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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삶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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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그동안 이름만 알고 있던 그의 책을 읽는다. 그 이름과 함께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던 세상의 편견이 맞는지 확인하고 그의 삶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다.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나는 안이한 태도로 세상의 편견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신해 왔다. 이제라도 올바로 알기 위해 선뜻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엮은이처럼 나혜석을 올바로 알기 위해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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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그동안 이름만 알고 있던 그의 책을 읽는다. 그 이름과 함께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던 세상의 편견이 맞는지 확인하고 그의 삶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다.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나는 안이한 태도로 세상의 편견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신해 왔다. 이제라도 올바로 알기 위해 선뜻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엮은이처럼 나혜석을 올바로 알기 위해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덕분이다.

 

 나혜석은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나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1918년 졸업 후 귀국하여 미술교사로 재직했고, 1919년 3·1운동 시위 관련자로 검거돼 5개월 간 옥살이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잡지 <여자계> 발행을 주도하고 여성인권에 관한 글을 썼으며, 조혼과 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다.

 

  <경희>는 1918년에 발표한 자전적 단편소설이다. 일본 유학생 경희가 방학을 맞아 잠시 집에 돌아와 있는 동안 부모로부터 결혼을 강요받고 번민하며 자신의 삶을 다짐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더 늦기 전에 공부를 그만두고 혼인하라는 가부장적 아버지 앞에서 경희는 '여자도 사람'이라는 자각으로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라는 당찬 말로 거절한다. 실제로 나혜석은 유학 도중 부모의 결혼 강요에 반대해 수업료를 지원받지 못해 1년간 휴학하고 교사로 일해 번 돈을 모아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고 한다.

 

 <독신 여성의 정조론>은 후배 연인들과 양성평등에 대해 대화하는 선배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다. 그가 "파리에는 남자 유곽도 있다"며 "정조 관념을 지키기 위하여 신경쇠약에 들어 히스테리가 되는 것보다 돈을 주고 성욕을 풀고 명랑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마 현대인의 사교상으로도 필요할"거라고 말하자 후배남성도 동의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부처 간의 문답>은 젊은 부부가 잠자기 전에 주고받는 일상 속의 성 평등 대화를 다룬다. 주로 '처'인 아내가 '부'인 남편을 일깨워주는 입장이다. "제일 구미 사람들의 정신 진보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즉 평화의 원칙을 아는 것"이라며 "원래 타인과 타인 사이에 평화스럽게 살려면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여야 될 것이외다."라는 말로 그들과 반대인 우리 가정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1931년 <삼천리>에 발표한 <나를 잊지 않는 행복>에서 그는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면 고통을 당할지언정 결코 패배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사람은 어느 시기에 가서 자각한다. 아무라도 한 번이나 두 번은 다 자기 힘을 자각한다. 그것을 받는 사람은 즉 자기를 잊지 않는 행복을 느끼는 자다. 또 사람은 내심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가 있는 것이다. 그(보이지 않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곧 자기를 잊지 않은 것이 된다. 요컨대 우리들의 현재 및 미래의 생활 목표의 신앙 및 행복은 오직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수밖에 아무것도 우리의 맘을 기쁘게 해 줄 것이 없을 것이다."

 

 나혜석은 1934년 <삼천리> 8~9월호에 <이혼 고백장>을 발표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이혼 과정을 둘러싼 무수한 소문과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조선 여성들이 개척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결혼생활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남편 김우영과의 이혼 발단은 남편이 독일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동안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던 나혜석이 최린을 만나고 사랑에 빠져 연애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다. 그는 '이혼 절차를 밟고 있던 중 일어난 김우영의 외도와 시댁의 횡포, 양육권 및 재산 분할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침묵했다.'고 한다. 이 글에서 나혜석은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한다며 여성 억압을 비판했다. 또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라고 주장했다. 나혜석은 "이혼 사건 후 나는 조선에 있지 못할 사람으로 자타 간에 공인하는 바이었고, 사오 년간 있는 동안에도 실상 고통스러웠"음을 밝힌다. 그는 이혼 후 사회적으로 배척받고 취직하기도 어려워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 1948년 12월 10일 길 위에서 사망했다. 

