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1%
  • 리뷰 총점8 29%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9.0
  • 30대 8.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7)

리뷰 총점 종이책
땅의 예찬: 정원으로의 여행
"땅의 예찬: 정원으로의 여행" 내용보기
"피로사회" 이후 한병철 교수님 저작에 완전 반해서 한국에 번역 출간하고 있는 책을 구입, 소장, 읽으며 따라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뜻 구입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이유는 '정원'이 소재이기 때문이다. 여느 현대 청년들처럼 나는 땅에서 멀리 있고 꽃을 알지 못하는 자다. 저자가 병환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한국에 들렀을 때 서울에는 땅이 없고 초록이 없다고 말하
"땅의 예찬: 정원으로의 여행" 내용보기

 

"피로사회" 이후 한병철 교수님 저작에 완전 반해서 한국에 번역 출간하고 있는 책을 구입, 소장, 읽으며 따라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뜻 구입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이유는 '정원'이 소재이기 때문이다. 여느 현대 청년들처럼 나는 땅에서 멀리 있고 꽃을 알지 못하는 자다. 저자가 병환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한국에 들렀을 때 서울에는 땅이 없고 초록이 없다고 말하며 겨우 인왕산에 올라 꽃을 보는 상황이 나오는데 바로 그런 곳에 살고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딸'을 만나듯 정원에 머물며 다양한 꽃들을 돌보고 관찰하며 자세히 묘사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약간 정신을 놓고 읽었음을 고백한다.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세계다.  

 

책은 아름답게도 곳곳에 식물도감 속 세밀화처럼 언급하고 있는 꽃 그림을 학명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선물로 엽서도 한 장 넣어주었는데 나는 'Hydrangeaceae- 나무수국' 엽서를 받았다. 야생 범의귓과 꽃들은 바위에 자라곤 한다고 읽은 듯한데 잘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찾아보니 화려하고 아름답다. 저자가 노발리스 같은 낭만주의자 시를 인용하며 '푸른 색'에 대해 길게 언급하고 있어서 인상 깊었다. 베르메르의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를 소재로 한 동명의 영화에서 색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이 책에서 묘사하기도 한다. 색채의 역사에서 파란색은 다른 색에 비해 역사가 짧으며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다른 책들에서 읽었다. 그 색이 불러 일으키는 독특한 정서는 성모 마리아를 연상 시키는 고귀하고 희귀한 역사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꽃을 알지 못하지만 푸른 색을 띤 아네모네를 묘사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시 속에서 묘사한 아네모네 모습에서 연약한 듯 보이지만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저자는 자신의 정원을 가꾸며 생각하고 느낀 단상들을 글로 써내려갔다. 책 뒷부분은 봄-여름-가을로 넘어가면서 정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날짜 순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인상 깊게도 책 앞부분에서 정원으로서는 마치 죽어 있는 듯 보일 수 있는 '겨울' 정원 모습을 의도적으로 자세히 그리고 있다. 저자는 특별히 겨울 정원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거기서 생명의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 자라나는 생명을 보며 경이를 느낀다. 어렵게 피는 꽃에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정원에서 나는 계절을 훨씬 더 강하게 느낀다. 다가오는 겨울을 앞둔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 빛은 점점 더 약해지고 옅어지고 희미해진다. 전에는 빛에 그토록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죽어가는 빛이 고통스럽다. 정원에서는 무엇보다도 몸으로 계절을 느낀다. 빗물받이 통에서 떨어지는 물의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몸속 깊이 파고든다. 하지만 거기서 느끼는 고통은 좋은 것,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그 고통이 내게, 오늘날 잘 조율된 디지털 세계에서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현실감, 몸의 느낌을 되돌려준다. 정원에는 감각성과 물질성이 넉넉하다. 모니터보다 정원이 훨씬 더 많이 세계를 포함한다." 22쪽.

 

저자에게 정원은 타자를 만나는 곳이다. 식물들은 자기 시간과 의지와 힘을 가지고 피어나고 시든다. 제목에서부터 '땅'을 넣었으니 저자의 전작에서 자주 등장하던 하이데거가 여기에도 등장하리라는 예견을 책 읽기 전부터 할 수 있었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입을 빌어 인간(시공간적으로 유한, 물질적 존재)은 땅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땅에서 자란 식물들이 보이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인간을 구원한다.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에서 봄이면 새로운 생명이 깨어난다. 죽은 등걸에서 다시 싱싱한 초록이 솟아난다. 이런 경이로운 기적이 어째서 인간에게는 거부되어 있을까, 하고 나는 자문한다. 인간은 늙어 죽는다. 봄도, 다시 깨어남도 없다. 그냥 시들어 썩는다. 인간은 이렇듯 슬픈, 참으로 참기 힘든 운명을 받았다. 그러니 나는 거듭 새로워지고, 다시 살아나고, 젊어지는 식물이 몹시 부럽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있다. 어째서 인간에게만은 그것이 거부되어 있는가?" 66쪽.

 

독일어로 철학을 하는 저자는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자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 수녀님은 저자 남매에게 아름다운 꽃을 선물해주곤 했단다. 정원에 '아름다움의 구원'이 있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신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다. 진선미성이 연결되어 있음을 아래와 같은 부분에서 발견하며 공감했다. 어떤 철학 부류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오래 전에 폐기했지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역사적으로 오랜 체험들을 통해 인간 집단 무의식에 근원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런 오랜 생각과 느낌이 있다. 자연을 깊이 아는 사람일 수록 신의 창조를 믿는다고 했다.

