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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의 소중함을 말하고 자연을 아끼고 가꾸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그 존재 가치를 이야기한다. 산에 나무가 많아야 하느니, 모든 생명체가 개체를 유지해 나가 자연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느니 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인간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자연의 질서를 유지함으로 그 영장이 되는 인간들의 유익을 구하는 입장에서 이루어진 사고다. 이 책은 그런 각도에서 벗어난 자연 사랑을 보여준다. 자연의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세미한 것까지, 특히 신령스러운 모습까지 발견하면서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은 새가 보여주는 경이로움에 마음을 많이도 빼앗겼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만난 많은 동식물들에게 무심으로 다가갔던 일들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조그만 참새와 10년 가까이 사귄 어느 음악가의 이야기다. 이야기가 참으로 싱그럽고 정감적으로 다가온다. 노 음악가는 나치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갓 태어난 어린 참새가 둥지에서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참새에게 먹이를 주면서 그를 살린다. 그런데 그 참새가 성장하면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음악가의 말을 알아듣고 음악가의 가족처럼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지도 못하는 새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가지 예로 그가 사는 곳은 늘 청결하게 한다는 것이다. 배설도 가려서 할 줄을 알고 밖에 나간 화자가 돌아오는 것도, 문을 여는 행위도 인식한다. 그러면서 따뜻한 참대를 좋아하기까지 한다. 정말 신기한 참새의 생활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화자는 말한다. 어떤 새도 발랑 눕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 작은 새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는 발랑 눕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리고 그 새는 다른 사람이 접근할 것 같으면 순식간에 바른 자세로 돌아온다. 이것은 그가 둘만 있을 동안은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에 대한 화자의 신뢰는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그가 성장해 나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감정을 품은 적이 없었고, 항상 그를 구해주는 것이 화자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만큼 새는 화자를 신뢰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본능이든 지각이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영적인 교류를 가진 것이다. 새와의 잠자리를 가지는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화자가 잠자리를 잡으면 화자의 목 부근에 쪼르르 달려와 그곳에 안식처를 만들고 포근한 이불 아래에서 쉼의 가진다. 그리고 둘은 달콤한 잠에 빠진다. 그러다 새장을 마련해 주니 그곳에서 새가 생활을 하게 되는데, 화자가 집에 있을 때는 새장을 열어 놓고 둘이 함께 방에서 공존하는 생활을 해나가면서 생활을 나눈다. 화자가 아파서 집에 있는 때가 새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한 번은 그런 화자를 치료하러 온 간호사에게 질투를 느끼는지 공격을 하여 간호사가 그것을 밖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실재를 알기 위해서 집에까지 방문했다. 그때 새는 그 모두에게 충분히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일도 벌어졌다. 또 한 번은 새 한 마리를 마당에서 발견한 어떤 분이 그에게 친구 삼게 만들어 주려고 데리고 왔다. 그러니 새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 새를 당장에 쫓아 버리고 화자에게 서운함을 느꼈는지 앙탈을 부렸다. 그래서 뇌물을 주면서 어렵게 달랬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신기한 새다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화자도 신비롭다. 둘의 의사소통이 명백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서까지 나눠가지는 듯하다. 그 새의 그런 모습을 화자는 세밀하게, 넉넉하게 언어화하고 있다. 매력적인 글이다.