 

 나혜석에게 글쓰기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는 도구였음을 그의 여러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1933년 2월 <조선일보>에 발표한 <모델-여인 일기>에서 그는 칼자루를 쥔 남성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엮은이는 나혜석은 자신이 다치게 되더라도 직접 글을 쓰는 길을 선택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원류라고 평가한다.

 

 "남자는 칼자루를 쥔 셈이요, 여자는 칼날을 쥔 셈이니 남자 하는 데 따라 여자에게만 상처를 줄 뿐이지. 고약한 제도야, 지금은 계급 전쟁 시대지만 미구에 남녀 전쟁이 날 것이야. 그리고 다시 여존남비시대가 오면 그 사회제도는 여성 중심이 될 것이야. 무엇이든지 고정해 있지 않고 순환하니까."

 

a*******5 2019.01.24. 신고 공감 14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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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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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혜석,글쓰는 여자의 탄생 >글을 읽는 동안 나혜석 선생님의 참지식인 적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사회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당차고 당당한 모습이 정말 멋져보였습니다. 제가 만약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그렇게 선생님처럼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해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글들도 너무나 술술 읽히고 또한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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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혜석,글쓰는 여자의 탄생 >

글을 읽는 동안 나혜석 선생님의 참지식인 적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사회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당차고 당당한 모습이 정말 멋져보였습니다.
제가 만약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그렇게 선생님처럼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해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글들도 너무나 술술 읽히고 또한 재미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선생님의 앞서간 여성상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정말 재밌고 추천드립니다.
만약 추천 동영상이 보고 싶으시다면 유튜브에 있는 겨울서점 님의 영상도 추천드립니다.
k********7 2019.08.0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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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저 / 장영은 편 :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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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새끼들 정말 구질구질하다. 특히 좌담에 나오는 놈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온다.비겁하고 여자 탓만 해 대는 놈들이 기성세대 위치에 있었으니,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이 아닌가 싶다.*선생님, 작금의 남조선은 더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추도 작은 놈들이 뭐 자랑이라고, 뻔질나게 성매매질을 해대는 통해 나라가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변소에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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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새끼들 정말 구질구질하다. 특히 좌담에 나오는 놈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온다.

비겁하고 여자 탓만 해 대는 놈들이 기성세대 위치에 있었으니,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이 아닌가 싶다.


*

선생님, 작금의 남조선은 더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추도 작은 놈들이 뭐 자랑이라고, 뻔질나게 성매매질을 해대는 통해 나라가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변소에 구멍을 뚫어 훔쳐보는 놈들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선생님 작고 하신지도 70년이 지났는데, 얼마나 기가 차시겠습니까. 기분 나쁘다고 여자를 패고, 아예 죽이기까지 하니 이게 어디 사람 살만한 나라입니까? 고작 책 한 권 읽었다고 지탄을 받는 가수가 존재하며, 판사라는 놈은 지하철에서 몰카나 찍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외에도 가슴 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선생님, 이 한남의 시대를 어찌하면 좋을지요-



*

여러분 이 책은 그냥 사세요. 

사시고 선물도 하시고 

도대체 책 사는 법이 뭔지도 모르는 주변의 한남들에게도 

책 좀 사라고 전해주시고..





YES마니아 : 로얄 t****j 2018.05.1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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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 나혜석 저 / 장영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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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선생님 지금도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되고 있어요 *'네 어린것들을 살릴까, 내가 살아야 할까.'이 생각으로 3일 밤을 철야하였사외다.'오냐, 내가 있는 후에 만물이 생겼다. 자식이 생겼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일찍부터 역경을 겪어라. 너희는 무엇보다 사람 자체가 될 것이다. 사는 것은 학문이나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야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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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혜석 선생님

지금도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되고 있어요

 

*

'네 어린것들을 살릴까, 내가 살아야 할까.'

이 생각으로 3일 밤을 철야하였사외다.

'오냐, 내가 있는 후에 만물이 생겼다. 자식이 생겼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일찍부터 역경을 겪어라. 너희는 무엇보다 사람 자체가 될 것이다. 사는 것은 학문이나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야 사는 것이다. 장자크 루소의 말에도 "나는 학자나 군인을 양성하는 것보다 먼저 사람을 기르노라." 하였다. 내가 출가하는 날은 일곱 사람이 역경에서 헤매는 날이다.'

