하고 그치기도 하는데, 양(量)에 따라 마시며 수작(酬酢)의 예가 없고, 마실 수 있는 자에게는 더 첨가합니다. 그 술은 매우 담담하며, 빚은 뒤 3, 4일이면 익고 오래 되면 쉬어서 쓰지 못하며, 나물 한가지로 안주를 하는데, 혹 마른 물고기를 쓰기도 하고, 혹은 신선한 물고기를 잘게 끊어서 회(膾)를 만들고 마늘과 나물을 더하기도 합니다.




-성종실록 성종 10년 6월 10일 

a*****5 2018.06.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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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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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 -      지은이 : 요나하라 케이옮긴이 : 임경택펴낸곳 : (주)사계절출판사발행일 : 2018년 2월 19일 1판1쇄도서가 : 23,000원     얼마전 역사카페를 통해 오키나와와 관련된 도서 한권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이란 책으로 1920년경 류큐왕국의 과거를 치밀하게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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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 -

 

 

 

 

 

지은이 : 요나하라 케이

옮긴이 : 임경택

펴낸곳 : (주)사계절출판사

발행일 : 2018년 2월 19일 1판1쇄

도서가 : 23,000원

 

 

 

 

얼마전 역사카페를 통해 오키나와와 관련된 도서 한권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이란 책으로 1920년경 류큐왕국의 과거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기록한 '가마쿠라 요시타라'를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었죠. 오키나와에는 유구국(琉球國)이란 왕국이 있었고 조선실록에도 유구국과 관련된 내용이 437건에 달할 정도로 자주 언급되어 있지요. 하지만 정작 그 왕국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게 없었는데 이 책 덕분에 류큐(琉球)왕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서평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오키나와에 대해 간략히 살펴 보겠습니다.

 

일본 열도 중 최남단에 위치한는 류큐제도에는 많은 섬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오키나와 섬이죠.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휴양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오키나와 섬에는 450여년의 역사를 지닌 류큐왕국이 있었답니다. 왕국은 1429년에 성립되고 한중일 사이의 중계무역으로 번영했었지만 1609년 일본 사쓰마번 시마즈가문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1879년에는 일본 메이지정부의 '류큐처분'이라는 강제 병합을 당하면서 '폐번치현'을 통해 오키나와현으로 편입이 되었다고 합니다. 왕은 도쿄로 끌려가고 그렇게 450여년간 왕조의 역사는 끝나게 되었다는 것이죠.

 

류큐왕국의 수도인 슈리(首理)에는 '슈리성'이란 왕궁이 있었답니다. 강제 병합 이후 왕궁은 그 역할을 상실하여 점차 쇠락해 가면서 철거될 예정이었다는데요. 때마침 여러가지 행운이 겹치면서 1926년경 국보로 지정되고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되살아 났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발발한 태평양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답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휴양지로 유명하지만 불과 칠십여년 전인 1945년 4~6월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는 이오지마 전투에 이어 지구상에서 지옥을 재현한 사건 중 하나라 할 정도로 그 참혹함이 극에 달했었다죠.. 당시 슈리성 지하에는 일본 육군 제32군 총사령부가 설치되었기에 미군의 집중폭격으로 성은 물론 그 주위가 마치 사막처럼 완전 폐허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정전 등 왕궁의 많은 부분들이 복원된 상태라 하구요. 그 복원에 결정적인 사료가 바로 이 책에 나오는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기록들이라고 합니다. 강진 청자 복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는 우리나라 유일한 무형문화재 청자장이신 이용희님과 같은 분이라 생각되었죠.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류큐왕국 왕의 계보와 행정기구, 위계제도, 연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류큐왕국이 26대에 걸쳐 약 450여년이나 이어졌던 왕국이었다는게 조금 놀라웠죠. 왕의 계보에는 왕통이 두개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건 제1쇼씨 7대왕 쇼토쿠가 죽은 뒤 신하였던 카나마루(金丸)가 쿠데타로 왕권을 찬탈했기 때문이랍니다. 왕위에 오른 카나마루는 이름을 쇼엔(尙円)이라 고쳤다 하구요. 혈통이 다르기에 2개의 왕통으로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책에 수록된 류큐,오키나와의 역사 연표를 보면 류큐왕국 이전에도 왕국이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지나 구스쿠시대가 12세기말 시작되었다는데 이때 슌텐왕조와 에이소왕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불과 3대와 5대 밖에 이어지지 못한 짧은 역사의 왕국이었기에 그다지 주목받지 않는 것 같네요. 이후에는 '삼산시대'라 하여 남산,중산,북산의 세 왕조가 출현하여 류큐의 삼국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삼산시대를 중산왕 쇼하시가 통일시켜 류큐왕국이 성립되었다는군요. 그 과정이 마치 우리나라 후삼국시대와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1958년생 동경출신의 여성분입니다. 부모님이 오키나와 출신이라 그런지 오키나와와 관련된 내용의 서적들을 많이 집필하셨더군요. 원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일본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았는데요. 일본판은 슈리성의 정문인 슈레이몬을 표지사진으로 되어있습니다. 한국판 표지는 그림이기에 첫 느낌이 부드럽고 에세이 책 같단 느낌인데 반해 일본판은,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앞표지가 마치 여행가이드북이나 여행사 팜플렛처럼 보입니다..

