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어렵고,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국사 책이 마르고 닳도록 외워가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지금에 와서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 중에서 재미있다는 드라마가 사극인 경우가 많아서 TV를 통해서 공부 아닌 공부를 꽤 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드라마 중간에 나래이션으로 깔리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할 때면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검색해보기까지 합니다. 보통 드라마 내에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주연급으로 매번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왕입니다.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판을 크게 키워야 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역사 자료에서도 그렇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구요. 각 왕들마다 당시대에 얽힌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고, 시행했던 정책들이 후세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해서 검색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설명 이외에 순종이 무엇을 했고 어떤 왕이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보다 순종 주변에 있었던 친일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설명만 나왔습니다. 순종의 생애와 활동사항에 대한 설명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만 나오다니, 무엇인가가 이상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박영규 님도 머리말에서 이전에 집필했던 책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순종에 대해 단 한 문장의 표현으로 끝냈었고, 더 이상 그의 행적을 묘사하기를 꺼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떤 사람이었단 말인가. 부끄러운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모두가 입에 담기를 꺼려했던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이야기가 <길 위의 황제>에 담겨져 있습니다.
![]() ![]()
<길 위의 황제>는 소설입니다.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라보려는 차가운 머리, 그리고 상상을 통해 한 인물을 재조명하려는 따뜻한 가슴이 어울어져 만들어진 박영규 님의 소설입니다. 그런데 소설이긴 하지만 기승전결의 흐름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이 꼭 기승전결의 극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도 않거니와 순종의 일생은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일생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매 순간이 위기였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계속해서 말이죠. 오히려 죽음이 그에게는 해방과 자유였습니다. 책에서도 죽음의 순간을 '편안했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순종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본이 고종을 강제로 폐위시켰고, 그 뒤를 이어 오른 황제입니다. 아니, 황제였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즉위 즉시 한일 합병이 되었고, 모든 주권은 조선총독부가 가져갔기 때문에 말뿐인 왕이었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회유와 압박을 통해 강제로 이루어진 일이었고, 사방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눈에 의해 만천하에 자신을 드러내 놓은 채 살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던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충신이든 역적이든 따지고 보면 생존이 목적이었다. 그래, 목숨 앞에서 의연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자들도 모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일 뿐이지. 약한 것이 죄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나약함이다. 나라 잃은 군주가 충성스런 신하를 원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다. 가자들은 단지 충성을 바칠 주군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주군을 찾은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다. 그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35쪽) 그렇게 순종이 나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설에서는 '생존'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순종은 어미인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사건을 경험했고, 고종과 함께 아관파천을 겪었으며, 일본인과 맺으려 했던 세자의 결혼에 반대하던 아비의 의문사를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기위해 움츠려드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종이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공민왕의 이야기를 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동생 유길에게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국엔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남은 사람이 곧 우리의 무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군함따위가 아니다. 진성한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무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기가 없다면 사람이 무기가 되면 되는 것이다. (114쪽)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 역사의 굴레를 짊어지다 끝내 잊혀져버린 한 남자.
그런 생각들이 오고가면서 순종은 도쿄를 방문합니다. 오라, 가라 한다고 한 나라의 왕이 가볍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한탄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동하는 기차와 배에서 같이 동행하게 된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로지 순종은 듣기만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대부분이 순종의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순종이 어떠한 생각을 가진 왕이였는지 알 길이 없었고, 남겨진 것이 많이 있질 않나 봅니다. 나는 그저 그들이 친일분자이기에 일본을 칭송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아득한 존재였다.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161쪽) 처음 여행을 나섰을 때 순종은 동행하는 주위의 인물들 때문에 불편해합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는 뱃멀미와 지병 때문에 고생을 합니다. 또 일본왕에게 굴욕적인 절을 올려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막상 도쿄에 도착하고 일본의 왕을 만난 뒤로는 그 모든 괴로움들이 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도쿄라는 도시를 보자마자 일본이 거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산항에서 허세를 부리며 일본인들에게 보이기 위해 갖가지 제를 올리도록 명한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도쿄를 보고서야 세상을 배우고 힘을 느끼게 됩니다.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바다를 경험했다고 하니,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 왕이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두려움, 그리고 세월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반응 뿐이라 갑갑했습니다.
