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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와 대결한다. 홍양순(53)의 소설집 '나비, 살랑거리다'는 반지하 셋방에서, 혼잡한 지하철에서, 수영장 매점에서, 인적 끊인 한밤의 길목에서, 세계와 대결한다. 낭떠러지를 코앞에 두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지만, 그 대결에 임하는 주인공들의 의지는 뜨겁고 강렬하다.
단편 '미스터리 시간'의 병렬과 대치가 감각적이다. 여자는 두 이름이 있다. 강희명과 강희선. 하나는 죽은 언니의 이름이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언니지만, 지하 셋방 보증금까지 까먹고 집주인의 독촉을 피해 다니는 희선은 엉겁결에 희명의 이름을 댄다.
여자는 이름뿐만 아니라 사회적 권력관계에서도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숨은 걸 들킬까 봐 지하 쪽창문까지 이불로 꽁꽁 감싼 세입자 희선은 굴욕의 상징이지만, '미스터리 쇼퍼'로 군림하는 아르바이트생 희선은 권력 그 자체. 손님인 척 가장하고 KFC매장의 지저분한 쓰레기 분리함을 휴대폰 사진기로 찍어대는 그녀는 공포의 대상이다. 밤에 참았던 굴욕은 낮의 적의(敵意)로 대치되고, 상대방에 따라 희명과 희선은 병렬로 등장한다.
표제작인 '나비, 살랑거리다'는 못 배웠다는 이유로 남편의 무시를 감당해내야 하는 어느 대기업 부장 아내의 이야기. 흥미로운 것은 이 통속적 이야기를 감싸안고 있는 또 하나의 소설이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액자 형태인 셈. 한 수원지(水源池)에서 유량계를 설치하다 실수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며 백수의 삶으로 돌아온 '내'가 그 불쌍한 아내의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는 소설 속 작가다. 나비 한 마리가 북경에서 날개를 살랑거려 공기를 흔들면 다음 달 뉴욕에서 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 이론처럼, 첫 번째 소설의 유량계 단자 하나 혹은 두 번째 소설의 작은 아령 하나가 포개지고 갈라지면서 만들어내는 소설 속 작은 폭풍이 매력적이다. 1994년 '문화일보'에 중편소설 '떠도는 혼'이 당선되어 등단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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