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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김수영 전집 개정판이 나왔을 때 사두었는데 쉽게 시작하지 못했던 책이다. 마침 예스블로그에서 '새벽아침독서습관'이벤트가 있어서 이 책으로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자기 전에 책을 꺼내 머리맡에 갖다 두어서 일어나자마자 책을 폈다. 앞날개에 나와있는 김수영 소개를 꼼꼼하게 읽고 김수영 시인의 흑백 사진을 보며 내가 왜 진즉 이 책을 펴지 않았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서문에는 이 책을 엮은 과정이 엮은이의 글로 담백하게 나와 있다. 주머니에 넣은 송곳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아는 것처럼, 좋은 시는 이토록 많은 이들의 노고로 계속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느꼈다. 첫날, 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에 활자를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과 시를 계속 뒤적거리다가 어떤 구절엔 줄을 긋는다. 전체는 다가오지 않지만 구절을 읽을 때는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달나라의 장난, 부분)
시인 김수영 하면, 젊음, 패기, 저항이라는 말이 먼저 생각 난다. 그러나 사흘동안 새벽에 읽은 김수영의 시에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초라한 낭만도 곁들여져 있음을 느낀다. 생활인의 고단한 모습이 고스란히 배여있는 김수영의 시에서 50년대를 살았던 시인이 가진 정신의 자유와 생활의 억압을 보았다.
생활
시장 거리의 먼지 나는 길 옆의 좌판 위에 쌓인 호콩 마마콩 멍석의 호콩 마마콩이 어쩌면 저렇게 많은지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생활 속의 애정처럼 솟아오른 놈
(유년의 기적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나)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처럼 걸어가면서 나는 자꾸 허허……웃는다
무위와 생활의 극점을 돌아서 나는 또 하나의 생활의 좁은 골목 속으로 들어서면서 이 골목이라고 생각하고 무릎을 친다
생활은 고절(孤絶)이며 비애였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 간다 조용히 조용히……
김수영 시인이 '풀'을 썼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절망'과 '성'을 그가 쓴 것인지는 몰랐다. 전집을 읽는 이유 하나를 찾은 것이다. 또하나 마음에 남는 시는 '죄와 벌'이다. 이토록 자신을 객관화시키기까지 그가 보낸 고통이 느껴져 시를 읽으면서 그 아픔이 전해졌다. 김수영은 말한다. '시는 나쁜 시만이 가슴에 남는다'고. 그래서 평론가 김양헌은 시를 쓰지말고 그냥 독자로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했는가보다. 뒤에 수록된 미발표 시중에 한 편을 옮겨 본다.
무제
파리여 너는 어째서 더러운 곳만 골라서 앉느냐 너는 어째서 더러운 곳을 딛던 발을 들고 아무 인사의 말 한 마디도 없이 깨끗한 곳을 또 침범하느냐 무례한 놈 그러나 나의 동포여 넓은 천지를 가는 곳마다 쫓겨다니는 시인의 운명같이 처참하고 불쌍한 놈
그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 그가 살았던 시대와 달라진 것은 겉모습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웃은 친절하지만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은 쉽지 않고, 마음을 의지할 곳은 무르다. 달라지지 않는 것이 이 세계라면 굳이 애써야 할 일이 있을까. 허물어 건물을 높이기보다 그대로 두면 차라리 희망과 휴식을 주는 숲처럼 가만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다가......시간은 절대 뒤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미치고......그럼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시인의 죽음을 생각하면 조금 지치더라도 열심히 살아야지, 라는 말을 나에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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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시 부분 양장본으로 김수영 사후 50주년 기념 결정판입니다. 저자는 1921년 서울 종로에서 출생하여 1968년 버스에 치여 머리를 다친 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대학교 수업 교재로 김수영 전집 1 시 (김수영 사후 50주년 기념 결정판)을 도서관에서 대출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19로 대출이 쉽지 않아 yes 24에서 구입했어요. 참 잘 구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영님은 1946~1948년에 연희전문대 영문과에ㅏ 편입샜으며, 곧 그만둡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북한군 후퇴시 징집되어 북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하다 탈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고 1952년에 로포수용수에서 석방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 부산과 대구에서 통역관과 선린 상고의 영어교사를 하였고 1959년에 개인시집 [달나라 장난](춘조사)가 간행되었습니다. 저는 김수영 전집 1 시 에서 개인적으로 도서의 24~25쪽에 수록되고 저자가 1948년에 지은 [웃음]이라는 시가 마음에 남습니다. 