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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는 편지 형식으로 담긴 여행 산문집이다. 부칠 수 없는 이 편지의 수신자는 때로는 여인의 얼굴이 되었다가, 이십대의 청년이었다가, 독자가 되기도 한다. 서문은 남반구에 위치한 시드니와 오클랜드 여행으로 시작한다. 여행하는 내내 에드몽 자베스의 시집을 끼고 다니며, 한 편의 편지가 완성될 때마다 마지막 줄에는 "당신, 잘 있어요."로 매듭짓는다. 습관처럼 반복된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인문학을 탐구하고 연결 짓는 시선이 탁월하다. 이국의 풍경 속에서 찰나의 멜랑콜리에 화답한다. 삶에 방황하고 좌절과 고독에 부대낀다면, 이곳에서 얼마 간의 평화를 쟁취할 것이다. 그것은 풍경, 시간, 당신에 관한 것들이다.
사랑은 열정의 과잉으로 시작되었다가 다시 그것 때문에 무너지는 인생의 기획이죠.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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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고 보니, <조르바의 인생수업; http://blog.yes24.com/document/9682393>으로 만났던 장석주 시인의 새로운 산문집이었습니다. 글을 써 책을 내는 것도 독특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지렛대삼아 글을 써낸 것이 참 놀랍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권 분량의 글을 써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산문집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는 호주의 시드니와 뉴질랜드의 오크랜드에서 한 여름-우리나라가 한 여름이었고 그곳은 한 겨울이었답니다-의 몇 날을 보내면서 써낸 글이라 하니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노트북을 열면 한 꼭지의 글을 술술 써내는 마법 같은 글쓰기를 할 수 있나 봅니다. 다섯 번째 글에서 블루마운틴에 온 지 이틀째 아침이라고 적은 것을 보면, 하루에 네 꼭지의 글을 써낸 것 같습니다. 글마다 다양한 책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자가 들고 간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을 감안하여 참 대단한 기억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시드니의 블루마운틴과 오크랜드의 바다풍경에서 얻은 느낌을 바탕으로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여행기나 여행안내서가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그저 ‘지도 없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하며 떠도는 여행자의 사유 모음집’ 혹은 ‘살아 있음의 가장자리에 존재의 존재함에 대한 숙고를 보여줄 뿐(27-28쪽)’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너무 멋있으려고 뽐내는 것 아닌가요? 나아가 이 산문은 ‘당신에 관한 상상과 사유의 책’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월이라는 안감 위에 아로새겨진 무늬와 같이 사랑한 ‘당신’, 혹은 사랑할 뻔 한 ‘당신’들 얘기가 새겨져있다(28쪽)”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한 꼭지의 글이 끝날 때마다 ‘당신, 잘 있어요’라고 마무리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신의 정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당신은 서울에 있다가, 혹은 시드니에 있다가 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이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문에 보면, 저자는 헤어진 지 오래된 누군가에게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쓰듯 이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부재의 존재로써 저자의 마음에 그리움의 깊이를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젊었을 적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를 여러 통 쓰기도 했습니다. 깊은 밤 무엇엔가 홀린 듯 써내려갔지만, 다음 날 아침 읽어보면 도저히 부칠 용기가 나지 않는 그런 편지 말입니다. 그런 편지에는 내밀한 마음의 한쪽이 담겨있기에 누구에게 읽어보라 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아직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자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도 제대로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던 것이 아쉽습니다. 때로는 읽는 흐름이 고르지 못한 탓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숲속 여러 군데에 까만 캥거루 배설물들이 흩어져 있는데,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면 서른 마리 안팎이 떼를 지어 나타난다고 해요. 캥거루들의 출현이 썩 잦은 듯해요. 그러니 이토록 많은 곳에 크고 작은 캥거루 배설물이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33쪽)“ 캥거루도 그렇고 배설물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드물지 않게 마주치는 생경한 느낌의 외래어도 그렇습니다. 