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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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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서 스스로 겸손함을 실천하였다. 스스로 겸손함을 내보임으로서,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보여 주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몸소 보여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겸손은 , 우리에게 겸손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명시하였고, 나를 낮추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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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서 스스로 겸손함을 실천하였다. 스스로 겸손함을 내보임으로서,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보여 주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몸소 보여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겸손은 , 우리에게 겸손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명시하였고, 나를 낮추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빌 2:8) (P18)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겸손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서 완성되었다. 자신을 낮춤으로서 스스로를 드높이셨고, 자신에게 고귀한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거룩한 삶을 실천함으로서 , 우리에게 새로운 귀감이 되고 있으며, 탐욕과 오만함을 내려 놓아애 하는 이유를 스스로 보여 주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영속적인 믿음, 사랑, 기쁨을 실천하는 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겸손 때문이다. 


"그건 내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하시도록 나 자신을 그냥 내어드리는 것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아버지께서 전부이시다" 라고 명확히 말씀하셨다. (P43)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철저한 자기 희생,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기쁨과 평화로운 삶을 얻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삶을 추구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앞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셨고, 모든 이의 종이 종이 되는 삶을 스스로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참된 겸손은 모든 삶의 뿌리가 된다는 걸 보여주셨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P80) 

겸손은 완전한 죽음으로 인도한다. 겸손은 자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겸손히 낮추셨으면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완벽한 증거를 보여주셨다. (P130)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어려움을 실천하시었고, 몸소 보여주었다. 오만함과 교만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사울을 구원하게 되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겸손하였으며,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였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것,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시었고, 그의 거룩한 겸손의 실천은 '뿌리깊은 믿음' 그 자체였다. 스스로 믿음을 내보임으로서 죄를 가진 모든 이들을 용서하게 된다. 


우리는 겸손,곧 절대적이고 내재하는 예수님을 닮은 겸손과 자기 비움, 하나님과 사람을 비롯하여 우리의 전인적인 삶을 둘 다 충만하게 채우고 특징짓는 겸손과 자기 비움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거룩한 삶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임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P161)

이달의 사락 k*******2 2018.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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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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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 출판사에서 앤드류 머레이 베스트 컬렉션 5번째로 출판한 "죽을만큼 겸손하라"를 읽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다. 그만큼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셨고, 경계하셨다. 교만은 사단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영향을 받았던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는 죄인으로 살아왔다. 죄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패망임을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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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 출판사에서 앤드류 머레이 베스트 컬렉션 5번째로 출판한 "죽을만큼 겸손하라"를 읽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다. 그만큼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셨고, 경계하셨다. 교만은 사단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영향을 받았던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는 죄인으로 살아왔다. 죄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패망임을 말하고 있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거룩함의 시작이자 제자도의 완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겸손은 성경에 많이 강조한다. 겸손한 자들의 속성을 보면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인지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교만한 자로서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며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지하기 때문에 겸손한 자로서 살아가게 된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거룩함을 나타내는 최고의 표지이다"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명예를 갖고자 힘쓴다. 정치적 입지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인간적 욕망이 극대화되는 모습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그런데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자 한다. 누가복음 18장14절에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예수님은 교만한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등에게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다. 겉과 속이 다른 존재, 겉은 화려해 보여도 속은 썩어있는 그 자체를 예수님은 보셨다.

 

머레이는 본질상 교만과 믿음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믿음을 소유한 이들은 겸손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참된 믿음은 참된 겸손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앞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앞에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사람들 앞에 똑같은 생활로 이어진 것이다.

 

머레이는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어떻게 당신은이와 같은 교만을 정복하고 있는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에 머레이는 답을 제시한다.

"당신 자신을 겸손히 낮추라,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교만을 정복하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교만은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은 결코 교만할 수 없다. 자기 비움과 자기 낮아짐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교만과 겸손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도록 한다.


