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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단편은 대부분 1840년 이전에 쓰였는데 그 안에 걸작이 얼마나 많은지 독자들도 잘 알 것이다. <샤베르 대령>과 <성년 후견>도 있고 <버림받은 여인> 과 <농가주택>과 <전언> 그리고<마라나 여인들>과 함께 묶이는 훌륭한 단편소설들이 있다.발자크 소설을 얼마나 오래 붙들고 있는가는 작품의 길이와 비례하지 않는다.<투르의 목사>는 아주 짧지만 그것을 읽는 동안은 <아르시의 국회의원> 책장은 들춰보지도 않게 된다"/36쪽

발자크 소설 읽기가 프루스트 소설 읽기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해서 지금까지 온전하게 읽어낸 건 <고리오영감>이 유일하다. 다른 책들은 수없이 읽다 포기하기만 여러런...해서 <골짜기 백합>에 관한 헨리 제임스의 평에 격한 반가움을 느꼈다. "전성기의 전반기 작품이 전체적으로 후반기 작품보다 우월하긴 하지만 두세 작품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여야 한다. 1835년 출간된 <골짜기의 백합>은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35쪽 '아주 가느다란 명주실로 짜낸' 물론 사람마다 공감의 차이는 있을게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느낌보다..몰입이 심하게 되지 않는 걸로 손꼽힐만 한 작품이라 해야겠다. 그런데 콕 찍어 샤베르..가 언급되었다. 마침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놓았더니..지만지에서 한참 전에 출간되어 있을 줄이야. 소설의 제목만 보면, 한 장군의 일대기를 그려낸 것일거란 짐작은 되지만..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오해서 놀랐다. 헨리 제임스 덕분에 발자크의 단편을 비로소 만나게 된 셈이다. 아주 길지 않은 분량인것도 마음에 들지만, 분량이 적음에도 스토리가 탄탄했다.(발자크가 아닌가^^) 소송사무실 풍경을 한참동안 묘사하고 나소야 비로소 소송의뢰인을 등장시킨다. 바로 샤베르 라는 남자다. 구사일생으로 전장에서 돌아왔으나..그는 서류상 이미 전사자로 처리 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가 샤베르 대령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를 부정해야 할 이유들이 마침내 수면위로 들어난다. 모두가 외면하던 순간 데르빌은 그가 진짜 샤베르 대령일수도 있다고 믿어준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그의 권리를 찾아 주려고 하는 듯 보인다. 적어도 샤베르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최선이 아닌 차선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승소하는 것도계산에 넣어둔거다. 답이 그려지는 것 같으면서도, 소설은 긴장감과 반전으로 계속 이끈다. 샤배르 대령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그는 자신 스스로 판결을 내릴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난 내가 빛냈을지도 모를 그 이름을 절대로 주장하지 않을 거요.나는 지금부터는 햇빛의 자기 몫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그런 이야생트라 불리는 불쌍한 녀석일 뿐이오(...)혐오스럽다는 듯 그녀를 밀쳐 냈다"/148쪽 핸리 제임스가 발자크 소설의 특징으로 설명한 부분이 공감되는 지점이기도 했다."그는 미덕을 거의 믿지 않았고 미덕을 찬미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는 워낙 거대하고 다양해서 그 안에는 별별 모순된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42쪽 '아주 가느다란 명주실로 짜낸' 법은 힘없는 이에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권력을 가진 자와 싸운다는 건 그래서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법이 필요하지만 과연 언제나 옳은 판결이 내려지고 있는 것인지 "소송대리인인 우리는 똑같은 악한 감정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걸 보고 있지.아무것도 그런 것들을 바로 잡지 못하네 우리 연구는 결코 정화 시킬 수 없는 시궁창이라네(...)"/166쪽 소설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는 데르빌의 말은 고데샬에게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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