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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완아톰'은 1952년 어린이용 잡지에 연재되어 인기를 얻자 1957년 텔레비젼용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높은 시청율을 기록했고, 우리나라에도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되었다. 아톰은 만화속에서 친구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착한 로봇인데, 원자력을 동력으로 사용하기에 '아톰'이고 여동생의 이름은 우라늄에서 딴 '우란'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이차대전에 패전한지 십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은 어떻게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는 착한 로봇을 생각할 정도로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원자력 기술이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거라는 낙천적 전망을 기대한 것일까?
나카소네는 1954년 원자력예산과 '원자력 기본법'을 통과시키며 핵기술을 산업적 규모로 습득하여 향후 핵무장도 가능하게 하겠다는 속셈이 있었다. 국가주의적 이상을 가진 정치인들은 핵무기 보유가 강대국의 조건이 되고 핵기술을 가져야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고, 일본 과학자들도 미국에 대한 패전이 '과학전'에서 패한 자신들의 역부족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이 전시에 군수성과 상공성의 통제하에 산업활동과 과학연구가 이루어졌듯이 전후에도 원자력 산업은 국가통제적 산업으로 통산성은 원자력 산업을 보호육성하려고 비등수형 경수로와 가압수형 경수로를 각각 연평균 한 기 정도 건설하도록 전력회사에 요청했고 업계는 모범생처럼 이에 따르면서 다수의 원전을 가동하게 되었다. 일본은 2006년 세계최대 규모의 재처리공장을 시험운전하기 시작하고, 핵무기 1,250발에 해당하는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우라늄 농축과 인공위성 발사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미 핵무기의 보유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원자력 산업을 육성하는 진짜 이유이다.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미국이 이차대전 중 맨해튼 계획으로 원자폭탄을 제조한 핵기술을 전후에 원자력 발전으로 전용한 것으로 원자폭탄과 발전용 원자로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독일이 원자력 발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은 곧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밝힌 것이다. 원자폭탄(원자로)은 '물질이라고 부르는 한 줌의 양이 정말 우주에서 불타서 순수한 에너지로 바뀌었던 것'이 아니라 핵분열에서는 반드시 다량의 핵분열 생성물인 '죽음의 재'가 생긴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인간의 과학기술은 완전하지 않다. 원자력 발전 플랜트의 거대한 구조와 복잡함때문에 설계나 시공상의 과실이나 조작실수와 같은 부주의가 쌓이고 쌓여서 대형사고가 생긴다. 우리나라의 원전에서도 배관안에 스패너를 둔채 운행하여 원자로가 정전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그토록 거대한 플랜트를 가동하면서 사람의 사소한 실수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사고에서 보듯이 지진과 해일같은 자연의 힘앞에 기술강국의 일본의 신화가 산산히 부서지기도 하는 것이다. 원전 사고는 다른 사고와 달리 광범위한 지역에 사람의 시간을 뛰어넘는 오랜 시간에 걸친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다. 원자력 발전은 결코 평화적이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그러나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북한이 또 핵실험을 준비중인 것 같다는 보도가 있다. 원자로와 핵무기에 포위된 우리 한반도의 암울한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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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 신문 (금주의 책장) 2011년 10월 16일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 야마모토 요시타카 저.
