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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머릿속에 춘추전국시대를 집어 넣게 해준다.
"우리의 머릿속에 춘추전국시대를 집어 넣게 해준다." 내용보기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중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춘추전국시대가 아닐까 싶다. 더욱이 전체의 흐름을 무시하고 사건위주로 토막토막 배웠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기억은 [사기], [논어], [맹자], [삼국지] 등.. 중국고전을 읽으면서도 반복되기 일쑤이다. 그러기에 중국을 이해하고,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춘추전국시대를 완전히
"우리의 머릿속에 춘추전국시대를 집어 넣게 해준다." 내용보기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중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춘추전국시대가 아닐까 싶다. 더욱이 전체의 흐름을 무시하고 사건위주로 토막토막 배웠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기억은 [사기], [논어], [맹자], [삼국지] .. 중국고전을 읽으면서도 반복되기 일쑤이다. 그러기에 중국을 이해하고,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춘추전국시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열국지]는 나에게 춘추전국시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느낌이다.

 

[열국지]는 겉으로는 역사소설이지만 실제로는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사기], [춘추좌전], [전국책], [오월춘추], [자치통감]등에 다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수많은 역사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삼국지연의]3할 가량이 허구로 채워진대 반해, [열국지]9할 이상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열국지]의 가장 큰 매력을 인간학의 보고라고 말한다. 동양문화의 정수는 인간학에 있고, 이는 춘추전국시대에 꽃을 활짝 피웠기 때문이란다.

 

원래 [열국지] 17세기 중엽 명대의 여소어가 펴낸 [열국지전]이 그 효시라고 한다. 그러나 [열국지전]은 역사소설이 아니라, 역사서의 축약본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백년후 명대 말기의 문인으로 알려진 풍몽룡이 [열국지전]을 토대로 여러 역사서의 기록을 대폭 보완하여 [신열국지]를 펴 내었다. [열국지전]에 비해 다루는 시기를 2/3정도로 줄이고, 분량을 2배로 늘려 그 내용이 한층 풍부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청나라 건륭제때 채원방이 약간의 손질을 가해 총 108회로 구성된 [동주열국지]로 출간한 것이 우리가 보는 [열국지]라고 한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의 흥망사를 다루고 있는 [열국지]는 등장인물이 턱없이 많고, 전개되는 사건 또한 매우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열국지]를 읽기에 앞서, 아니 108회 분량의 [열국지] 10회로 나누어 설명해 주는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700여 쪽에 이르는 분량이 조금은 주눅들게 하지만, 읽다 보면 [열국지]에 푹 빠져있는 나를 발견한다.

 

중국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는 총 550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난세가 계속된 것은 동서양 전 역사를 통틀어도 없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550년이라는 세월이 걸리기는 했지만, 크게 보면 주 나라가 진 제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주 나라 최대의 폭군인 유왕이 후궁 포사에 빠져 왕후 신후를 내쫓자, 신후의 모국인 신 나라가 서융과 함께 처 들어와 유왕을 죽인다. 이에 태자 의구가 제후들의 추대로 왕위(주 평왕)에 오르고 낙양으로 천도하니, 이때가 기원전 770년으로 춘추시대의 시작이다. 또한 전국시대는 주 왕실이 진()나라의 3(三分)을 공인하는 기원전 403년에 시작하여,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기원전 221년에 끝난 것으로 되어있다. [열국지]는 시작부터 끝까지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들을 폭군과 간신, 현군과 충신의 쌍으로 묶어 놓았다고 한다. 유일한 예외는 폭군과 요녀의 쌍으로 묶인 주 유왕과 포사라고 한다. 우리는 이들 군신의 쌍을 통하여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여러 역사서에 나오는 해당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객관적인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외양상 매우 복잡하나 전시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치도(治道)와 남북(南北)을 구분하는 분석틀을 사용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치도가 바람직한 치국평천하의 방략을 둘러싼 제자백가의 논쟁을 중심으로 통치이념을 기준으로 한 철학적 분석이라면, 남북의 틀은 황하와 장강에 의해 중국을 남북으로 양분하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패권의 변동양상을 시기별로 추적하는 것 이라고 한다.

 

