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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7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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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간의 생이 그렇게 짧지 않다는 데 있지. 환호와 응원이 모두 끝나버린 뒤에도 버텨내야 할 생이 남아 있거든, 훨씬 더 비루하고 끔찍한 모양새로 말일세. (124) 돈이 돈을 쫓는 것처럼 가난은 가난을 쫓습니다. 불행을 맹렬히 뒤쫓는 건 불행뿐이죠. (248)   단편 소설은 어려워 가능하면 읽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읽을 수밖에 없다. 작가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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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간의 생이 그렇게 짧지 않다는 데 있지. 환호와 응원이 모두 끝나버린 뒤에도 버텨내야 할 생이 남아 있거든, 훨씬 더 비루하고 끔찍한 모양새로 말일세. (124)

돈이 돈을 쫓는 것처럼 가난은 가난을 쫓습니다. 불행을 맹렬히 뒤쫓는 건 불행뿐이죠. (248)

 

단편 소설은 어려워 가능하면 읽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읽을 수밖에 없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알고 싶으니까. 안보윤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읽은 책이지만 단편이라 망설였던 건 사실이다. 단편 소설은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라는 사실 하나로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읽기를 잘했노라고.

 

모두 9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포스트 잇’. 윤리교사가 가정폭력으로 생을 마감한 여학생을 모욕했다는 누명을 쓰고 인터넷에 회자 된다. 하지만 과연 그 말이 맞을까? 단편 소설은 윤리교사 또한 여학생의 죽음을 외면한 사실이 밝혀진다. 나와는 상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무시했던 일. 그리고 나 아니고 다른 사람이 도와줬을 거라 믿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사실. 윤리교사는 억울했을지 모르지만, 진실을 알면 억울하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지. 나는 타인에게,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이 무슨 인생을 살던, 어떤 모습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누군가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나는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하고 싶지 않고, 알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슬펐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거리의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게 외면하는 사람이라니..

 

‘순환의 법칙’이라는 단편 또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도운은 다단계 사기로 여자친구 미주를 끌어들이고 미주는 그런 도운의 돈을 훔쳐 달아난다. 그런 어느 날 미주는 호텔 무료숙박권에 당첨된다. 미주가 묵게 된 방은 자꾸만 바뀌고 호텔 라디오에서는 끔찍한 사연을 시도 때도 없이 들려준다. 순환하는 방은 벗어날 수 없는 불행한 세계를 비유하는 것 같아 답답하고 아프기만 하다.

 

불행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달아 오는 것일까? 사는 게 쉬우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하고, 참아야 하는 것도 많다. 왜 이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힘들고 아픈 삶을 사는지. 20대 초반의 내 아이들도 인생이 힘들겠지? 그게 인생이라고, 그렇게 모두 가장의 무게를 견디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눈치 보지 않는 삶.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사는 것에 무심한 편이지만, 내 아이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다.

 

안보윤의 단편 소설. 어렵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하게 하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우리네 인생들. 모두 파이팅하기를. ^^

 
YES마니아 : 로얄 k*****3 2022.07.04.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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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나와나의 세계, 그리고 우리들의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
"나와나와나의 세계, 그리고 우리들의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 내용보기
안보윤 작가는 매작품마다 흔히들 말하는 '무관심'의 근간을 흔든다.요즘 사람들은 무관심이 매너다. 남의 일에 끼어들어봤자 괜히 분란만 일으킬것 같고, 또 사실관계도 확인 되지 않았는데 무슨 정의감 이랍시고 간섭하는 것들은 죄다 불필요한 일들이라고, 그냥 묵인하고 조용히 자기 갈길이나 가는게 맞는거라고.그렇게 배우고 믿고, 믿게되니 그런것도 같아서 사실이 되어버리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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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 작가는 매작품마다 흔히들 말하는 '무관심'의 근간을 흔든다.

요즘 사람들은 무관심이 매너다. 남의 일에 끼어들어봤자 괜히 분란만 일으킬것 같고, 또 사실관계도 확인 되지 않았는데 무슨 정의감 이랍시고 간섭하는 것들은 죄다 불필요한 일들이라고, 그냥 묵인하고 조용히 자기 갈길이나 가는게 맞는거라고.
그렇게 배우고 믿고, 믿게되니 그런것도 같아서 사실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서로는 회색인간처럼 살아가게 되고.

9개의 단편중 밝고 따뜻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소재가 이유없이 화끈거렸고, 잔기침을 하게 만들었으며, 입안에 고여있지도 않는 침만 꿀꺽 삼키게 만들었다.

