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3%
  • 리뷰 총점8 61%
  • 리뷰 총점6 3%
  • 리뷰 총점4 3%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7.0
  • 40대 8.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법과 정의에도 리더십은 필요하다.
"법과 정의에도 리더십은 필요하다." 내용보기
현문재인정부는 공약은 외면한 채 보복에만 열을 올린다. 덕이 없는 정부다. 빅맨에서부터 TV에 나온 금태섭의원님 몇 번 보았다. 그런데 왜 이런분이 잘못된 리더십을 가진분 밑에 있는지? 권오석씨의 자손들은 왜 권오석씨가 학살한 양민들의 후손들께 사과를 안할까 보복을 위해 노량진수산시장의 서민들을 꼭 울려야만할까 나도 책귀신이다. 책속에 파묻혀 살고싶다. 소장본이 얼마
"법과 정의에도 리더십은 필요하다." 내용보기

현문재인정부는 공약은 외면한 채 보복에만 열을 올린다. 덕이 없는 정부다.

 

빅맨에서부터 TV에 나온 금태섭의원님 몇 번 보았다.

 

그런데 왜 이런분이 잘못된 리더십을 가진분 밑에 있는지?

 

권오석씨의 자손들은 왜 권오석씨가 학살한 양민들의 후손들께 사과를 안할까

 

보복을 위해 노량진수산시장의 서민들을 꼭 울려야만할까

 

나도 책귀신이다. 책속에 파묻혀 살고싶다.

 

소장본이 얼마 안된다하셨는데 나도 얼마안된다.

 

어릴때 독서가 소중화다는걸 '주홍글씨'를 보면서 느낀다.

 

이번에 바로 구입했다.

 

책 좋아사하시는 것 같아 몇 권 추천드린다.

 

먼저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것 같아 독일책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여우와 토종씨의 행방불명

성서의 뿌리

진화의 종말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대쥬신을 찾아서1,2

한국,번영의 길

수목장

제3의 침팬지

헤이안 일본

 

예로 도공들은 고국에서 보낸 쇄환사가 조선으로 돌아가자고해도 쳐다도 안봤다.(한국,번영의 길)

 

지금 일본떄리기 보수정권 때리기가 한창이다.

 

차석으로 합격하고도 유신반대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 한도 있으셨겠지만

 

이이제이,원외근공,이제제이는 아실텐데

 

옛날 금나라,요나라는 그시절 한국과 일본과는 상대가 안되는 막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이 조공을 바칠정도였으나 중국은 오랑캐인 금나라를 이용해 요나라를 명망시키고

 

오랑캐인 원나라를 이용해 금나라를 멸망시킨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패막식을 보자 일본해를 보자 이이제이,원외근공으로 한 번 풀이해보자

 

중국이 일본에게 감정이 더 많을까 한국에게 감정이 더 많을까 그런데 일본해로 표기했다 왜일까

 

중국의 이이제이전략에 놀아나는 것을 왜 모를까

 

올림픽개막식때 '천장철도'가 잠시 비춘다 그리고 '중국의 거대한 기차'를 읽어보자

 

부족하다면 '달라이라마와 함께 한 20년'도

 

페이지181 지구온난화를 이해하려면 앨 고어부통령이 쓴 '불편한 진실'과

 

브라이언 페이건교수의 '뜨거운 지구' 같이 읽어보시면 해답이 나올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한자의 역설'에 다 있으니 시간나실떄 꼭 읽어보십시오.

 

좋은책 잘 읽었습니다.화이팅

 

책 내용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지만 하고 싶었던 말인지라 조금은 부담스럽더라도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 세개 올렸습니다.

 

 

제목 : 개그콘서트와 성매매특별법 

방송에서 한국의 한 중년여성이 젊은 이주여성에게 계란요리를 가르쳐준다.


이주여성 "와! 한국에선 계란으로 만들수 있는 요리가 이렇게 많아요?"


중년여인 "그럼! 한국요리가 얼마나 다양한데."


만일 이주여성이 카자흐스탄여인이고 그 공간이 카자흐스탄주방이라고 가정했을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자문화중심주의,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요리 널리 알려진 미국요리를 보라 우리만큼 다양하고 깊은 손맛이 나는 요리 얼마든지 있다


응용요리까지 신토불이는 어느나라에나 존재한다 자신이 어릴때부터 먹던음식이 바로 자신에겐 보약이다.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라틴음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수다에서 여성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말 '한국인들은 자신들만 매운거 먹을줄 안다고 착각하는것 같다'고


한국인에게 동남아나 인도 흑인을 닮았다고하면 감정상태가 좀 안좋아지지만 유럽인 닮았다고하면 기분이 '0'이거나'+'일 것이다.


백인들에게서 건너온 변형된 인종차별주의


현명한 자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다.


예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벗어나는데는 하루가 걸렸지만 이스라엘백성의 머릿속에게서 이집트를 몰아내는데는 40년이 걸렸다.


소수에 대한 편견을 뿌리뽑는 것은 조직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다.


포용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할뿐만 아니라 그 차이들을 탐구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그 차이들이 잘 혼합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다.


조직과 개인의 문화포용의 역량을 개발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지속가능한 다양성이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우선 종교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종교는 그것이 해답의 일부가되지 않으면 문제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인의 과반이 종교인인데 왜 우리는 매춘여성에 대한 포용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인가 사회에서도 버림받고 경찰에서도 버림받았


으니 그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주먹들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매매춘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성매매여성을 불법적으로 폭행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이 난무하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거물급 정치인들의 섹스스캔들 학점을 미끼로한 성추행 이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상아탑 한편의 진실이다.


보릿고개시절 쌀 한섬에 아전에게 강제로 몸을 바친 처녀들 이들에게도 돌을 던질 것인가?


유엔은 매춘여성을 조직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매매춘이 합법적이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지방 어느 도시 전망좋은 별장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파문, 젊은 여성들에 대한 이들의 성폭행 신문에 난 적도 있다 어디 이


것뿐이겠는가 왜 남성들에겐 관대하고 심청이들에게만 돌을 던지고 매장시키려고 하는가


얼마나 마지막까지 몰렸으면 그렇게까지라도해야 생계를 유지해야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힘을 모아 남자들을 보호하며 그녀들에게만 돌을 던진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픈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을 쓰신 김강자서장님의 공창등 여러가지 대안들과 더불어 사회적 편견을 해소시킬 다양한 방법부터 찾는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라 말하는데 공감한다.


