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작가'라는 직업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사실이 그렇다기보다 나의 인식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와 같은 인식의 출발점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말이 사라졌을까 몰라도 내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작가는 밥 빌어먹기도 힘들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었다. 그런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적으로 듣고 자랐던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 공포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갖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게다가 집안 형편마저 팍팍했던 나로서는 직업 선택 목록에도 오르지 않은 '작가'를 평생 직업으로 갖게 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명함에 '작가'라는 두 글자가 이름 앞에 놓일라치면 '이 사람은 과연 제 때에 밥은 밥은 먹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곤 한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설마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있었다. 2011년 30대 초반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 모 씨는 자신이 살았던 월세방 현관문에 '그동안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쪽지를 남긴 채 사망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지병이 있었고, 직접적인 사망 원인도 지병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와 같은 글귀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비정함은 충분히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렇듯 작가는 되기도 어렵지만 평생 직업으로 선택하기에도 꽤나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영토 내에서는 말이다. "글쓰기는 한 줄의 단어를 펼쳐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줄은 광부의 곡괭이이고 목각사의 끌이며 의사의 탐침이다. 글 쓰는 이가 휘두르는 대로 그 줄은 그에게 길을 파서 내준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땅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막다를 골목일까, 아니면 진짜 주제를 찾아낸 것일까? 그 답은 내일 나타날 수도 있고 내년 이맘때쯤 나타날 수도 있다." (p.11) 미국 작가 애니 딜러드가 쓴 <작가살이(The writing life)>의 첫 대목은 그렇게 시작된다. 1장 '글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2장 '나는 어디에서 글을 쓰는가?', 3장 '누가 내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가?', 4장 '글 쓰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5장 '어떻게 나만의 글을 써낼 수 있을까?', 6장 '나의 글쓰기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7장 '글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의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장의 소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용 자체는 무척이나 평이하고 쉽게 쓰인 듯 여겨지지만 실제로 책을 읽는 독자는 여러 생각할 거리가 넘치는 까닭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책에 머무는 그 시간만큼은 꽤나 즐거울 거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세상이 아니라 문학을 공부한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상을 놓칠 수가 없다. 햄버거를 사거나 비행기를 타면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보고한다. 그는 자신이 읽을 책을 주의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그가 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배울 것을 조심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자신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12)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는 길이 예전보다 넓어진 게 사실이다. 일인 출판이 늘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책으로 내놓고 있다. 말하자면 유입되는 작가의 수가 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책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감소한다. 전에도 그랬지만 출판계는 그야말로 지독한 레드오션으로 변해가는 셈이다. 이런 마당에 작가를 꿈꾼다는 건 자살 행위와 진배없다. 물려받을 유산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럼에도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는 그들의 용기 덕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문화강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누릴 수 있고, 작금의 혼란을 잊을 수 있을 만큼의 재미있고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현실일 터,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글 쓰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매번 즉시 그것을 모두 써 버리고, 뿜어내고, 이용하고, 없애 버리라. 책의 나중 부분이나 다른 책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뭔가를 남겨두려는 충동은 그것을 지금 다 써먹으라는 신호이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들은 샘물처럼 뒤에서부터, 아래로부터 가득 차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알게 된 것을 혼자만 간직하려는 충동은 수치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일이기도 하다 아낌없이 공짜로 푹푹 나눠주지 않으면 결국 본인에게도 손해이다." (p.129) '작가'가 되겠노라 호언장담하는 이를 나는 존경한다.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일개 무명의 독자로서 고통 속에서 대작이 나온다는 것을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고통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생생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작가'를 꿈꾸는 당신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구비한 셈이다. 나는 기꺼이 당신의 독자가 될 것임을 약속할 수 있다. |
|
깊은 사유와 철학적 고뇌가 담긴 문장 또는 문학적 은유나 통찰을 담은 문장은 대중의 지지와 선택을 받기 어렵다. 소수의 선호층만 존재할 뿐 대중으로부터의 폭넓은 인기는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그러므로 좋은 책일수록 읽는 사람이 적고, 대중으로부터의 관심은 멀어진다. 이와 같은 역설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까닭에 작가의 체력을 소진하는 측면이 있다. 현대인의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책을 쓴다는 것은 작가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런 까닭에 독자가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과 안목이 필요하다. "전에 마음에 드는 어려운 책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은 북서 해안에 있는 한 섬에서 보낸 사흘 동안을 묘사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한 섬에서 시작했다가 글의 대부분을 다른 섬에서 썼다. 그 책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의 상당 부분은 시로 쓰였다. 책의 주제는 '영원과 시간의 관계' 그리고 고통받는 무고한 사람들에 관한 문제였다. 한때는 그것을 산문으로 펴낼 작정도 했었다. 그러나 산문이 너무 강렬하고 강조되는 바람에 산문으로 묘사하는 세계에 너무 많은 의미가 함축됐다. 그래서 한두 단어를 더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졌다. 나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 작품에 어떻게 매일 한 문장이나 한 문단을 덧붙일 수 있을까? 글의 어조는 격하고 들떠 있었다. 