어쩌면 부끄러움이 전부였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했다. 태초에 창조주가 인간을 부끄러움이 가득한 존재로 만들었기에, 소설속 이야기였음에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매 페이지 마다를 소심하게 넘겼다. 그나마 나는 이런 감정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위안을 삼으며 말이다.

<포스트잇>은 무관심의 세상이 빚은, 그러면서 오해 가능한 상황까지 겹쳐버린, 우리 모두가 살인자이자 공범일 수 밖에 없는 우연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윤리선생은 왜 항변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아니라고 나는 그날 거기에 그냥 서 있을 뿐이라고 왜 말을 못했을까?
나의 답답함은 결국 이세상 모든 일들이 바로 나와나와나의 세계이면서, 너와너와우리들의 세계로 연결됨을 암시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날선 부메랑을 날려가며 살아간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불행한 사람들>에서는 작가가 누구에게 들었는지 직접 경험했는지, 아니면 어느 기사나 구직광고에서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뚝의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소재로 삼았다. 나 역시 20대초반 학비문제로 잦은 휴학을 하며 어디선가 불행과 불안과 분노를 참으며, 주은처럼 말뚝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갑의 관계에 있던 여러 사람들은 나를 소모품 대하듯 했다. 언제라도 벼룩시장이나 교차로와 같은 구인전문 무가지들엔 돈만 몇푼 이체해주면 나를 대체할 잉여들로 넘쳐났다. 그랬기에 우리들은 더욱 진짜같은 말뚝행세에 매진했다.
가난은 인간을 구속한다. 이성조차 지배해버리는 돈의 세계. 그리고 인간성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아주 거룩하기만 한, 참..잘..난, 대한민국.
지금도 별반 다를바 없다.

p97. 스쳐지나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자꾸 잊고, 새삼 깨달았다.


<일그러진남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단지 그에게 닥친 형벌과도 같은 과거의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정의를 몸소 실천한 것 뿐이다. 그는 결코 그런 정도의 용기와 결단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지는 말아야지 와 같은 공감은 항상 품고 살았다. 우리 대부분도 그 '공감'이라는 단어에 공감하지만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글쎄 몇 이나 될까? 그리고 그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우리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단지 난 그런 고통에 빠지지 않았다는 다행스런 한숨이, 이 글을 읽고 난 후 말도안되는 환멸로 변했다. 다시 또 몇 번이나 부끄러워졌다.

p127 살아남았다고 해서 모두 다 숨을 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더군요. 살아남았다고 해서 모두 다 살아 있는건 아니라고 말일세.


<여진>은 아마도 지진이 일어났을때 말하는 그 여진을 뜻하나 보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속뜻은 그것과는 전혀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층 남자는 윗층에서 울려퍼지는 아이들의 '도도두두'놀이로 인한 쿵쾅거림을 참지 못하고 결국 위층 노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작가는 층간소음이 발생한 사건의 맥락보다는 이 살인이 발생하게 된 배경, 이를테면 손자손녀를 봐야하는 조부모의 현실과, 살인을 저지르게 한 근본적인 동기가 바로 아이들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어린 그들이 알아버렸을때 받게 되는 충격, 상처에 관해 더 깊이 있게 썼다.
안보윤 작가의 인터뷰를 읽다보니, 이 단편을 장편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본 바, 분명 장편에서 더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단편의 리뷰는 그때가서 다시 해보기로...

 

<이형의 계절> 이 작품과는 관계없지만 작가 윤이형(본명 이슬) 역시 자신의 가명을 이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과 같은 한자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물론 본명이 아니니 한자가 없을 수 도 있지만...

異形..다른 형상, 무언가 현실과는 다른 그 무엇

이 단편을 윤이형 작가가 좋아했을것 같다. 그래서 일까? 이 소설집의 추천사를 윤이형 작가님이 썼다.

<때로는 아무것도>에서의 환청은 새롭게 해석된다.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지'를 중요한 타이밍에 해주는 어떤 존재.
우리 인간이 그런 존재를 만나 매순간 조언을 듣고 최적의 결정을 내린다면, 그 결정은 합당할까? 
내 판단으로는 분명, 번거로운 일이 더 불편하기 때문에 가볍게 지나쳐버린 것인데, 의도와는 다르게 이상하게 배배꼬여버린 너무나 많은 일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변명이라도 될 수 있는 걸까?