시간에 달린 기이다란 시간을 보시오. 내가 어리다고 한탄하지 마시오. 나는 내 가슴에 또 하나의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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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두고 정말 마음이 혼잡할 때 야금야금 조금조금씩 아껴가면 읽는다. 마음이 혼잡할 때는 주로 '이게 정말 잘 사는 건가' , '이 방향이 옳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이다. 정말 아껴가면서 읽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를 읽는 후 받는 마음의 위안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그 무엇에 좀더 뜨거워지게 만들어준다. 난 뜨거운 내가 좋다. 열정과 힘이 넘치는 내가 좋다. 이 열정과 힘이 부디 헛되지 않은 것에 목적을 두기를 하고 갈망한다. 그리고 내가 앞서 '초월'이란 말을 써서인지, 문득 누군가의 말이 떠올린다. (누군가의 말은 시를 가르치는 선생의 말인듯!) 우리는 김수영을 너무 신화화해해서 생각한 부분이 없는가, 하는 반성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처럼 보인다, 라고. 하지만 나는 그 어떠한 반성없이, 회안없이, 부끄럼없이 김수영, 그가 좋다. 그의 시가 참 좋다! |
| 60대 중반을 넘긴 난 요즘 예전에 읽었던 책 제목도 줄거리도 깜빡 깜빡 하곤 한다. 우연히 책꽂이에 꽂힌 시집들 틈에서 누렇게 변색된 낡은 소책자를 발견했다. 바로 김수영 시인의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였고, 74년 초판은 아니었지만, 추억 돋는 빨간 도장 찍힌 인지가 붙은 78.11.25.출간된 중판이었다! 추억에 젖어 책장을 넘겨보니, 돋보기를 쓰고도 작은 활자가 가물가물, 게다가 웬 한자는 왜 이리 많이 등장하는지!ㅎㅎ 그래서 시인의 사후 50주년에 새로 펴낸 이 책을 주문했다! 새 책의 향기를 깊이 음미하면서, 한 편 한 편 다시 김수영 시인의 시를 곱씹어 볼 작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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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뎅이 -김수영 너의 앞에서는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았다 백 년이나 천 년이 결코 긴 세월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사랑의 테두리 속에 끼여 있기 때문이 아니리라 추한 나의 발밑에서 풍뎅이처럼 너는 하늘을 보고 운다 그 넓은 등판으로 땅을 쓸어 가면서 늬가 부르는 노래가 어디서 오는 것을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추악하고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너도 우둔한 얼굴을 만들 줄 안다 너의 이름과 너와 나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질 때까지 소금 같은 이 세계가 존속할 것이며 의심할 것인데 등 등판 광택 거대한 여울 미끄러져 가는 나의 의지 나의 의지보다 더 빠른 너의 노래 너의 노래보다 더한층 신축성이 있는 너의 사랑 내가 추악하고 우둔한 얼굴을 하면 너 역시 우둔한 얼굴을 만들줄 아는 것이 사랑. 그로인해 소금 같은 이 세계는 끝나지도 지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광활한 세상에서 단 하나의 만남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는 시. 생활의 고단함을 등에 이고 걸어가는 우리는 모두 풍뎅이. 흰 벽에 검은 점으로 만나 짧은 날개를 펼쳐 다른 벽으로 날아갑니다. 사랑과 이 모든 그리움을 들고. 서책 -김수영 덮어 놓은 책은 기도와 같은 것 이 책에는 신(神)밖에는 아무도 손을 대어서는 아니 된다 잠자는 책이여 누구를 향하여 앉아서도 아니 된다 누구를 향하여 열려서도 아니 된다 지구에 묻은 풀잎같이 나에게 묻은 서책의 숙련- 순결과 오점이 모두 그의 상징이 되려 할 때 신이여 당신의 책을 당신이 여시오 잠자는 책은 이미 잊어버린 책 이다음에 이 책을 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책을 정리하는 일은 고민과 망설임으로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책 한 권에는 기억과 그날의 날씨, 기분 같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책장에서 책을 빼내는 일은 한 시절과 이별하는 일. 진부한 표현으로는 기억을 잃어가는 일. 열렬히 사랑했던 힘으로 책을 읽어냈던 시간을 버립니다. 내가 꺼내어 주지 않으면 묵묵히 먼지와 햇빛을 품고 잠들어 있는 책. 다음 계절로 책읽기는 이월됩니다. 사랑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한낮이어도 볼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환한 빛 안에서 표정은 지워지고 비애로 젖어갑니다. 상심한 얼굴이어도 나든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자주 비가 내리고 번개가 쳤습니다, 사랑의 계절에는. 모두 안녕 할 때 까지 노래를 부르고 공책에 문장을 적겠습니다. 깊은 밤에 클릭으로 넘기는 시에서 나는 지독한 절망을 만납니다. 오늘의 바람이 불었고 햇빛은 다소 양이 적었으며 구름은 제멋대로 흘러갔습니다. 여기는 고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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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가 읽고 싶어서 샀어요. 김수영의 시는 정직한 자기 성찰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담고 있습니다. 