그러나 이러나 내 개성을 위하여 일반 여성의 승리를 위하여 짐을 부등부등 싸가지고 출가 길을 차렸나이다.

북행 차를 탔다.

'어디로 갈까.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고 친구도 없고 이 홀로 된 몸,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c*******l 2018.05.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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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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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으로, 여성운동의 아이콘으로 익히 알려진 그. 그의 마음속을 더 잘 알고 싶어졌다. 나혜석이 쓴 수필과 소설이 고루 섞여 있어, 그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처: 글쎄 말이에요. 자유나 평등이나 이해의 의미를 충분히 깨달은 남자라든지 여자일 것 같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이해치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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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으로, 여성운동의 아이콘으로 익히 알려진 그. 그의 마음속을 더 잘 알고 싶어졌다. 

나혜석이 쓴 수필과 소설이 고루 섞여 있어, 그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처: 글쎄 말이에요. 자유나 평등이나 이해의 의미를 충분히 깨달은 남자라든지 여자일 것 같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이해치 못할 사람과 부부가 되지 않을 것이요, 또 상당히 대우받을 만한 공부와 인격으로 능히 상대자를 감복시킬 만치 신용을 얻었을 것일 터이오. 그리하여 언제든지 제가 하고 싶은 때는 자기가 가진 권리대로 부릴 것 아니오.
부: 만일 그렇게 될 듯하던 부부가 중도에 불이해케 된다면?
처: 그것은 제도를 뜯어고치든지 마음을 뜯어고치든지 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을 터이지요.


다만 일부 발췌수록된 수필들은 왜 여기서 끊어버렸나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y*****5 2019.06.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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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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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화가, 독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나혜석. 1914년 조선인 유학생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논설과 문학을 넘나드는 문필 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해요. 1919년 3·1운동에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어요. 1920년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한 후 1921년 만삭의 몸으로 국내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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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화가, 독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나혜석. 1914년 조선인 유학생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논설과 문학을 넘나드는 문필 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해요. 1919년 3·1운동에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어요. 1920년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한 후 1921년 만삭의 몸으로 국내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어요. 1927년 남편과 세계 여행을 떠나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는데, 그때 만난 최린과의 연애 사건이 문제가 되어 35에서 이혼당해요. 이혼 이후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그림과 글을 놓지 않았어요. 1948년 서울 시립자제원에서 무연고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는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 갔어요.

 

부잣집 딸이 자유연애를 하고 예술에 심취하거나, 혹은 사상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불륜에 빠져 기구한 인생으로 몰락하고 말았다는 서사 구조로 알려진 나혜석.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요?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가 나혜석을 그렇게 단정 짓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은 영원히 못 갈 것이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잔 말이오. 다행히 우리 조선 여자 중에 누구라도 가치 있는 욕을 먹는 자 있다 하면 우리는 안심이오." (P. 4)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20년간을 두고 어지간히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즉 우등 1등 졸업 사건, M과 연애 사건, 그와 사별 후 발광 사건, 다시 K와 연애 사건, 결혼 사건,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사건, 황옥 사건, 구미 만유 사건, 이혼 사건, 이혼 고백서 발표 사건, 고소 사건, 이렇게 별별 것을 다 겪었다." (P. 218) 

나혜석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려 했어요. 물론 나혜석의 싸움은 쉽지 않았고 좌절의 연속이었어요. 그런데도 나혜석은 자신의 운명을 탓하지 않았어요.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데 패배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나혜석은 1918년 3월 《여자계》에 자전적 소설 『경희』를 발표해요. 이 소설은 일본 유학생인 경희가 첫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 부모로부터 결혼을 강요받는 데에서 시작돼요. 나혜석의 아버지는 그녀가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결혼을 강요했고, 나혜석이 이를 거부하자 학비 지원을 중단했어요. 1915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나혜석은 1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모았고, 1916년에 복학할 수 있었어요.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여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만 나열하던 시대. 아무리 유학을 가고 공부해도 결국엔 결혼을 강요받던 시대. 성별을 따지기 전에 먼저 사람임을 알아주면 좋을 텐데요. 