이케우치 오사무(池內 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대참사를 둘러싸고 다수의 책들이 나와있다. 그 가운데 이 책은 가장 작고 알뜰한 한 권이다.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도쿄대학 이학부 물리학과를 나왔다. 대학원을 다닐때 의학부부터 시작한 도쿄대 투쟁과 우연히 만나고 곧 리더로 추대되어 막 열리기 시작한 학문의 길을 닫아야만 했다. 이후 대입학원인 예비교 강사. 이와 더불어 <자력과 중력의 발견>등 과학사의 대작들을 펴냈다. 이런 사람이 3.11(후쿠시마 대참사)이후에 생각하고 공부가 되었던 것을 세상에 물었다. 어떠한 보류도 없이, 어떠한 참작도 없이, 말하고 싶은 것을 확실히 말했다. 100페이지로 충분했다. 원자력발전의 ‘심층’에 ‘일본 외교력의 무기로써, 핵무장 선택의 가능성’은 국민들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야마모토가 도쿄대학에 있을 때, 도쿄대 공대에 원자력공학과가 설치되었다. 로케트공학의 花形교수등은 벙글거리며 시제품을 쏘아올렸다.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시키면서 원자폭탄의 제료인 플로티늄을 만들고 우라늄 농축기술을 정비하면서 나아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데 성공했다. 원자력 발전의 산업경제의 틀을 넘어서 외교 안보정책에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되면서, 이 지진대국의 특성을 못 본 척하며 오십기의 원자력 발전기를 세워오지 않았는가. 도쿄대 원자력공학과를 나와 도쿄전력 부사장과 원자력본부장을 역임한 사람이 쓴 <원자력 발전을 이해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원발은 높은 레벨의 방사성폐기물이 나올수밖에 없고 지층처분의 토지선정에 수십년 건설부터 폐쇄까지 수십년이라는 ‘꽤 긴시간’을 요구하고 완전 무해에 이르기까지는 수만년이라는 ‘지금까지 경험도 한 적이 없는’ 초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더욱이 지방자치단체와 국민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해활동’이 한층 필요하다는... 듣는 누구나 한마디씩 할 것이다. ‘정말일까?’. 그렇지만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의 수십년을 ‘꽤 긴시간’라 하며 수만년 이상을 ‘경험도 한 적이 없는 초장기간’이라는 애매한 이미지로 바꿔놓는 것이다. ‘이해활동’이라는 것은 돈다발을 의미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원자력발전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정말 제정신인가 할 정도로 태연스럽게 통용된 말이다. 말 그대로 <원자력 발전을 이해하는 책>인 것이다.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야마모토 선생은 ‘몇 가지 배우는’ 의미에서 펜을 들었다. 당사자들이 남긴 발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원자력 발전의 드라이브를 건 기시 수상, 방위청 기술 연구자소 연구원들의 글들, 슬금슬금 권력에 빌붙었던 학자들의 말...... 앞서 말한 전 도쿄전력 부사장의 책과 같이 당사자들의 속셈을 들춰냈다. 이 이상 유효한 반증의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기술과 노동의 면’에서는 현장에서 원자력 발전에 관련되어지는 전 기술자들이었다. 이 ‘배관의 괴물’의 결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종장에는 과학사의 눈이 빛난다. 국가주도과학의 견본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그것은 몇만년까지도 독성이 남아있고, 사고가 난 땅이나 폐로한 곳이든 그 주변은 인간 생활은 거부할 것이다. 어려운 난제를 모두 제쳐둔다해도 당분간 존속이나 재개가 눈앞에 둔 지금, ‘후손들에 대한 범죄’에 눈을 감아도 될 것인가.
