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리히 아우얼 바하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서 터키로 도망갔는데, 터키 국립대학의 불우한 연구환경, 즉 도서와 자료의 결핍이 이 책을 쓰도록 했다고 한다. 한정된 수의 도서 자료 밖엔 접할 수 없는 탓에 정밀한 독서를 강요당했고, 다른 실증적 자료에 구애받지 않는 자기 스타일의 통찰을 책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메시스'는 '모의, 모방, 모사'라는 뜻이랜다. 지금 내가 읽은 데까지 얘기되고 있는 것은 예컨대 이런 거다. 희랍 고전에서는 비극적인 요소 - 영웅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 희극적인 요소 - 일상적이고 지체가 낮은 사람이라는 스타일의 양분화가 극명하다. 그런데 기독교적 전통에서는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소재의 계급적 특성에 따라 스타일이나 어조를 분리시키는 일이 없었다. 중세에는 성서문학의 이러한 궤적이 이어진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에는 스타일 분리의 전통이 잠시 되살아나지만, 현대 리얼리즘 문학이 대두하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는 드디어 일상을 진지하고 비극적으로 다루게 되며, 이러한 과정을 저자는 서양문학의 현실모방 과정이라고 명명한다. 음, 그래서 미메시스구나. 그런데 이런 궤적을 뒤밟아가는 과정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언어학적 재능, 그리고 문학적 통찰력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지라 나같은 문외한도 재미를 나름대로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