"오늘 다시 아직 겨울인 정원에 섰다. 이 순간 특히 정원이 그립다. 겨울에 정원은 나의 손길을, 내가 바라보아주기를, 그러니까 내 사랑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겨울정원. 복수초는 은색 비로드 같은 꽃봉오리를 매달았다. 그 아름다움에 정말 압도되었다. 작년에는 복수초가 피지 않았다. 내 정원은 어떻게 해선지 내가 신을 믿게 만들었다. 내게서 신의 존재는 이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확실성이고 증거이다. 신이 계시고, 그래서 내가 있다. 스펀지로 만든 무릎덮개를 기도방석으로 삼았다. 그리고 신게 기도드렸다. "당신의 창조를, 그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고맙습니다! 우아합니다!" 생각함은 감사함이다. 철학은 다름 아닌 미와 선을 향한 사랑이다. 정원은 가장 아름다운 선, 최고미, 즉 '토 칼론to kalon'이다." 128-129쪽.

 

식물도감 같은 세밀화와 더불어 책은 내내 아름답다. 독일어와 시, 음악이 가진 아름다움을 다룬다. 최근 물리적 시간이 여유로워 기회 닿는 대로 클래식 공연에 가서 실제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듣는데, 이 경험이 종교적 체험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영혼과 가장 가까운 감각이라는 귀로 비언어적 음악을 들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존재를 압도하는 '현현'을 경험한다. 음악을 들으며 영혼 이전에 물리적으로 눈물이 흐르거나 소름 돋는 그 기분에 몹시 공감했다.  

"아도르노는 내가 슈베르트에게 품고 있는 정열에 대해 철학적인 설명을 해준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슈베르트의 음악 앞에서는 영혼에 먼저 물어보지도 않고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즉 우리는 우는지도 모르는 채로 운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행동주체'인 자아를 무장해제시킨다. 자아를 뒤흔들어 성찰 이전 비슷한, 성찰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한다." 27쪽.

 

석사 때 실러의 "미적 교육 편지"를 바탕으로 학위논문을 정리하려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번역하신 안인희 선생님 이름을 보며 혼자 반가워했다. 실러 당대 사상가들이 공유하고 있던 계몽주의적이면서도 낭만주의로 넘어가던 시기 특유 정서를 실러의 위 문장이 잘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가져와봤다. 저자가 '정원'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했을 테다. 투명한 디지털 시대에 현대인이 잃어버린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이상을 땅(과 식물)을 가까이하며 되찾기를 바라는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8.08.13.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철학자-정원사의 신학, 행복한 경험의 시론’
"‘철학자-정원사의 신학, 행복한 경험의 시론’" 내용보기
《땅의 예찬 (Lob der Erde)》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지음 | 안인희 옮김 | [김영사]       ‘철학자-정원사의 신학, 행복한 경험의 시론’ : 땅-정원-꽃에 대한 사랑 고백     니체와 하이데거, 푸코와 베냐민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움과 에로스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인간의 소외의 문제, 고전과 현대문학을 넘나들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진단하던 재독철학자
"‘철학자-정원사의 신학, 행복한 경험의 시론’" 내용보기

땅의 예찬 (Lob der Erde)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지음 | 안인희 옮김 | [김영사]

 

 

 

철학자-정원사의 신학, 행복한 경험의 시론

: -정원-꽃에 대한 사랑 고백

 

 

니체와 하이데거, 푸코와 베냐민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움과 에로스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인간의 소외의 문제, 고전과 현대문학을 넘나들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진단하던 재독철학자 한병철이 이번에는 정원사가 되었다. 언젠가 매일 정원 일을 하기로마음먹은 저자는 3년 동안 땅을 일구며 자신만의 비밀 정원을 가꾸어나갔다. 땅의 예찬은 저자가 정원을 가꾸면서 경험한 땅에 관한 명상이다. 철학, 미학, 문학을 이야기하던 철학자가 정원사로서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고백한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땅-정원-꽃을 키워드로 하여 읽어보고자 했다.

 

 

: 구원의 관문

 

철학자에게 땅은 무엇인가? 그에게 땅이 예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땅이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다른 저서에서 지적했던 신자유주의의 영향, 특히 디지털화를 다시 소환한다. ‘디지털 digital손가락을 의미하는 디기투스 digitus'에서 온 말(75)이다. 하나, 둘 셀 수 있는 것, 헤아리기에 기반한다. 그러므로 디지털화는 모든 대상을 정량화하여 비교가능하게만든다(29). 저자에 따르면 땅과 관련하여 고려할 때, ‘디지털화완전한 땅을 사라지게’(28) 하여 인간을 땅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그 결과 우리는 조상이 지니던 땅에 대한 섬세한 감성을 잃고, 땅이 무엇인지 더는 알지 못하는’(31)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저자는 땅이야말로 인류가 디지털화에 저항하고 우리의 감각과 기억을 되돌려줄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본다. 곧 철학자에게 땅은 예술가, 놀이하는 여인, 유혹하는 여인이면서 감사의 감정을 일으키는 존재’(182)이기에, 그에게 땅은 행복의 원천이다. 여기에서 구원에 관해 저자가 인용한 하이데거의 한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구원이란 위험에서 구해낸다는 뜻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풀어주어 본래의 본질로 되돌린다는 뜻이다.”(32) 그러므로 정원사가 된 철학자에게 땅은 본래의 본질로 되돌아갈 수 있는 구원의 관문이 된다. 저자가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며 한국에서 많은 식물의 씨앗을 가져와 심고 키운 일 역시 병든 아버지가 존재하는 고향, 자신의 본질에 되돌아가고자 하는 자연적인 행위일 것이다. 이렇게 철학자가 땅을 만나고, 땅과 연결되는 공간이 바로 정원이다.