제 경우는 어색하더라도 대부분의 외래어를 우리말로 써내려고 애를 쓰는 편이라고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적폐세력이라는 단어도 적절하게 쓰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지 않은 여행길에 한 권 분량의 생각을 글로 풀어낸 저자의 글쓰기와 사유의 깊이는 분명 놀라운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책읽기에서 나온 내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 제목에 담긴 의미는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는 이국의 도시를 여행하며 새벽마다 쓴 짧은 편지글이다. 편지라면 손으로 직접 건네주던,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여 전달해주어야 하는데, 이 편지는 수취인이 '불명'이란다. 원래 책이란, 저자와 독자가 다른 시공간에서 만나는 거니까. 이 표현이 낯설지는 않았다. 책은 쓰는 저자 외에 확실한 수취인이 존재할 수 없는 편지니까.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쓰나 싶었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당신은 벚꽃 아래 벤치에서 벗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편지들의 몇몇 부분에서 대한 저자의 표현이 몹시 구체적이었다. 독자에게 썼다고만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해서, 저자가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사람들이 아닐까란 흥미로운 상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몇몇 편지는 끝자락에 나온 '당신'이란 말이 나를 향한 말이 아닐 텐데, 내 마음을 찌르르 건드렸다. 그래서 난 이 35편의 편지 모두 나에게 온 편지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편지를 엿보는 게 아니라, 내 앞으로 온 편지를 읽듯이 기대하며 편지를 읽었다. 그러니까, 글이 난 더 좋았다. 중반부까지 읽다가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역시, 이렇게 읽었어야 했다!
우린 '여행'을 하며 정말 외적인 것만 한껏 즐기기만 할까? 여행의 순간 눈앞을 스치는 것들만 보고 듣고 느끼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여행하는 동안 온몸의 감각기관을 활짝 열고서, 닫은 생각과 마음을 환기하는 것이 여행이다.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놀라운 문화예술작품 등을 통해 행복한 순간을 선물 받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곪아 있던 생각들이 치유되기도 하고, 꽁꽁 숨겨 두었던 내 안의 비밀을 열어볼 용기를 얻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도 잘 해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호주로 훌쩍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여행을 보통의 여행기나 여행안내서처럼 우리에게 소개하지 않는다. "편지"로, 호주에서 여행자로 존재했던 자신의 사유 모음집이자, "살아 있음의 가장자리에 존재의 존재함에 대한 깊은 생각"을 담아 선물한다. 그만이 할 수 있고, 그때 그곳에서 가능했던 생각들에 대해 쓴걸. 아름다운 호주 풍경을 찍은 걸 함께.
블루마운틴에 서서 "김소월"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을 떠올리고, 오클랜드 땅에서 "김혜순"의 〈당신의 첫〉을 떠올리기도 한다. 시만 떠올리는 건 아니다.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우주를 채우는 암흑물질을 생각하기도 하고, 여행지의 낯섦을 곱씹기도 한다. 그가 그날 보았던 것이 어떻게 마음으로 다가오는지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남다른 책이다. "그의 눈에 들면 풍경이 시가 되고 산문이 된다. 풍경을 순수히 관조하며 그 위에 아로새겨진 시간의 무늬를 사유하는 사람"라는 표현처럼,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여느 여행지의 풍경과 다르고 그 풍경이 머리에 그리는 이미지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안기는 시와 닮아있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여정에서 겪은 무수한 '당신의 첫'들의 찰나에서 발아되어 밀봉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첫 밤, 당신의 첫 울음, 당신의 첫 웃음, 당신의 첫사랑, 당신의 첫 실패, 당신의 첫 거짓말, 그 많은 '당신의 첫'들 속에 서 당신은 무심코 발견됩니다.
분명 저자는 나를 모를 텐데, 왜 나를 아는 듯.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했던 생각보다는 조금은 문학적으로 다듬어져 있지만 어딘가 나와 닿아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편지마다 내가 했던 생각의 끄나풀이 약하게 혹은 단단하게 엮어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여행지에서 저자가 써 내려간 편지를 읽다 보면 마음속에 무언가 부유하고 떠다니는 것이 느껴진다. 평소에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마음의 조각들이 말이다. 그건 덤덤한 듯, 딱딱한 듯 써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애절함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아련하게 만드는 문장이나, 피식 날 웃게 만드는 문장에서 툭 걸린다.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삶의 광휘는 오직 혼돈을 견딘 결과로써 눈부십니다.