<아사히신문> 서평 2011年09月18日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 논리와 상상력으로 내부를 파헤친다
후쿠시마 원전과 원전 사고를 ‘그 사람’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그런 식으로 희미하게 떠올릴 만한 ‘그 사람’들의 책이 나왔다.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오사라기지로(大佛次郞) 상’ 등을 수상했고, 『자력과 중력의 발견』(한국어판 『과학의 탄생』, 동아시아)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 자력과 중력의 끝에 인간은 원자력을 발견하고 원자 폭탄과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했다. 야마모토는 동일본 대지진과 해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과학 기술 만능이라는 19세기의 환상을 때려 부쉈다”고 본다. 그리고 “자연에서 일어날 수 없는 핵분열의 연쇄 반응을 인위적으로 출현”시키는 것은 “원래 인간의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며 허용되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기술 역사의 시간 축과 전후 국제 관계라는 공간 축에 원전을 두고 야마모토는 논리의 힘으로 이 ‘괴물’을 비판한다. 한편, 『후쿠시마 원전의 어둠』은 하청 노동자로 원전 내부에 들어간 호리 쿠니의 르포와 미즈키 시게루의 그림으로 원전의 “어둠”을 리얼하게 그려 낸다. 1979년 가을 ‘아사히 그래프’에 게재된 기사를 다시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미즈키는 원전을 외부에서만 보았고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그림의 박력은 무엇일까! “마스크를 썼을 때의 답답함, 불쾌한 냄새, 두통, 메스꺼움까지 되살아났다”라고 호리는 쓰고 있다. 야마모토가 논리를 바탕으로 원전을 말한 반면, 호리와 미츠키는 경험과 그것에 근거한 감각, 그리고 상상력으로 원전 안의 것을 파헤친다. 논리와 상상력. 원전을 생각할 때 이러한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원자력 발전은 비록 사고를 내지 않아도 비인도적인 존재이다”(야마모토) 두 저작은 여기에서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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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앞바다 지진의 지역에서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엄청난 규모의 지진과 해일이 일본을 강타했고,그 여파로 2011년 3월 13일,여파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여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방사능은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해로운 존재인데,방사능이 우리에게 끼지는 영향은 과거에 있었던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있었던 폭발 사고를 말한다.이 폭발로 인해 우라늄, 세슘과 같은 방사능 물질이 10톤 이상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고, 이 물질들은 바람을 타고 러시아, 동유럽, 심지어는 미국 동부까지에도 퍼져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이로 인해 현재까지 약 2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또, 이 방사능 유출로 인해 죄없는 신생아들이 열악한 상태로 태어나게 됐으며 아직까지도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의 최초이자 최후의 학생운동 시대였던 1960년대 말 도쿄대 전공투 의장을 지냈으며 70년대 이후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과 같은 저술활동을 활발히 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3월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 원자력 산업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며 원자력 폐지를 주장한다. 그 이유중 하나가 인류와 전 생태계에 미치는 심각한 환경오염에 있다. 원자폭탄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과 핵발전 시설에서 발생되는 폐기되어야 할 물질은 반감기가 약 24,000년이고 무해한 물질이 되기까지 약 50만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이 핵발전국이 된사유는 세계강국과의 역학적인 관계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원자력 산업을 육성하고 주변국에 원전 기술을 수출한 것도 핵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 정부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가면을 쓴 채 민생용으로 전용되었다. 하지만 많은 문제를 미해결 상태로 방치한 채 기술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원자력산업은 과학자들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반세기만에 원전 보유수 세계 4위에 핵재처리 시설까지 갖춘 핵 선진국으로 부상하였다. 일본은 국내에 핵무기 1250발분에 상당하는 10t의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고, 이는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 아시아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우리나라는 핵발전이 안전하다는것과 국가적으로 장려를 해야할 산업이라고 계속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다수 원전 보유국들은 원자력의 밝은 미래와 기술의 진보를 약속하며 재난이나 문제점을 끊임없이 축소하고 부정하는 하지만, 이 책은 우리도 반드시 알아야 할 핵발전에 대한 위험성을 담고 있었다. 국가에서 홍보하는 내용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과는 서로 상반되는 내용들이 많아 혼란스럽게 생각되는 독서였지만 만의 하나라도 핵발전이 인류의 발전을 가장한 위험성이 내포되어있는것이라면 나도 저자와 같은 생각으로 바뀔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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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핵발전의 진실 후쿠시마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임경택 옮김 / 동아시아 / 2011년 11월 산업혁명이 인류를 물질적 풍요에 취하게 하였지만 그에 다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첨단 산업 사회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20세기 후반부터 새로 접어든 21세기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 야기된 환경 문제에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엘니뇨나 라니냐, 혹은 열대우림 파괴로 인한 지구 재난 등 갖가지 산재된 여러 환경 관련 문제들로 지구의 운명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화석 연료 사용을 자제하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자는 여러 각 계에서 의견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며 예전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식재료에 친환경 마크가 붙기 시작했다. 