이 새가 전쟁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모든 사람들의 위안이 된다. 화자는 새에게 조금의 행동들을 가르쳐 배우로서의 역할을 하게 만든다. 전쟁으로 힘들게 숨어 지내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새의 공연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새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요구하는 행동을 하니까, 그 신기함에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웃음꽃이 피고,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어 얼굴에 생기가 돌게 만들어 나가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정말 아름답고 예쁜 일이고, 놀라운 일이다. 새의 사랑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새가 창 밖으로 날아온 다른 새들과의 교통을 통해 그들의 세계를 인식해 나가면서 화자에게 애정 공세를 해온다. 그래서 화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에게 동류의 새와 가정을 만들어 주려는 생각이다. 그러나 불합리한 요소가 너무 많아 포기하는 상황을 그린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린 새의 지각인지, 본능인지 느끼는 생활을 읽을 수 있다. 생명체가 가지는 보편적인 요소들이 모두 새를 통해서 인지해볼 수 있는 내용이 된다. 사랑을 하고, 후손을 이어가고, 요구하고, 갈등하는 그런 면을 새를 통해서 그대로 살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생명체에 대해서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피조물 가운데 똑같은 두 개의 생명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부한 상투어가 되었다. 대량생산은 하나님의 창조 방식이 전혀 아니었고, 인간이 대량생산을 나름의 창조 방식으로 삼게 되었을 때, 그것이 현대 문명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아무리 불가피하게 여겨졌다 해도 하나님이 제시한 방향이나 본보기로부터 우리들은 너무나 멀리 벗어났고,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재앙을 맞게 될 길로 곧장 접어들었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들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생명체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다. 화자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여겨진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개체를 인정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르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가 만난 새에 대해서 또 이야기한다. 그의 성격은, 툭하면 사납게 성질을 부리고 질투가 심했다는 점을 빼고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는 파괴하고 싶어 하는 기질이 없었으며, 언제라도 식사를 마다하는 법이 없기는 했어도 전혀 탐욕스럽지 않았다. 모든 참새가 그렇듯이 그는 기회주의자였지만, 그래도 도둑질을 한 적이 없었고, 먹으라고 주기 전에는 제멋대로 무엇을 먹어치우는 법도 없었다. 하나의 미물로서가 아니라 정서를 나눌 수 있는,가치를 나눌 수 있는 생명체로서의 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새의 입장이 되어 그를 바라보고 그의 입장을 변호하는 또 교통을 이루어나가는 모습일 듯하다. 일방적으로 이러한 이야기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러한 새에 대해서 온전하게 전하기 위해서 새의 생명이 다해 갈 때 사진을 찍기로 결심한다. 이 책에서도 그 사진들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다. 그 사진을 찍을 때 새가 흔쾌히 호응을 해줘 버리는 사진 판본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새의 진실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일 듯한 일화다. 새의 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화자는 새가 노래를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배울 수 있는 지혜를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참새들이 지붕 위에서 그토록 말다툼을 벌이고 수다를 떠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들에게 날마다 즐거운 노래를 불러주며 평생을 보낼 지도 모를 일이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새가 12년의 생명을 누리고 떠난다. 화자는 그 동안 그렇게 나누었던 정감을 마음에 묻고 담담하게 보낸다. 이 책은 그런 과정 속에 탄생했다. 새와 다정하고 따뜻한 감성을 나누어 가졌던 이야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볼 수 있는 이야기, 우리 인생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글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글을 읽으면서 새의 능력, 그 신비로운 일에 감동이 되었다. 그리고 화자의 순수함이 그렇게 새와 교감을 만들어 나가게 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또 새가 그에게 잘 대해주는 존재에게 말을 거는 일들에 마음이 빼앗겼다. 모든 태어난 것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되어야 함을, 우리는 이 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읽기가 가능한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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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반려동물에게서 불행히도 나는 아직까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 등으로 동물을 키워본 적이 그러니까 동물에게 사랑을 줘 본 적이 아직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과 동물의 교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게 영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동물애호가들의 지나친 애정으로 확대 해석되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언어를 가진 인간이 표현해 내기 나름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 말이다. 내 눈엔 둘 다 같은 표정이지만 그들에겐 하나하나 다른 표정과 의미가 되는 것을 보면 당연히 뭔가 미심쩍었다. 과연 진실로 서로의 생각을 감정을 읽을 수 혹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나의 근원적인 의문을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이 풀어 줄 수 있을지 내심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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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아직 영국에서 전투가 시작되지 않은 ‘가짜 전쟁’의 무료했던 1940년 7월 어느 날, 작가 클레어 킵스는 런던 교외의 자기 집 앞에서 털이 하나도 나지 않은 벌거숭이 알몸에 눈도 뜨지 못하는 목숨이 끊어진 기미가 분명한 아기 참새 한 마리를 줍는다. 그리고 기어이 그것을 살려내려고 몇 시간 동안 정성을 기울였다. '놀랍게도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빨래 선반에서 새가 계속 미약하게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랗기는 하면서도 행복한 소리였으며, 바늘이 만약 노래를 부를 줄 안다면 아마도 그런 소리를 냈을 듯싶었다.(p.17)’ 그녀의 헌신적인 보살핌 아래 결국 발과 날개가 온전치 않은 참새는 밥 달라고 끊임없이 헤실헤실 웃었다. 그렇게 이 작가는 꺼져가는 작은 생명을 구원해줬다.