저자는 사랑에 메마른 사람에게 독특한 애틋한 감성을 담아 편지를 쓴다. 누구나 삶을 보내다가 한 번쯤은 혹은 자주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그 틈을 저자의 사랑 듬뿍 담긴 문장으로 매워보면 어떨까. 저자의 문장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문장들이, 어느새 나의 문장으로 나의 생각이 되어 채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허전함은 가만히 있는다고 채워지지 않는다. 기억의 편린을 부여잡고서 생각을 부여잡기보다, 여행하듯 책으로 생각과 마음을 환기해보면 어떨까. 다른 여행서적과 아주 많이 다르고 낯선, 이 책은 그러기에 딱 좋은 책이다.
"고마워요, 당신도 잘 있어요."
당신의 편지에 담긴 마음은 마음을 둥둥 떠다니며 부유하던 감정의 조각들을 모아, 내 마음에 무사히 잘 전달되었다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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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작은 유흥이나 기쁨을 유예하고 날마다 출근해서 꼬박 여덟 시간 이상씩 직장에 매여 살면서, 월급을 받으면 또 달마다 돌아오는 대출 원금과 이자나 상환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나이가 들어 인생 말년의 의기소침과
마주치는 것은 좀 서글픈 일이 아닐까요? 우리가 월급생활자건 자영업자건 임대업자건 간에 소규모의 인생
설계를 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제 방식대로 삶을 꾸리는 건 숭고한 일이지요. 그 생활이 한 줌의 보람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라면 아마 머리를 벽에 쿵쿵 찧고 싶어질
겁니다.
장석주 작가의 글은 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에세이를 통해서 먼저 만났었다. 그가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고 굉장히 로맨틱하면서도 특별한 부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글이 참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를 찾아서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 시는 나에게 아직 어려운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로 장석주 시인의 산문집, 에세이들은 출간되는 대로
챙겨서 보고 있었기에, 이번 신작도 매우 반가웠다.
이 책은 장석주 작가가 지난여름, 무더위가 덮친 서울을 떠나 비행기로
열 시간 넘게 걸리는 남부구의 도시, 시드니와 오클랜드로 떠난 여행의 기록이다. 그곳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그는 '당신'에게 보내는 35편의 편지를 쓴다.
'당신'은 책을 읽는 독자인 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가
사랑하는 아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혹은 그가 스쳐 지나갔던 낯선 타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짧은 글들 뒤에 항상 '당신'의
안부를 물으며, 당신, 잘 있어요. 라는 인사가 너무도 다정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씩씩한 사람이라면,
타인에게서 애정이나 위로 따위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 산문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줄 게 없지만'. 그렇지만 '연애에 자주 실패하고,
하는 일이 시들해 자주 하품을 하며, 시답잖은 관계들에 둘러싸여 있고, 과식과 과음에 기대어 권태를 벗어나려고 애쓴다면, 그런 당신이라면
이 산문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마음이 복잡해서 답답한 이들에게, 이 책은 그렇게 밀폐된 영혼의
창 한두 개쯤 열어젖힐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잃은 벌로 어른이 되고 맙니다. 어른이 될 때 우리
가슴속 어린 모차르트는 소리 없이 죽어요. 아니, 우리 스스로
어린 모차르트를 살해했는지도 몰라요. 우리는 우리 안의 별들을 우러러보는 어린아이, 노래하는 종달새, 혼절해도 좋을 만큼 기뻤던 놀이들을 빼앗겼어요. 아름다운 것은 빨리 사라집니다. 참 좋은 당신은 종달새, 바람의 여울목에서 활강을 하면서 노래하는 새. 봄날의 화관을 쓴
당신은 아름다웠기 때문에 빨리 사라졌어요. 지나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시인이라는 이력 때문인지 장석주 작가의 산문에서는 여백에서도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참 좋았다. 이번 산문집 또한 그러한데, 여행의 풍경들을 담고 있는 남반구의
풍경 사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마치 여행 에세이처럼 읽히기도 하고, 인문학적 통찰이 담긴 아름다운
문장들은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여운을 남겨준다. 그가 묘사하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이국적인 풍경들은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그래서 블루마운틴에서 부는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아마도 여행의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바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아닐까.