우리는 모두 예비적존재다 실제로 장애인의 90%는 후천적장애인다.


어느 대가댁에 예쁜딸이 있다 가정해보자 성경에 나오는 부자이지만 사탄의 시험에들어 한순간에 병자가되고 부와 가족을 잃은 욥의


경우와 비슷하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몰락해 쪽방으로 이사가고 어머니는 큰병을 앓는다면 딸의 능력은 월급 백이나 이백정


도 밖에 못버는 상황이라면 어떻게하겠는가


나도 예전 도서외판할때 우리부서원들이 첫눈에 입이 벌어질 정도의 신입여사원이 입사했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큰병 앓으시는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를 구할 길이 없어 목돈을 얻을 수 있는 성매매업소로 간다며 안타깝게 떠나는걸 본적이 있다 안타까웠다.


솔직히 내가 구해주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워낙에 자린고비시라 말씀드릴 엄두가 안났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었으면.. 돌아보면 후회


만되는 과거다.


어떤 한 집단에 적용되는 이야기가 반드시 다른 집단에도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용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대화는 다른 종교, 정치 혹은 신념체계하에서 쉽게 이뤄질 수 없으며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주류의 바다속에서 비주류는 대피처가 필요하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뭐냐는 지문에 나는 "모든색"이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늘 선입견을 바탕으로 겉만보고 모든걸 판단 해버린다.


인도의 두 도시를 10년동안 관찰한 어느 학자의 이야기다.


한도시는 종교분쟁으로 끊임없이 시끄럽고 어느 도시는 항상 평화로웠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분쟁이 있는 도시는 자기종교끼리만 몰려살면서 자기 상상대로만 다른 종교집단을 평가하고 평화로운 도시는


모든 종교인들이 한국처럼 섞여살면서 서로를 직접 느낀다는 거였다.


우리는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을까


지금 내가 속한 집단의 가치관이나 문화는 계속변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뿐이다. 예를들어 우리는 기독교문


화가 탄생시킨 1부1처제의 문화속에서 살고있고 혈연적으로 결혼해선 안될 집단 될 집단도 무의식중에 구별하고 있다.


에스키모는 손님에게 아내를 내어주는 대처제를 가지고 있고 고구려나 성경에서도 형사취수제 즉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얻는 문


화가 있었다.


김유신은 처남인 김춘추의 딸과 혼례를 올렸으며 신라는 주막집같이 탁트인 곳에서 남녀상열지사를 했고 이방인인 처용은 이걸 보고


신기해했다 그래서 처용가가 쓰인것이다.


성골이나 로마왕조의 근친혼과 고려왕가의 이모와 결혼하는 풍습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놀랠일이다.


소통의 덕목은 세가지다 비움, 귀기울임,받아들임


전통적으로 억압받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했던 다문화집단에게 사회가 베푸는 인정이란 사막에서 만나는 물과 같다.


우리는 자기를 마주보는 자신의 시선에만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 쉽다.


개그콘서트의 '황해' 보이스피싱 코너를 보고 모두들 웃는다 보편화되고 마비된 약자에 대한 마비된 차별의식 글쎄 너무 마비되어 인


식자체를 못한다.


만일 어느 단체나 어느 종교 특정학교 특정지역의 억양으로 보이스피싱 개그맨들이 전화를 거는 장면을 연출했다면 그날도 막내리는


게 아니라 다음날 소송에 들어가던지 경찰서에서 기자회견을 할지도 모른다.


충천도사투리로 보이스피싱해보자 웃을까 연세대배치를 달고 보이스피싱하면 웃을까 이 말 자체만으로도 그곳에 속한 분들의 심기는


굉장히 거슬릴것이다.


군사정권시절을 드라마화한 '모래시계'에서 박상원씨가 검사역을 할때 폭행혐의로 잡혀온 목욕탕 때밀이가 "아니 글씨 서울에 있는


목욕탕 때밀이는 전부 전라도 놈이라고히서 그냥 주먹을 휘둘렀당께요 맞는건 내가 더 많이 맞았는데" 옛정권시절 선거에 이기고자


지역감정을 조장했고 그 정서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 시절 드라마에서는 특정지역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항상 가정부,운전사,때밀이,건달,구두닦이,공원등 비주류 사람역을 항상 맡아


야만했다.


그런 드라마에서의 약자에 대한 차별화가 모두 개콘에서 버젓이 방영되고 있는데 아무도 비판하는이 없이 깔깔대고있다. 멍청이들.


물고기에게 물이 중요한만큼, 사람에겐 삶을 즐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현생인류는 약 20만년전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부근에서 처음 나타나 약 6만년전부터 아프리카를 떠나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매춘이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 가난한 집 여자아이는 지금 돈 100만원 정도에 궁으로 팔려갔다.


한참 꿈 많을 소녀시절에 궁으로 팔려가 청춘을 남의 시중이나들며 간혹 성노리개까지되며 독수공방을 강요당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늙으면 궁에서 쫓겨나 낙산에 있는 정업원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영화 '광해군'에 나오는 '사월이'라는 궁녀는 탐관오리에게 모든걸 수탈당한채 궁으로 팔려온다 이것이 궁녀의 실체이다.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 나오는 궁녀는 선택을 기다리는 성매매업소 종사자들처럼 분홍색가운을 입고 명나라사신의 하룻밤 잠자


리 대상이 될 것만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궁녀의 운명이었다 만약 우리집안에 그런 일이 닥친다면 궁녀나 성매매여성들을 기존의 시


각으로 볼 수 있을까?


드라마 '대장금'에서 최고상궁이 이야기한다 "명나라사신에 의해 어느 궁녀가 아기를 가졌지만 우리는 그 아이를 숨겨 길렀다" 즉 윗


사람이 건드려도 참아야하느니라가 요점이다.


현실은 어떤가 피라미드 꼭대기만 보여준다 로또 맞은 궁녀 영조의 어머니 '최무수리 이야기' ,'대장금','안개시'등만을 집중조명한다.