그것이 놓여 있는 방 쪽을 바라볼 때마다 졸렸다." (p.79~p.80) 애니 딜러드가 쓴 <작가살이>는 글 쓰는 이로서의 작가가 갖게 되는 고뇌와 생활 방식 등 작가의 삶 전반에 대해 쓰고 있다. 글쓰기의 기술과 요령을 다루는 책은 많지만 글을 쓰는 주체인 작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쓴 책은 흔치 않았던 까닭에 애니 딜러드가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꽤나 흥미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글 쓰는 이의 환경과 생활 방식, 글로 쓰이는 대상(사물, 타인, 때로는 자신)과의 교감, 의식의 흐름과 통찰력, 작가로서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열정과 깨달음 등을 매우 솔직하게 들려줌으로써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나 기성 작가들에게 다소나마 힌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가는 세상이 아니라 문학을 공부한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상을 놓칠 수가 없다. 햄버거를 사거나 비행기를 타면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보고한다. 그는 자신이 읽을 책을 주의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그가 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배울 것을 조심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자신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12) 독자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작업이니 체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작가의 체력이 떨어지면 그가 쓰는 글은 그에 비례하여(때로는 그 이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예컨대 젊은 시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시로 씀으로써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김지하 시인도 말년에 이르러서 글을 쓰지 못할 처지에 처하자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고, '철도원 삼대'를 썼던 황석영 작가 역시 그의 작품이 형편없어지자 유튜브에 출연하여 엉뚱한 사설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노화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작가 역시 늙어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글 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자신의 체력을 꾸준히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 작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체력적으로나 시간관리의 측면에서나 다른 작가의 모범이 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실로 존경스럽기만 하다. "글 쓰는 이는 지붕 너머를 바라보거나 구름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긴 사다리를 오른다. 그는 책을 쓰고 있다. 신발 신은 발이 한 번에 하나씩 둥근 발디딤대를 딛는다. 그는 서두르지도 쉬지도 않는다. 그의 발은 가파른 사다리의 균형을 느낀다. 허벅지의 긴 근육이 사다리의 동요를 막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할 일을 하며 꾸준히 오른다. 끝에 도달하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햇빛이 그에게 쏟아진다. 밝고 광활한 광경에 그는 놀란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아래쪽 풀밭 위에 놓인 사다리의 두발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기겁한다." (p.39~p.40) 한낮 더위가 한여름의 그것처럼 무섭다. 바야흐로 체력이 중요한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더위에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체력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도래한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늘과 같은 더위에도 지쳐 자신이 할 일을 마저 하지 못한다면 장마 뒤에 찾아오는 무더위에는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작가의 글도 이와 같아서 체력이 떨어진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금세라도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 기운이 없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이 맘에 들어 꾸준히 팬을 자처하던 내가 이제는 도저히 더는 읽을 수 없을 듯하여 포기하게 된 작가도 여럿이다. 하루키도 언젠가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슬픈 현실이지만. |
|
애니 딜러드는 <자연의 지혜>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다. 글쓰기 선생님이었던 첫 번째 남편에게 글쓰기를 배운 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남편도 역시 작가들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 인간의 삶과 자연을 시와 산문으로 표현한 공로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인문학 훈장을 수훈했다.
<작가살이>는 그녀의 작가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그녀는 외딴 곳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그 곳에서 은둔자처럼 글을 쓴다. 세상과 단절된 작가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가끔은 웃기기까지 한지 저자는 솔직하게 드러낸다. 작가들은 세상을 알지 못한다. 세상을 잘 아는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는다. 작가들은 대신 방에 들어앉아 세상을 만들어낸다. 작가들이 유년 시절의 경험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까지가 세상을 경험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물론 르포작가처럼 예외인 경우도 있겠지만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녀는 유명한 작가들의 경험담도 들려준다. 토머스 만은 하루종일 다른 일을 하면서 하루에 한 쪽씩 글을 썼다고 한다. -하루에 한 쪽씩 씀으로써 그는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많은 작품을 써낸 작가 중 한 사람이 됐다. 31쪽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녀는 파울 클레(전에 읽었던 책에도 나왔는데 파울 클레의 책을 사야겠다)의 말을 인용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화가는 물감을 세상에 맞추지 않는다. 화가는 결코 세상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을 물감에 맞춘다. 자아는 물감통과 그 통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을 나르는 하인이다. 113쪽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다 -책의 나중 부분이나 다른 책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뭔가를 남겨두려는 충동은 그것을 지금 다 써먹으라는 신호이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들은 샘물처럼 뒤에서부터, 아래로부터 가득 차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알게 된 것을 혼자만 간직하려는 충동은 수치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일이기도 하다. 아낌없이 공짜로 푹푹 나눠주지 않으면 결국 본인에게도 손해이다. 나중에 금고를 열어보면 재만 남아 있을 것이다. 129쪽 글쓰기의 지혜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인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정보를 아낌없이 공짜로 푹푹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결국 자기에게도 이게 득이다. 이 책의 크기는 과장해서 말하면 손바닥만하다. 무게도 가볍고 글씨체도 좋다. 하지만 절대 가벼운 책이 아니다. 글쓰기에 대해, 예술에 대해, 더 나아가 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애니 딜러드의 솔직하고도 유머러스한 성격은 읽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 일 년을 허비할 수도 있고 즉시 그 일을 해치워 버릴 수도 있다. (나약하게 굴 것인가, 아니면 겁쟁이처럼 굴 것인가?) 13쪽 괄호 안 내용에서 결국 같은 말 아닌가 싶어 조금 갸우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