 

p***1 2018.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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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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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 출판사에서 앤드류 머레이 베스트 컬렉션 5번째로 출판한 "죽을만큼 겸손하라"를 읽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다. 그만큼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셨고, 경계하셨다. 교만은 사단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영향을 받았던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는 죄인으로 살아왔다. 죄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패망임을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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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 출판사에서 앤드류 머레이 베스트 컬렉션 5번째로 출판한 "죽을만큼 겸손하라"를 읽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다. 그만큼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셨고, 경계하셨다. 교만은 사단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영향을 받았던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는 죄인으로 살아왔다. 죄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패망임을 말하고 있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거룩함의 시작이자 제자도의 완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겸손은 성경에 많이 강조한다. 겸손한 자들의 속성을 보면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인지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교만한 자로서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며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지하기 때문에 겸손한 자로서 살아가게 된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거룩함을 나타내는 최고의 표지이다"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명예를 갖고자 힘쓴다. 정치적 입지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인간적 욕망이 극대화되는 모습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그런데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자 한다. 누가복음 18장14절에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예수님은 교만한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등에게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다. 겉과 속이 다른 존재, 겉은 화려해 보여도 속은 썩어있는 그 자체를 예수님은 보셨다.

 

머레이는 본질상 교만과 믿음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믿음을 소유한 이들은 겸손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참된 믿음은 참된 겸손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앞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앞에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사람들 앞에 똑같은 생활로 이어진 것이다.

 

머레이는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어떻게 당신은이와 같은 교만을 정복하고 있는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에 머레이는 답을 제시한다.

"당신 자신을 겸손히 낮추라,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교만을 정복하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교만은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은 결코 교만할 수 없다. 자기 비움과 자기 낮아짐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교만과 겸손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도록 한다.

p***1 2018.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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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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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에서 죄는 출발한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에게 익숙한 것은 교만이고, 높아지려는 마음이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교만한 마음, 높아지려는 마음이 언제나 우리의 신앙과 삶을 괴롭히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더라도 너무나 명확하게 나타난다.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동안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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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에서 죄는 출발한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에게 익숙한 것은 교만이고, 높아지려는 마음이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교만한 마음, 높아지려는 마음이 언제나 우리의 신앙과 삶을 괴롭히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더라도 너무나 명확하게 나타난다.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동안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모두가 한자리 차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의 삶을 보여주셨다.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낮아지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셨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과는 거리가 먼 신앙의 모습이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을 깨뜨리는 책이 바로 죽을 만큼 겸손하라이다.

 

죽을만큼 겸손하라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는 겸손에 대한 폭넓은 접근과 통찰, 그리고 해석은 왜 우리의 삶이 죽을만큼 겸손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겸손은 은혜를 뿌리내리게 만드는 유일한 토양이다. 모든 것의 뿌리가 겸손이다. 예수님의 인성과 가르침을 통한 겸손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배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택하신 제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겸손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신앙 속에 얼마나 겸손이 결핍되어졌고, 턱없이 부족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겸손해지는 방법은 우리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그분의 거룩한 겸손안에서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겸손이 그분의 가장 중요한 영광, 그분의 가장 큰 계명, 그분의 가장 고상한 축복이라고 인식하고, 믿어야만이 실현가능해진다. 저자가 말하는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광명 아래 자기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전부가 되도록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어 놓고 내던지는데 동의할 때 찾아온다. 그래서 예수님의 겸손을 교회 안에서나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첫 번째 자리, 가장 우선적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겸손이라는 것으로 예수님의 모든 것을 해석해 내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깨닫게 함으로 예수님의 겸손의 삶을 보일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f*****a 2018.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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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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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물은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서 가득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피조물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그분의 영광과 능력이 가득 흘러들어 한껏 높임과 축복을 받게 하신다.이 한 문장으로 이책은 다 설명되는 것같다.낮아지는 것.욕심을 내려 놓는 것.내려보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하는 것.세상의 셈법으로 살던 것들을 하나님의 운영체계로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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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물은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서 가득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피조물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그분의 영광과 능력이 가득 흘러들어 한껏 높임과 축복을 받게 하신다.


이 한 문장으로 이책은 다 설명되는 것같다.


낮아지는 것.

욕심을 내려 놓는 것.

내려보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하는 것.

세상의 셈법으로 살던 것들을 하나님의 운영체계로 새롭게 바꾸어 실행하는 것.


말은 참 쉽다.

결의를 다지는 것도 쉽다.

하지만,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는가에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아야한다.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꼈으면 이제 손과 발이 움직여야 한다.

겸손하게 겸손하게

주일날 교회안에서 짜증을 내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겨도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

포장을 두껍게 그리고 불투명하게 한다. 남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감추고 또 그런 서로를 들추어보고 싶어 한다.