치도의 틀로써 볼 때, 이는 한마디로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대립으로 볼 수가 있다. 주 나라는 건국 당시 덕치(왕도)를 내세웠으나, 낙양 천도 후 제후들이 위세를 떨치면서 패도가 횡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덕치를 통한 왕도를 내세운 맹자는 폭군의 경우 방벌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고, 패도를 내세운 한비자는 설령 폭군이라 할지라도 과격한 방법은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왕도와 패도가 잠시 헷갈리기도 한다. 이는 춘추시대와 제자백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그저 암기식으로 외우기만 한 역사공부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북 대립의 틀로 보았을 때는, 춘추5패와 전국7웅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한 것이다. 춘추5패는 제 환공, () 문공, 초 장왕, 오왕 부차, 그리고 월왕 합려를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엄밀히 얘기하면 패자가 아니다. 이들이 행사한 패권은 황하와 장강 사이, 회수일대의 경계선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와 진이 북쪽세력을 대표하고, 초가 남쪽세력을 대표했을 뿐이다. 그나마 패권다운 패권은 초 장왕 시기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남북이 번갈아 가며 패권을 장악했지만, 북쪽은 항상 제후의 연합군이, 남쪽은 초나라가 단독으로 행사했다. 춘추시대의 패권은 회맹과 조빙 등을 통하여 맹주국가의 패권을 유지했지만, 오월시대가 되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패권을 차지한 시기로 이는 춘추시대의 종언과 전국시대를 알리는 서막에 해당된다. 전국7웅은 진()나라가 삼분되어 성립한 한, , , 그리고 서쪽의 진(), 남쪽의 촉과 제, 연 나라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들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까지 반목과 부침을 거듭한다.

 

[열국지]에서 저자 풍몽룡이 짝 지워 놓은 인물 쌍을 찾아가며 읽는 것도 흥미롭다. 수많은 고사나, 다른 고전을 통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제환공은 부국강병의 출발을 민부(民富)에서 찾으면서도 균부(均富)를 달성코자 한 관중의 덕으로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의 자리에 오른다. 제환공 사후의 패권은 춘추전국시대 가장 중요한 위치인 중원에 자리잡고 있던 진()문공에게 돌아간다. 그는 19년간이나 망명생활을 한끝에 군주의 위에 오르지만 초성왕과 맞붙은 성복전투에서 이겨 춘추시대 처음으로 남북을 아우른 패자의 자리에 오른다. 황하문명을 상징하는 북쪽 중원의 역사는 이시기 제 환공과 진 문공에 의해 기본 틀이 갖추어졌다고 한다. 그런 반면 장강문화를 상징하는 남쪽의 역사문화는 초장왕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초장왕은 제환공과 진문공의 뒤를 이어 존왕양이를 기치로 내건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이다. 초장왕 또한 손숙오라는 현신이 있었기에 패자가 될 수 있었으며,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불이 꺼졌을 때 총희를 희롱한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모두 갓끈을 끊으라고 한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후 천하는 오월시대에 접어든다. 오왕 합려는 오자서와 백비등의 보필에 힘입어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월나라를 공격하여 월왕 구천을 잡는다. 구천은 포로로 끌려가 억류생활을 하면서 훗날을 위해 모든 수모를 견디고 3년 후 풀려나자 힘을 기르기 시작한다. 구천 역시 범리와 문종의 도움으로 은밀하게 실력을 기르는 도광양회의 전략을 써서 오나라를 공격, 오왕 합려를 생포하지만 신첩이 되겠다는 합려를 그대로 죽인다.

 

월왕 구천이 죽자 천하는 전국시대로 접어든다. 각 제후국들은 천하의 패권보다는 국내의 권력투쟁에 더 휩싸이게 된다. 그 결과 한때는 패권을 움켜지었던 진()나라가 한, , 조 세 가문에 의해 삼분되었고, 춘추시대의 낭만은 사라지고, 끝없는 전쟁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명군과 현신이 있는 나라는 잠시나마 패권을 두고 각축을 벌이기도 했다. 위 문후와 오기, () 효공과 상앙, 제 위왕과 추기, 손빈등이 그 예이다. 그 후, () 소왕은 범수의 원교근공 계책을 통하여 위,,조 나라를 제압했고, 진시황에 이르러 이사의 반간계를 사용,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6개국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한다.

 