비록 돌아가서 맞이하게 될 내 고단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여행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장석주
작가 역시 이렇게 좋은 곳에서 다시 돌아갈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돌아갈 날을 염두에 두지 않고
떠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곳에 생업과 벗들, 거처와 추억이
많은 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내 생이 비루했다고 생업과 벗들,
집과 추억들마저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것들이 나를 받쳐주는 토대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생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것 같아 따뜻해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는 탕진할 수 없는 시간을
가진 존재,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더 예민해서 싸운다는 뜻'이라는
그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다. 그의 말처럼 누구도 처음부터 나이 든 게 아니니 말이다. 당신도 한때 젊었었다는 걸 잊지 마라. 그는 여행을 통해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본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할 것이다. 여행이란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풍경들을 붙잡게 하고, 실수와
시행착오로 가득 찬 내 삶을 돌아보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 주니 말이다.
당신도 떠나보세요. 하찮은 분노, 누추한
비열함, 한심한 이기심, 천박한 탐욕 따위는 모조리 내려놓고. 자연을 순수히 관조하고 교감하며 고요와 숭고를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고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면, 당신의 삶도, 내면도 큰 변화를 겪게 될 거라고 말해주는 이 책, 봄에 읽기에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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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문장을 생각할 수 있는지, 제목을 보자마자 몇 번이나 읊조렸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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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지은이 : 장석주 ◆출판사 : 마음서재 ◆리뷰/서평내용 : -> 언제나 장석주 시인의 글은 아름답습니다. 사실 이 책은 김연준 시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고백일 줄 알았어요. 많은 세월을 돌아 얼마전 결혼을 한 상대방에게 바치는 헌사가 얼마나 풍성하고 낭만적일까- 생각했더랬지요. 그런데! 이 책은 놀랍게도(?) 어느 불특정한 사람에게 쓴 글입니다. 주로 박연준 시인에게 쓴 것일 듯 한데, 또 어떤 부분을 보면 박연준 시인과 장시인을 ‘우리’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았을 때 당신이란 독자들일 때도, 혹은 박시인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일기같은, 해외에 체류하며 생각하고 생각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글인 것이지요.
결혼한 입장에서, 일인분의 고독에서 이인분의 고독을 받아들인다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이 말은 장석주시인이 결혼을 발표하며 썼던 문장으로 기억하는데, 결혼을 하더라도 결코 그 고독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며, 삶을 궁구하고 또 살아내야 하는 것 같아요.
장석주 시인의 깨알같은 농과 진지하고 묵직한 뼈있는 한 마디를 좋아합니다.
적폐가 되지 않기 위해 블루마운틴을 열심히 걸었다는 말에 혼자 빵 터졌네요^^ 그리고 장시인의 아름다운 문장을 도저히 따를 수가 없어, 망원시장에서 칼국수를 먹고, 돌꽃에서 굴 정식을 먹고, 홍대밀방에서 콩국수나 칼국수를 사먹어라도 보고 싶네요.
휴식에 대하여 이야기해준 것들도 고마웠어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환대라고요. 우리는 자신의 주인이자 손님이라고요. 쉼에 대해 강박적으로 옭아매며 쉬는 도중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 속으로 정리해보는 사람이지요. 저는. 쉬면 도태될 것 같고, 쉬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요. 나에게 환대를 해주라는 시인의 말이 고맙고, 또 위안이 되었어요.
각 장마다 당신, 잘 있어요-를 끝으로 짧은 글들은 마치는 인사를 합니다.
지중해와 블루마운틴을 다 보았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가, 슬그머니 부러워지는. 소식을 전해주고 느낌을 손끝으로 전달받아 나도 달콤하게 맛보는, 그런 끝맛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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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의 책은 이번이 세 권째다. 아니 온전히 읽은 책은 <은유의 힘>에 이어 두번째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의욕적으로 읽기 시작했던 <장석주가 새로 쓴 한국 근현대문학사>는 원하는 부분만 뽑아서 읽고는 방대한 양에 잠시 미뤄두고 있고, 부인인 박연준 시인과 6개월동안 함께 써내려간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역시 읽다가 기간이 되어 도서관으로 되돌려보냈다. 다독가로 알려진 저자가 선택한 굵직한 책들과 촘촘하고 반듯하게 짜여진 글과는 대조적으로 감성적이고 연한 커피같은 책들과 부드럽고 느슨한 그녀의 글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읽은 재미는 물론 책의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마침 바쁜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아쉽게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을 하게 되었지만 여유가 생기면 다시금 읽으려고 목록에 담아두었었다.
