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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미와 탐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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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탐욕貪慾에 물들 때는 대단히 '경제적인 동물'이 되고, 진심瞋心에 물들 때는 대단히 '정치적인 동물'이 되고, 치암癡暗에 물들 때는 대단히 맹신적이고 '종교적인 동물'이 됩니다.   자연이라는 말도 관념이고, 공해도 관념이고, 제국주의도 관념이고 모두가 관념입니다. 관념으로 시작하면 끝까지 관념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항상 극단으로 갑니다. 그리고 극단으로 치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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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탐욕貪慾에 물들 때는 대단히 '경제적인 동물'이 되고, 진심瞋心에 물들 때는 대단히 '정치적인 동물'이 되고, 치암癡暗에 물들 때는 대단히 맹신적이고 '종교적인 동물'이 됩니다.

 

자연이라는 말도 관념이고, 공해도 관념이고, 제국주의도 관념이고 모두가 관념입니다. 관념으로 시작하면 끝까지 관념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항상 극단으로 갑니다. 그리고 극단으로 치우치면 치우칠수록 좋은 가치들은 고루 구족하는 일이 불가능해집니다. 진.선.미가 하나하나 다 좋은 가치이건만 구족이 되지 않으니 역기능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중도中道로서 잘 다스려야합니다.

치우치기 쉬운 우리의 태도를 중도에 입각해서 벗어나자는 말씀입니다. 중도를 말씀하시면서 우선 양변兩邊을 말씀하십니다. 고행주의와 쾌락주의도 양변이고, 유有와 무無도 양변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있다.' 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변이요 극단이고, '무엇이 없다.' 고 하는 것도 하나의 변이요 극단이라고 똑 같이 말씀하십니다. '유, 무가 변이다.' 그 양극단을 다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깨닫는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중도中道란 중용中庸과 다릅니다. 중용은 기존 가치관 안에서 과過, 불급不及이 없도록 잘 조절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중용은 과불급을 피해 적절한 선線을 유지해 가는 현실적 지혜, 즉 처세술에 가깝지요. 그렇기 때문에 중용은 현실주의라는 또 하나의 변에 빠질 수 있습니다. 보통 중용적이라 할 때 실제로는 현실주의, 말하자면 유有에 치우쳐 있어요. 혹은 그에 대한 저항으로서 무無라는 극단으로 가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공空이 무無니 환幻이니 하는 이야기를 계속하게되고 또 거기에 빠져들어 탐닉하게 됩니다.

 

  불교의 중도中道는 양변을 항상 배제하는 것입니다.

  유有와 무無라는 극단, 고苦와 낙樂이라는 극단을 벗어나는 가치입니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취온五取蘊으로 이루어진  자기를 살펴보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지금.여기'. '있는 그대로'를 보라는 겁니다. 바깥을 쳐다보고,바깥을 기대하고,미래를 동경하고, 과거를 후회하는 건 바깥을 사는 것으로서 전부 부질없을 뿐 아니라 파멸적이기까지 합니다. '지금.여기'를 산다는 것은 미래로도 과거로도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이것은 영원함, 즉 시간을 초월한 상태인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사물의 현란한 외형적 모습에 속지 않고, 그 본질을 그대로 꿰뚫어보는 자세로 사물을 끌어들여서 본다는 뜻입니다. 지금.여기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변치 않는것과 같습니다. 움직임이 없는것과 같아요. 따라서 나에게느 시.공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의 대부분 일생의 타임라인은 인생을 100으로 볼때 40%는 과거에 얽매이고 

 40%는 미래의 걱정에 옭아 맵니다. 오늘 이 순간은 인간의 능력을 최대치 끌어올려

 도 10%만 사용하고 가듯이, 우주의 온 에너지가 오늘 하루 하루살이의 삶, 인생

 100년 하루살이의 압축된 삶처럼 짧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23.05.0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