남의 뒤치다꺼리나하다 평생을 썩어야했던 채 피지도 못한 궁녀의 인생 청춘을 묻어버린 그들의 인생 보기좋은가?


일본도 임진란 이후 1868년 이에야스가문의 군사정권에서 메이지천황에게로 권력이 이양되는 메이지유신까지 인구는 거의 늘지않았


고 먹을게 없어 여자아이는 유곽(성매매업소)에 팔아버리는게 일상이었다.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잘사는동네다. 언제 빵배달하러 문고리에 걸고 돌아서는데 반대편집 문앞에 붙은 압류장 하나 계


층의 하향수직이동의 단면을 본다.


재개발한다고 판자촌들 밀어버린다 어떻게 살라고 그것을 바라보는 어떤이들은 '시원하다'고 말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고 신하의 목을 치면 신하들은 입을 닫아버린다. 집단구성원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없도록 만드


는 왜곡된 사고방식을 '집단사고'라 한다.


이 집단사고를 줄이는 대책은 어떤 경우에도 반대의견 또는 다른 의견들을 확실하게 이끌어내야 한다.


우리속담에도 "시시덕이는 재를 넘어도 새침데기는 골로 빠진다"하지 않던가 즉 개방시스템을 가동할는 말이다.


사랑은 결국 그 가슴속에 수많은 고통을 간직하고 있다.


유대격언에도 기저귀가 축축해진 아기 말고 변화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했다.


변증법으로 살펴보자 변증법을 쉽게 풀어말하자면 모든것은 변한다는 뜻이다.


어떤 편안한 쇼파에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어도 얼마후 자세를 바꾸고 싶어질 것이다. 이게 변증법의 요점이다. 모든건 항상 변


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언제까지나 우리가 머무른 곳에 안주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중3때 좀 황당한 일이 있어 아직도 명확히 기억나는게 하나 있다.


연합고사 200점만점에 그 당시 커트라인이 140점이었다.


우리반에 3명이 커트라인에 걸렸는데 1명은 주간에 1명은 대기 1명은 야간이 되었고 대기답은 놈은 뒤에서 펑펑 울어댔고 우연히 거


리에서 보았는데 주간다니며 즐거워하던 모습을 보았다.


고1 들어가 우리반에도 140점으로 들어온 친구가 하나 있었다.


체육수업이 끝나갈 즈음 슬슬 수업을 시작하려는 야간아이들 보며 한마디 내뱉는다 "저런 애들이 군대가서 나라지켜야하는데" 그땐


좀 어이가 없었지만 왜 내가 어이없어했는지는 그거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어 무어라 말 할 수는 없었고 그 야간친구들도 어느 집에


서는 우리처럼 귀한 자식이다 단지 점수 1~2점 더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아직도 우리의 사고수준은 여기서


한발짝도 못벗어난 것 같다.


권력을 선생님에게 드린다 우리아이들 잘 가르쳐달라고 그런데 일부 교사들은 그건 뒷전이고 상전노릇하려고만 한다.


대통령도 우리를 위해 일해달라고 권력의 칼을 드린건데 개인적 복수를 위해 권력의 칼 휘두르는걸 종종 본 것 같다.


치안공직자분들중 성매매 여성들과 관련된 분야에 계신분들 좀 일이 많아지겠지만 좀 관대한 자세로 공무에 임해주실순 없을까 성매


매여성들 억업하는데 쓰라고 권력을 드린건 아닌데


성매매여성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편견 바꿀 순 없을까


실천한 복음이 곧 그 공동체가 선포하는 복음인 것이다.


"먼저 부딪쳐보라.질문은 나중에 하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제목 : 만약 권율장군이 역모의 수괴였다면?

 

 

학교에서 배운다. 소중화주의 한국은 작은 중국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여진,조선,일본을 오랑캐라 말하며 한국은 여진,일본을 오랑캐라 부른다.

권율장군은 충신이고 영웅이다. 소설을 한 번 써보자.

권율장군이 어디 권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원권씨라고 가정해본다.

도요토미는 임진왜란전 조선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시비를 건다.

만약 연산군때까지 일본에 공녀를 바쳤던 조선이 중종때 자주개혁을 선언하며 이를 단

절시켰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다시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이 이를 요구했다면?

10만양병설은 후대에 꾸며낸 허구이나 만일 실미도처럼 잘 훈련된 군대를 권율에게

맡기고 총지휘권을 주어 정벌하라 명했는데 낙동강쯤가다 지금은 농번기라 안되고

비가 많이와 화살이 느슨해지니 안되고 북쪽에 있는 나라가 남쪽에 있는 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다시 회군해 개혁을 하고 있는 조선왕조를 쓰러뜨리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국명을 권율의 고향인 철원으로 하오리까 가야라 하오리까 여쭌다.

  이에 고무된 도요토미는 가야란 이름이 아름다우니 (일본고대사서중 하나에 가야는

임라일본부 즉 일본의 식민지였다란 허구적이야기가 있다) 국명을 가야라하거라.

그후 가야의 태조 권율은 자신의 역모를 감추기 위해 소왜국주의사상을 내세워

조선은 작은 일본이라 칭하며 일본은 아버지의 나라라하여 큰나라에 빌붙여사는


사상인 사대주의로 일관한다 동국여지승람의 동국도 중국의 동쪽에 붙어있는


중국의 속국이란 뜻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칠 수는 없다. 그럼 권율(이성계)이 낙동강(위화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게 정당화된다.

그리고 다시 공녀제도를 만들어 매번 공녀를 뽑아 왜국에 상납하고 그 반작용으로

조혼제도가 가야시절 내내 자리를 잡는다.

이게 오랫동안 정착되어 1909년 민적법에 의해 성씨가 없는 노비나 백정,망나니,재주꾼들은

기왕이면 왕족의 성씨를 갖자며 철원권씨나 김해김씨를 가져가고 이들의 후손중

 성공한 사람들은 진짜족보를 사서 종친회에 나온다.

한술 더떠 어떤 이들은 진짜임을 강조하고자 권씨가 아니라 궐씨라고 고쳐부르기도 

한다.