지금은 누구나 환경 문제에 예민하여 이에 반한 행위가 적발될 때는 중세 종교 재판처럼 가혹한 화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피상적으로 보이고 감지되었던 여러 환경 문제에 그토록 철저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우리는 환경 재앙이라고 일컬어지는 원자력에 그토록 무감각했었다. 이 책을 들추어 보기 전까지... 올 초 일본에 불어 닥친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1-4호기 고장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인근 바다와 자국은 물론 주변국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거라는 경고 메시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도 먼 나라의 일로만 치부되는 것이 우리의 의식 수준이었다. 어쩜 그에 대한 심각성과 피해에 대한 구체적 사실과 근거들이 국제 정치의 불순한 합의 속에 우리에게 약하게 전달되는 까닭일 수도 있고 원자력에 대해 무지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거론한 바와 같이 우리는 원자력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그 독성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현대 과학 문명이라 대표되는 원자력이 한 때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세계 각국의 ‘평화적 목적만으로 사용’이라는 어눌한 담함 아래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 지금은 또 다른 모습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여러 방향에서 우리의 목줄을 조여 오는 예견된 사실에 너무나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부지불식간에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가는 지구의 모습에 너무나 태연하게 넋 놓고 있는 우리는 분명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사용과 제 2의 원전 건설은 중지되어야 한다. 이 푸른 지구를 후손들에게 찬란하게 물려주기 위한 우리의 책임을 다할 때다. 이 책을 통해 전달되는 여러 사실들로 우리에게 충분히 경고하고 있다. 지구의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 문제에 좀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부가가치 창출에 혈안이 된 자본주의 탐욕에서 지구를 지켜나가야 한다. 이 책이 다른 형태로 전하는 2차 세계 대전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경고 메시지를 기억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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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핵발전의 피해 그리고 그로 인한 심각한 상황들을 이야기 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예전 어느 소설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우리 나라가 경제 발전이 이루어 지기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던때에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플루토늄이 우리나라에 있는가 없는가에 관한 실제적인 내용을 밑바탕에 깔고 소설화한 책내용이다. 이로써 우리는 핵발전에 따라서 강국이 되느냐 소국이 되느냐가 좌지우지 된다는걸 알 수가 있다. 이미 일본이라는 나라를 우리나라 사람으로써 좋게 인식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써 일본의 핵발전에 관하여는 강국일거라 예상하고 있었다.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일본의 힘을 더욱 느낄수가 있었으며 이로써 원자력발전소에서 얻어지는 에너지에 의지하는 바가 크지만 정치적인 개념으로써는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또한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렇잖아도 일본의 원자력발전소의 사고가 일어나고 난후 방사능으로 인한 위험을 몸소 느낀 바가 있기에 또한번 책을 통해 심각함을 알수가 있었다. 벌써 마트에만 가도 그때당시 아니 지금까지도 생선과 시금치 거기에 아기들 기저귀까지 모든것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것을 인지하고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이때에 저자의 많은 이론과 사실적인 고발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경악할만한것은 이미 일본에서의 사고가 있은후 그것은 예상된 사고일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저자가 여러가지 이유를 드러냈다. 이로써 모든 선진화가 되어 감에 따라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감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일깨워 주고 있다.그것은 지금 현재 우리의 문제인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라나는 자녀들과 앞으로 더 나아가 후손들까지도 위험에 처하지 않게끔 현명하게 대처하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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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과연 필요악일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한때는 호랑이나 마마와 같은 것, 때론 전쟁이나 배고픔처럼 사람들이 무섭게 느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에는 청년실업이나 유괴처럼 사회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무서운 일 중에 선두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조건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할만한 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예상치 못할 파괴력으로 다가오는 자연재해나 이를 능가하는 핵관련시설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핵에너지를 비롯한 핵관련 무기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화석연료를 포함한 자원의 한계를 이야기하며 대체에너지원으로 핵연료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우리나라 역시 핵연료를 사용하는 원자력발전에서 상단부분의 에너지를 얻고 있다. 