 

 

정원: 사랑을 배우는 공간

 

정원사가 된 저자에게 정원이란 장소는 감각성과 물질성이 넉넉한공간(22)이다. 다양한 관목과 꽃을 돌보면서 삶과 죽음, 소멸과 부활을 마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 정원은 노동을 통하지만 오히려 삶의 고난에서 벗어나 원기를 얻는’(79) 공간이다. 책의 정황으로 볼 때, 저자가 겪는 삶의 고난은 머나먼 한국에서 소멸해가는 아버지와 관련이 있을 테다.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기호학자, 문학이론가였던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을 떠올린다. 이 책은 바르트의 어머니가 사망한 직후, 다섯 살이던 어머니가 겨울 정원에 서 있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애도의 노래다. 사진을 통해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인식하며, 떠나간 사람에 대한 사랑을 고통스럽게 확인한다. 바르트가 어머니의 사진을 끌어안고 숭배하듯, 정원사도 병상에 있는 아버지 곁에서 머물며 산에서, 길에서 만난 꽃들을 신령들께 제물로 바치고, 온 마음을 다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철학자가 정원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은 단연코 사랑하기이다. 정원에서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23)이며, ‘사랑을 담은 인식이야말로 꽃을 구원한다(25). 나아가 꽃에 물주기는 꽃들과 함께 머무는 것’(76)을 배우는 일이다. 정원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명상이며, 정적 속에 머무는 일’(175)이기도 하다. 정원사는 대지를 체험하며 땅과 만난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의 신은 이다. 흔히 물신이라 부르는 이 상징적 존재는 땅, 아름다움, 선을 완전히 파묻어버렸다. 반면 정원사-철학자에게 정원은 디지털화로 잊힌 현실을 되찾게 해주고, 경험과 기억의 언어가 머무는 곳, 나아가 신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정원사가 정원에서 배우는 사랑하기는 원자화되고 소외된 인류가 대지()와의 관계를 새로 맺는 일, 단절된 연대의 부활을 의미할 것이다.

 

 

: 그늘에서 피는 꽃과 늦둥이 꽃에 대한 애착

 

철학자-정원사인 저자는 정원이 신을 믿게 만든 성스러운 장소’(128)라고 말한다. 그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겨울꽃을 심고, 겨우내 동백꽃에는 천으로 감싸주며 돌보았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저자가 겨울꽃, 특히 그늘을 좋아하는 꽃과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피어나는 늦둥이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늘을 좋아하는 꽃은 이른바 그늘식물인데, 저자는 수국과 옥잠화를 여러 번 언급한다. 그가 이 꽃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이유는 이들이 그늘을 환하게 밝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밝은 빛이란 의미를 지니는 저자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가 수국을 특히 닮았단 생각을 했다.

 

늦둥이 꽃은 옥잠화처럼 계절에 늦게개화하는 꽃을 가리킨다. 죽음과 탄생의 멜랑콜리가 뒤섞이는 낙엽 쌓인 정원에서 대부분의 꽃들이 시든 후 두 번째로 개화하는 이런 꽃들에 저자는 무엇보다 애착을 보인다. 이들은 겨울 한복판에 두 번째 봄을 정원에 불러들이는 존재들이다. 수국을 비롯하여 옥잠화는 함께 있는 다른 존재들을 압도하며 몰아내거나 무성하게 자라지 않는다. 기꺼이 낯선 타자들과 함께하며 제 존재를 스스로 밝히는 존재이기에, 저자는 수국과 옥잠화를 기꺼이 사랑한다. 저자에게 정원이란 공간이 신을 믿게 만든 성스러운 장소가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겨울꽃들은 숭고하다 못해 신적이다. 그들은 내 정원에서 신을 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126). 그러므로 저자에게 꽃(특히 겨울꽃)은 신의 현현(顯現)인 셈이다. 땅의 예찬이 정원사의 신앙고백이자 철학자의 신학이 되는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꽃과 정원의 존재, 그리고 땅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철학자-정원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땅으로 되돌아가, 땅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땅과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희망하기가 바로 정원사의 시간방식(180)이다. 정원사는 새로 심은 씨앗이 내년에 싹을 내고 꽃이 피기를 희망하며 기다린다. 이 희망은 정적 속에 머물며 기다리는 가운데 미래의 시간, 타자의 시간에 머문다. 그렇기에 저자는 내 땅의 찬가는 다가오는 땅을 향한 것”(180)이라고 단언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많은 이들이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우리는 땅을 착취하고 경외심을 거둠으로써 땅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자연과의 교감이나 연결고리가 끊어진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저자는 대지에 대한 감성, 상상력의 언어를 잃은 현대인들을 위해 그가 정원일을 통해 배운 아름다움과 경험한 것들을 땅에 대한 사랑의 찬가로 노래하는 것이다.

