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거웠다. 거하게 기대를 했더니 설렁탕 한 그릇 얻어먹은 꼴이었다. 서울이 그러면 그렇지 생각도 들었다. 보통은 3대에 걸쳐 한 지역에 거주한 이들을 그 지역 토박이로 분류하는데, 서울에선 3대가 내리 거주한 경우를 찾는 게 힘들 터였다. 이를 2대로 낮추어도 사정은 쉬이 변치 않는다. 직장이 죄다 서울에 쏠려 있다 보니 현재도 타 지역에서 끊임없이 인구가 유입된다. 그에 따라 서울의 정체성은 점점 더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3대에 걸쳐 서울 거주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나는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을 묻는 질문 앞에서 벙어리가 되곤 한다.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어서다. 책을 읽다가 내 반응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음식은 서울 음식이 아니었다. 서울 음식이 아니되 서울 음식인. 타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정착하면서 뿌리내린 음식들이 대거 서울 음식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는 음식은 설렁탕이었다. 지금이야 어느 지역에 가도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음식이다. 서울 지역에서 이는 사대문 밖 낮은 것들(?)의 음식이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힘겹게 일을 마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을 때 설렁탕은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이었을 것이다. 대신 특유의 누린내는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위생 관념이 철두철미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가게 앞에 옛날식 표현을 빌리자면 소머리 등이 가득 들어찬 ‘다라이’가 놓여 있었을 것이다. 양반들은 그 장면을 혐오했다. 아니, 비위 약한 나 또한 즐거이 그와 같은 광경을 받아들이진 못할 듯하다. 부정적 감정을 밀어낸 건 맛이었다. 양반이 직접 설렁탕을 먹겠다며 사대문 밖으로 행차할 리는 없었다. 제 종을 통해 조용히 한 그릇 시켜 먹어보곤 ‘그래, 이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지 않았을까 한다. 외지에서 들어온 대표적 음식 중 하나인 홍어도 서울 음식으로 소개됐다. 사실 서울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먹지 못한다. 전라도 음식인 홍어는 서울에 올라와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끔 변화했다. 입천장 홀라당 까질 정도의 강렬한 신맛을 선호하는 사람도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서울의 홍어집들은 서울 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만 홍어를 삭혀 내어 놓는다. 삭힌 홍어가 질색인 이들에게도 홍어 무침만큼은 인기 만점이다. 새콤달콤한 양념이 술을 부른다. 오늘날 홍어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인천 앞바다에서 잡혀도 어쨌건 국내산이므로 꽤 비싸다. 제 식탁 위에 오른 홍어가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치 않다. 홍어를 안주 삼아 삶의 애환을 녹여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홍어가 꼭 국내산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서울 사람 아닌 서울 사람인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체성 또한 서울 음식을 서울 음식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을지로에 가면 평양냉면집이 여럿 있고, 오장동하면 다들 함흥냉면을 떠올린다. 서울 사람이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을 배워 만들 수도야 있겠지만, 전통 있는 집들을 살펴보면 북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가게를 꾸린 경우가 많다. 평양냉면이 다소 맹하다면 함흥냉면은 눈물 콧물 쏙 빼어놓을 정도로 매운 모양이다. 냉면을 먹을 때면 면이 끊어지질 않아 먹는데 애를 태운 경험이 많은데, 알고 보니 그건 함흥냉면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젠 어딜 가도 가위가 당연히 제공돼 그와 같은 경험을 할 기회가 드물어졌다. 이 또한 음식이 소비되는 장소가 서울이어서 생겨난 일일 것이다. 버젓하게 제 가게를 갖춘 집들도 많았다. 하지만 처음은 모두가 허름했고 비루했다.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민들의 발길을 사로잡던 음식점들 또한 그와 같은 요구에 따라 변화해갔다. 원래 장사하던 곳에서 떠밀려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집들도 꽤 여럿이다. 원래의 위치를 고수하지 못한 채 옆 건물, 옆 골목으로 밀려난 집들의 경우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지니게 됐다. 그에 따라 기존 단골손님들의 물갈이가 일어나기도 했다. 대학생들, 젊은 남녀의 출입도 반갑지만, 아이였을 때 부모 따라 출입했던 이들이 어른이 되어 제 자녀와 함께 등장하는 것 이상은 아닐 듯하다. 그렇게 서울 음식은 대를 이어 서울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서울 음식을 서울 음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서울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