그리고 그 해 9월 독일군 폭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참혹했던 당시의 몇 달 동안, 그가 어떤 참새보다도 훨씬 더 충실하게 그리고 유능하게 국가에 공헌했다는 것이 완전한 진실이라고 나는 자신만만하게 장담하겠다. 집과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를 보면 잠시 동안이나마 시름을 잊었고, 겁에 질렸던 아이들은 마음을 놓고 즐거워했으며, 방독면을 씌워주려고 하면 고집스럽게 거부하던 시민들까지도 참새와 잠깐 놀게 해주겠다고만 하면 당장 얼굴을 내밀었다.(p.46)’ 그렇게 이 작은 참새의 귀여운 재롱은 독일 폭격기와 미사일의 위협으로 위축된 영국인들에게 위안과 희망의 상징이 되어 사람들을 구원해줬다. 그밖에도 12년 짧은 생애 동안 홀로 된 피아니스트였던 작가와 음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도 함께 누렸었고, 노쇠한 몸에 찾아온 한차례 위기에서도 ‘그는 분명히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우리들이 그를 도우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을 알아챌 만큼 똑똑했다.(p. 126)' 이렇게 작가를 감동시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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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가를 바라지도 않은 채 순수한 마음에서 의도했든 안했든 친구와 동반자로 서로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 인간들 사이에서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계는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동화 같은 실화 ‘어느 작은 참새의 일대기’에서는 홀로 된 여자의 반려자로서 12년 일생동안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은 참새가 있었다.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확신에 찬 충만한 행복감, 작가 클레어 킵스의 절제되고 차분한 어조에서조차도 숨길 수 없는, 그것은 ‘인간을 위로하고 사랑하고 꾸짖었던 참새와의 경이로운 우정’이 존재했음을 입증해주었다. 무한한 사랑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쫓은 참새의 궤적을 통해서 비록 작가의 지나친 상상 혹은 과장된 표현이라 할지라도 온갖 생명들에게 한결같이 존재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순 없어도 충분히 서로 교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자연에서 혹은 동물들에게서 치유를 받는 건 그들이 베푸는 이러한 대가 없는 사랑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봤다. 결국 점점 이기적으로 변모하는 인간에게 ‘순정’을 되살릴 수 있게 하는 혹은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아니면 사랑을 베푸는 연습을 하는 기회를 동물들과 함께하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물과의 교감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나같이 의심 많은 중생에게도 말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이 바로 유기동물로 변하는 요즘 추세에 어떤 생명체든 끝까지 예우를 갖춰 동반자로서 대하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도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그가 어떤 종말을 맞게 될지가 궁금했다. 내 목에 몸을 파묻고는 피곤한 어린아이처럼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고는 깨어나지 않으려는가, 아니면 비록 태어날 때부터 불구의 몸이기는 했지만 기나긴 인생 역정에서 전투에 임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영광스러운 휴식을 맞게 된 작고도 작은 백전노장처럼 그의 천막 안에서 평화롭게 죽어갈 것인가? 미래는 아무도 알 길이 없지만,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나면서 기나긴 하루가 마침내 막을 내리려고 한다.(p.152)'
'그는 여름을 무사히 넘길지는 몰라도, 폭삭 늙어버린 그의 모습을 보면 봄을 다시 맞아 그의 연약한 맥박이 빨라지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를 안락사 시킨다면 친구를 살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나는 그가 스스로 돌연히 떠나기만 바란다. 그가 나를 두고 떠나더라도, 나는 언젠가 그를 다시 보게 되리라는 믿음은 버리지 않겠다.(p.156)'
