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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7번째 기능> 1980년에 프랑스의 철학자가 롤랑 바르트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소설은 이 실제 사건에서 출발하여 그 뒤에 엄청난 음모가 있다는 상상을 통해 허구와 실제를 적절히 섞어낸 팩션이다. 작가가 철학덕후, 역사덕후이기도 하고 두세번 꼬아 놓은 언어 유희와 지식인 조롱을 연달아 풀어 놓기도 해서 이야기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젊은 기호학자가 나오면서 갑자기 분위기 셜록... 옷차림과 동작, 얼굴, 손 등을 보고는 처음 만난 상대가 알제리 전쟁에 참전했고 한 번 이혼하고 재혼했는데 새로운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 다 지스카르에게 투표했다는 것을 알아맞춘다. (어머나, 기호학 배우면 셜록홈즈 될 수 있는 것임?) 언어의 7번째 기능에 대한 비밀 텍스트를 롤랑 바르트가 갖고 있었고 그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가정 하에 그 7번째 기능이 뭐냐, 텍스트를 누가 노리냐는 것이 핵심 줄거리인데, 그 과정에서 당시의 지식인들이 총출동한다. 각 지식인들의 사상과 캐릭터를 잘 알고 있으면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정말 대충만 알고 있는 인물들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음. 이 책이 역사적 사건들은 그대로 두고 빈틈만 상상으로 채워나가는 팩션인 줄 알고 읽기 시작하다가, 1980년 즈음 파리에서는 살아있는 바닷가재를 머리에 얹고 다니거나 애완동물처럼 끌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는 대목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프랑스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이 소설은 거의 초현실주의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 그렇구나.. 그때부터는 그냥 맘을 내려놓고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2000년대까지 멀쩡히 살아 있는 자크 데리다나 존 설이 소설 속에서 죽는다. -.- 인물들의 욕망과 대립 구조를 촘촘히 쌓아 올리려고 노력한 것 같은데, 하도 등장인물이 많아서 나중엔 누가 누구랑 대립하는 건지도 헷갈림. 일본인 두 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왜 등장했는지도 아직도 모르겠다. * 언어의 7번째 기능은 수행적, 마술적, 주술적인 기능인데 말 자체가 수행의 힘을 가지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제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말하거나 '국회의 개원을 선언합니다'라는 말처럼, 발화가 곧 행위인 경우.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장면을 생중계로 보던 순간에, 물론 판사의 단어는 主文이란 뜻이지만, 묘하게도 呪文과 겹친다고 느꼈다. 저 말이 발음되는 순간 효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일 저 수행적 기능보다 더 확장된 힘을 가진다면 마법 주문처럼 주술적인 힘을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에 살을 (아주 많이) 붙여 600쪽의 소설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활극도 나오고 흥미진진한 학회 및 광란의 뒷풀이도 나오고 변태같은 논쟁 클럽(논쟁에서 지면 손가락 한 마디, 심하면 고환을 자른다...)도 나온다. 논쟁 클럽의 주제는 바칼로레아 논술 시험 문제 같은 느낌인데 논쟁 몇 개는 아주 재미있었다. 논쟁 클럽의 최고 등급, 숨은 고수가 등장하는데, 알고 보니 에코였다. 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정. 줄거리 정리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그냥 생각나는 대로 술술.. 그 비밀 텍스트를 미테랑이 손에 넣었고.. 그래서 논쟁에서 승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이 되었고...(아, 처음부터 나오는 이야기라 스포일러가 아님) 먼 훗날 하와이 출신의 잘생긴 흑인이 또 그걸 활용했다.. (아, 전체 이야기에서 전혀 중요한 내용은 아님) 작가가 쥘리아 크리스테바, 필리프 솔레르스, 베르나르-앙리 레비를 되게 싫어했나보다. 생존 인물을 이렇게 까도 되나 싶을 정도.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은 초판 독자들, 한국어 번역가와 편집자 등이 아마 가장 흥미진진한 독서 경험을 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어판이 2018년 3월 초에 나왔는데, 2018년 3월 말에 이 책의 악역 쥘리아 크리스테바가 *진짜* 불가리아의 스파이였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그 사실이 밝혀진 다음에 이 소설을 썼나 했더니, 그렇지 않았다. 이 소설이 나온 건 2015년이었다. 크리스테바가 스파이였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았던 것일까? 아님 작가가 그냥 지어냈는데 우연히 맞은 것일까? 당시 프랑스 분위기가 궁금하다. 지적 추리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며 따라가야만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비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