그러는 사이 신간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가 출간된 것이다.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했다. 최근 딱딱한 책을 많이 읽다보니 감성적인 책이 그리웠고 갑자기 푹 해진 날씨에 하나 둘 피어나며 색채를 더하기 시작한 담장 위 개나리를 보니 가슴 따뜻해지는 말랑말랑한 글이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국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새벽마다 당신에게 짧은 편지를 썼어요. 삶이란 8할의 우연 속에서 번성하고, 2할의 땀과 수고로 이루어지는 그 무엇이지요. 운명을 창조하는 그 많은 만남과 이별도 그 8할에 속하겠지요. 아무튼 헤어진 지 오래입니다만 당신을 잊은 건 아니에요. 당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잘 있어요, 당신'이라고 안부를 담은 내 편지는 연애편지일까요? 그게 연애편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부칠 수 없는 편지라는 것이이지요. 수취인 불명의 편지라니! 지금 부재의 존재로써 내 안에 그리움의 깊이를 만드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 p.7 <서문 中>
이 책의 부제 '풍경, 시간, 당신에 관하여'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매 꼭지 '당신, 잘 있어요'로 끝나는 글들은 마치 실제하는 존재에게 쓴 것 같지만 실은 지나간 나에게, 지나간 인연에게 그리고 지나간 날들에게 현재의 풍경 속에서 띄우는 연애편지인 것이다. 그 대상은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시인의 상상력과 감성은 먼 타국땅, 계절마저 뒤바뀐 광활한 대지에서 맘껏 발휘된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상대가 된 듯 실감나는 이입감이 든다.
그럼에도 많은 '당신'은 시인의 현재 부인인 박연준 시인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은유의 힘>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늦은 나이까지 솔로였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영혼의 짝을 만났음을 알았다. 올 1월에 25살 연하의 박연준 시인과 결혼을 했고, 결혼식 대신 결혼책을 발표하기도 했었다는 것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책은 그 이전의 감정도 있고, 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도 있고, 함께할 때의 즐거움과 낯섬, 불안한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특히 '시'라는 공통분모가 있음에도 젊은 자신을 저만치 멀리 보내버린 나와 아직은 젊음을 간직한 당신 사이의 간극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더위가 절정인 북반구를 떠나 남반구의 겨울 속 풍경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더 낯설게 만들어 버리고 타향에서의 시선은 더 솔직한 감정을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도 오늘보다 젊은 어제의 나를 보내버린 채 바라보는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창을 통해 비쳐든 햇빛 속에 있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새삼 당신이 젊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웬일인지 슬퍼집니다. 당신의 젊음이 슬픈 게 아니라 이 빛나는 찰나들에 영원히 머물지 못한다는 자각과, 우리가 시간이란 유한 자원을 소비하며 사라지는 존재라는 인식이 나를 꿰뚫고 지나갔기 때문이지요. 시간은 흘러가면서 우리를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겠지요. -중략- 하지만 나도 한때 젊었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누구도 처음부터 나이 든 게 아니에요. 며칠 밤을 새우며 글을 쓰고, 혼절한 듯이 자고 깨어나면 피로가 씻겨 가뿐했던 젊은 날은 이제 사라지고 없어요. 나는 규칙적인 수면, 산책, 소식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는 탕진할 수 없는 시간을 가진 존재,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 -부재와 상실-에 더 예민해져 싸운다는 뜻이지요. --- p95~96
산책을 하며 조촐한 일상을 즐기는 최소주의자였던 저자이지만 여행은 또다른 일상이었다. 이국의 공간에서 풀어놓는 시인만의 감성적인 시선은 또다른 층의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오후 늦게 블루마운틴의 일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저 장엄한 짧은 황혼의 빛 속에 조종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태양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떴다가 지기를 반복한 것일까요? 감히 그 세월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저 일몰의 장엄함을 보면서 그 감응을 각자의 기억에 되새길 뿐이겠지요. 우리 안의 이 하염없음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자연의 웅장함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하는 날카로운 인식과 함께 우리를 겸손하게 이끄는 바가 있습니다. 이 세속의 세계에 와 살면서 그런 깨달음 한 점조차 없다면 그는 마소나 다를 바 없겠지요.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주 놀라면서 감응하고, 경이 속에서 깨닫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향상되어야 합니다."--- p.37
때론 자연 현상은 살아 꿈틀대는 거대한 생명체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경외심. 그런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그 위대함에, 두려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다 보면 그 거대한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얼마나 작고 여린 지.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린 존재들이 모여 거대한 자연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노라면 이 톱니바퀴 같은 사회 속에서 힘을 쏟아붓고 있는 젊은 날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와 겹쳐지게 된다.