더불어 평화로운 아름다움이 잔잔하게 깃든,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어디에서 귀를 귀울여도, 그때마다 가슴을 촉촉하게 적혀주는 드뷔시의 ‘달빛’을 읽는 동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인 작가 클레어 킵스가 프로 실력을 자랑하지 않고 참새도 공감할 수 있는 연주를 하듯이 섬세하게 하나하나 고심하며 음을 선택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읽는 이를 소외시키지 않는 그 배려와 깊은 애정이 그녀 글의 매력이다. 그래서 과장이나 멋드러진 꾸밈없는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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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자식 없이 홀로 살던 한 부인은 자신의 집 문간에서 눈도 뜨지 못한 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참새를 발견한다. 평소에 동물, 특히 새와 친했고, 키워본 적도 있던 킵스 부인은 생명이 다 꺼져가는 그 참새를 정성껏 보살펴 살려내고, 그렇게 둘은 우정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12년간 같이 지낸다. (참새가 12년간 살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킵스 부인은 다리와 날개에 장애가 있는 참새였지만 그것을 괘념치 않고 교감을 나누었고, 그 덕분인지 흔히 볼 수 없는 참새의 여러 능력까지 관찰 할 수 있음을 참으로 자랑스러워했다.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중(비록 영국이라서 좀 덜했다고 하지만)의 어려운 상황 덕분에 둘은 더욱 의지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담담히 참새와의 생활에 대해 얘기 중에서도 독일의 공습과 폭격(자신의 집까지 폭격을 맞음), 등화관제 같은 상황이 그대로 나와 있어서 전쟁 당시의 위축된 생활상까지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부인이 피아노를 전공하여 항상 피아노를 쳤던 환경 덕분인지 참새(클래런스)는 노래까지 하는 능력을 보여주게 되고, 방공호 초소에서 공습대피반장으로 일을 하던 부인이 따분한 시간에 다른 대원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참새의 여러 재주와 연기는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과 시름에 잠긴 이웃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놀라운 재주를 지녔고 활발한 청춘을 보내던 클래런스도 11살쯤 되던 해에 뇌졸중을 앓게 된다. 그로인해 부인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노화되어 가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진정한 반려동물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가 교감을 나누는 클래런스와 부인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이 세상의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미물이라고 여기는 작은 새에게 부인이 베풀었던 보살핌과 사랑을 우리는 좀 더 배워야 하겠다. 단지 귀엽고 예뻐서 키우다가 조금만 아프거나 귀찮아지면 그냥 버려 버리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좀 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같이 공존해 나가는 법을 찾아보는 우리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12년 째 되는 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 책의 이야기는 끝난다. 정말로 진정한 반려 동물로써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던 클래런스의 일대기를 보면서 참새의 예상치 못한 행동과 클래런스만의 개성적인 모습을 보면서 신기했고, 다시 한번 생명의 소중함과 교감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은 안정효님이 번역하였는데, 문화적, 언어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특히 원제인 Sold for a farthing에 대한 것까지)들의 주석들이 적재적소에 많이 있어서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서 좋았다. 또한 클래런스의 흑백사진이 책 간간이 담겨있어서 나의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준 점도 구성면에서 참 좋았다.