핵관련 이야기가 이러한 에너지 문제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흐름을 볼 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이는 북한의 핵관련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일이다. 2011년 초 일본에서는 자연재해인 지진과 쓰나미에 의해 일본 원자력발전소가 피해를 입었다. 1986년 4월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건 이후 가장 큰 원자력발전소의 사건으로 이 사고가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그만큼 식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무감각의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감각적으로 대해도 좋을 만큼 원자력발전은 안전한 것일까?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을 읽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는 일본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더욱더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핵관련 정책의 변화를 비롯하여 국제적인 핵정책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이미 핵무기를 개발한 나라들의 이해요구와도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일본은 지금 당장 핵무기 1,250발을 만들 수 있는 플로투늄을 추출하여 보관하고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후 미국과 군사동맹을 비롯하여 자위대 무장에 있어 일본의 자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군사강국의 지위에 올라있는 수준이다. 이 과정에 일본 핵발전의 속내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핵무기의 보유가 국제적으로 자국의 지위를 높인다는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치상황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저자는 사실상 원자력은 ‘인간에게 허용된 한계’를 넘어섰다는 쥘 베른의 말을 인용하며 그 이유를 밝힌다. 그것은 원자력 에너지는 한번 폭주하면 인간이 통제를 하기 힘들다는 점과 원자력발전의 건설에서 가동까지 모든 부분에 걸쳐 비대화된 관료기구와 복수 대기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로 이는 기술자나 과학자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들어 인간 자체를 집어삼켜 버린다는 점이라고 한다. 핵원료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이나 핵폭발에서의 낙진 등을 걱정하는 것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사후 책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인류의 재앙을 불러오는 것임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현재 2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상업운영중이다. 이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의 규모다. 또한 한국표준형 원전이 건설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적으로 사용억제나 폐기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경향성을 보여준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오는 것일까? 핵무기보다는 원자력발전소가 더 광범위하게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 심각성을 인식해야 할 우리로써 의미심장하게 읽어야 할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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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을 맞이한 일본의 대형 쓰나미 사건은 무서운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할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무서운 사실을 일깨워줬다. 하지만 자연보다 더 무서운건 인간의 오만과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이라는 것 또한 알려줬다. 바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서 말이다. 이제 그 곳은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고 일본 전역에 방사능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방사능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땅을 오염시키며 지금보다 몇십년 후가 염려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일본과 도쿄전력은 신속한 처리보다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진실을 은폐하는 모습을 보여줘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원전 국가인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다는, 원자력 개발에 대한 고민과 방향을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 며칠 고리원전 사고은폐 뉴스를 보니 우려가 현실이 되는것만 같다. 일본과 같은 손 쓸수없는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제대로 된 시스템이 정비되어야겠고, 더 나아가 탈원전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에너지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을 한순간에 안 쓸순 없겠고,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안전만 보장이 된다면 원전을 나쁘게만 볼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게 됐다. 인간이 만들어낸 원자력 이지만, 인간이 해결할수 없는 것 또한 원자력 이라는걸 말이다. 이 끔찍한 괴물인 원자력에 대해 알면 알수록 탈핵에 동조하게 된다. 체르노빌 사건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일본의 후쿠시마 사건까지 발생하는 걸 지켜보며, 에너지보다 더 중요한게 뭔지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또 원전이 단지 에너지를 얻기 위한 평화적인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음도 알아야 한다.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핵무기 경쟁은 강대국의 조건중 하나가 핵무기 소유라는 걸 의미하게 됐다. 1953년 미국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제안했지만 실은 미국 핵산업의 시장을 넓히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일본정부도 이같은 정세에 동조하게 되며 원자력기술에 많은 투자와 관심을 갖게 된다. 핵피해국인 일본의 아이러니한 행보이다. 핵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죽었음에도, 탈핵을 외치는게 아니라 자신들도 갖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 당시 일본 과학자들은 핵에너지를 인류의 위업이자 과학기술의 정수로 여기며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원자폭탄의 완성>이 일본에 번역 출간 되었을 땐 과학기술의 정수를 후세에 전하는 불멸의 기록이라고 선전하기까지 했다. 참 놀라운 이야기이다.