"메가롱 밸리 숲속의 저 어린 나무와 스무 살의 나를 하나로 겹쳐봅니다. 아무 소속도 없이 음악감상실이나 떠돌던 문학청년에게 미래는 우호적이지 않았어요. 밥을 구하는 대신 문학에 꿈을 두고 빈둥거리면서 가족의 적폐가 되어 떠돌던 어느 날, '나는 빛나고 싶다!' 운운하는 유치한 문장 몇 개를 남기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음악감상실 출입을 끊었어요. 무위도식하며 보낸 몇 년간의 무명 시절에 진절머리를 치며 문학이 생계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공사판이라도 나가야 하나, 혹은 구두수선공이라도 돼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한 해만 더 해보고 문학에 대한 꿈을 접기로 했어요. 나는 시립도서관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니체와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책들을 꾸역꾸역 읽었어요. 푸른 노트에 시 몇 편을 끼적이고, 봉사가 문고리 잡듯이 평론 두 편을 써낸 것은 스물 세 살 가을의 일이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 스물 세 살이 지나고 난 뒤 문학은 평생의 업이 되었습니다." --- p.101~102
"백수로 허덕이며 보낸 스무 살 시절, 불안이 수시로 찌르고 미래는 어두웠던 그 시절, 나는 한 점의 희망이라도 품었을까요? 내가 갈망한 것은 자유였어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 혹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그러나 자유는 가망 없는 꿈이었어요. -중략- 희망은 그 희망의 내역이 더 이상 불가능해질 때 주어지는 절망의 다른 이름인 것을, 닫힌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일찍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는 '개뼈다귀 같은 희망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라고 외쳤지요. -중략- 분명한 것은 희망에 기대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는 사실이지요. 무리 중에서 가장 나약한 자들이 희망에 기대는 법이지요. 결국 희망을 버려야만, 희망이 절실함에서 벗어나야만, 절망을 절망으로 견디는 자만이 자유로 나아갈 수 있어요. 나의 고난, 나의 절망, 나의 현전이야말로 희망 없는 현실을 넘어 저 멀리 달아날 수 있는 도약의 받침대인 거예요. 절망을 뿌리치지 말고 그것을 타고 넘어가세요!
우리는 멀리 있습니다. 당신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 부디 잘 있어요." --- p.109~113
그렇게 단련된 강인한 그였지만 그럼에도, 가슴을 녹이는 사랑 앞에서는 천상 약하고 작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나 본다.
"당신을 보았을 때 웬일인지 시냇물은 느리게 흐르고, 꽃들은 더욱 화사하고, 마침 피어난 라일락꽃 방향은 더욱 향기로웠지요. 당신의 화사함으로 천지간도 명도가 몇 도 더 높아진 것 같았는데, 폭죽처럼 연신 터지는 그 환한 빛 속에서 심장이 얼어붙었어요. 그 찰나, 나는 떨면서 당신만을 바라보았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어디에서 이렇듯 내 앞에 벙어리 장미꽃으로, 향기를 잃은 한 마리 백조로 와 있는 걸까요? 그 찰나는 온 우주가 당신만을 바라보는 듯했어요. 얼마나 흘러을까요. 당신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두드렸어요. 한참 동안이라고 느꼈지만 그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어요. 당신의 목소리는 노래가 되고, 그 노래가 내 안으로 흘러들어왔어요. 내 인생은 그 찰나를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뉘겠지요." --- p.182~183
영락없는 사랑꾼의 면모다. 손발이 오그라들 법도 하지만 너무나 진지하고 진솔해서 그럴 틈이 없다. 독자 역시 그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 그 환희의 순간을 함께 만끽한다. 시간이 멈추고, 세상의 빛은 모두 그 대상 만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은 몰입의 순간. 그렇게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된 시인 부부가 어떻게 탄생을 하게 되었는가를 독자들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그의 글 역시 그 찰나를 기점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더 깊어지고, 더 윤택해지고, 더 생기가 감도는 글로.