너무 동화 같지만 실제의 이야기였기에 더욱 감동이 배가 되었던 인간과 참새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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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이 년 전에 일 년 가량의 외국생활을 끝내고 집에 오니 아주 예쁜 강아지가 있었고 그 강아지가 바로 초코였다. 그 전에는 애완동물을 집에서 키운다는 것은 남의 일일 뿐 전혀 내가 이렇게 반려견이 있게 될 줄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엄마의 알레르기 비염이 심해지자 어쩔 수 없이 초코를 집에서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었고 나는 내가 혼자사는 집에 몰래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그 후 엄마가 한 번씩 집에 올 때 마다 거금을 주고 초코를 다른 곳에 맡겨야 하는 불편함 빼고 초코는 내게 언제나 삶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책은 클래런스라는 참새가 저자인 클래어 킵스와 함께 12년을 살아가는 과정의 짧은 일대기인데 날개가 온전치 못해서 다른 참새와는 달리 날지 못하는 이 새는 저자의 삶에 하나의 불빛이 되어 준다. 다른 참새와는 달리 직접 새를 보지 못한 독자들도 새의 재롱에 빠져버릴 정도로 재주가 많은데다가 저자는 새가 마치 한 명의 사람이라도 된 듯한 의인화 기법으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모든 것들이 다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초코에게 느꼈던 여러가지 감정들이 그녀에게서 똑같이 느껴져서 공감할 수 있었다. 비록 강아지와 참새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그것 말고는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내게 참새의 이미지는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금세 날아가버리는 인간과 친숙하지 못한 새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참새를 키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아주 오랜 옛날 영국에서 10년 이상 참새를 반려동물로 키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참새의 속성으로 보았을 때 아마도 날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클레런스는 태어나자마자 저자를 만났기에 그녀가 바로 그의 어머니라고 여기는 각인 이론으로 12년 동안을 그녀와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흑백사진 속의 클레런스를 보면 이 작은 존재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과 희망을 주었는지 느껴진다. 이 느낌은 동물과의 교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아주 잠깐이라도 교감을 느껴본다면 그 순간 동물은 그 사람의 삶에 하나의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고 사진만 보아도 이 작은 참새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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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동물에 대해 국어 사전에서는 애완동물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 속에서 반려동물은 애완동물처럼 예뻐해주고 보살펴 주는 존재를 넘어 삶을 함께 하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서로 의지하는 또다른 가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 책 속의 두 인물은 바로 이 반려동물이자 동반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클레이 킵스라는 한 피아니스트가 우연히 참새 한 마리를 줍게 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 내려간 수필이다. 그녀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지만 아직은 그녀가 살던 런던을 덮치지 않았던 1940년 7월 1일 한 마리의 작은 아기 참새를 집 앞에서 발견하게 된다. 기존에도 새를 기른 경험이 있고, 다친 새를 치료해서 자연으로 돌려 보낸 바 있던 그녀는 그 날도 태어난지 하루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참새를 집으로 데려와 다시 숨을 불어넣어주기로 한다. 그렇게 그녀와 그의 인연을 시작되었다.
그녀의 계획은 이 작은 참새가 무사히 살아나고 건강이 회복되면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것이었으나, 참새가 자라는 과정에서 참새의 오른쪽 날개가 불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이 참새를 입양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참새와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자신의 침대의 일부를 내어주고, 자신의 머리카락에서 목욕을 하고, 자신의 머리핀을 소유하고자 하는 행위를 용납하는 것은 물론이고, 참새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경계심과 그녀에 대한 독점욕도 용납하고 인정한다.
그녀의 참새는 그녀의 반려 동물로만 활동한 것이 아니다. 런던이 전쟁에 휘말린 후 그녀는 참새에게 묘기를 가르쳐 대피소에 있는 우울한 감정을 희석시키고자 했고, 이 공연을 매우 성공적이었다. 때문에 그때까지 이름이 없던 참새에게 클래런스라는 이름이 생겼고, 적십자사의 우표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배우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음악적 소질도 모여 단 한 번 밖에 성공한 적 없는 공연에서 매우 멋진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하지만 모든 동반자들의 삶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동반자의 종족이 동물이라면 주인은 피치 못하게 이별을 준비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오랜 세월 함께 한 클래런스는 뇌졸증을 겪게 되고 균형 감각에 문제를 일으키고 식욕에 문제가 생긴다. 그 과정에서 클레이는 클래런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서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클레이의 보살핌을 받던 그는 마지막 울음과 함께 12년만에 그녀의 곁을 떠난다.
클레이는 이 이후에 다시 참새를 기른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으로 키운 클래런스에 비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클래런스는 일찍 배우자와 사별한 그녀을 위한 하늘의 안배였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과 참새가 이처럼 아름다운 우정을 주고 받을 수 있었을까?
어쩐지 이제부터는 참새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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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척추동물의 한 강(綱)으로 앞다리는 날개로 변형되어 날 수 있고, 입은 부리로 되어 손을 대신하는 구실을 하며, 온몸이 깃털로 덮인 온혈동물이다.