몽고는 세계를 휘두른 국가다 원도 몽고족이 세웠고 러시아인도 한꺼풀 벗겨내면 속은

몽고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인도 무굴왕조,타타르까지 전세계를 휩쓸었다 황인종을 몽골리안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고려도 세계속에 그것도 몽고 바로 옆에 있다 모든 나라가 복속해야했듯 고려도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고 앞에 충성충자를 왕에게 붙였으며 공녀를 바쳐야했다 


이건 고려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일이었다. 

명은 원을 물리치고 중원만 통일한다 그리고 고려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건다.

물론 여기엔 공녀도 포함된다. 고려 공녀는 공민왕이 등극함과 동시에 없앤제도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까지 영토를 넓힌 고려는 전군의 총지휘권을 이성계에게 

맡기고 명을 치라 명한다.

고려는 문무를 겸비한 국가로 무인기질이 강했고 여러 전란을 거듭하면서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전권을 갖게된 이성계장군은 위화도에서 우기가 오길 기다리다 지금은 비가 많이와

화살이 느슨해져 안되고 농번기라 안되고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라

며 창끝이 겨눈 방향을 반대로 돌린후 고려를 무너뜨리고 고려에 싸움을 건 적국의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새로 생긴 왕조의 국명을 이성계의 고향인 화양이라고 하오리까

 조선이라고 하오리까 묻고 명태조 주원장은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우니 (고대 조


선은 중국이 지배했다고 중국은 아직까지 우기고 있다) 조선이라고 하거라라고 명한

다.

이 때 고려의 대신 이인임이 이성계의 선조라고 자기네 사서에 기록해 후손들이 조선에

대한 외교적 히든카드로 써먹도록 조치하고 이를 임진왜란 직전 오키나와 상인들에게

 전운이 감돈다는 정보를 입수한 명의 관리들이 이 히든카드를 써먹는다.

홍역관과 병부상서 석성의 이야기는 얼굴마담일뿐이다.

공녀를 보자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공녀제도를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조혼의 풍숩이 조선내내 이어지지만 지금의 교과서엔 조선의 공녀이야기나

조선시대 조혼이야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온통 고려공녀 충성충자 고려임금 이야기

뿐이다.

 우리 조상들도 항상 그랬으니까 조선이 중국을 사대주의로 떠받들고 사대로 일관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야 자기들의 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 개척한 갈라전(동북3성과 함경도일대)도 윤관의 동북9성도 흥남부두일대로 


왜곡되어있거나 함경도로 국한되고 교과서엔 온통 세종대왕의 4군6진이야기뿐이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군관 출신이고 세종의 대마도 정벌도 사실은 태종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고려의 무인기풍이 세종때까지는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군권은 모두 임금에게 집중시키는 체제를 만들고 공맹사상만을 강조하는

문치시스템에만 역점을두어 결국엔 임진왜란과 36년국치를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몽골제국시절 세계가 몽고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쳤지만 명나라시절 세계에서

명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친건 조선뿐이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전주이씨임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은 이씨가 아니고

리씨라고 주민등록증에 달고다닌다.

악인열전을 보자 히틀러가 있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독가스로 살해한 인물 독가스를

누가 나치에게 팔았는가 유대인재벌 로스차일드가문 그 후손들중 일부와 관계자들은

 AP,UPI,로이터,워싱턴포스트,헐리우드 ,뉴욕타임스,뉴욕포스트등등 모두 그들 


것이다.



위인전을 보자 이성계.나폴레온 모두 역모의 수괴인데 그 잔당들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너무 작아도 안보이지만 너무 커도 안보인다.

나폴레옹은 남의 나라 사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역모의 수괴인 이성계 이제 그만

이완용 같은 반열인 악인열전에 올릴때도 되지 않았을까



참고책


대쥬신을 찾아서

팍스 몽골리카와 고려

조선시대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욕망하는 지도

노컨,조선왕조실록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

한국사상식 바로잡기

풍수화


2019.5.28

 

 

제목 ;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고

 

 

한일어는 의태어 의성어가 발달했다.


슬슬 소로소로, 터벅터벅 토빠토빠, 깔깔 가라가라, 벌벌 부루부루, 줄줄 주로주로, 술술 스라스라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역사상식이 많다 일부만 보자 율곡의 10만양병설과 원효의 해골물 삼천궁녀 


모두 후대에 지어낸 허구이며 여몽의 왕실 통혼도 고려에서 먼저 요청했다 60년이상 이어온 썪은 


무신독재의 척결과 외교적 현안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조선말 세도정치 60년이 곪아 터진것과


 같다고 보면 얼추 맞다. 군사정권에 목을건 삼별초도 어찌보면 조선말 사대주의자들의 시각에서 


해석된건 아닐까.


조선이 금과옥조로 여긴 삼강오륜도 근본은 그들이 야만인이라 생각한 몽골의 노재지학이 


뿌리다.


  일본은 천황을 상징으로 남겨둔 채 중앙집권기인 에도시대 전까지 막부로 대표되는 


지방군벌간의 천년 가까운 싸움으로 지방자치의 틀을 다지다 중앙지배로 하나 된 나라로 


역량을 집적해 우리의 세종시대라 할 수 있는 메이지시대에 일본인이란 인식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등장한 가스라 고고로, 후쿠자와 유키치, 도고 헤이하찌로, 무쓰 무네미스와 같은


 근대사의 선각자들의 등장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져 막부로 다져진 지방자치와 에도시대의


 중앙지배가 조화된 가운데 메이지시대를 거치며 현대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나라가 된다. 


이 복받은 역사를 가진 나라는 근원이 어디일까


 최근 250만에서 1000만으로 늘어난 만주족의 정체성의 근원도 같이 느껴보자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인 구다라(백제),만주족(고구려),한국(신라)는 같은 언어 같은


 핏줄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란 증거를 제시하고자 구체적이고 긴 글을 올렸다.


만일 누군가 제 이론을 반박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와 같이 구체적인 자료로 반박해주시길


 바라며 그냥 감정에 복받치는 소리치는 글로 반박하신다면 정신은 사라지고 단지 


시정잡배들의 싸움으로 변질된 뿐입니다.