 

1923년 1월 《동명》에 게재한 『모 된 감상기』는 발표 직후부터 비판받았어요. 모성은 위대하고 신성한 가치로 평가받는데, 나혜석이 이 오래된 금기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에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 가는 악마'란 얘기를 서슴없이 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의 고통을 여성의 입장에서 최초로 발표했어요. 화가로서 계속 성장하길 꿈꾸었던 나혜석의 소망은 출산 후 잠자기로 바뀌었어요. 이에 백결생은 신여성에 대해 자유만 요구할 뿐 책임을 회피하는 존재라고 먼저 규정한 후, 같은 논리로 나혜석을 비판했어요. 나혜석은 『백결생에게 답함』을 게재하면서 비난에 정면으로 맞섰어요. 

 

백결생의 태도를 보면 당시 남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요. 여성이 직접 말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일체의 행위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나혜석은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방황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여상의 삶을 꿈꾸었고, 그 꿈을 글쓰기로 실천했어요. 여성의 삶이 모순적이고 분노와 좌절의 연속인데, 어떻게 여성의 언어가 아름답고 완전하고 완벽하기를 바라느냐는 나혜석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해요. 

 

1934년 8, 9월 《삼천리》에 게재한 『이혼 고백장』. 나혜석은 자신의 이혼 과정을 공개해요. 약혼 시절부터 결혼 생활, 이혼 사건의 발단이 된 최린과의 관계도 직접 고백해요. 그러나 이 글의 진의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논란이 될 만한 발언에만 관심을 가지고 나혜석을 문란한 여자라고 규정지어요. 이혼 절차를 밟던 중 일어난 김우영의 외도와 시댁의 횡포, 양육권 및 재산분할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침묵했어요. 나혜석은 자기 생애를 스스로 글로 남기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 속에 '자기'가 없는 채로 영영 왜곡되거나 사라지게 될까 봐 자신을 드러냈어요. 그 대가를 너무나도 혹독하게 지불했으나, 나혜석은 자신의 말과 글을 중단하지 않고 공개했어요. 나혜석도 그 시대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1931년 11월 《삼천리》에 게재한 『나를 잊지 않는 행복』.

"사람은 누구든지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어느 시기에 가서 자각한다. 아무라도 한 번이나 두 번은 자기 힘을 자각한다. 그것을 받는 사람은 즉 자기를 잊지 않는 행복을 느끼는 자다. 또 사람은 자기 내심에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가 있는 것이다. 그(보이지 않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곧 자기를 잊지 않은 것이 된다." (P. 322)

 

나혜석은 참 용감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 시대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 길을 개척한 거잖아요.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에요. 나혜석 같은 사람들 덕분에 그래도 조금씩 변한 게 아닐까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있어요. 집안일, 육아는 지금도 여자들이 하는 비중이 높지 않나요?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뿌리 깊은 유교 사상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다행히 나혜석은 글을 남겨두었기에 다시 재평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여성은 그냥 잊혔을 거잖아요. 왜 '여자'에게만 그렇게 많은 걸 강요했을까요? 바꿔 말하면 '남자'에게 강요한 것도 많았겠죠? 같은 사람인데 말이에요. 여자, 남자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걸 먼저 기억하면 좋겠어요. 가진 것에 구애받지 않고, 차별 없이 사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YES마니아 : 골드 r*****9 2026.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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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쓴 여자의 탄생, 존재를 증명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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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6 태양은 만물을 뜨겁게 아니 하려도 자연 덥게 만듭니다. 아무런 것이 오더라도 그것을 비추는 재료로 화해 버립니다. 바다는 아무리 더러운 것이 뜨더라도 자체를 더럽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경우와 처지를 생각해 보자 그때 거기에서 자기를 찾습니다.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요구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만들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내심의 자기도 모르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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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6
태양은 만물을 뜨겁게 아니 하려도 자연 덥게 만듭니다. 아무런 것이 오더라도 그것을 비추는 재료로 화해 버립니다. 바다는 아무리 더러운 것이 뜨더라도 자체를 더럽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경우와 처지를 생각해 보자 그때 거기에서 자기를 찾습니다.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요구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만들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내심의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사람 일생의 일거립니다. 즉 자아 발견이외다. 