적들을 안심시켜라. 비수를 품어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그런데 죽어버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기 몫이 있기 마련이네. 나는 지금 내 몫을 다하고 있는 중이네. 나라와 백성을 빼앗긴 폐왕으로서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이렇게 갇혀서 사는 것이네. 이제 왕좌는 그저 감옥일 뿐이네. 창덕궁도 감옥일 뿐이네. 내가 입은 이 화려한 옷들이 모두 죄수복이네. 아니 나의 모든 살갗이 죄다 죄수복이네. 나는 지금 감옥살이를 하는 것이네. 죄인이니까, 이렇게라도 살아서 죗값을 치르는 것이네. (235쪽) 그렇게 굴욕적인 일본 방문을 마친 순종은 돌아와서도 이렇다할 업적없이 창덕궁에서 조용히 지냅니다. 위에서 말한 그가 생각했던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생존하기. 그리고 폐왕인 자신의 죗값을 감옥같은 궁궐에서 치르기. 그런데 그것 마저도 끝까지 이행하지 못합니다. 일본이라는 큰 산은 조금식 금이 갈 것이고, 살아남은 자들로 인해 세월이 독립을 이루게 해줄 것이라는 그의 소극적인 독립운동은 죽음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그토록 유길에게 공민왕 이야기를 하면서 끝까지 살아남기를 다짐했건만, 그의 허무한 죽음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음을 통해 개인적인 자유와 해방을 맞이했다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다행이고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이완용. 이 시대를 살았다면 우리편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겠는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배우고 현재를 현명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생존을 위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소신있는 행동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비록 생존의 대상이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굴욕적인 역사가 생겨난 것이지만 말이죠. 말 장난일지도 모르지만,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모두의 입장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지금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할지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명확하게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래 인용 글은 이완용이 순종에게 했던 말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이런 말만 듣고 당시대에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의 백성이 무지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세상을 읽지 못해 백성을 무지에 가둬놓은 황실의 무능함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이 강대국의 발 아래 놓인 것은 황제가 계몽되지 못하여 과거의 인습과 미개한 학습에 연연한 탓입니다. 오늘날 이 모든 변고와 몰락은 모두 황제의 잘못된 판단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온 백성이 가난과 무지로 고통받고 있는데 황제만이 거대한 궁궐에서 사치와 향략에 젖어 지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그 황제의 위에서 내려와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십시오. 그것만이 백성에게 지은 죄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입니다. (86쪽) 소설 <길 위의 황제>에서 모두가 인간적으로 보입니다. 친일파 인물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본 사람들 모두에게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박영규 님의 소설가다운 감수성 때문에 그렇게 보여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고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나쁘게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만행과 그것 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고통을 말하는 역사적 사실을 떠나서, 소설로써 이들의 삶과 인물을 바라보는 생각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안중근을 생각하는 이토의 양아들 히로쿠니의 시선과 일본 왕 요시히토를 보고 느낀 순종의 동병상련, 그리고 조선 통감 이토와 데라우치의 인물됨 같은 것들에서 말입니다. 모쪼록 이 소설이 그를 기피하고, 그의 존재를 부끄러워했던 나 같은 이들에게 그를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머리말 중)
한편 소설은 소설이고, 역사는 역사입니다. 결국엔 살아 남은 자가 역사를 쓰고, 소설도 쓰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살아 남았어야 하는데 살아남지 못한 순종 황제가 안타깝고 원망스럽습니다. 억울하지 않으려면 살아남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역사에서 생존이 가장 큰 무기이자 방패이고, 힘이자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
|
조선의 마지막 왕을 고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조선의 마지막 왕은 순종이다 순종은 어떤 책을 찾아 봐도 나오지 않는다. 보통은 을미사변으로 끝을 맺거나, 혹은 고종이 독살당한 것이나 덕해옹주 이야기가 마지막이다. 그 당시 상황은 일제 강점기로 일본에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왕은 왕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일본의 국권침탈 야욕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던 시기의 허수아비 황제이다. 그만큼 순종의 인생은 치욕과 비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황제였지만 한 번도 황제였던 적이 없는 사람, 궁궐에 살았지만 한 번도 군림해본 적이 없는 사람, 왕이었지만 평민의 삶을 더 부러워했을 사람, 죽을 자유도 없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든 사람, 몸은 궁궐에 있었으나 마음은 늘 감옥에 갇혀 지낸 사람, 그가 바로 순종이다.