 

 

[책 속으로]

[1] "오늘날 우리는 땅에 대한 섬세한 감성을 모두 잃어버렸다. 땅이 무엇인지 더는 알지 못한다." (31)

 

[2] "땅으로 돌아가기란 행복으로 돌아가기가 된다. 땅은 행복의 원천이다." (32)

 

[3] "우리가 땅에서 떨어져나간 것의 쓰라린 대가가 어쩌면 죽음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67)

 

[4] "디지털 문화는 인간을 작은 손가락 존재로 축소시킨다. 디지털 문화는 헤아리는 손가락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역사는 이야기다. 역사는 헤아리지 않는다. 헤아리는 것은 역사 이후의 범주다." (75)

 

[5] "오늘날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모조리 존재하기를 멈춘다. 하지만 존재는 이야기이지 헤아리기가 아니다. 헤아리기에는 역사이자 기억인 언어가 없다." (76)

[6] "꽃에 물주기는 꽃들과 함께 머무는 일이다." (76)

 

[7] "땅의 낯섦, 다름, 그 독자적 생명에 나는 자주 놀라곤 했다. 육체노동을 하면서 비로소 나는 땅에 내밀히 알게 되었다. (...) 정원에서 나는 삶의 고난에서 벗어나 원기를 얻는다." (79)

 

[8] "그늘을 환하게 밝히는 것은 수국이다. 수국은 도취시키는 꽃이니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106)

 

[9] "겨울꽃들은 숭고하다 못해 신적이다. 그들은 내 정원에서 신을 체험하게 하는 것" (126)

 

[10] "우리는 고요함과 침묵을 잊었다. 나의 정원은 고요함의 장소. 정원에서 나는 고요함을 만든다." (146)

 

[11] "땅은 아름답다, 아니 거의 마법을 지녔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 한다. (...)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보호라는 의무를 지운다. 나는 그것을 배웠고 경험했다." (183)

YES마니아 : 로얄 n****o 2021.06.0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원과 땅이 돌려 준 이야기들
"정원과 땅이 돌려 준 이야기들" 내용보기
2018년 출간 당시 읽었으나 땅에서 아주 먼 도시 한가운데 삶을 살던 때라 일상과의 접점이 어려웠다. 아주 오래 전이라 할 수도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는 그 시절이 아주 낯설게 느껴진다. 그때와 판이하게 달라진 사고와 정서의 거리가 합산된 모양이다.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들과 이사벨라 그레이서의 일러스트들이 이제야 마음 깊이 다가온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정원과 땅이 돌려 준 이야기들" 내용보기

 

2018년 출간 당시 읽었으나 땅에서 아주 먼 도시 한가운데 삶을 살던 때라 일상과의 접점이 어려웠다. 아주 오래 전이라 할 수도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는 그 시절이 아주 낯설게 느껴진다. 그때와 판이하게 달라진 사고와 정서의 거리가 합산된 모양이다.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들과 이사벨라 그레이서의 일러스트들이 이제야 마음 깊이 다가온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호할 의무, 아니 명령을 내린다. (...) 땅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의 절박한 과제이자 의무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 뛰어난 것이니 말이다.”

 

적요한 ‘환경의 날’을 맞아 원망은 접고 자신을 살펴보았다. 늘 하던 것 말고 새롭게 하는 일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 괴로웠다. 믿음을 가져본 적 없는 유형의 인간이라 아름다운 모든 것, 땅을 보호하는 것을 과제이자 의무라 느끼진 못한다. 하지만 그저 약삭빠른 계산만으로도 인간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을 망치는 일을 중단하자는 의견은 더 이상은 간명해질 수도 없는 일이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정신과 존재의 의지처가 있어 흔들리지 않는 종교를 가진, 신심이 돈독한 분들이 자주 부럽다.

 

“그 고통이 내게, 오늘날 잘 조율된 디지털 세계에서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현실감, 몸의 느낌을 되돌려준다. 정원에는 감각성과 물질성이 넉넉하다.”

 

바삭한 땅이 오는 비에 젖는 순간의 향기를 좋아한다. 오래 물을 못 만난 존재처럼 빗물이 반갑다. 모든 풍경에 고루 내리는 비를 보자면 소독한 물만을 틀어 마시고 씻고 사는 처지가 서러워지기도 한다. 따돌림을 당한 기분이 드는데 생각해보면 스스로 택한 고립이라 뭐라 하소연할 데도 없다. 정원의 모든 것들은 빛나고 나는 시선만을 함께 한다. 참 외로운 참여의 시간이다.

 

“오늘날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모조리 존재하기를 멈춘다. 하지만 존재는 이야기지 헤아리기가 아니다. 헤아리기에는 역사이자 기억인 언어가 없다.”

 

‘측량’할 수 없는 많은 ‘정성적’ 존재들을 엉뚱한 기준들을 만들어 측량을 함으로써 인간이 만든 표준들은 그 대상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고 오해와 피해를 부른다. 잠시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니었을 뿐 곧 인간은 자신들에게도 측량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인간은 각종 점수로 분류되었고 각자의 고유하고 본원적인 이야기들을 잃어버렸다.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드물다.

 

“오늘날 우리는 오직 에고[나 자신]에만 열중해 있다. 누구나 큰 소리로 누군가가 되고자 하고, (...) 다른 사람과는 달라지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모두 같다. 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그립다.”