이전의 글들도 분명 그 상황 속에서 진실이었을 것이고, 지금의 글들도 현재의 언어로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비교적 다작을 한 저자이기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전의 글들도 찾아 읽어봐야 겠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기록한 결혼책도 읽어볼 참이다. 그렇게 한 중견 시인의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고 즐거울 일일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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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얘기가 많은 제목과 다르게 장석주 작가님의 담담한 문체와 느긋함, 그리고 여운이 많이 남는 당신에게 쓰는 편지.
부재 ‘풍경, 시간, 당신에 관하여’처럼 장석주작가님은 참 자연과 여행을 삶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대단하시다.
나무의 존재함에 대하여
내눈길이 가닿음으로써 저 어린 나무는 무와 익명성에서 존재자의 지평으로 솟구쳐 나왔어요. 저 나무는 존재에서 존재자로 이동합니다. 저 나무와 나는 존재의 지평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만납니다. 이 마주침은 우주적인 일입니다. 빛이 저 어린 나무를 빚고, 그다음 내가 저 어린나무에 눈길을 줌으로써 존재대로 발명한 것이지요.
내 스무 살의 바다
물은 겸손하고 순리를 따르지요.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를 뿐만 아니라 제 앞을 가로막는 게 있으면 에돌고 감돌아 나가지요. 물은 가만히 두면 스스로 정화하고 수평을 이룹니다. 또한 물은 따로 거처를 마련하는 법이 없어요. 그런 뜻에서 물은 방랑자지요.
어떻게 이런 표현들을 창작해내셨을까 창작의 고통이 있으셨을텐데도 그의 문체를 보면 담담함 그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남반구 오클랜드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처음부터 끝까지 청자를 당신이라고 지칭하며 중후한 멋도 느껴지고 왠지 모를 그리움도 느껴진다.
무리 중에서 가장 나약한 자들이 희망에 기대는 법이지요. 결국 희망을 버려야만, 희망의 절실함에서 벗어나야만, 절망을 절망으로 견디는 자만이 자유로 나아갈 수 있어요.
중후반이 지나갈수록 희망과 기다림의 미학도 써내렸다.
담담한 듯 추억 속에 잠겨 있는 분위기, 감성
작가님이 생각하는 ‘여행’에 대한 생각을 보고 참 멋있는 어른이다 싶었다. 나도 커서 자라서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님의 작품세계에 처음 들어갔던 ‘마흔의 서재’ 이 책을 읽고 내 꿈에 나만의 서재를 만든다는 목표가 생겼고 알랭드보통과 같은 작가님 작품 안에 있는 여러 작품들을 또 만나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작가님의 팬으로서 이 책은 구성, 내용,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여운과 기다림을 잘 보여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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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오클랜드와 같은 이국 도시를 여행하며 새벽마다 쓴, '당신'에게 보내는 35통의 편지가 수록된 책이다.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탐색하고 기록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풍경, 시간, 당신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당신'의 존재를 특정하지 않는다. 나에게 온 편지라는 생각이 설렘을 안겨주는 것처럼...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환영을 받으며 느낀 통찰이 글을 통해 드러난다. 저자가 여행을 통해 몸소 경험하고 느낀 삶에 대한 생각이 이야기가 되어 들린다. 저자의 눈에 비친 풍경이 산문으로 탄생한 것이다. 여행지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주는 선물. 책장을 덮고 나면 여행의 끝은 결국,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저자는 여행의 의미를 더욱 값지게 한다. 편지가 끝날 때마다 '당신, 잘 있어요'라며 읽는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는 듯한 여운을 남기는 게 인상적이다. 낯선 곳에서의 풍경과 시간을 마주함으로써 자연 속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생에 대한 고찰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