이렇게 과학자들의 신뢰와 일본의 권력정치로부터 시작된 원자력산업은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열어두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1958년총리대신이자 상공장관을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는 "원자력기술은 평화적 이용 또는 무기로서의 사용 모두 가능하다. 어느 쪽으로 사용할 것인가는 국가 정책이고 국가의지의 문제이다. 일본은 국가와 국민의 뜻으로 원자력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정해 두고 있어 평화적 이용만을 생각하고 있지만 기술이 진보하면 무기로서의 가능성은 자동적으로 고양된다. 일본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잠재적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군축이나 핵실험 금지문제 등에 대해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 고 했는데 이런 노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용 종료된 핵연료를 직접처분보다 많은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재처리 방식으로 하며 핵무기에 이용되는 플루토늄을 얻는 것이다. 이는 곧 일본의 잠재적 핵무장화로 이어지는 걸 뜻한다.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고 해도 원자력은 다른 에너지보다 깨끗하거나 효율적이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만들면 만들수록 인간과 지구의 생명을 위협할 뿐이다. 핵분열에선 반드시 다량의 파편이 생겨나 원래의 연료와 거의 같은 질량의 핵분열 생성물이 생기는데 이것이 죽음의 재 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사성 폐기물이 무해한 물질이 되기까지는 50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구에서 인간이 산 기간을 떠올리면 영구적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이런 지극히 위험한 폐기물들을 안전하게 저장한다는 말도 어폐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지진대국이면서 화산지대인데, 이런 상황에서 수만년이나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가 어디 있겠나 말이다. 또 원자력은 광석 채굴과 핵연료 최종처리에 이르는 전과정에서 방사성 물질이 환경에 방출되고, 이를 안전하게 할만한 과학기술이 우리에겐 없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인간의 손으로 위험하고 까다로운 폐기물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도 보장되기 힘들고, 워낙 많은 업체와 기술자들이 참가하다보니 사고도 끊이질 않는다. 이런 시한폭탄같은 괴물을 우리는 오늘도 만들고 사용하고 있다.
다나카 미쓰히코는 "원자력발전의 경우 한 번이라도 큰 사고를 일으킨다면 그것으로 끝" 이라고 했다. 후쿠시마를 취재한 방송을 보니 그 말이 더 끔찍하게 들렸다.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몇센티씩 파내어 검은봉지에 담는 작업을 하던데, 그 봉지를 처리하지 못하고 그저 쌓아두기만 했다. 그렇다고 작업한 땅에서 방사능이 안나오면 다행이지만, 전과 다름없는 방사능 수치를 나타냈으니 헛고생만 한 것이다. 전문가는 이 작업이 의미가 없다고, 여기에 있던 흙을 저기로 옮기는 것 뿐이라고 했다. 이미 오염된 땅은 인간의 힘으론 처리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화가나고 안타깝고 슬펐다. 이건 자연이 준게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재앙이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 때문에 모른체하고 국가권력의 의지때문에 벌어진 참상이었으니까. 이 일이 이웃나라만의 특이한 사건일까? 우리도 안전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곧 닥칠 일임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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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다른 어떤 에너지 자원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원자력발전이 큰 위기를 맞게 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