 

이름이란 애초엔 그런 용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를 더 잘 기억하고자 애써 마련한 방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겨난 이름들은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괴랄한 욕망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잘 찾아 읽지도 않는 뉴스보도들이지만 매일 누군가의 이름들을 들먹이며 어떻게든 사람들을 갈라치기하려는 집요함에 치가 떨린다. 인간이 모른다고 인간의 먹이와 즐거움이 되지 않는다고 ‘잡초weed’라고 뭉뚱그려진 아름다운 각각의 생명체들처럼. 모두가 한데 어울려 자연스럽고 무성하게 자라난 그런 정원이 좋다.

 

“장미는 뒤로 물러선 자세다. 장미의 화려함의 비밀이 거기 있다. 장미는 장미한다. 장미한다rosen가 장미를 위한 동사다.”

 

장미는 언제나 장미했을 뿐. 지루한 취향이라 많은 놀림을 오래 받았어도 여전히 장미를 황홀하게 바라본다. 뿌리가 깊은 나무와 덩굴에서 피어올라 장미한 장미들은 여름밤의 한가운데서도 지극히 홀리는 향을 전한다.

 

여름.

 

그리고 장미.

 

 

 

“나는 정원에 한 조각 어린 시절을 두고 있다. 

작살나무는 아침 여명에 반짝이는 보랏빛 진주들을 매달았다. 

땅은 아름답다. 

아니 거의 마법을 지녔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 한다. 

보호하는 태도로 대하고, 

잔인하게 착취하는 대신 찬양해야 한다.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보호하라는 의무를 지운다. 

나는 그것을 배웠고 경험했다.”

 

 

 

k****k 2021.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땅과 자연을 향한 사랑 고백서 《땅의 예찬》
"땅과 자연을 향한 사랑 고백서 《땅의 예찬》" 내용보기
사회비평서, 철학 책 저자로만 알고 있었던 베를린 예술대학 한병철 교수. 정원사가 되었다?!   우리는 땅에 대한 경외심을 모조리 잃었다.더는 땅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책 속에서    베를린의 혹독한 겨울에도 1년 내내 꽃이 피는 정원을 가꾸기로 마음먹은 한병철 교수. 롤랑 바르트가 죽은 어머니에 대한 애도를 담은 <밝은 방>에 묘사된 겨울정원은 그가 비밀의 정원을 가꾸
"땅과 자연을 향한 사랑 고백서 《땅의 예찬》" 내용보기

 

사회비평서, 철학 책 저자로만 알고 있었던 베를린 예술대학 한병철 교수. 정원사가 되었다?!

 

 

우리는 땅에 대한 경외심을 모조리 잃었다.
더는 땅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 책 속에서

 

 

 

베를린의 혹독한 겨울에도 1년 내내 꽃이 피는 정원을 가꾸기로 마음먹은 한병철 교수. 롤랑 바르트가 죽은 어머니에 대한 애도를 담은 <밝은 방>에 묘사된 겨울정원은 그가 비밀의 정원을 가꾸기로 결심한 까닭을 잘 보여줍니다.

죽음과 부활을 위한 상징적인 장소인 겨울정원. 생명을 파괴하는 추위마저 견디고 피어나는 꽃이 가득한 겨울정원은 그저 마법 같고 동화 같은 이미지가 다가 아닌 시간을 넘어서는 초월성을 드러냅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현실감. 정원은 몸의 느낌을 되돌려줬습니다. 모니터보다 정원이 훨씬 더 많이 세계를 포함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에서 새로운 생명이 깨어나기도 하고, 비루해 보이던 식물도 찬양받아 마땅한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난생처음 땅을 팠던 3년 전에는 몰랐던 경이로움. 이제는 정원에서 영감을 받고 행복감을 맛봅니다. 이 모든 것은 땅에서 비롯됩니다.

 

 

<땅의 예찬>은 땅의 신비로움, 아름다움, 고귀함의 품격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칸트, 하이데거, 니체 등 철학자들의 글귀가 더해져 그저 정원사로서의 기록으로만 그치지 않아 저자만의 색깔이 담긴 정원일기가 탄생되었습니다.

 

 

나무가 죽었을 땐 자신이 피를 흘린다고 생각하며 애도했고, 추운 밤이면 함께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죽음과 탄생이 뒤섞이는 정원입니다.

소통할 것이 너무 많은 시대입니다. 우리는 고요함과 침묵을 되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소통의 소음 대신 정원에서는 고요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오히려 점점 현실과는 멀어집니다. 하지만 정원은 현실을 다시 찾아줬습니다.

비밀의 정원을 가꾸며 체득한 땅과 자연을 향한 사랑 고백서 <땅의 예찬>. 땅을 본질을 잊음으로써 우리가 잃은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 책입니다.

 

 

 

이달의 사락 l****5 2018.04.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땅의 예찬(한병철), 정원으로의 여행: 행복한 나날에 대한 시론
"땅의 예찬(한병철), 정원으로의 여행: 행복한 나날에 대한 시론" 내용보기
하루 중에 나는 자연을 얼마나 생각할까? 자연은 과연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할까?자연의 색깔에 살던 나의 과거와 달리 현재 나는 잿빛 속에 살고 있다. 잿빛 속에서 자연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빠르게, 누구보다 부단히 움직이며 살아가느라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못한다.주변엔 조그만 풀, 꽃, 나무가 있지만 나의 눈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아주 가끔씩 이들이 그리울
"땅의 예찬(한병철), 정원으로의 여행: 행복한 나날에 대한 시론" 내용보기

하루 중에 나는 자연을 얼마나 생각할까? 자연은 과연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할까?
자연의 색깔에 살던 나의 과거와 달리 현재 나는 잿빛 속에 살고 있다. 잿빛 속에서 자연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빠르게, 누구보다 부단히 움직이며 살아가느라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못한다.
주변엔 조그만 풀, 꽃, 나무가 있지만 나의 눈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이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햇빛이 나를 비출 때 잠깐 서서 따스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면 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냥 쉬고 싶다. 이렇게 잠깐 쉬는 것도 좋은데, 이들과 연결된 삶을 사는 건 어떨까?"