 

 

 

 

 

 

책은 <추천의 말/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1. 그가 걸어간 언덕길>, <2. '오키나와학'의 청춘>, <3. 위험해! 슈리성>, <4. 꿈과 같은 연회-이토 주타의 오키나와>, <5. 안녕! 바쿠몬트>, <6. 섬 여행-800킬로미터의 류큐 예술 조사>, <7. 슬픈 오키나와, 전장으로 변하다>, <8. 빈가타가 다시 '태어나다'>, <9. 케-이미-소치(잘 다녀왔어요? 어서 와요!)>, <10. 되살아난 붉은 성>, <에필로그>, <후기/문고판 후기/옮긴이의 말>, <참고문헌/인명 찾아보기>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호가 매겨져 있는 부분이 본문부로 가마쿠라 요시타로가 오키나와에서 연대별 행적과 거의 맞아 떨어지게 집필되어 있죠.

 

 

 

 

 

 

글 내용중에는 저자의 시선과 가마쿠라의 시선이 혼재되어 표현된 부분이 많아서 좀 혼란스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치 역사적 내용을 곁들인 여행기를 보는 것도 같기에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혀지더군요. 육백여페이지(정확히는 576page)나 되는 분량이 좀 많은 책이기에 며칠에 걸쳐 나눠 읽었는데요. 글꼴 크기 적당하고 재미도 있기에 집중력 좋으신 분들이라면 하루만에도 완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엔 책에 당연한 얘기지만 명칭에서 일본말이 많이 나와 자꾸 반복해서 읽게 되더군요..

 

이 책은 "가마쿠라 요시타로"라는 분이 주인공입니다. 2011년 72세란 나이에 타계한 그는 1898년 일본 가가현 미키군 히카미무라에서 태어났다 합니다. 1913년엔 가가와사범학교에 진학하고 1918년에는 도쿄미술학교 도화사범과로 진학하였는데 일찍 자립하기 위하여 미술교사를 육성하는 사범대학을 선택했다고 하는군요. 1921년 졸업 후에는 자원하여 오키나와의 학교에 부임하는데 이 때부터 "가마쿠라노트"라 불리는 필드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합니다. 류큐왕국 시대의 문화와 역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연구,조사할 목적을 가지고 오키나와로 찾아온거라는 것이죠. 그는 멸망한 류큐 왕국의 유산들과 류큐왕국의 전통을 이어받으며 살아가는 오키나와인들의 모습들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는데요. 현재 전해지고 있는 그의 기록들은 81권의 필드노트와 수 많은 고문서들의 필사본, 1,236장의 유리 건판과 1,269매의 인화 사진, 오키나와의 전통 염색천이라는 빈가타(紅型)의 형지(型紙) 1,114점, 직물이나 의복장식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조각을 말하는 기레지(裂地) 627점 등 한 사람이 하기엔 믿기지 않는 내용의 연구조사 기록물이있다고 합니다.