《어느 작은 참새의 일대기》라 사람에 위인이 있듯이 참새에도 특출난 인물이 있던가 싶은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가기 시작했다. 참새가 주인공인 판타지 소설을 생각했는데, 생각과 다르게 이 책은 저자 클레어 킵스가 집앞에서 어린 참새를 발견하고 살려내었으며 12년간 동반자로 가족으로 살아온 세월을 일기형식으로 그려낸 것이었다. 1940년 7월 1일 클레어 킵스를 찾아온 참새 클라렌스는 1952년 8월 23일 12년 동안의 삶을 마치고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7월 1일 클라렌스는 아주 작은 참새의 모습으로 클레어 킵스 앞에 나타났고, 클레어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살아나 애완동물이 아닌 동반자이자 가족으로 살다 12살의 나이로클레어의 곁을 떠나갔다. 평균 수명이 8년이라는 참새로는 그것도 동료들 곁이 아닌 사람의 애완으로 살다간것 치고도 장수한것이다. 클레어는 참새 클라렌스의 일대기를 쓰면서도 참새라고 쓰기보다 그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었다.
부부도 살아가면서 서로 닮아간다고 했던가? 전혀 다른 살을 살아온 사람도 함께 살아가면서 많은 면에서 닮아가듯이 참새 클라렌스도 주인인 클레어와 식성이라든지 행동 등 다른 면에서 닮아가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었다. 주인인 클레어를 알아보고 반가워 할줄 알고, 발소리를 알아듣는 것을 보면 참새도 지능이 있고 마치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 처음 대하는 얼굴을 부모로 인식하는 것처럼 참새도 자신을 구해준 클레어를 부모처럼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수 있는 집참새 일종이며 길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참새가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하며 사랑을 하기도 한다고? 클라렌스는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연극과 노래로서 잠시나마 웃음을 안겨준 스타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되면 야생으로 돌려보내고자 했으나 자라면서 장애를 보여주는 참새를 클레어는 야생으로 돌려보낼수가 없어 양자로 들인다. 둥지에서 떨어지며 장애를 입었거나 장애를 가졌기에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는지도.
클라렌스는 클레어를 어릴때는 보호자로 성장해서는 연인으로 구애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렇기에다른 사람들이 클레어에게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면 질투를 하며 치열하게 덤벼들고 싸움을 하려는 것 아닌가. 마치 마음에 든 여인을 두고 같은 여성을 좋아하게 된 남성들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결투를 벌이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새이면서도 같은 종의 참새보다 사람을 더 좋아했고 자신이 사람인양 믿으며 살다간 클라렌스의 삶은 특별했다.
클라렌스가 야생에서 살았다면 그런 기적같은 모습을 보여줄수 있었을까? 야생조류의 특성상 늙어 노환으로 사망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환경(먹이사슬)에 주어진 여건상 평균연령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일이 허다분하다. 뇌졸증에 걸렸다 회복되었고 변비에도 걸려봤으며, 샴페인으로 기운을 차리는 등 다른 참새들이라면 해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한 유일한 참새가 아닐까 싶다. 클라렌스와 클레어 킵스 커플이 보여준 애정은 상대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나도 글라렌스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아갈수 있을까?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어머니니까요." (P.113) (해당 서평은 모멘토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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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깁스부인의 특유의 관찰력으로 집참새의 생을 묘사한 책이다. 우리가 흔히 반려동물이라 쉽게 생각하지만 진정한 새의 본능을 통해 그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고 생명의 신비력을 책을 통해 표현했다. 또한 음악을 전공한 깁수분인은 사랑의 시선으로 동물을 바라봄으로 진정한 생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책이라 보인다. 집참생의 일대기를 이 책은 소상히 표현하고 있고 그것을통해 삶의 즐거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력에 대한 습성과 개성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 표현을 했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삶의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살아갈 방법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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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행복한 글을 읽었다. 단순한 서술과 장식 없는 문체를 지닌 기록물이지만 읽고 난 후 벅차올라 그 감동을 눅이기 위해 산책을 해야 했다. 얇은 책이지만 불구를 지닌 한 생명의 열두 해의 일생을 담고 있어 경의롭고 진정하다. 60년 전의 사진들이 아득하고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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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는 왜 참새인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진짜 새라서 참새라는 설이다. 거짓과 대비되는 말인 참, 이를테면 참꽃 참나무 참교육 같은 말에 들어가는 ‘참’을 써서 진짜 새, 참새라고 한다는 주장이다. 새에게 이름을 지었을 우리 조상(아마 십중팔구 농사꾼이었을 것이다.)의 눈으로 보면 참새에게 과연 ‘참’새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까. 곡식을 먹는 참새를 옳게 볼 수 있었을까. 곡식을 먹지만 벌레를 잡아먹으니 참새라고 여겼을까. 우리 조상의 깊은 지혜를 고려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른 또 하나는 작은 새라서 참새라는 설이다. 작은 새라는 뜻 ‘좀’새에서 참새로 낱말이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작은 도요를 ‘좀’도요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 또한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다. 두 가지 설 모두 일리가 있다.
