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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책. 그는 이미지가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라 권력, 이데올로기, 사회적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특히 여성의 재현 방식에 대한 비판은 미술사 속 ‘남성적 응시’가 어떻게 규범처럼 굳어졌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광고 이미지 분석을 통해 현대 소비문화가 욕망을 어떻게 조작하는지 설명하며 시각적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보는 행위 뒤에 숨어 있는 구조를 인식하게 하며,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강력한 비평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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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명 사진/예술 평론가인 존 버거의 여러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사진을 취미로 하기도 하고 예술작품을 보는 것에도 관심이 생기다 보니 여러 가지로 많이 흥미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총 7개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2, 4, 6번째 에세이는 사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 이유는 1번 에세이에서도 저자가 밝히는데, 필자의 글을 포함하여 글과 함께 사용되는 그림들이 글에 권위를 부여되도록 사용되기 때문에(The words have quoted the paintings to confirm their own verbal authority.) 이와 구분해서 그림 그 자체만이 주는 메시지를 읽어보라는 의미로 사진으로만 구성된 에세이를 의도적으로 배치했다고 보인다. 첫 번째 에세이는 본다(see) 는 것이 무엇인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에 영향을 받으며, 우리가 보는(see) 것은 선택적으로 바라보는(look) 능동적 행위이며, 우리가 본다는 걸 인식하고 나면 보여질수도(seen)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서로 보고, 보여질수 있음을 상호 간에 알게 되면서 보는 행위는 일종의 대화로 성립이 될 수 있다. 즉 일종의 언어(language)로 소통하는 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여러 예술 작품은 그 자체로 언어이자 소통의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시대가 바뀌며 언어가 바뀌게 되며, 이로 인해 예술작품이 갖는 메시지 또한 여러 가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 또 카메라 등의 개발로 이미지는 여러 분야에 재생산되어 사용될 수 있어 그 작품 자체가 갖고 있는 권위는 그 originality 외엔 많은 부분 잃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이러한 예술작품을 재생산해 사용하는지, 작품 너머의 실제 목적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세 번째 에세이(사진 에세이 제외 두 번째)는 전통적인 예술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전통의 여성관은 아래의 문장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One might simplify this by saying: men act and women appear. Men look at women. Women watch themselves being looked at." 점점 현대로 올수록 이러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소위 남성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누드에서 점점 피사체 본인의 내면을 표현하거나 순수한 인간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향, 예술의 구성 요소로써 남자와 차별 없는 하나의 인간으로 변화해 온 면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선은 아직까지도 많이 변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만약 이러한 사실이 감이 오지 않는다면 본 책에 있는 전통적인 누드화의 여성을 남성으로 치환해서 생각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자체 실험을 해보기를 권한다. 다섯 번째 에세이는 유화(oil painting), 그리고 유화를 소유한다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전통적으로 유화는 그림을 의뢰한 사람(주로 부자)의 인격과 부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려진 게 많고 이를 위해서 그림 속에는 그가 소유한 많은 물건들이 나타내지기도 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소유한 부를 통해 어떤 것까지 소유할 수 있는지 의뢰인의 buying power를 유추할 수 있는 그림들이 많이 그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그림들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 관련된 시장도 커지게 되었고 그림 그 자체가 잘 팔리는 상품이 되기도 하며 몇몇 인기 화가들은 많은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계속된 비슷한 류의 의뢰에 몇몇 특출난 예술가들은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그들의 그림들에 영혼이 담기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말미에 저자는 렘브란트의 예를 들면서 이러한 유화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바뀌는지 그의 젊을 적과 노년의 자화상 작품을 보며 비교하는데, 젊을 적 그의 그림은 그저 그의 신분과 특권과 부등 눈에 보이는 것만 과시하려 했다면, 늙어서의 그 스스로의 자화상에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꾸미거나 과시하지 않은 그저 old man으로서의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듯한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기존의 유화 언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썼다고 말한다. 마지막 에세이는 현대 사회 흔히 볼 수 있는 홍보물(광고)의 언어에 관한 내용이다. 홍보물에서는 전통적 유화의 언어를 차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유화가 가진 모호하고 역사적이고 시적이고 도덕적 표현 등이 광고를 좀 더 신비로우면서 광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강화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화와 홍보물이 가진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이는 유화의 경우 기본적으로 그의 소유물 안에서 행복한 현재의 그 자신(관람자)을 묘사하지만, 광고는 그가 아직 소유하지 못한 무언가를 미래에 소유했을 때 행복한 그 자신(관람자)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결과적으로 홍보물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실제 만질 수 없고 공허한 이상향에 대해서 욕망하도록 만든다. 홍보물은 우리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 자신을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식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이러한 홍보물은 결국 자본시장에서 노동자들이 계속 일하도록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고 한다. 끊임없고 무의미한 노동시간을 언젠간 이룰지도 모를 꿈과 균형을 맞추도록 하여 버틸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수준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꿈으로 끊임없는 노동을 버티고, 그렇게 수동적으로 노동하던 노동자는 소비시장에서 부러움의 대상으로써 한걸음 다가서기 위해 능동적인 소비자가 되어간다. 이러한 일종의 착취의 순환고리를 통해 자본주의는 계속 살아남게 된다고 한다. 예술작품을 본다는 것의 의미, 그 내재된 언어와의 대화,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각종 이미지들에서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와 이것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관해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참으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또 그림만으로 구성되었던 세 가지의 에세이 또한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대해선 알기 쉽지 않았지만 그랬기에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점에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영어로 읽었던 지라 이해도가 완벽하진 않은 듯싶지만 몇 번 읽어보기도 하고 기회 되면 번역서도 읽어보면서 곱씹어 보면 내 사진 취미에도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고, 우리 주변의 다양한 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도 다채로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