 

책에는 가마쿠라가 촬영했다는 1920년대 류큐왕국의 흔적들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기술로는 믿기 어려울만큼 선명하고 깨끗하게 촬영된 사진이었죠. 책에는 그가 어떻게 사진술을 배우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1924년 도쿄미술학교 조수로 미술사연구실에서 근무하게 된 가마쿠라는 학교의 사진과 교수 모리에게서 사진을 배웠답니다. 이때 익혔던 사진기술들로 오키나와의 정경들을 남긴 것이라네요. 건판사진이었던 당시의 장비들 수준을 생각하면 불과 몇 달만에 그 어렵다는 현상술과 촬영기법까지 다 익혔다는게 참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그가 남긴 촬영사진들을 보면 정말 감탄스럽죠. 그 중 일부 발췌해서 여기 올려 봅니다.

 

 

 

 

한때 방송프로그램에는 맛집이나 식도락 관련 프로그램이 대세인 적이 있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편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EBS에서 오키나와를 소개하는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을 시청했었는데요. 슈리가 아닌 나하를 위주로 보여주긴 했지만 참 가보고 싶게 했었죠.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내년엔 아내를 꼬드겨 반드시 오키나와에 가보려 합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신들을 일본인(야마톤추)이 아니고 오키나와인(우치난추)라고 한다면서 그 정도로 류큐에 대한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실제 1944년 11월에 미 해군성 작전본부가 발행한 "류큐성 민간핸드북"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답니다. "일본인은 류큐인을 인종적으로 동등하다고 간주하지 않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차별하지만 오키나와 섬사람들은 일본인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전통과 중국과의 오랜 문화적 유대에 긍지마저 가지고 있다. 섬사람들 사이에는 군국주의나 열광적인 애국심이 거의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막부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차별받는다는 오키나와의 과거와 현실을 생각함 이런게 당연하다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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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발생했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집단 자결'로 알려진 사건들이 그 대부분의 실상은 노인이나 유아, 부녀자들과 같은 연약한 민간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집단자살을 강요당했다 보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는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희생된 민간인들을 기리는 평화공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억울하게 끌려와 희생된 조선인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군요. 일본 본토에 그런게 있단 얘기는 지금껏 듣도 보도 못했기에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인들과 다르다고 여기는 그 정체성에 무척 공감이 갑니다. 우리도 제주 4.3사건으로 뭍사람과 제주사람간 위화감이 있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고 보니 오키나와와 제주는 비슷한 구석이 꽤 많아 보입니다.

 

이 책은 일본에 의해 멸망한 류큐왕국의 지난 역사와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소멸된 슈리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류큐인들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가마쿠라가 남긴 기록과 기록물들을 통해 마치 여행기처럼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슈리성으로 상징되는 류큐왕국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이 책 읽어보는 것도 매우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h******9 2018.05.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내용보기
일본 하면 먼저 생각나는 지역은 도쿄와 교토이다. 두 지역은 일본의 특색을 반영하는 중요한 역사 유적지가 있으며, 특히 천년 고도 일본의 교토는 에도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잇어서 국내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반면 오키나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키나와는 19세기만 하여도 류큐왕국이었고, 그들은 일본 본토와 동떨어져 각자 도생하고 있었다. 하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내용보기

일본 하면 먼저 생각나는 지역은 도쿄와 교토이다. 두 지역은 일본의 특색을 반영하는 중요한 역사 유적지가 있으며, 특히 천년 고도 일본의 교토는 에도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잇어서 국내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반면 오키나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키나와는 19세기만 하여도 류큐왕국이었고, 그들은 일본 본토와 동떨어져 각자 도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류큐왕국을 일본에 편입하였고, 류큐왕국에 있는 낡고 허름한 슈리성을 정전 철거 계획까지 세워 나갔다. 


