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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문예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많은 작품을 내면서 1920년부터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기를 이룩한 작가라고 알고 있던 김동인. 우울한 그때의 삶을 때론 솔직하고 때론 적나라하고 때론 꿈처럼 묘사한 작품들을 읽으며 그 시대를 알았다는 기쁨이나 즐거움보다 우울하고 슬프다. '창조'는 한국문학의 집단적인 문예활동의 장을 열었지만,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을 살기도 했고, 9호를 내고 경영문제로 2년 만에 폐간하였다고 한다. 평양 부유층에서 자랐기에 고집스런 예술관을 가지고 있지만 빈곤과 불면증,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작가. 구어체 문장을 사용하고 과거체의 서술체, 대명사 ‘그’의 사용을 일반화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고 도피하거나 체념하며 사는 소설 속 인물들과 닮은 그. 국가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식민지 상황을 직접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소극적인 인물의 내면 안에 은닉했다는 아쉬움과 생계를 위해 문학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작품해설을 읽으니 국어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1906년 이인직의 ‘혈의 누’ 출간을 시작으로 신문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대문학 100년을 맞이해 청소년과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한국대표문학선집을 발간한다는 출판사 대표의 발간사가 기쁘고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11편의 중,단편이 들어있는데 익히 아는 작품도 있고 내겐 낯선 작품도 있다.
봄 경치에 취해 유토피아를 생각하는 내게 “거저, 운명이 제일 힘셉디다”라고 말을 하며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동생이 불렀다던 ‘배따라기’를 흥얼거린 뱃사람, 열다섯에 80원에 팔린 복녀의 칠성문 밖 빈민굴 생활과 왕서방 그리고 30원을 담은 너무나 슬픈 ‘감자’, 죄냐 예술이냐를 생각하게 만드는 ‘광염소나타’, 인왕산에서 한 남자가 지은 세상이 주지 않는 아내를 그리고자 했던 화공 이야기 ‘광화사’, 대단한 방탕생활로 생식능력을 잃었는데 아내가 낳은 아들을 ‘발가락이 닮았다’고 말하는 남자 이야기, 사람들을 너무나 괴롭혀서 삵(살쾡이)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익호의 아무도 하지 않는 용기 있는 행동과 애국가를 그린 ‘붉은산-어떤 의사의 수기’, 죽음을 선고 받았지만 수술 한달 만에 퇴원하여 잘 살고 있으며 오진이냐 친구의 우정인가를 이야기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목숨’, 다섯 평이 못 되는 감옥 안에 마흔한 사람이 생활하며 언제 나갈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그린 ‘태형-옥중기의 일절’, 스스로 이런 생활에서 떠나야겠다 생각만 하다 결단을 내린 한 남자의 ‘배회’, 천원으로 전당국을 시작했지만 밑천은 줄고 유질품만 쌓이다 결국 만주로 떠난 환 가족의 이야기 ‘벗기운 대금업자’, 천분을 모르고 남의 영분에 침입하여 실패한 이야기를 담은 ‘시골 황서방’
1920년대 힘든 생활모습과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3.1운동의 옥중기임에도 조국의 독립과 자유보다는 추한 이기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대가 암울하기도 했겠지만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슬프다. 삶이 힘겹고 남과 어울리지도 못하는데 작가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생각하니 더 서글퍼지기도 한다. 주인공 이름이 복녀나 여처럼 일반이름일 때도 있고 M, A, B처럼 알파벳으로 나올 때도 있다. 만약 김동인님이 지금 살고 있다면 그 분의 작품은 어떤 색일지 궁금해진다. 그때보다 삶이 윤택할 테고 그랬다면 약물중독으로 고생하지 않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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