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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문예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많은 작품을 내면서 1920년부터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기를 이룩한 작가라고 알고 있던 1906년 봄 경치에 취해 유토피아를 생각하는 내게 “거저, 운명이 제일 힘셉디다”라고 말을 하며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동생이 불렀다던 ‘배따라기’를 흥얼거린 뱃사람, 열다섯에 80원에 팔린 복녀의 칠성문 밖 빈민굴 생활과 왕서방 그리고 30원을 담은 너무나 슬픈 ‘감자’, 죄냐 예술이냐를 생각하게 만드는 ‘광염소나타’, 인왕산에서 한 남자가 지은 세상이 주지 않는 아내를 그리고자 했던 화공 이야기 ‘광화사’, 대단한 방탕생활로 생식능력을 잃었는데 아내가 낳은 아들을 ‘발가락이 닮았다’고 말하는 남자 이야기, 사람들을 너무나 괴롭혀서 삵(살쾡이)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익호의 아무도 하지 않는 용기 있는 행동과 애국가를 그린 ‘붉은산-어떤 의사의 수기’, 죽음을 선고 받았지만 수술 한달 만에 퇴원하여 잘 살고 있으며 1920년대 힘든 생활모습과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3.1운동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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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수학시간에 선생님께서 김동인의 『감자』를 추천하셨던 적이 있다. 당시 선생님들께서 우리 학생들에게 추천해주셨던 책으로는 기껏해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오체불만족』, 조금 딥해지면 『구운몽』정도였다. 그때 우연찮게 한국문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그 말을 듣고 나서 금방 도서관에 가서 김동인의 『감자』, 말고도 여러 책이 함께 있는 선집을 빌렸다. 근데 X발! 김동인 졸라싫어. 『감자』말고도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주제의식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든다. 같은 대상을 쓰더라도, 어떻게 풀어낼지는 순전히 작가의 몫이다. 얼마나 뻔하고 좆같은 주제를 들고오더라도,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지 봐줄 가치가 있는것이지, 『감자』나 『배따라기』같이 서술하거나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읽으면서 얼마나 스트레스, 그걸 넘어서 상처를 받았는지 모른다. 차라리 야동을 봤으면 정신건강에 나았을 것 같다. 김동인의 소설은, 윤리의식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으면서, 해석이 가능하다는 여지를 독자에게 무책임하게 맡겨놓고는 평가를 받는 얌체같은 면이 있다. 나는 이러한 부분이 너무나 화가 나고, 그의 현실에서 개저씨 행동과 비양심적인 만행과 합쳐져 그를 무턱대고 혐오하게 된다. 나는 배우는 작품과 분리해서 캐릭터로 봐야한다, 영화감독은 저작과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일체 믿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타협가능한 시대적 배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든 비판을 받아들이고나서도 가치있는 글이 되면 그 작품만이 현실에 남는 것이다. 어쨌거나 김동인의 소설은, 하나같이 역겨워서 읽을수가 없다. 이미 김동인의 대표작은 그 쿰쿰한 배꼽냄새같은 것 때문에 다 읽고 나서지만, 사람들이 김동인의 『광염소나타』같은 거에 광기가 가득하며 문학적이며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야기를 제정신으로 들어주기가 어렵다. 이번에 초등학생 3학년-5학년 아이들과 한국대표 단편소설을 함께 읽을 기회를 가지게 됐는데, 김동인의 글을 스스로 감내할 자신이 없다. 김동인의 작품을 넣은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김동인의 이름이 ㄱ으로 시작한다는 이유로 목차 첫번째에 올라오고, 저자가 '김동인 외'라고 표시되는 것도 화가 나 죽을지경이다. 다시는 읽을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