시대를 고민하며 쓴 날카로운 문장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줍니다. 한국 현대시의 진수를 경험하고 싶은 분들께 이 전집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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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시를읽게될줄예전엔미처몰랐네시란게난해하고이해하기쉽지않고뭔소리를하는지알지못하였기때문에이시집을사는데상당히긴시간을고민하고나자신과도깊이있는대치하는시간이길어지기도했다그러나함돈균님의말씀을한번만따라가보자그래한번쯤실패해도괜찮지하는맘으로읽어봤다역시어렵다더구나단어가옛날한자어인게많고쳇지피티도표현을명확히알려주지않았기에나중엔그냥읽었다느낌가는데로좋은싯구절하나만얻어가도성공한거라는그분말씀을떠올리며특히혀내식교량편은함박님의해석을듣고읽으니까확실히이해도가높았다2권산문집까지구매한상태쇼핑중독습관이남아있는관계로꼭전집을사야한다는강박증이건고쳐나가야할습관이다산문집은1편만읽어보았다나름산문집도나쁘지않은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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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은 있지만 루소의 민약론을 다 정독하여도 집권당에 아부하지 말라는 말은 없는데 민주당이 제일인 세상에서는 민주당에 붙고 혁신당이 제일인 세상이 되면 혁신당에 붙으면 되지 않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제2공화국 이후의 정치의 철칙이 아니라고 하는가 여보게나 나이 사십을 어디로 먹었나 8.15를 6.25를 4.19를 뒈지지 않고 살아왔으면 알겠지 대한민국에서는 공산당만이 아니면 사람 따위는 기천 명쯤 죽여 보아도 까딱도 없거든 2025년에도 시의적절한 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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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임 <평산시애 1기>가 선정한 15 번째 시집은 김수영 시전집(민음사, 2023)이다. 1년 넘게 함께 시를 읽었지만 이번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앞뒤 맥락을 연결하며 읽어나가는 걸 포기해야 했던 시들이 많았다. 결국 기존에 해오던 방식인 각자 자신에게 의미가 있었던 시를 추천하며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읽어나갈 수밖에 없음을 실감했던 시집이었다. 부족하나마 지난 모임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여기에 옮겨 보고자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의 사견 위주임을 밝힌다. 김수영은 1921년에 종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전상을 하셨다. 원래는 부잣집이었지만 점점 가세가 기울어갔다. 1942년 일본에 유학을 가서 연극을 배웠다. 1944년 가족이 있는 만주로 가서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한다. 일본인을 위한 연극에 진절머리가 난 그는 연극을 그만두고 해방 이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다. 식민 지배 하에서 태어났기에 그는 일본어에 익숙했고 우리말이 서툴렀다. 시를 쓸 때 익숙한 일본어로 먼저 쓰고 사전을 찾아 한국어로 번역해야 했다. 그의 시에 나오는 한자들이나 우리말 표현들이 어색하여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그러나 김수영 시의 난해성은 언어 표현에만 있지 않다. 그의 내면에 기본적으로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의지가 강하게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다 저거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를 자유주의라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념보다 시인의 인간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시를 읽고 싶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1965.11.4.>
→흔히 김수영을 혁명의 시인,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를 통해 만난 김수영은 이념을 거부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 이 시에서 자유주의자로서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던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소시민적으로 시대와 타협하기 싫어하는 시인의 저항의식이 느껴진다. 이창복님은 그동안 김수영과 비슷한 시기의 시인인 백석이나 정지용 등의 시에는 시대적 아픔을 다룬 흔적이 없어 아쉬웠다고 한다. 당대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다루지 않고 개인적인 감상만을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이다. 김수영만큼 식민지 경험과 전쟁, 포로수용소, 좌와 우의 이념적 대립, 극심한 생활고 등의 험난했던 시대의 아픔을 이토록 직설적으로 드러낸 시인은 없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의 저항시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시절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 나고 서울에 남아 있던 그가 인민군 의용대로 자원하여 들어가지만 개천 야영훈련소에서 학대받다 탈출하고 서울로 돌아와 빨치산으로 몰려 거제 포로수용소에 들어가기까지.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포로수용소 안에서도 친공포로들의 반공포로 학살 사건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김수영은 살아남기 위해 정치적인 어떤 것에 무관심한 척하며 지내지 않았을까. 소심한 척하면서 버티지 않았을까.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던 시인은 무언가를 강요하는 사회에 저항한다. 그에게 삶이란 선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6.15.>