저자는 [열국지]를 읽으면서 역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하는 것이 많음을 이야기 한다. 역사는 패자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기는 자는 미화되고, 지는 자는 모든 것이 폄훼되고 왜곡된다. [열국지] 맨 처음에 나오는 주 유왕과 포사가 폭군과 요녀의 쌍으로 된 것도 패자의 기록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사기], [춘추좌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역사서는 중원을 중심으로 기록되었기에 초나라 상왕과 투자문은 제 환공과 관중 같은 명군, 현신이었음에도, 초 장왕이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이었음에도 초나라는 남쪽의 오랑캐라 하여 폄하하고, 그들의 공을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다고 한다. 진시황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마천은 진시황을 최초로 폭군이라 규정했다. 또한 분서갱유를 당한 유자들의 입장에서 진() 제국을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진시황의 출생설을 비롯 모든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진이 멸망한 이후 이에 대한 반론은 불가능했고, 더욱이 후대의 역사가들은 유가의 통치이념인 왕도대신 패도의 모습으로 일관한 진시황을 폭군으로 매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역사서를 읽고, 그 행간을 찾아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단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국 고전을 읽고, 그들의 역사를 아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열국지]를 읽고, 그 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동양전래의 문화와 학문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그 시대는 백가쟁명의 시대이었고, 그것은 모든 동양사상의 요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분열과 혼란은 비록 장구한 시간 그것이 계속되었다고는 하나 진 나라에 의해 정리되었다. ()이 어떻게 해서 천하통일의 주역이 되었는지, 춘추5패나 전국7웅은 어떻게 그들의 패권을 얻었는지, 그때와 하등 다를 바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열국지]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k*****1 2011.11.28. 신고 공감 15 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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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교양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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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머릿속으로 이해한 내용과 가슴 깊이 간직할 내용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부분에 집중하는 이유는 책을 통해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누군가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기억 저편 어딘가에 방치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동양고전을 읽으며 조금씩 바뀌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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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머릿속으로 이해한 내용과 가슴 깊이 간직할 내용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부분에 집중하는 이유는 책을 통해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누군가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기억 저편 어딘가에 방치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동양고전을 읽으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와 상관없는 책속의 글이 사실은 나와 상당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이 책을 오랫동안 책장 구석에 놓았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먼지가 많이 앉아 있는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몇 년을 방치했다. 읽는 와중에 마침 사마의 미완의 책사, 사마의 최후의 승자를 보면서 더 많은 생각이 든다. 역사의 기록을 외우고, 사건과 사고를 기억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내가 학자가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 하지만 옛 사람들의 말, 행동, 평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읽는 이의 삶에 반드시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열국지에 대한 책을 읽고 작은 사실을 나열하거나, 얄팍한 지식을 뽐낼 자신이 없다. 그럴 수준도 아니다. 책을 읽어도 이걸 어떻게 정리해 볼까 생각하니 머리만 아프다. 큰 도움이 되는 글은 추천사에 있다. 신영복 교수의 삼독에 따라 글귀를 읽고, 글쓴이를 읽고, 자신을 읽는 것이다. 이 과정이 현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고전을 읽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꽤 오래전 고전을 읽다 문득 회사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들었다. 처음 벌어진 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나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도플갱어를 본 듯한 느낌, 그것이 오래전에 읽었던 사마천 사기의 한 고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찾아봤다. 그 경험 이후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물질 문명의 발달이 행태적 또는 기술적 착시를 일으키지만, 본질적인 인간의 사고방식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알아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실수를 줄여주는 힘이 되었다.


 열국지를 읽다보면 자주 사기와 진위를 비교한다. 팟캐스트에서도 MSG가 들어간 내용이라면서 사기를 언급하면 열국지가 항상 따라 다닌다. 신동준 교수 10강을 통해서 책을 두루 넓게 읽는 느낌이다. 저자의 책 중 처세나 자기계발서의 관점에서 쓴 책보다 훨씬 깊이 있고 재미있다. 최근에 올재의 묵자를 읽으면서 차분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책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열국지 강의를 보면서 필요할 때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가백가에 대한 다양한 저술, 고사와 함께 설명해 주는 것이 아주 좋았다. 특히 晉나라와 秦나라가 항상 혼동되고, 제나라, 초나라가 나오면 배경지식이 없어서 기계적으로 읽는 문제가 있었다. 동시에 저자가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사관을 제시함으로 행간과 배경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런 다양한 관점이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배움이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 필자를 읽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읽는 내내 저자의 말을 돌아보면, 형세를 잘 이해하고 상황에 적절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논어와 도덕경도 대립과 상생으로 같이 볼 수 있고, 패권적 통치와 인의에 기반한 덕치도 방법적 접근이 아니라 상황에 적합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왕권이 강화되고 신하의 권한이 제약될 시기가 있고, 신권이 강화되고 왕권이 제약될 상황과 시기가 있다. 때에 맞춰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방법은 변화와 호응을 해야 한다. 변화에 호응을 하지 않으면 부족하거나 넘치게 된다. 문제는 그 폭이 너무 넓으면 신뢰를 얻기 어렵고, 그 폭이 너무 좁으면 또 편협해진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돌베게 시리즈로 사기, 귀곡자, 신영복 교수의 고전 강의, 열국지를 읽었다. 장자도 저자가 같아서 읽은 셈이다. 그 첫 책이 신영복 교수의 책이다. 한 가지 추가적인 소득이라면 열국지를 읽다가 순자에 대한 관심이 실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자에 대한 저자의 실랄한 평가도 꽤 인상적이었다. 천도와 인도에 관한 이기론에 대한 저자의 말을 듣다보니 서구에 광신도가 나오고, 조선반도에 사화가 나오는 미친짓이 생기는 이유도 조금 알듯 하다. 지족불욕인데 사람은 절제가 어렵다. 절제가 어려우니 중용은 더욱 쉽지가 않다. 그러니 항상 모지리가 되어 사고를 치고 세상이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런 변화속을 살아가다보면 바보같아도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게 참...어렵다.


 초보님 리뷰가 딱 하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을 나눴으면 한다.


 


 

k***i 2019.01.01.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