한병철은 정원에서 자연과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땅을 잊고 살았던, 땅을 알지 못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그는 자연을 느끼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식물이란 그가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체이다.
단순히 도구, 객체가 아닌 그들 나름대로의 삶도 있고 인간보다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표상을 볼 때, 그 겉모습만을 보고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봄'이 아니다.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정보인 스투디움은 탐구와 관찰의 대상이지만 이는 외관에 그칠 뿐이다. 이에 반해 풍크툼은 외면의 정보를 주지 않고, '이를 통해' 생기는 관찰자의 마음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즉, 내면의 의미로서 보는 대상을 일컫는다. 우리가 여유 없이, 세상을 급급히 살아가는 이유는 내면의 의미인 풍크툼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멈춰 그들 속에 담긴 의미를 음미해보면 그들을 진정을 볼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을 텐데. 내가 그걸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질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함몰되는 것 같다.
조금 멈춰,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보고 주변의 세상을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닌 느껴보는 건 어떨까?

정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다. 정원은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모든 식물은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정원에서는 수많은 저만의 시간들이 교차한다. 가을 크로커스와 봄 크로커스는 모습은 비슷해도 시간감각이 전혀 다르다. 모든 식물이 매우 뚜렷한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 어쩌면 오늘날 어딘지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 부족한 인간보다 심지어 더욱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놀랍다 정원은 강렬한 시간체험을 가능케 한다.
정원에서 일하면 정원은 많은 것을 돌려준다. 내게는 존재와 시간을 준다. 불확실한 기다림, 꼭 필요한 참을성, 느린 성장이 특별한 시간감각을 불러온다.



j*****2 2018.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땅의 예찬
"땅의 예찬" 내용보기
수련이 꽃 피는 모네의 그림을 볼 때면 그의 정원에 머물고 싶어진다. 이 책 <땅의 예찬>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계절 꽃이 피는 정원으로 걸어들어가 종일 머물고 싶은 생각이 피어났다.  가을시간너머, 겨울바람꽃, 큰가시연, 버들강아지, 풍년화...이름만으로 이미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지는 곳에서 있노라면 시들었던 '낭만'은 자연스레 봄을 맞아 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땅의 예찬" 내용보기

수련이 꽃 피는 모네의 그림을 볼 때면 그의 정원에 머물고 싶어진다. 
이 책 <땅의 예찬>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계절 꽃이 피는 정원으로 걸어들어가 종일 머물고 싶은 생각이 피어났다.  



가을시간너머, 겨울바람꽃, 큰가시연, 버들강아지, 풍년화...
이름만으로 이미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지는 곳에서 있노라면 시들었던 '낭만'은 자연스레 봄을 맞아 피어날 것 같은 예감이다.

평범한 것에 높은 의미를, 
일상의 것에 신비로운 겉모습을, 
잘 아는 것에 모르는 품위를, 
유한한 것에 무한한 모습을 주어서 나는 그것을 낭만화한다.'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의 낭만주의를  그는 정원을 가꾸면서 가슴속 깊은 뿌리로부터 아름답게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이를 살펴보았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교수이고 독일에서 활짝 핀 철학자다. 그의 철학의 바탕이 그가 가꾼 정원인지, 아니면 철학을 완성하는 곳이 정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한 가닥 피어난 생각의 줄기는 그의 정원은 철학을 완성하는 곳이고, 또한 검증이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의 글이 멋대로의 추론에 힘을 실어 준다. 
그에게 철학은 다름 아닌 미와 선을 향한 사랑이다.
정원은 가장 아름다운 선, 최고 미로 다가오는 것이자  가까운 혹은 먼 미래를 지켜보는 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정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다. 정원은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저만의 사간을 갖는다. 모든 식물은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정원에서는 수많은 저만의 시간들이 교차한다. 
어쩌면 땅이란 오늘날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행복과 동의어인지 모른다. 

땅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그에게는 행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의 동의어이다. 
또한 지구의 한 모퉁이가 콘크리트에 덮여버리는 일은 타자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나는 어디서 타자의 시간을 느끼고 있는가?  어디서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가? 하는 질문을 잡지만, 쉽게 뿌리내릴 수 없는 질문이 된다.  

낭만주의 철학이라는 어느 한 시대사조를 떠나서 작가는 봄철 피어나는 새싹처럼 여리다. 
그의 일기를 잠시 엿본다. 

'2016년 9월 25일에 내 사랑하는 나무의 일으켜 세워진 시신 곁에 밤늦도록 머물면서 애도하고, 
가을아네모네와 더불어 나무를 생각하며 울었다. 
나 자신이 피를 흘린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버드나무가 피를 흘리고 죽었다. 그 나무는 내가 잃어버렸다고 여긴 내 애인이었으니'


죽어가는 나무의 시신 곁에서 밤늦도록 머물고 울어줄 수 있는 사람. ㅇ
이런 감정의 사람이 가꾼 그의 세계는 디지털 세계보다 더 많은 세상이 담겨 있지 않겠는가.