순종은 1874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이듬해 세자에 책봉됐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된 후 황태자에 책봉된다. 순종은 나이 아홉 살 때 동궁으로 밀어닥친 일본 군인들이 환관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열흘 만에 겨우 깨어나 어머니 명성황후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또한 스물다섯 살 때는 황실의 통역관으로 있던 김홍륙이 고종과 순종이 즐겨마시던 커피에 아편을 넣었다. 고종은 곧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독이 든 커피를 마셨다가 치아를 잃고 며칠간 혈변을 누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망국의 황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어릴 때부터 온몸으로 체험했던 것이다.
순종은 아버지 고종의 뒤를 위어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이미 일본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무렵이었다. 그는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도쿄를 방문해 천황을 알현할 것을 압박받는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예의를 다해 마땅한 일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인한 일종의 협박이었다. [순종 실록]의 부록에서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917년 6월 8일: 남대문역에 직접 나가서 특별열차를 타고 도쿄로 행하였다. 6월 14일: 황궁에 나아가 천황과 황후를 봉황문에서 알현하고 현소에 참배하였으며, 이어 동궁의 처소를 방문하였다.”
이 책은 비운의 황제 순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망국으로 치닫던 당시 조선사회의 풍경과 역사의 큰 회오리에 휘말려 한평생을 쓸쓸히 살았던 순종의 삶을 섬세히 그려낸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저자 박영규는 1998년 <식물도감 만드는 시간>으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는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저술하여 100만권 이상 판매 기록을 세워 역사서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키며 역사저술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이 책 속에는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명성황후, 덕혜옹주, 대원군 등 그동안 드라마나 역사서에 수없이 등장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를 통해서 이때까지 우리가 알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게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순종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순종에 대해서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능력하고 나약한 왕으로만 비춰졌던 순종의 고뇌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
|
요근래 읽은 책중 가장 슬프게, 가장 가슴아프게 읽었던 책이지 싶다. 비운의 황제 순종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종이 우리역사의 마지막 왕일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저자 박영규가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고,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순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된 배경을 이야기할때 가슴 저 한쪽이 아려왔다. 나자신도 저자와 별반 다를바 없는 생각이었고, 아니 더 무신경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일제강점기라는 치욕스런 시간을 감내하고, 언젠가는 밝은 새날이 오고, 그때 제대로 한번 조선을 부흥시켜야겠다는 포부를 나름 가지고 살았을 순종. 난 순종의 그 치욕스런 시간들보다,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임금 알기를 어디 지나가는 개처럼 대우했던 그 친일파들의 행동거지때문에 울분이 쏟아졌다. 각자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방법들이 천양지차다. 그렇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했고, 최소한 임금에 대한 신하의 도리는 다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꿔가며 어떠한 풍랑없이 살아남은 친일파들이 하늘을 우러러 너무나도 떳떳한 모습으로 자손을 낳고 또 자신들의 대를 잇게 했으며, 또 그들의 후예라는 인간들이 아무런 부끄럼 없이 살아갈수 있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우리민족은 너무 인정에 약하다. 그렇기에 그런 철면피같은 인간들이 이 나라에서 발을 딛고 얼굴을 들고 살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 그는 결코 황제가 될수 없는 치욕스런 시간대에 태어났고, 다른 사람도 아닌 할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발벗고 나선 모습을 봐야 했고, 일본인들이 어머니를 여우사냥하듯 몰아가는 시간도 봐야 했다. 우리의 국모가 그런 인간같지도 않은 인간들에게 수치스럽게 죽어야 했다는 사실이 너무 치가 떨리게 싫다.