  2002년 우에다 마사아카(일본의 저명한 원로사학자)교수는 신찬성씨록 좌경황별조


 대원진인은 비다쓰천황의 손인 백제왕의 후손이란 대목에 대해 우리 기자에게 어떠한 대답도


 못한 채 우물거리다 인터뷰를 끝맺는다.


  구다라나이는 가치가 없다란 뜻이다. 구다라는 백제의 국명이고 나이는 무엇이 없다 이니 


원뜻은 백제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란 말이된다.


  2001년 12월 23일 월드컵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천황이 자신의 몸속에도 한국인의 


피가흐른다 는 즉 백제인의 후손이란 언급했고 일본언론은 아사히신문에서만 기사화했다.


  전두환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히로히토 일왕은 ‘사실은 우리 조상도


 한국인이라 발언’ 함.


이방자여사도 창덕궁 낙선재에서 일본천황가에선 숭늉을 마신다고 언급.


  동경대 인류학담당 하니와라 카즈로 교수는 동료교수들과 공동으로 일본 각지의 


고대 무덤의 두개골등을 통한 연구조사 결과 2300년전부터 건너온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인의 조상이란 사실을 규명하고 7세기초 백제유민이 대량으로 건너가기전 고대선주민인


 조몬계와 도래계인 야요이계의 비율이 1대8.6으로 나타났다 이건 현재 일본인구 1억4천만명중


도래인의 숫자가 1억1천2백만명이 넘는다는 수치이다.


  교과서에 실린 것만 보자 왕인, 한고안무, 수수보리, 아직기, 왕류귀, 오경박사, 호류지, 


시텐노지, 금당벽화 우리의 국보5호 일본국보 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미륵보살은


 한국에서만 나는 적송으로 만들어졌고 한국인이 귀히 여기는 약지를 세웠으며 왕건릉에서 


나온 인물상과 같이 유희좌를 하고 있다.


  8.15광복후 우리정부가 일본에 요청했던 ‘한국문화재 반환1호’가 백제관음상인데 일본사찰에 


내려오는 기록에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자세히 나오나 일본인들은 유럽에 순회전시할 때나 


자국에서 전시할 때도 일본 고유의 작품이며 조선에서 안나는 녹나무로 만들었다고 떠들지만


 녹나무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벚나무와 함께 건너간 수종이다.


 스다하치만신사인물화상경이란 고대 청동거울은 503년 백제 25대 무녕왕이 왜나라 왕실의


 친동생 게이타이천황에게 보내준 이 거울에 ‘사마’란 휘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71년 7월 8일 무녕왕릉에서 나온 매지권에 사마가 무령왕의 휘란게 밝혀졌고 거기 명문에


 적힌 무녕왕의 친동생인 왜왕의 쾌유를 빌며 이 청동거울을 내린다라는 게 사실로 밝혀졌다.


  무령왕은 물에서 태어났다하여 무녕왕인가 일본의 가카라섬 즉 왕이난섬이다. 무녕왕의 


껴묻거리중 여러 목재유물이 가카라섬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로 만들어졌다는게 발굴직후


 일본인학자에 의해 증명되기도 했다.


  다른 이야기가 많지만 칠지도가 발목을 잡아 우선 거론한다.


전통은 계승된다. 군수뇌부가 결정되면 대통령은 칼을 장군에게 하사한다. 장군이 나라의 


수반에게 칼을 올리는 일은 없다. 칠지도를 누가누구에게 올렸느니 내렸느니는 중요하지 않다. 


 칼을 만든 사람이 칼을 받는 사람에게 하사체로 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 칼을 가진 자는 어떠한 적병도 물리칠 수 있다’란 명문, 어느 미친분이 그런 칼을


 아무에게나 주겠는가 믿을 수 있는 같은 핏줄 아니면 어림없는 소리다.


백강전투에 패한 직후 왜군들은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어졌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라며 왜군들이 귀소처의 상실로 눈물을 흘린 


사실을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다.


  712년에 지은 고사기의 저자 오노 야스마로 그의 부친은 황산벌에서 마지막으로 전사한 


백제장수의 아들이다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 안톤 오노 그냥 우연한 일이다.


 알타이의 아사달 아사달은 고조선의 수도로 아침해 뜨는 언덕이란 뜻이 담겼고 고조선의 


남하한 6부족유민이 세운 신라는 아사달과 김씨의 나라 김연아 그리고 아사달이 일본으로


 건너가 받침이 사라져 아사다 마오 아사히 신문 아스카문명 그냥 우연이다 로또의 6자리 


숫자처럼 가야 노부나가 이에야스, 백제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아이신자오뤄 누루하치도 


사실은 김씨다 노루하치의 성인 아이는 아버지 신자는 신라 오뤄는 잊지말자 해석하면 


아버지의 나라 신라를 잊지말자가 된다.


  고사기보다 후대인 772년에 쓰여진 상표문엔 아스카 인구중 80-90%가 백제인이라 적고 있다. 


 아스카땅에 호류지의 찰주를 세우던 날, 소가노 우마코(목만치의 5대손)대신과 100여명의


 만조백관은 모두 백제옷을 입었고 보는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했다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도 미치다 미치루 노루가 노로 미역, 미나리, 미늘, 미숫가루, 미꾸라지 모두 


미즈(일본말 물)로 통한다 미는 즉 물이다.


  김춘추는 왜사신과 대화에서 통역을 쓰지 않았고 백제 여인은 왜인과 대화했다고


 일본서기는 남기고 있다.


어느 신문사의 일본 속 한국이란 제목으로 일본문화답사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구르다+마(싣는 기구)=구르마란 답이 나온다.


하나의 언어가 둘로 갈라지는 것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불과 2세대안에 끝난다 


어중간한 상태의 단계는 아주 짧다.


8세기중엽 만엽집과 10세기초의 고금집은 그 실린 시구가 크게 다르다.


시모노세끼 근방 해안에 도이가하마라는 야요이시대 공동묘지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골유적이 있다. 모두 마한땅으로 머리를 두고 있다 귀소본능이 이런 것일까.


일본인들은 백강전투의 분을 풀기위해 신공왕후를 통해 신라정벌이란 글로써 복수했고


조선은 임진왜란의 분을 풀기 위해 우리가 임난후 통신사로 보낸 사명당을 통해 글로써


 복수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두나라 사이에 대한해협이 끼어 있어서 조선동란(삼국전쟁등)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일본은 보다 일본적으로 바뀌어갔다.