세상의 디지털화에 직면하여 세상을 다시 낭만화하고, 땅을, 땅의 시를 다시 찾아내고, 땅에 신비로움, 아름다움, 고귀함의 품격을 되찾아주어야 할 것이다. 

나의 지구 한구석도 낭만화하고 싶어진다.
베란다 한구석에  배추가 자랄 수 있는 공간과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그들이 연출해 내는 축제를 즐기고 싶어졌다.
그곳에서 움 트는 생명의 신비를 아이와 함께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은 보호해야 하는 의미'를 자연스레 전해주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봄이었고, 지구는 훨씬 아름다웠다. 



h****u 2018.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가 변한 이유
"그가 변한 이유" 내용보기
그가 변한 이유   ‘한병철’이라는 이름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본 이름일 것입니다. 저자는 피로사회란 책을 시작으로 에로스의 종말, 시간의 향기 등 우리 사회를 각기 다른 영역에서 분석하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들의 특징은 날카로움이었습니다. 매스를 든 의사처럼 우리 사회의 각 부분을 해체한 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분석하였습니다. 그
"그가 변한 이유" 내용보기



그가 변한 이유

 

한병철이라는 이름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본 이름일 것입니다. 저자는 피로사회란 책을 시작으로 에로스의 종말, 시간의 향기 등 우리 사회를 각기 다른 영역에서 분석하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들의 특징은 날카로움이었습니다. 매스를 든 의사처럼 우리 사회의 각 부분을 해체한 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분석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표현하는 명쾌함을 느꼈고, 이는 많은 판매량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도 저자의 날카로움을 좋아했고, 다양한 책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저자의 신간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칼로 사회의 어떤 부분을 해체할까? 이런 기대 속에서 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전의 책과 결이 다른 책이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날카로운 칼 대신 정원사의 호미를 들었습니다. 이전의 책에서 그는 사회의 각 부분을 하나하나 해체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심어주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꽃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그의 변화가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변한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바꿔가는 것은 날카로운 시선을 통한 분석이 아닌 오랜 기다림을 통한 사랑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책 후반부에 있는 정원사의 일기 속에서 이런 그의 사랑이 자세히 드러납니다. 한 꽃의 죽음의 슬퍼하고, 한 꽃의 탄생에 기뻐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이전에 알고 있던 모습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하이데거, 그는 마음이 땅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존재는 이야기지 헤아리기가 아니다. 헤아리기에는 역사이자 기억인 언어가 없다.”

 

그가 변한 이유는 우리 사회를 헤아리지 않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직접 찾아가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화분에 피어나는 새싹과 함께 이 책을 천천히 읽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l********5 2018.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땅의 예찬』 / 한병철
"『땅의 예찬』 / 한병철" 내용보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주인공이 고향에서 농작물을 직접 키워 음식을 지어 먹으며 계절을 지낸다. 예능 <효리네 민박>에서는 제주도에 내려가 살며 여유로운 날들을 보낸다. 이제는 '자연'스러움의 콘텐츠들이 미디어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병철의 저서 『땅의 예찬』도 3년간 자연으로 돌아가 정원을 가꾸었던 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마 전 등산을
"『땅의 예찬』 / 한병철" 내용보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주인공이 고향에서 농작물을 직접 키워 음식을 지어 먹으며 계절을 지낸다. 예능 <효리네 민박>에서는 제주도에 내려가 살며 여유로운 날들을 보낸다. 이제는 '자연'스러움의 콘텐츠들이 미디어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병철의 저서 『땅의 예찬』도 3년간 자연으로 돌아가 정원을 가꾸었던 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마 전 등산을 하며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고 느꼈다. 숨이 턱까지 차서 포기하고 싶을 때, 바로 그 때 정상이 눈 앞에 보인다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만, 묵묵히 같은 속도로 걷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잘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우리들이 찾는 인생의 진리는 사실 자연을 잘 살펴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한병철도 생명을 품고 있는 땅을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정원에서의 3년동안 그는 늘 할 일에 치여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인생에서 벗어나 시간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기계와 인터넷의 발달으로 노동과정에서 드는 절대적인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에 쫓겨 산다. 하지만 자연에서의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간다. 다음 봄까지의 시간이, 여름 동안의 시간이, 다음 가을 단풍까지의 시간이, 겨울의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늘어난 시간과 여유는 타자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정원에서 일하면서 그는 이기적 자아에서 벗어나 오로지 꽃을 향해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정원은 존재와 시간을 준다'고 말한다.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싶었던 한병철은 겨울을 이겨내는 꽃들을 자신의 정원에 심는다. 그래서 그의 정원에는 사계절 내내 다른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는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을 품는 꽃들에 감탄하고, 밝지는 않지만 편안함을 주는 푸른색 꽃을 사랑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게 피어나서 제 자리를 빛내는 꽃을 바라볼 줄 안다. 그는 어떠한 꽃이라도 그 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꼭 밝지 않아도, 예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저마다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그의 말들에서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느낀 것들을 담담히 풀어놓은 책, 『땅의 예찬』. 자연이 선사해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오늘은, 아파트 단지에 핀 꽃들과 나무와 풀을 자세히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j*******1 2018.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에 봄이 왔다 [땅의 예찬]
"마음에 봄이 왔다 [땅의 예찬]" 내용보기
예전 다니던 회사의 부장님은 텃밭을 가꾸셨다. 주말마다 근교의 작은 농장을 가꾼 것과 동시에, 회사 옥상에서도 고추, 상추, 꽃 등 작은 모종을 심고 아침 점심마다 틈틈이 들여다보고 하셨다. 그와 같은 행동은 계절과 날씨와는 무관했다.   그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울은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움츠려드는 계절일 뿐만 아니라, 겨울에 무엇이 난다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
"마음에 봄이 왔다 [땅의 예찬]" 내용보기

예전 다니던 회사의 부장님은 텃밭을 가꾸셨다. 주말마다 근교의 작은 농장을 가꾼 것과 동시에, 회사 옥상에서도 고추, 상추, 꽃 등 작은 모종을 심고 아침 점심마다 틈틈이 들여다보고 하셨다. 그와 같은 행동은 계절과 날씨와는 무관했다.