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절대 간과할수 없는 것은 결코 우리의 국력을 함부로 허무러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력이 약하면 이토록 슬픈 역사를 가질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써도, 참 순종의 그 독백은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와 함께 자주로 마시는 커피에 아편을 탄 역관때문에 목숨까지 잃을뻔했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지고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치아를 통째로 드러내고 의치를 해야 했던 그.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마신다는 내용에 있어 그의 고통이, 그의 슬픔이 전해져왔다. 죽을수 있는 선택도 누리지 못했던 순종. 과연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떠했을까? 그에게 자신의 나라가 돌아올거라는 기대를 과연 진정코 할수나 있었을까? 일본인은 참 다양하게도 그를 억압했고, 핍박했고, 그가 누릴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마저도 거둬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우리를 정복하려 했고, 우리의 색깔과 민족성까지 말살시키려 했던 파렴치한 사무라이들이 아니었나 싶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쳤던 이승복 소년이 있었다면 정말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던 그때 그당시의 숱한 인물들이 싫다고 외치고 싶다. 그렇지만 어찌보면 누워 침뱉기 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의 힘이 약했기에 그런 치욕스런 역사의 한페이지를 가질수 밖에 없었기에.
정말 이 책은 역사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순종을 기억하는 의미로 한번쯤 읽어봤음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든다. 무능력하고 나약한 왕이라 기억되는, 역사속에서도 단 몇줄로 집약되는 순종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으로서, 이름뿐인 황제로서의 고뇌와 아픔을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 그는 죽어서도 아마 편치 않았을 것 같다.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것 까지는 인내할수 있겠지만, 자신이 그당시 꿈꿨던 이상과 그럴수 밖에 없었던 처지의 고충과 자신이 흘려야 했던 피눈물을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참 슬프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
|
길 위의 황제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 명성황후나 대원군, 고종에 비해 그동안 순종임금에 대해서는 많이 거론되지 않아왔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이 번에 [길 위의 황제]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 순종에 대해 새삼 공부가 되는 시간이었다. 나라가 힘을 잃고, 일제에 의해 합병이 된 이후 우리 백성은 광복의 순간까지 암담한 세월을 살아야 했다. 젊은 청년들은 군대에 끌려가야 했고, 젊은 처자들은 그들의 성적 노리개인 위안부가 되어야 했다. 쇠붙이부터, 곡식까지 모두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그저 목숨만 부지해야 했던, 살아있어도 살아있었다 말할 수 없는 시대였다.
나라를 잃은 힘없는 나라의 백성의 삶이 이러할진대, 나라를 잃은 허수아비와 같은 황제.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이전 일제 강점기의 군주인 고종과 순종. 특히 마지막 황제 순종은 자신의 후손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힘없는 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글 속에서 그가 말하듯이 평민으로 살고 싶어도 평민으로도 살 수 없는 처지였고,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는 처지였다. 뻔히 자신이 다스려야 할 나라가, 백성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던 그의 마음은 늘 가위눌리고, 나쁜 악몽에 시달린다.
[길 위의 황제]는 순종이 1917년 6월 일왕인 '요시히토' 왕을 알현하기 위한 도쿄 방문 일정으로 글이 시작된다.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이 다스려야 할 나라를 짓밟은 나라를 직접 찾아가 그 나라의 왕앞에 나아가 속국으로 보살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함을 표해야하는 굴욕적인 일이 도쿄 방문의 주된 이유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스리게 된 조선의 황제에게 자신들을 찾아 알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누차 지시했고, 결국 수많은 날을 고민한 끝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정을 할 수 없었던 처절한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세상의 어떤 무기보다 힘 있는 무기는 바로 생명이다. 그 어떤 것보다 끈질긴 것이 바로 목숨이다. 나의 목숨이 다하면 너의 목숨이 있고, 너의 목숨이 다하면 은이의 목숨이 있다. 은이의 목숨이 다하면 은이의 자식에게 희망을 걸 수 있다. 그러니 살아남아야 한다. 목숨을 지켜야 한다.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똑똑히 두 눈 부릅뜨고 적들에게 너의 숨소리를 들려줘라.'