사랑이 넘쳐야 할 곳에 그렇게 사람만 많고 사람이 많으니 말은 더욱 많고 말이 많으니 언제나 상처입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렇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한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앞서 행하셧던 사랑도 겸손도 십자가를 향한 시선들도 모두 나름대로의 셈법으로 각도가 다르다

무늬만 겸손하기 때문이다. 짝퉁 겸손


죽을만큼 겸손하라

스스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천국이 찾아온다.

"자발적 가난"

양손에 가득들고는 새로운 어떠한 것도 들을 수가 없다. 언제나 채워주실때 듬뿍 받을 수 있게 비우는 삶을 살아보자

잠깐 힘들고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린 그렇게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의 겸손은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항복시키는 것이 었다면 우리의 겸손은 주님앞에 굴복해야 하지 않을까


주일예배에 말씀을 양식삼아 한 주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한 권의 책으로 영혼의 양식을 한 동안은 걱정없이 살 것만 같은 든든함이 느껴진다.



j*****a 2018.03.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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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죽을만큼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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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이 책은 단순히 교만과 겸손에 관한 기독교적인 윤리서적이 아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행위의 법 아래에서의 결론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구속이 되신 그리스도의 겸손과 우리의 근원적인 죄악에 관해 다룬 복음의 본질에 대한 책이다. 앤드류 머레이의 모든 책은 복음의 본질에 대한 메세지를 그의 책에서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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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이 책은 단순히 교만과 겸손에 관한 기독교적인 윤리서적이 아니다또한 이 책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행위의 법 아래에서의 결론이 아니라본질적으로 우리에게 구속이 되신 그리스도의 겸손과 우리의 근원적인 죄악에 관해 다룬 복음의 본질에 대한 책이다앤드류 머레이의 모든 책은 복음의 본질에 대한 메세지를 그의 책에서 끊임없이 던진다

 

교만은 태초부터 역사해 왔던 사람의 근원적인 죄다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로 부터 사람은 근원적으로 자아에 뿌리내린 근원적인 교만과 그 아래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권세, 죄와 사망의 법이 사람을 주관해 왔다. 이 무기력한 사람의 절망과 실패 앞에 그리스도가 자신의 겸손으로 우리의 구속함이 되셨다머레이는 인간의 본성 안으로 들어오신 생명 되신 그리스도라고 표현했다. 죄와 사망의 법(행위의 법) 아래에 갇힌 사람의 본능을 넘어서, 우리 안에 은혜의 법과 언약의 능력으로 우리의 본성 안으로 그리스도는 들어오셨다. ...얼마나 이것에 대한 믿음이 없었는지 모른다.

 

1) 머레이가 말하는 우리 측의 겸손은 자아의 종말과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전부가 되고, 사람이 인간적인 모든 영광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자기 자신을 마무것도 아는 것으로 여기기까지 가지 않는다면 세상을 정복할 만한 신앙은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이것은 머레이의 모든 책을 관통하는 메세지, 그리고 머레이가 말하는 복음의 가장 근원적인 비밀에 대한 것이다. 우리의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는 만큼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우리의 기도가 중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 하나님이 사람의 전부가 되도록 내어드리는 전적인 동의의 표현이 바로 겸손이다. 완전한 자기포기, 좌와 자아에 대한 죽음을 통해 완전히 내어드리는 삶이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리스도가 나의 전부가 되시는 삶..이것이야말로 참된 겸손이다. 나보다 영적으로 뒤쳐지는 듯한 사람을 위해 나를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삶. 그리스도가 모두를 위해 종이 되셨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내 삶을 모든 사람의 종으로 세우시는 것, 그와 같이 한 없이 낮아 짐에도 한없이 행복할 수 있는 삶

 

나는 죄인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완전히 무능한 인생이며, 아무 것도 아니지만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것 되시고, 나의 전부이시며, 나의 머리가 되시고, 나의 산성이시다사람들의 이런저런 소리가 내 속에서 잠잠하여지고, 내 속에 일어나는 복잡한 생각과 소리들이 잠잠하여 지고, 나를 둘러싼 환경들의 어떠함이 내 눈에 희미하여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내 전부되심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삶.

p*****p 2018.03.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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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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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을만큼 겸손하라지은이 : 앤드류 머레이 (임종원 옮김)출판사 : 브니엘서평 :   겸손.. 세상에서 겸손이라 함은 남을 존중하며 배려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겸손을 뜻하지 않는다. 참된 겸손은 창조주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은 모든 피조물이 가져야 할 가장 높은 미덕이며, 그리스도인의 표지이자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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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을만큼 겸손하라
지은이 : 앤드류 머레이 (임종원 옮김)
출판사 : 브니엘
서평 :