→ 4.19 혁명이 실패한 후 지은 시다. 학창 시절에는 혁명을 노래한 시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읽어보니 시인의 인간적인 고뇌가 짙게 배인 시임을 확인한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른 혁명, 정치적 혁명은 지식인으로 하여금 어느 한 쪽을 선택하게 하고 편가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서로 공격하고 죽이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방황하고 흔들리게 한다. 그러나 시인이 생각하는 진정하는 혁명은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동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적 혁명과 내면 혁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고독’은 개인적인 것이다. 자기 내면의 고독을 견디며 일어나는 혁명이어야 한다. 이것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혁명인 것이다. 시모임 회원 한 분이 장기수들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들은 전향을 하지 않고 오랜 세월 자신의 이념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보면 이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이념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가 김학의의 <완전한 만남>이란 작품을 연극으로 공연하기 위해 장기수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교도소 안에서 투쟁을 다룬 작품이다. 교도소 안에서 그들이 요구한 것은 이념이 아닌 자신들의 처우 개선이었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개혁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지 않던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한다.
여름밤
지상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 하늘의 소음도 번쩍인다 여름은 이래서 좋고 여름밤은 이래서 더욱 좋다
소음에 시달린 마당 한구석에 철 늦게 핀 여름 장미의 흰 구름 소나기가 지나고 바람이 불 듯 하더니 또 안 불고 소음은 더욱 번성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날 소음이 더욱 번성하다 남은 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던 날 소음이 더욱 번성하기 전날 우리는 언제나 소음의 2층
땅의 2층이 하늘인 것처럼 이렇게 인정(人情)의 하늘이 가까워진 일이 없다 남을 불쌍히 생각함은 나를 불쌍히 생각함이라 나와 또 나의 아들까지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다 남은 날 땅에만 소음이 있는 줄 알았더니 하늘에도 천둥이,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없는 더 큰 천둥이 있는 줄 알았다 그것이 먼저 있는 줄 알았다
지상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 하늘의 천둥이 번쩍인다 여름밤은 깊을수록 이래서 좋아진다. <1967.7.27.>
→ 사랑은 소나기가 지나고 바람이 불고 소음이 번성하고 천둥이 일어나는 일과 같이 특별한 일인 것 같다. 인간의 감정(人情)이 하늘에 미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읽은다면 참으로 사랑은 벅찬 감정에 관한 일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천둥이 번쩍인다는 것을 달리 해석해 보면 인식상에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 김수영의 사랑은 인생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회원 한 분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김수영은 김현경 여사와 1949년 결혼한다. 전쟁이 나서 헤어진 후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다음 아내를 찾아간다. 그러다 다시 대구나 부산 등지로 취직을 위해 떠난다. 돌아온 김수영은 가족을 이끌 능력이 없었다. 이번엔 김현경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부산으로 간다. 마침 부산에 있던 이종구가 찾아와 도와준다. 이종구는 김수영의 선배로 두 사람을 이어준 사람이다. 김현경은 이종구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1953년 김수영이 부산으로 찾아가 “자네가 나에게 이러면 안 되지”하며 “가자” 했지만 김현경은 따라가지 않는다. 커다란 배신감과 모욕감을 느낀 김수영은 서울로 돌아온다. 1954년 김현경은 이종구 집에서 나와 김수영에게로 다시 간다. 김수영은 아내를 다시 받아주고 신문사에 취직을 한다.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절한 모욕감은 상처로 굳어 김수영 마음에 박혀 있었다. 10년 후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백주 대낮에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련놉혔<죄와 벌>”던 사건은 김수영 내면의 트라우마가 남아 생긴 일이다.