신라는 백제의 문화를 망가뜨리고 장인과 유물을 많이 가져갔으며 남은 백제의 명맥을 섬에서


 나오지 못하게해 결국엔 섬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일본은 조선의 문화재를 망가뜨리고 장인과 유물을 잡아갔으며 조선이 반도국에서 주저앉도록 


반도사관을 심고 우리의 옛강토인 간도를 빼앗아버렸다.


  신라는 백제의 역사를 축소왜곡말살했으며 일본은 조선의 역사를 축소왜곡말살했다. 


역사에서 일방적으로 주는건 없다 뿌린대로 거둘뿐이다.


고대 백제와 일본은 누가누구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안에 경기도지사 강원도지사가 


있듯 그냥 하나의 나라였을 뿐이다.


  백제의 아비지는 황룡사탑을 조선의 심수관, 이삼평은 사쓰마 야끼를 선사했다.


삼국사기엔 없지만 일본서기에는 동성왕과 무녕왕이 각기 일본에서 귀국해 백제왕으로


 등극했다는 기사가 있다 또 일제시대에도 조선총독으로 재직하다 일본수상으로 옮긴


 경우도 있다. 생소해서 안믿기는가 중국사료엔 구려의 추를 유인해 죽였다고 했고 삼국사기엔


 추(주몽)의 밑에 장수가 잡힌 것이라 다르게 적고 있다.


 삼국사기엔 백제 26대 성왕이 관산성전투에서 신라 말을 관리하던 하급군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적고 있지만 일본서기엔 왜로 건너와 긴메이천황이 되었다 적고있다.


누가 그랬다 재료를 살 때 바가지를 안쓰려면 재료상 세 군데 들러서 값을 알아보라고...


중국측 자료엔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에 흐르던 강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고 기록되었지만


 중국에선 해석하길 선조들이 실수로 적은것이라 말하고 있다. 어떤것이 진짜일까


왜국도 잃어버린 강토와의 연을 끊고 새롭게 나가야 자기들의 살길임을 알았을까


천무천황은 고대 영토와의 모든 연결고리를 없앨것을 명하고 한일 양국은 동종이라는 


책들이 불태워진다 간무왕은 나라땅 선주민 세력등으로부터 질시와 견제를 받아 왕도를


 두 번씩이나 옮길 정도로 애를 먹었고 간무시절 분서사건에 대해 14세기 일본의 거물 


정치가 기타바타케 지카후사도 옛날 일본은 삼한과 동종이었느니라고 하는 책이 있어서 그 책을


 간무 연대에 불태워 버렸다고 신황정통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교류가 없으면 언어도 이질화되고 결국엔 2개국어가 된다. 몽고어와 한국어는 유사점이 매우 


많지만 현재 지리상의 장애물도 많다 한국어 만주어 일본어는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도


 생각해봐야할 언어다 북한어와 남한어는 분리가 시작되는 단계의 언어다.


만주어, 고대한국어, 일본어는 모두 받침이 없는 개음절이지만 현대한국어만 받침이 


있는것도 한번 생각해보자. 또 현대한국어도 조사가 붙으면 개음절이 된다.


조선 일본 몽고 거란 고려 부여 여진 신라 모두 국호가 해를 상징하며 유목민은 해를 


숭상했다는 점이다. 유목민은 살찐 양과 큰 뿔 가진 순록을 귀하게 여겼는데 고려란 글자를


 풀이해보면 그게 나온다 신라의 금관이 사슴뿔과 자작나무를 상징하듯


생태학적으로도 시조는 같으나 오랜 기간 떨어져 있으면 별종처럼 보이는 종이 참 많다.


  고구려 사람들은 668년 이후 당으로 일부는 신라로 편입되고 일부는 돌궐방향으로 서진한다. 


일제시대 우리는 만주로 연해주로 일본 구라파로 중앙아시아로 흩어졌고 결국 우린


 한반도에 남아 있지만 고구려는 민족 전체가 그 땅에서 사라졌나보다.


  일본이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국물에 건더기가 없어서다 그네들은 수저가 있을


 필요가 없다 단 한 사람 천황만은 한국사람처럼 수저를 쓴다. 고구려벽화엔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이 많다. 우리도 왕비가 주름치마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명왕이 큰 강을 만나 거북에 올라타 쭉 갔고 일본초대 천황인 진무도 동정하다 바다를 


만나 거북의 등에 올라타 쭉갔다. 거북을 신성시하는 것까지 공통이다 거북 참 오래도산다.


 고대 우리 역사의 흔적은 고베를 비롯한 세토나이카이(내해)를 따라 지명,유적,유물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고려의 지배층에 편입된 신라인들은 그들이 백제와 고구려를 완전히 없앴다고 해야


 조상의 위신이 서지 않았을까 만일 고구려와 백제의 후예들이 다른 곳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면 신라의 최대치적인 삼국통일을 했다는 역사가 더럽혀질게 뻔하다 고려에 궂이


 ‘구’자를 집어 넣어 고구려로 만든 건 어쩌면 거란,여진이 고구려를 대신하고 남부의 일본이


 백제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자기들이 섬기는 나라 고려가 그 위에 고려인들이 세운나라와 


더불어 열도백제까지 같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위신이 무어가될까 그래서 우리의 역사서엔


 통일신라를 강조했고 한반도 남북부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일까 그래서 소송녕과 


서희가 옛고구려를 들먹인 것일까


  거북선이 철갑선으로 둔갑한 이유도 붓으로 싸운 조선군을 칼을 가지고도 못이겼으니 


무언가 그럴듯한 패전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1995년 8월 동몽골 다리강가에서 고구려식무덤과 성곽을 손보기교수가 발굴했다.


 7세기흉노는 10만가구를 남겨두고 서진해 질지(아프가니스탄)를 거쳐 훈족, 헝가리로 이주한다.


7세기말 동몽골에서 발원한 종족이 몽고인의 실질적인 조상이된다. 그리고 고구려가 역


사에서 사라진건 668년이다.