  겸손.. 세상에서 겸손이라 함은 남을 존중하며 배려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겸손을 뜻하지 않는다. 참된 겸손은 창조주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은 모든 피조물이 가져야 할 가장 높은 미덕이며, 그리스도인의 표지이자 완성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3:23).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땅에는 죄와 저주가 임했고, 그 죄와 저주는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져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저주로 물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관계로 만드셨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인간을 결코 로봇처럼 만드시지 않으셨다. 인간이 로봇과 같이 시키는 대로, 입력값 대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사랑을 누릴 수 있겠는가?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통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은 피조물임을 인식하도록 하셨다. 절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27-31)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하나님은 인류에게 복을 주셨지만, 인류는 겸손하지 못했다. 겸손에 실패했다. 사탄의 꾀임에 넘어갔고 그들은 자신이 인생의 왕이 되고 싶어했고,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죄를 범했다. 이것이 인류의 크나큰 죄이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거기에는 피조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축복하심에 동참하게 만들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려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님은 창조된 존재들 안에서, 그리고 이 창조된 존재들을 통해 각자가 그분의 선하심과 영광을 최대한 소통하심으로써 그분 자신을 계시하고 싶어 하셨다.


피조물은 자기 존재의 기원과 첫 출발을 되돌아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과 영원무궁토록 그 자신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 그 자신의 가장 높은 차원의 미덕, 그 자신의 유일한 행복이 자기 자신을 빈 그릇으로 내어드림으로써 하나님이 그 안에 머무시면서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삶은 단번에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지속적으로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을 끊임없이 실행하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리인 겸손은 만물의 본질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피조물의 첫 번째 의무이자 가장 높은 차원의 미덕인 동시에 모든 미덕의 근본이다.


다른 어떤 것도 죄악에 빠진 우리를 구속할 수 없으며, 오직 잃어버린 겸손과 그로부터의 온전한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낮아짐과 겸손을 몸소 실천하시고 보여주셨다. 피조물인 인간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셨고 깨우쳐주셨다.


겸손은 은혜를 뿌리내리게 하는 유일한 토양이다. 겸손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느끼는 의식이며, 우리가 얼마나 진실하게 하나님이 전부이신지를 깨달을 때 찾아온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고결함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머물러 있겠다고 동의할 때, 하나님의 생명과 영광이 일하시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고, 그릇으로서 온전히 담아낼 때, 피조물로서 자기 자신의 위치에 관한 진리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 자신의 자리를 올바로 내어드리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죄인 됨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소망 없음을 느끼고 회개하는 것, 그 겸손이야말로 구원의 시작이며,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4:17). 회개란 자기 자신의 왕이 되어, 인생의 주인 되어 살아온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자기 감정과 기분, 생각에 따라 자기 마음의 욕심대로 살아온 것이 죄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죽을만큼 겸손하자! 돌이켜야 산다. 하나님은 우리 온 인류가 겸손하기를 요구하신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변화시키실 수 있다.


g********4 2018.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죽을만큼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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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이 책에서는 겸손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표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의 삶에 동참하게 되는 겸손이 참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죽을만큼 겸손하라' 이 책은 19세기 남아프라카의 성자, 기도와 성령의 사람 앤드류 머레이 베스트 컬렉션5로 그리스도인의 겸손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내려놓음으로 겸손을 보이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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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겸손하라



이 책에서는 겸손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표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의 삶에 동참하게 되는 겸손이 참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죽을만큼 겸손하라' 이 책은 19세기 남아프라카의 성자,

기도와 성령의 사람 앤드류 머레이 베스트 컬렉션5로

그리스도인의 겸손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내려놓음으로 겸손을 보이셨고,

겸손은 예수님의 지상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것,

 참된 겸손은 일상생활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

자아에 대한 죽음은 겸손의 완전한 열매라는 것,

겸손은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

겸손은 결국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만든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본문내용에서,

“예수님은 천국으로부터 자신을 겸손히 낮추어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

천국과 이 땅의 축복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

겸손은 자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등의 내용들이 의미가 있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죽기까지

자신을 겸허히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죽을만큼 겸손하라'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므로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꼭 읽어야할 책이라고 본다.

l******3 2018.03.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