이번 소설집에서 그나마 한번 크게 웃은 단편이었다.
냉동닭이 허공을 가르는 장면.
그 어린나이에 도영의 기억속 한 순간으로 포착하고 있는 그 부분에서 왜 그렇게 웃음이 났을까? 세쌍둥이의 재잘대는 잡담은 또 얼마나 희극적이었는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때로는 세상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는 뜻인가요 
"반대이기도 하고.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게 한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하니까.


<순환의 법칙>은 전에 호텔프린스 책에서 미리 읽었다. 그리고 내 블로그 어딘가에 이렇게 써두었다.

매번 느껴왔던 거지만 안보윤 작품은 고어 스러움이 소재로 등장할 때가 있다.
공포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녀의 작품들은, 이번에는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는 것과 염산테러를 당한 5살짜리 아이를 소재로 삼았다.

고통이 순환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자리잡은 행복이 불행의 이중나선에서 결코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인지는 일견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작가의 해석이 일정부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일생을 살면서 다양한 일(좋은, 나쁜)은 한가지 유형만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고통속에서만 살 수 있겠는가? 그리고 행복하게만 살 수 있겠는가?
외부에서 오는 고통의 강도가 자신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양으로 판단된다면, 행복이라는 방향추 쪽으로 더 큰 힘을 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연극배우의 고백>


사람의 기억은 비열하고 앙큼해서 지나간 것들, 사라진 것들에 대해 무턱대고 관대해요. 미화하는 속도도 빠르죠.

존재하지 않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한 연극배우에 대한 이야기.
그는 사라진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들 어딘가에서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단편이 의미하는 바가 쉽지가 않았다. 작가가 의미심장하게 설명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기회가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연극천재 '그애'는 왜 사라져버린 것일까? 작가는 왜 그를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을까? 천재적 재능을 가진 대상에 대한 극작가의 질투심? 아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여러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관심있게 보아온 작가들의 소설은 어쩌다 우연히 책으로 발간되기 전 미리 읽을 기회가 종종 있다.
표제작인 소년7의 고백과 순환의 법칙이 그렇다.
재미있는 사실은 몇년이 지나 다른 여러 작품들과 한권으로 묶여 발간되었음에도 몇줄을 읽자마자 '어라? 이거 그때 그 작품인데?'라며 즉시 기억에서 불러들여진다는 점이다. 매년 몇십권의 소설(소설집)을 읽는데도 애정하는 작가의 작품들은 쉽게 잊혀지질 않는가 보다.

이 책은 출판된 날로부터 하루만에 나에게 왔다. 그만큼 기다렸다. 마침 기회가 좋아 책을 바로 살 수 있어서 안보윤 작가 트위터에 이렇게 남겼다.

"소설집 고맙습니다. 감사히 잘 읽을게요. 언제나오나 기다렸는데...항상 열심히 써주신 덕에 행복한 책읽기 하고 있답니다."

그랬더니, 작가님이 친히 답글을 달아주셨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분이 있어 행복한 글쓰기(사실은 조금 힘들지만요 엉엉)하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을 나 따위가 어떻게 알겠냐만은, 정말이지 목숨걸고 쓰고 있다는 그 마음만은 충분히 와 닿았다. 그녀의 책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혹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치가 +1 향상 되었다는 나름의 노력상(?)을 받은 기분이다.
또다른 작품을 통해 이번에는 어떤 +1을 받을지 기대된다. 마냥 기다려진다.


책 속으로

p60 - 내 소설 속 세계는 이렇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한 명뿐인데 그의 전생과 현생과 후생이 전부 뒤엉켜 지표면 위로 쏟아져나와 있는 상태인 겁니다. 그가 삼천 번쯤 죽고 환생하길 거듭했다면 삼천 명이 동시에 튀어나와 제각각 살아가는 거죠. 세계에 깔려 있는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로는 나인 셈입니다. 나는 나에게 영향을 받고 또다른 나에게 영향을 주고 그게 얽히고설켜 점점 더 엉망인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 나는 나를 돕거나 위로하고 반대편에서 나는 나를 괴롭히거나 죽입니다.

p90 - 주은씨, 인간적이라는 게 뭔지 알아요? 설움이나 고통이나 상실이나 그딴 걸 구구절절 이해한다는 게 뭔지 알아요? 그건 가난한 인간이라는 거예요. 가난을 이해하는 건 가난한 사람뿐이에요. 말뚝을 이해하는 건 우리 같은 말뚝뿐인 거고.

m*****9 2018.03.18.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