고종은 아들 척과 은에게 살아있어야 함을 늘 강조한다. 그들에게 우리가 아직 숨쉬고 있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 그들이 만들어 둔 일정과 그들이 써준 일왕을 알현할 때 낭독할 글을 읽어내면서, 무수하게 많은 밤을 앓아 누워야 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 빗소리에 감춰가며 왕은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야 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황제, 왕실이 아닌 길 위에서의 황제, 나라가 없지만 아직 왕의 자리에서 비참함을 버겁게 이겨내며, 살아 숨쉴 수 밖에 없었던 마지막 왕의 모습이었다.
'성상 폐하, 신 이척 지금에서야 용안을 뵙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알현하여 신하의 예를 갖춰야 했지만 육신에 숙병이 있어 먼 길을 나서지 못한 까닭에 본의 아니게 불충을 저질렀나이다. ... 이제 감히 오늘 황국에서 천황 폐하의 존안을 뵙고, 신 이척은 작은 가르침이라도 얻고자 하오니, 부디 성가시다 마시고 가르쳐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다시 한 번 신 이척 성상 폐하의 융숭한 대접에 송구스럽고 감격스런 마음 전해 올리며, 삼가 감사를 드립니다.' ( 185 쪽 ) |
|
박영규 님의 <길 위의 황제>입니다.
박영규 님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등의 역사서로 유명한 작가분이신데요..
역사서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키셨고 떄로는 역사소설로 펴내시는 작가분이십니다.
조선 역사서 가장 비운한 임금이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숙부에게 왕위를 뺴앗기고 유배를 단종임금,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된 후 청나라의 침입으로 삼전도에서 굴욕을 맛 본 후
자신의 아들을 의심해 죽이게 만든 인조임금도 있을테고 한데요.
순종황제 역시도 이에 못지 않게 가장 비운한 임금 중의 한 분이 아닐까 합니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 일본과 친일파의 압력으로 퇴위하게 된 고종황제의 뒤를 이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순종황제.
그 후 3년이 흐른 1910년. 대한제국과 일본간의 한일합병조약으로 인해 일왕에 의해 이왕(李王)으로 봉해져 결국 황제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순종황제.
<길 위의 황제>는 그런 순종황제가 1917년 순종 황제의 도쿄 방문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과 더불어 흥성대원군과 명성황후, 그리고 고종황제까지 치열한 세력 다툼을 거치면서 고종 황제때의
많은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진 것에 비해 순종황제의 이야기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일제에 의해 600년이란 시간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조선이란 나라가 망하는 순간의 황제였던 탓에
그동안 대중에게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던, 아니 오히려 숨기고 싶었던 역사의 한 중심에 서있던 비운의 임금입니다.
<길 위의 황제>, 이 작품은 순종황제의 도쿄 방문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지만
단순히 도쿄 방문기에 그치지 않고 순종황제의 어린 시절부터 봐와야했던 할아버지 대원군과 어머니 명성황후간의 피비린내나는 암투와
그런 암투 속에서 일본의 낭인 손에 어머니를 잃어야만 했던 잔인한 현실과
끊임없는 친일파 신하들의 도를 넘는 협박과 잠시도 쉬지않는 감시의 눈초리 속에서
순종황제가 겪어야했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이런 암울한 상황속에서도 황제인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고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길 위의 황제>는 대체적으로 현실과 몽상을 오가는 순종황제를 그리고 있습니다.
현실부분에서는 대체적으로 일본의 통감이였던 이토 히로부미, 소네 아라스케,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이토 마코토와
친일파 신하 이완용, 윤덕영, 민병석의 만행과 그런 만행 속에서의 순종 황제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으로 그리고 있는 반면..