일본의 오키나와 현 슈리시에는 슈리성이 있다. 언덕에 있는 슈리성은 일본 본토로 편입되면서, 슈리성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색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100년전 일본은 슈리성의 가치와 의미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고, 슈리성을 철거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그런 일본 정부에 맞서는 이가 있었으니, 20대 젊은 혈기를 가지고 있는 가마쿠라 요시타로였다. 그는 오키나와 현립 도서관에 일하면서 류큐의 역사와 문화에 깊이 관심 가지게 되었다. 20대부터 시작한 류큐왕국에 관한 관심은 20년간 이어지게 되었고, 그들이 쓰는 류큐인들이 쓰는 본토어인 슈리말(우치나구치)를 쓰면서 그들과 소통하게 된다. 슈리말(우치나구치)은 일본어(야마토구치)와 다른 언어였으며, 가마쿠라 요시타로는 오키나와에서 그들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 예술,더나아가 그들의 외교관계까지 깊이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남다른 노력은 누가 시켜서 한 건 결코 아니었다. 건축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가마쿠라는 스스로 사진 기법을 배웠으며, 류큐 곳곳에 남아있는 유적과 슈리성을 찍어 나갔다. 남다른 사진 기술은 그 당시의 상황을 보더라도 가마쿠라의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직접 고문서를 필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데, 그가 남겨놓은 '가마쿠라 노트'는 류큐국과 주변 국가들의 외교관계 ,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조선과 중국과 류큐국의 문물 교류를 깊이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류큐국은 450년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1879년 오키나와 현에 편입되기 전 류큐국의 전성기는 15세기 무렵이다. 조선의 도공을 데려와 류큐국의 예술과 도자기 문화, 건축을 발달하였고, 슈리성은 조선의 경복궁과 흠사한 구조를 띄고 있다.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던 것처럼, 슈리성 또한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말았다. 일본과 미국의 전투에서 슈리성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인 잇점이 일본군 참호로 쓰여졌으며,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류큐국의 역사적 사료들 대부분은 소실된 상태였다. 특히 1429년에서 1879년까지 류큐국의 외교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역대보안' 두가지 판본이 있었지만, 첫번째 판본은 관동 대지진으로, 두번째 판본은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원본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또한 류큐국의 역대 왕의 모습을 그린 '오고에'도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한사람이 류큐국에 보여줬던 노력과 관심은 일본과 미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사라졌으며, 지금 류큐국은 어떤 나라인지 알수 있는 기록들 일부분만 남 아 있다. 특히 류큐국의 400년간의 외교문서 '역대보안'은 가마쿠라가 직접 복사하고 필사해 남겨놓은 게 전부였다. 그가 남겨놓은 사진과 기록이 현존하였기에 슈리성이 오키나와 현에 복원 될 수 있었고 우리는 류큐구의 전성기에 대해서, 그들과 조선과의 관계를 역추적 할 수 있다.


류큐왕국은 확고한 위계 제도하에 있었고, 신분에 따라 복식도 정해져 있었다. 빈가타는 기본적으로 왕족과 사족 계급이 입던 의상이다. 빈가타 의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황색천에 큰 무늬가 들어간 의복은 왕비나 안지(按司(최상층 사족)의 부인만 착용할 수 있었다. 왕권을 상징하는 봉황이나 용문양은 왕족만의 것이었다. 옷감의 소재에도 규정이 있었는데, 특히 비단은 상층 계급만 입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파초 섬유로 짠 옷감이나 모시(가라무시),무명천 등이다. 더운 계절에는 맨살에 닿는 촉감이 좋고, 겨울에는 겹쳐서 입는 것을 즐겼다. (p206)

k*******2 2018.05.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