 

시대적 여건과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증명하기 위한 글쓰기를 했던 그가 존경스럽습니다. 손가락질도 받고 힘들고 아팠을 그의 외침에 부끄러워지기도 하고요. 
멋있고 유쾌하고 시원한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고 씁쓸합니다. 읽으면서 세상에 관심을 더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c******7 2023.09.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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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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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북클럽 리뷰를 보고 궁금해져서 구매 후 읽어본 책이다. 작가의 용감하고 거침없는 표현에 감탄하며 읽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착잡했고 그래서인지 그 시대에 당당히 목소리를 낸 작가가 너무 멋있었다. 나라면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던 그 시대에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완독 후 작가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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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북클럽 리뷰를 보고 궁금해져서 구매 후 읽어본 책이다. 작가의 용감하고 거침없는 표현에 감탄하며 읽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착잡했고 그래서인지 그 시대에 당당히 목소리를 낸 작가가 너무 멋있었다. 나라면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던 그 시대에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완독 후 작가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어졌고 작가의 미술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YES마니아 : 로얄 n*******5 2023.06.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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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에 이런 여성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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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반성한다 나를 돌이켜본다부지부식 간 온순하기 위해 현모양처 되기 위해 애써 온 삶은 아니었는지 소녀들이어 부디 나 같지 말고. 설치고 말하라 100년 전 여성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배우고 부지런하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100년 전의 세상인데 딱 지금의 모습. 100년 전의 사람인데 2020년에 데리고 와도 앞서 나갔을 여자. 조선 최초의 진심 깨어있던 신여성.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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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반성한다 나를 돌이켜본다
부지부식 간 온순하기 위해 현모양처 되기 위해 애써 온 삶은 아니었는지
소녀들이어 부디 나 같지 말고. 설치고 말하라
100년 전 여성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배우고 부지런하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100년 전의 세상인데 딱 지금의 모습. 100년 전의 사람인데 2020년에 데리고 와도 앞서 나갔을 여자. 조선 최초의 진심 깨어있던 신여성. 어쩌면 최초의 페미니스트. 조선의 여자들이 남자의 축첩에 괴로워하며 남자가 벌어오는 돈으로 살림만 하며 유순하게 사는 모습에 반기를 든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일본 유학을 가며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유럽을 여행하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이혼을 하기에 이르는데...
특히 '모된 감상기' 아이를 처음 낳고 젖소된 기분일 때 잠 못 자서 잠 자는 게 소원이던 때... 100년 전의 페미니스트 엄마의 이런 글을 읽었다면 정말 큰 위로가 됐을 것 같다.
너무 힘들 때 지금의 힘듦이 나만의 것이 아니고 이 시대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될 수 있을지. 그러므로 나혜석의 이야기를 권해주고 싶은 여성들이 참 많다.
l********1 2022.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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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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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첫 데이트에서 더치페이를 했다고 나에게 ‘신여성’이라고 했던 구남친이 생각났다. (그때 걔가 다른 가게는 비싸다고 쩔쩔매서 분식 먹었었는데.) 반세기도 더 전에, 어쩌면 현대여성보다 더 자유롭고 진취적으로 살아갔던 나혜석 선생님. 보다 더 놀라운 건 백 년이 흘렀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한국사회외 한국남자들. 선생님 말씀처럼 선생님이 과도기를 살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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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첫 데이트에서 더치페이를 했다고 나에게 ‘신여성’이라고 했던 구남친이 생각났다. (그때 걔가 다른 가게는 비싸다고 쩔쩔매서 분식 먹었었는데.) 반세기도 더 전에, 어쩌면 현대여성보다 더 자유롭고 진취적으로 살아갔던 나혜석 선생님. 보다 더 놀라운 건 백 년이 흘렀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한국사회외 한국남자들.

선생님 말씀처럼 선생님이 과도기를 살고 가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과도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d*********5 2019.08.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