 

그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울은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움츠려드는 계절일 뿐만 아니라, 겨울에 무엇이 난다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심히 물을 주고 영양분을 주셨다. 그리고 놀랍게도 매번 새로운 꽃을 피운 화분을 사무실로 옮겨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셨다. 사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꽃은 자라났다. 그 이후로 나는 함부로 자연에 대해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땅의 예찬의 저자 한병철도 책을 통해 놀라움을 전달한다. 3년동안 정원을 열심히 가꾸면서 그속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고 느낀다. 원래 저자인 한병철은 독일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다. 소생의 기운조차 느낄 수 없는 베를린의 차가운 겨울에서 땅을 가꾸고 싶은 마음이 움텄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바로 실행에 옮긴다.

 

땅의 예찬은 종합 인문서 같은 느낌이다. 정원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꽃을 설명한 실용서 같기도 하고, 철학자의 사유하는 삶이 묻어나는 철학적 에세이로 변하기도 한다. 때론 클래식과 고전을 풀어 이야기하는 인문 교양서가 되기도 한다. 이 복합적인 요소의 근원은 바로 땅이다. 저자 한병철은 땅을 일구면서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사람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땅에 자신의 생각을 심고 계절을 돌아 새로운 깨달음으로 싹트길 기다린다. 기다림조차 그에게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경험이다.

 

저자의 옛날 모습처럼 나도 요즘 전자기기에 지쳐 있다. 하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업무시간에는 늘 컴퓨터 모니터를 봐야하고, 틈틈이 폰으로 SNS를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다가 잠이 든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눈이 아파오고 두통이 왔다. 그나마 덜 보는 주말이면 사그라드는 했지만, 평일이 되면 또 다시 증상이 반복되곤 했다.

 

비록 저자처럼 당장 땅을 가꿀 순 없지만, 자연으로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러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동안이라도 최대한 전자기기를 멀리하고 자연을 보려고 노력한다. 새싹이 움트는 자연을 보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돌리곤 한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언젠가 정원에 나의 잡념을 심고 새로운 감정을 거둬보고 싶다.

d********1 2018.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땅의 예찬
"땅의 예찬" 내용보기
오랜만에 책으로 만난 저자, 한병철의 책. 반갑다. 문학과 지성사에서만 봤던 책들을 김영사에서 만날 줄이야! 3년간 몸소 경험한 삶으로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갑다. 땅의 예찬! 겉표지부터 흙의 느낌이다. 종이계의 흙이랄까. 그런 감촉이다. 이 책을 읽고 드는 생각, "누림과 향유는 다르다." <간략 리뷰>"인간이 땅에서 멀어질수록, 땅은 더 작아진다. 인
"땅의 예찬" 내용보기

오랜만에 책으로 만난 저자, 한병철의 책.

반갑다. 문학과 지성사에서만 봤던 책들을 김영사에서 만날 줄이야!

3년간 몸소 경험한 삶으로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갑다.

땅의 예찬! 겉표지부터 흙의 느낌이다.

종이계의 흙이랄까. 그런 감촉이다.


이 책을 읽고 드는 생각, "누림과 향유는 다르다."


<간략 리뷰>
"인간이 땅에서 멀어질수록, 땅은 더 작아진다.

인간이 땅 위에서 빨리 움직일수록 땅은 그만큼 줄어든다.

지상의 거리를 극복할 때마다 인간과 땅 사이의 거리를 커져간다.

그리하여 인간은 땅에 대해 소원해진다.

... 현대적 기술은 인간의 삶을 땅에서 소외시킨다."

시간의 향기 p.46 중


기술로 인한 땅에 대한 소원해짐을 예리하게 짚어낸 그는 직접 손수 3년간 정원을 가꾸었다.

그리고 보살폈다. 마음 아파하고 향유하며 사랑 가운데서..
이 책 곳곳에는 정원에서 깨달은 통찰과 꽃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사랑하기에 허용하는 '존중'과 '보호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시간,

즉 식물 각 저마다의 시간을 자연스러움으로 여기는 존재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따스함을 주고 싶다.

사랑은 염려이기도 하다.

정원사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 p. 124

정원에서의 사랑으로 충만한 인식의 통찰은 신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내 정원은 어떻게 해선지 내가 신을 믿게 만들었다.

내게서 신의 존재는 이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확실성이고 증거이다.

신이 계시고, 그래서 내가 있다(p.128)."라며 신께 기도를 올린다.


"당신의 창조를, 그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고맙습니다! 우아합니다!"

- p.128

더 풍성한 내용은 블로그에

 

https://blog.naver.com/young-taek/221237822550

a*******k 2018.03.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