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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 반장에게 휴가란 애당초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을까.
봄기운이 느껴지는 3월이었다. 매그레 반장은 맡고 있는 사건도 없었고 아내는 처제의 출산으로 알자스에 가 있었다.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 탓인지 파리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할 때 도르도뉴에 정착한 옛 동료가 한적한 시골마을에서의 휴식을 권하며 초대장을 보내왔다. 편지지 상단에 그려진 작은 시골 성의 모습에 매그레의 마음이 살짝 움직였지만 그때까지도 파리를 떠날 계획까지 없었다. 하찮은 사건이지만 한번은 확인할 필요가 있는 문서가 보르도에 있었는데 그것을 핑계 삼아 보르도에 들렀다가 도르도뉴에서 쉬었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그레는 이 모든 상황이 우연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빌프랑슈행 기차에 탑승한다. 그런데 매그레가 밤을 지새워야 할 침대칸을 노부부가 점령하는 바람에 빈자리를 찾아 헤매야했고 그렇게 우연히 이름 모를 남자와 같은 칸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남자의 행동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위쪽 침대에 누운 남자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니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남자는 시계바늘이 새벽 3시를 넘겼을 때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문을 열어놓고 복도 끝으로 사라져 버린다. 매그레는 문을 닫기 위해 일어섰는데 남자가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매그레도 생각이고 뭐고 없이 무작정 뛰어내린다.(p.14)’ 곧이어 ‘그는 총성을 듣기도 전에 어깨에 큰 충격을 받는다.(p.15)’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은 매그레는 인가를 찾아서 무작정 걷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그에게는 조끼는 고사하고 기껏해야 양복저고리를 걸칠 시간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지의 사내가 복도 끝에서 열차 문을 열었으니까. 우연이 아니다. 바로 그 순간 기차가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 것은! 철도를 따라 지나가는 숲이 어렴풋이 보인다. 달은 보이지 않는데, 구름 몇 조각이 달빛을 받아 훤하다. p.14
매그레는 병원에서 깨어난다. 의식을 되찾은 매그레 앞에 베르주라크의 수사판사, 검사장, 경찰 반장, 서기, 법의학자, 이렇게 다섯 사람이 나타난다. 다섯 사람은 매그레가 <베르주라크의 광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파리 수사국의 매그레 반장이란 사실이 밝혀지자 그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 사건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 건의 살인사건이 있었고 범인을 <광인>이라 부를 정도로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매그레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도시 전체가 수상쩍다고 느낀다.
그는 울창한 숲, 아름드리나무, 밝은색 도로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갑작스러운 공격, 먼지 속을 나뒹구는 희생자, 긴 침을 휘두르는 범인을 상상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이었다. 특히 거리의 평화로운 소리들이 들려오는 그 병실에서는. p.31
『베르주라크의 광인(열린책들)』에서 매그레 반장은 침대에 누워서 사건을 파헤친다. 매그레는 사건을 맡으면 날씨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도시를 헤매고 다니는데 그러질 못하지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번에 그의 눈과 귀가 되어준 인물은 아내다. 하지만 아내도 매그레를 믿어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의심한다고 책망한다. 옛 동료인 르뒤크도 괜히 도시를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베르주라크를 떠나라고 조언한다. 밖으로 나가서 직접 보고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지금까지 매그레가 맡은 사건 중에서 제일 답답한 사건이었다.
범인은 <광인>이 분명했다. 사회적으로는 능력 있는 의사로 추앙받는 인물이었으니 실제 광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남자와 동침시키는 짓을 했으니 광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는 광인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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