   한국사학계에선 식민사학의 원흉으로 시라토리 구라키치를 지목한다. 헌대 그는 1933년 


발해에 관한 논문에서 지배층은 고구려인 주민은 말갈인이라 발표했고 현재 우리사학계는


 그 논문을 신앙으로 여기고 있다. 말갈이란 말은 5세기부터 사용된 고구려인의 별칭이란게 


이미 정설이 된지 오래다.


  우리아기 사진첩에 우리아기보다 다른 아기사진이 더 많이 실려 있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우리의 삼국사기 삼국유사처럼 일본엔 일본서기와 고사기엔 백제의 역사가 일본역사보다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일제시대 그들은 우리의 정수리에 앉아 조선을 통치하고 물러났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다스린걸 기리기 위해 일본궁,일본강, 일본마을을 만들진 않았다.


  교토 천황궁엔 죠메이천황을 안치하기 위해 구다라궁 북쪽에 지은 빈궁의 이름 역시 


구다라대빈(백제대빈)이었다. 백제교,백제문을 비롯해 소가노 우마코(목만치의 5대손)가 


호류사에서 행사할때도 귀족들이 모두 백제옷을 입었다고 일본사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 군부는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수도 없이 없앴는데도 백제강,백제역 백제신사 


백제마을등 너무 많은 우리고대 지명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


 규슈 기리시마공원에서 가장 거대한 산봉우리는 한국악이다.


일본땅을 만든 두신중 남신인 이자나기가 요미노쿠니(황천)를 탈출하여 온 곳도 히무키노쿠니


 현재의 규슈 아와키하라 해변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섬 규슈는 일본 고대사가 시작하는 땅이다.


우두산이 한국엔 거창, 소양강등 여러곳에 있다 일명 소머리산 일본엔 소시모리가 고대역사의


 중요한 지명으로 쓰인다.


소에 남부억양이 참가되어 시 머리는 모리로 변한다.


단군이 천부인인 거울, 북, 칼을 가졌고 천황가의 3종신기인 구리거울 ,칼 ,곡옥을 가졌다.


  신들의 이사를 간나즈키라 한다. 10월에 신들이 일본을 떠난다는 말이다. 우리의 영고, 


동맹은 10월에 한다. 그냥 우연이라 생각한다. 평안도말에 간나새끼가 있듯이


  백강전투 후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후에 각각에서 독립적으로 생긴말이


 가까운 것은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기초어와 사유방식이 비슷했음을 의미한다.


고사기에 나오는 농업신 ‘히요우케 히매가미’가 죽자 그의 몸에서 곡식이 나오는데 


머리에선 소,말 눈에선 누에가 배에선 벼 귀에선 기장 코에선 콩 보지에선 보리라는


 한국남부어가 등장한다.  또 우케를 훈민정음에선 찧지 않은 벼라고도 말했다.


고대 한국어에는 ㅆ이 없었고 받침도 없었지만 중국식 원음대로 한자를 읽어온 한국은


 이두로 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음운범위를 확장했고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 혁명적인


 한글이 창제되었으며 고대의 음운변화를 그대로 유지해온 일본어는 동음이의어가 많아져 


한자의 뜻으로 구별하게 되었다.


   만일 백제가 백강전투에서 승리했다면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언어는 영국과 미국이 영어를


 쓰는 것처럼 백제어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19세기말 영국수상 솔스베리가 남미에 대한 이권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남북미대륙의 


이권 독점을 내세운 먼로주의의 파기를 요구하자 미국대통령은 의회에 영국에 대한 전쟁


 선언을 요청하였다. 영국과 미국은 중남미에서의 이익이 엇갈리자 전쟁 일보직전의 험악한 


관계가 되고 미국민은 영국에 대한 독립전쟁을 되새기게 된 것이다.


  이때 영국 외상 밸포어의 ‘서로 같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민이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말 한마디로 전쟁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간 한일 사이에는 거듭되는 전쟁, 침략의 역사로 얽히고 있는데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다면 지난 역사와 같은 극단적인 관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 발틱함대를 일본장군 도고가 대한해협에서 격파하고 이순신장군을 칭송하는


 한마디를 한다. 그는 억세게 운이 좋으면서도 무사가 갖추어야할 덕목을 두루 갖춘 명장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우리가 나폴레옹, 링컨을 이야기하듯 민족적 동질감을 상실한듯한


 느낌을 받아 하나의 민족으로 다시 합쳐지기 위해선 아직 우리가 갈 길이 많음을 느낀다.


우리가 하나되면 유물도 다 찾을 수 있다 통일이된 후 국립박물관이 평양에 있으면 어떻고 


제주에 있으면 어떤가 초기엔 반발도 국가적으로 거세겠지만 대한민국의 경상도, 전라도의 


현실이 나은가 신라와 백제로 나뉘어 싸우는게 나은가   밥을 들고 먹으면 우린 상놈이라 한다. 


일본은 밥그릇을 내려놓고 먹으면 짐승이라 한다.  우린 산꼭대기에 올라가 쉬고 일본은 


꼭대기에 오르기 바로 직전에 쉰다. 그 차이가 무슨 상관인가 서로 차이가 있는게 무슨


 야만족의 척도인가 이 세상엔 야만족이란 없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 못하는 외부인만 존재할 뿐이다. 우린 일제식민사관을 심각하게


 여기지만 인조반정 공신들의 여진, 몽골에 대한 더러운 협잡을 우리 뇌리에 깊이 심음과


 우리를 오랑캐로 생각하는 중국을 사모하는 소중화 사상의 폐해가 더 심각하다 생각한다.


충렬왕 같은 부마왕을 몽고가 만들었다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상할대로 상한 무신정권을 


뒤엎고 노련한 외교를 위하여 우리가 먼저 몽고와 왕실혼을 제안한걸 우리는 반대로 알고있다.  


고려는 역사서를 본기로 적고있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집현전학사들은 우리역사를 중국의 


지배하에 있다는 세기로 낮추어 적고있다는걸 우리는 지나치고 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33배를 했다고 배웠지만 그런 일은 


우리사서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조조의 100만대군이 꾸며낸 이야기인 것처럼...