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인해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1960.1.31.>
→ 김수영 시의 핵심은 자유이기도 하지만 사랑이기도 하다. 진짜 사랑은 어둠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사랑은 불안해 보인다. 너의 얼굴은 꺼졌다 살아났다, 그만큼 불안하다. 너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배신했었던 아내일 수도 있다. 자기을 배신하고 모욕감을 안겨준 아내. 상처받은 시인에게 사랑은 불안하기만 하다. 그토록 불안한 사랑으로 인해 시인은 인생을 알게 되고 세상을 알게 된다. 시인에게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채찍질하고 끊임없이 깨어있게 하는 존재다. 아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시인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다.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이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 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 <1954.10.5.>
→ 이 시를 추천하신 회원님은 위독하신 어머님 간병을 하면서 읽은 시라고 했다. 설움으로 몸이 타들어가는 거미의 모습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평생 자식을 위해 살다가 죽음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딸의 마음 또한 안쓰럽기만 하다. 이 시에서 ‘설움’이 계속 반복된다. ‘설움’의 원인은 무엇일까. 1954년에 발표된 시들 대부분 ‘설움’이 등장한다. 당시 김수영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종구를 떠나 돌아온 아내에게 포르노 소설을 쓰게 하고 그 원고료로 술을 마시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일도 있었다. 구질구질하게 가난했던 김수영이 갖고 있었던 지극한 모멸감과 능력 없는 남편이라는 자책감 등등. 그 모습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거미와 같지 않을까.
김수영 시에는 ‘거미’가 자주 나온다. 「거미」(1954), 「구름의 파수병」(1956), 「거미잡이」(1960)에서 나오는 거미는 다양한 객관적 상관물로 이용되고 있다. 설움을 품고 설움과 전면전을 벌이는 실존, 그것이 34세 김수영의 내면 풍경이었다. 예언자적 포효를 담은 「폭포」를 쓰기까지 아직 김수영은 내면에 갇혀 있다. - 김응교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중에서
김수영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를 달리 보게 된 부분이 있다. 생활 능력이 없는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존감, 배신한 아내을 바라보면서 느꼈을 미움이나 불안,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맞서지 못하는 무기력함 등등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마음을 치장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데에 당대의 시인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느낀다. 가끔은 투박하게, 가끔은 교묘하게 세상을 비꼬며 부조리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 또한 우리에게 울림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함께 읽은 시 <***만세>에서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진정한 언론의 자유란 차마 입에 내뱉지 못하는 말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말을 억압하면서 언론의 자유라고, 정치의 자유라고 우겨대니 자신은 ‘잠이 깰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이 시를 읽고 난 후 내게 가장 어려웠던 다음 시 <말>이 이해가 된다.
말
나무뿌리가 좀 더 깊이 겨울을 향해 가라앉았다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이 가슴의 동계(動悸,두근거림)도 기침도 한기(寒氣)도 내 것이 아니다 이 집도 아내도 아들도 어머니도 다시 내 것이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일을 하고 걱정하고 돈을 벌고 싸우고 오늘부터의 할 일을 하지만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 버렸다
익살스러울 만치 모든 거리가 단축되고 익살스러울 만치 모든 질문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고해야 할 너무나 많은 말을 갖고 있지만 세상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무언의 말 이 때문에 아내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자식을 다루기 어려워지고 친구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이 너무나 큰 어려움에 나는 입을 봉하고 있는 셈이고 무서운 무성의를 자행하고 있다
이 무언의 말 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우연의 빛이요 우연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 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이 만능의 말 겨울의 말이자 몸의 말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1964.11.6.>
→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독재정권 하에서 절망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두드러진 시이다. 특히 시인이 고집스레 주장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였다. 그런 시인에게 엄혹한 시절이다. 하고자 하는 말은 많아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 말이란 곧 의식의 표현이나 의식과 말이 따로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결국 ‘무언의 말’이 된다. 이는 죽음을 위한 말이며 말이 죽은 시대다. 1960년대 시가 그 전의 시보다 더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곧 시인으로서의 실존 자체가 위협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침을 뱉을’ 수 밖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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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작품의 구성까지 정성들여 만든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시집 중에는 정말로 두께감이 있어서 휴대하여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김수영 시인을 좋아해서 소장용으로 구매한 거라 괜찮았어요. 김수영 시인의 유명세 만큼 수능 시험에 출제됐던 작품도 여러 편 있어서 학창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기도했어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배우기 위해 사용되었던 작품들을 그 자체로 만날 수 있으니 신선하네요. 시집을 자주 읽지만 사뭇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