참새는 우리 둘레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새다. 시골 마을과 논밭, 숲은 물론 도시 공원에서도 산다. 서울 인사동에 가면 가게에서 참새에게 먹이를 주는데 바글바글 몰려든다. 참새네 흙대중탕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은 주인이 따로 없다. 만들 때 너나없이 만들어 몸이 쏙 들어가는 탕을 어렵지 않게 만들고 몸 씻을 때도 특정 탕을 고집하지 않는다. 비어 있는 탕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때로 탕 하나 두고 다투기도 하지만 곧바로 순서를 정해 목욕한다. 날개를 얼마나 신나게 파닥이는지 탕은 더 깊어만 간다. 십 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씻고 나서 한꺼번에 화르르륵 물러나면 다른 참새들이 하나 둘 탕에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참새는 대부분 참새(Eurasian Tree Sparrow)인 데 반해 책에서 다룬 참새는 집참새(House Sparrow)다.
깊고도 친밀한 우정에 관한 얘기 ? 여러 해에 걸쳐서 한 인간과 한 마리의 새가 나눈 남다른 사연이 얽힌 얘기다. 홀로된 여자로서 내가 비교적 은둔에 가까운 고적한 생활을 했던 처지였으므로, 어쩌면 다른 어떤 참새도 그토록 독점적인 인간과의 관계를 누릴(또는 참고 견디어야 할) 특전을 얻지는 못했겠고, 어쩌면 그래서 모든 조류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적응력이 뛰어난 새의 습성과 기질과 가능성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엿볼 기회가 나에게 마련되었는지도 모른다. (12 ? 13쪽)
클레어 킵스(Clare Kipps)의 본 이름은 루시 헬렌 맥덜린 거들스톤이다. 결혼을 했으나 자신의 아이를 두지 못해서 고적하게 지내다가 자기 집 앞에서 발과 날개가 온전치 못한 아기 집참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만일 누군가 갓 태어난 아기를 문 앞에 두고 갔다면 당연히 무슨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새를 들고 따뜻한 옷자락으로 감싸고는, 부엌의 난로 가에 가서 앉아서 그것을 살려내려고 몇 시간 동안 정성을 기울였다.” 이튿날 놀랍게도 집참새는 회복되어 소리를 내고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집참새 클래런스가 태어난 뒤부터 12년 일곱 주하고도 나흘 동안 거의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산 클레어 킵스의 각별한 애정이 놀랍다. 클래런스의 작은 변화도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대처하는 모습은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다.