대장금에서 중국사신이 그녀를 인정해주니 기분 좋은가 일국의 왕위계승 문제도 별볼일 없는


 중국사신에게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게 조선왕조는 좋았나보다 이성계가 이자춘의 아들이 


아니라 이인임의 아들이라 그들의 사서에 적어놓았기에 우린 주청사를 보내고 건국후 


180년 동안 굴종적인 자세를 유지했다는 걸 인조반정공신들은 애써 외면하고 오로지 


대사관만 후손들에게 심는 걸 최고의 덕으로 삼아 우리의 학창시절에도 소중화사상을 


참 많이 주입받은 기억이 난다.


백제는 660년에 고구려는 668년에 국호가 없어지지만 왜국은 669년부터 왕 또는 대왕의


 호칭을 천황이라 고치고 일본이란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백제의 강돌문화를 넘어 마한을 정복한 후 백제가 일본열도를  백제땅으로 끌어들인 것은


 오진왕 때부터라는게 통설이다.


  일본문화와 조선문화가 같은 조상에 의해 이루어진 부분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은 솔직하게 받아들여서, 일본문화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또한 그들의 고분에서 삼국의 유물이 나왔다고 우쭐대며 


식민지시절의 분풀이를 하듯 우쭐대기 보단 80년대초 잃었던 피붙이를 만나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상봉 같은 느낌을 가지라면 나의 욕심일까


 여진족은 중국각지에 만성(만주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세워 260년간 350:1이란 민족비율로도 


팔기제를 중심으로 지배체제를 확립해왔다.


 18세기초에 옹정제는 “앞으로 시위와 호군 및 황궁을 지키고 파수보는 모든 인원은


 만주어만 사용해야 한다. 한어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 훈련시 병사들이 소집되어


 연병장에 있을 때에도 만주어만 사용해야 한다.” 할 정도로 정체성을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우리가 잘 아는 마지막 황제 푸이가 할 줄 아는 만주어는 “일리” 즉 일어서다란 만주어인


 일립비의 명령형인 일리뿐이었다 한다.


뇨후루씨의 뇨후루는 만주어로 늑대를 뜻하는 뇨허이고 한어로 늑대랑이라고 쓰다가 후에


 젊잖은 의미의 동음이의어인 사내랑으로 바꾸어 랑씨가 된다.


  만주족의 한화의 원인은 만주족의 후손들에게 중국이라는 또 다른 고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1750년쯤에 건륭제는 신강원정을 단행하고 시버와 솔룬은 탁월한 전공을 세운다.


전쟁이 끝나고 신강을 병합키 위해 수천명이 영구 주둔 임무를 띠고 가족과 함께 파견되어


 현재까지도 4만명가량의 시버족이 남아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주족이거나 자신들의 


말이 만주어라고 알지못한 채 현재 지구상에서 만주어를 말하는 마지막 사람들로 남아있다.


  누루하치가 칼카몽골에게 보낸 서신에서 “중국과 조선 두 나라는 오직 언어만 다르다. 


그들은 입는 옷도 같고 생활방식도 같다. 몽골과 여진 두 나라는 오직 언어만 다르다.


 우리는 입는 옷과 우리의 생활양식도 같다.”  또 흑룡강일대 시보, 솔론, 다우르, 부트족은


 지리, 언어, 생활양식 면에서 여진과 몽골의 중간단계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대한해협이 있어 한일어는 중간지대가 없다.


그래서 두 개의 언어로 착각하게 된 건 아닌지


건륭제는 서몽골인 준가르제국을 정복할 때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도시를 점령하면 


그곳의 주민을 모두 죽이는 작전을 구사해 서몽골의 준가르제국을 점령한 후 서몽골에


 남아 있는 몽고족은 전쟁전의 10분의 1로 줄어들어있었다.


현대에도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뚱이 국토정화 명목으로 내몽골의 원주민 


수십만명을 죽이거나 몽고로 쫓아 보냈으며 대만의 20%의 소수민족을 구성하는 중국인


 정권의 수장인 장개석도 2만명의 대만원주민을 학살했지만 이들의 행각은 건륭제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고 건륭제는 알타이유목민이 정체성을 상실했을 때 같은 민족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역사상식이 많다 일부만 보자 율곡의 10만양병설과 원효의 해골물은


 모두 후대에 지어낸 허구이며 여몽의 왕실 통혼도 고려에서 먼저 요청했다 60년이상 이어온


 군사독재의 척결과 외교적 현안들을 타파하기 위하여 조선말 세도정치 60년이 곪아 


터진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무신정권은 개성을 지키기 위해 모집된 정예군을 왜 자기집


대문앞에 배치하는가 군사정권에 목을건 삼별초도 어찌보면 조선말 사대주의자들의 


시각에서 해석된 건 아닐까.


조선이 금과옥조로 여긴 삼강오륜도 근본은 그들이 야만인이라 생각한 몽골의 노재지학이 그 뿌리다.


대륙을 넘어 정복활동을 한 몽고와 후금은 대양과 대해에서 무수한 수전을 경험한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지만 고려는 정책상 하위에 있었기에 강화도를 안건넌거 뿐이다.


금태조 아골타와 후금의 누루하치는 모두 아이신자오뤄란 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아버지 신자는 신라 오뤄는 잊지말자 즉 아버지의 나라 신라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두 사람도 모두 경주 김씨를 쓰고 있다.


금나라는 고려를 아버지의 나라라 보듬어 안았고 후금은 조선의 계속된 호전적 태도에도 국채를 


유지시켜 준다.


 현재까지도 청대 만주족 팔기의 후손들은 과거의 만성이었던 여러 도시에 거주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렵게 지켜나가고 있다.


이제 고구려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말조차 잊은채 250만으로 줄어들어 중국에 흩어져 있다.


중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진 후 그들의 국시는 한결같이 주변 민족을 거란처럼 흡수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인조반정 공신들과, 이성계가 신앙처럼 여기는 새끼중국인 사상인 소중화사상을 


언제까지 중국의 전통인 장자세습, 과부의 재가금지, 남존여비, 시집살이 , 항렬(돌림자)를 


가보로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정체성을 점점 인식하고 있는 남아있는 주변


의 형제들과 다시 한 집에 살 것인가


  문화적 특징인 언어가 사람들을 결합시킨다면 구성원이 모국어를 포기할 때 그 집단은 해체된다.


 2019.7.18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6 2019.08.1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