집참새의 선천성에 클레어 킵스가 마련한 환경 덕분에 클래런스는 놀라운 면모를 보여준다. 카드 돌리기, 뽑은 카드 알아맞히기, 머리핀으로 하는 줄다리기 묘기 따위를 하는 배우로서의 삶. 방공호 대피 시늉, ‘히틀러 연설’ 등 각종 연기도 천연덕스럽게 해내어 전쟁에 지친 시민과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준다. 야생의 집참새에겐 노래가 없다. 지저귀거나 찍찍거릴 뿐이다. 그런데 클레어의 어깨에 앉아서 피아노 연주 연습을 듣던 클래런스는 거의 첫날부터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흥분 상태에 이른다는 사실이 분명”하고, 얼마 안 가 스스로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한다. 삶의 환희를 표현할 줄 아는 가수였다. 다쳐서 돌봄을 받는 처지라서 그랬을까 사랑의 모험을 감행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고, 지혜롭게 늙어가는 모습은 배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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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른바 미생물학, 그 중에서도 세균학, 그 중에서도 항생제 내성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생물학을 한다는 것이 대체로는 분자생물학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은 거의 만지지 않고도 생물학을 한다고 하는 시대다. 나도 마찬가지다.내가 접하는,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이러 저런 항생제 내성을 가진 세균들뿐이다. 하지만 배지에 딱 붙어서 자라는 세균을 (정말로 살아있는 것이긴 해도) 살아 있다고 경외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생물 같은 생물인 박사 과정 때의 버섯을 놔두고 이 쪽으로 연구 방향을 정한 것이 10년이 넘었으니, 정작은 내가 나 자신을 ‘생물학자’라고 말하기는 쑥쓰러운 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 그냥 ‘세균학자’ 쯤으로 (그렇게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여기는 것이 마땅할 지 모르겠다. 그런 내가 클레어 킵스의 <어느 작은 참새의 일대기>를 일찍이 읽었다 해서 조류학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책 한 권이 사람의 운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훨씬 생물 같은 ‘버섯’을 두고 ‘세균’으로 전향한 내가 이 책의 영향으로 조류학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감동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글쎄, ‘감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까? ‘감동’이 아니라면 잔잔한 마음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는데 그걸 달리 표현하는 말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그건 ‘감동’이다. 이 얇은 책의 무엇이 그렇게 나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을까? 우선은 새의 한 평생을 함께 한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라고 해보자. 한 사람의 곁에서 한 평생을 한 기록을 담담히 적어 내려갔다 생각해보자. 설령 위인이 아니더라도, 아니 크게 굴곡진 삶은 산 사람이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생애가 감동스럽지 않겠는가? 거기에 참새와 작가의 교감이 보태어졌다. 작가는 참새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지는 않지만 그(분명 ‘그’라고 표현하고 있다)의 감정을 정확히 읽고 있다. 그는 작가에게 교태도 부리고, 앙탈도 부리고, 짜증도 낸다. 그 교감의 실체가 무엇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보는 것이 아닌가? 그 교감이 기록으로 남겨졌다는 것.그리고 그게 일생을 통했다는 것. 그리고 그 참새의 일생이 적잖이 사람에게도 교훈을 준다는 것도 있다. 작가는 굳이 교훈을 자주 얘기하지 않는다. 참새의 일생은 어쩌면 사람의 일생과 많이 닮아 있으며, 사람보다 짧은 삶을 그대로 관통하여 바라보았기 때문에 생명의 일생을 그대로 축소하여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교훈이라는 것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 교훈은 당위성을 강조하는 어록 같은 것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며 그대로 배어 나오는, 참새의 것이기도 하면서 작가의 것이기도 한 지혜 같은 것이다. 작가는 참새를 참새로 보지 않았다. ‘자그마한 사람’(143쪽)이라고 표현하기도 할 정도로 그저 한 생명, 사람과 같은 생명으로 보았다. 말 그대로 ‘반려자’였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날부터 작은 쇼를 보이며 인기 스타로, 노래를 부르는 삶의 황금기, 뇌졸중의 아픔 후의 힘없이 노년기,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감동’의 이유를 몇 가지 적었지만, 사실은 그냥 그런 사실이 그냥 촉촉히 마음을 적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읽으면서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으므로 그냥 그렇다고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 이 책에서 참새가 10년을 넘게 산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야생에서는 드물 것이다. 야생에서 (동물원에서와 같은) 늙고 병든 사자가 거의 없는 것처럼(그런 사자는 생존 경쟁에서 뒤쳐져 이미 죽었을 것이므로) 늙은 참새가 자신의 힘으로 생명을 부지할 수 있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더라도 집에서 키우는 새가 그처럼 오래 사는 것도 드문 일일 것이다. 교감. 그게 그의 장수 비결일 거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