몽상부분에서는 가위에 눌려 악몽을 꾸는 순종황제를 그려냅니다.
이런 꿈 속에서 순종황제는 할아버지 대원군도 만나고 어머니 명성황후도 만나고
그리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토와 이토를 저격한 애국청년 안중근까지 다양한 인물을 만나면서 자신의 고통과 사명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요. 세심하게 표현하기 힘든 순종황제의 내적인 면을 잘 그려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길 위의 황제>는 전체적인 내용을 보자면 유쾌한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순종이 일왕 요시히토에게 무릎을 꿇기 위해 도쿄를 방문하게 된 이야기가 기본 스토리니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외면해오던 비운의 순종 황제를 그려냈다는 자체만으로도 읽어봐야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
|
요사이 언론 등을 통해 정부가 우리나라가 목에 힘을 주고 다녀도 좋다고 자화자찬 광고를 많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역사 속의 중심국이였던 시절이 있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일제 식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40년 세월을 넘긴지도 기나긴 우리 역사 속에 보면 얼마되지 않았다. 그 끝자락의 역사에 대해 많이 잊혀졌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게 온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말처럼 순종이 일본천황을 알현하게 민든 시대상황은 숨기고 싶은 우리의 과거이고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서문의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관심이 가서 이 책을 사보았다.
이래저래 바쁜 일상으로 인한 약간의 난독현상이랄까, 책을 읽으면 자꾸 스토리를 놓치고, 제대로 끝까지 읽지 못하는 나의 호흡 짧은 독서능력에도 3,4일에 걸쳐 무난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별로 군더더기없는 문장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순종의 내면의 감정을 따라 역사적인 사건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어 괜찮았다.
|
|
역사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순종에 대해서는 어떤 자료도 찾아본 적이 없었다.. 비단.. 일부러 찾아보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누구도 쓰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초등학교 시절.. 내 역사 호기심의 정점을 찍어주었었던 한권으로 읽는 실록시리즈..
순종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망국의 왕이다.. 일본으로 나라를 넘겨주는데 싸인을 한 왕이 바로 순종이다.. 그는 약하고 약한 나라를 억지로 넘겨받아.. 절대로 하고 싶었을리 없는 싸인을 강제로 해야만했다..
백성들은 그저 나라가 빼앗겼다는 데에 대해서 격분하고 원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왕이란 자리에 있는 그에게는.. 한없는 치욕이요, 죄스러움이다.. 그리고 꼭 다시 되찾아야만 하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맘대로 죽을 수 조차도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꼭두각시로만 살아야 했던 왕..
순종의 독백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한글자 한글자를 읽을 때마다 설움이 복받쳐오른다..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큰소리 한번 내지를 수 없는 왕.. 그저 꼭두각시처럼 신하들이 시키는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왕.. 치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치욕의 길에 올라야만 하는 왕.. 결국엔 자신이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 아무것도 없는 것 마저도 할 수 없는 왕.. 주변의 모두를 미워하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왕.. 자신의 가족과 살가운 정 한번 나눠보지 못한 왕.. 자신의 아이를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왕.. 공민왕을 새기며 참고 견뎌 언젠가는 나라를 되찾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는 왕.. 그러면서도 진정으로 원하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는 왕.. 왕의 자리 따위 언제든 벗어 던질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왕.. 고독하고 참담하며 항상 불안하기만 한 왕의 자리.. 죽어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찾게되는 그런 왕..
|
|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순종이 아닌 고종에서 이미 '마지막'이란 말이 더 와닿는다. 고종 때 이미 국운은 기울었고, 망국의 '황제'란 칭호는 그저 허울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순종이 제위하던 때의 역사는 학교에서나 밖에서도 제대로 배워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그를 알고자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런 순종이 몸소 도쿄로 건너 가 일왕 요시히토를 알현했다는 사실은 이 책 <길 위의 황제>로 처음 알게 되었다. 역시나 그는 백성들에게 굴욕감만을 안겨준 나약한 왕이었단 말인가! <길 위의 황제>는 과감히 순종의 입을 빌려 순종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도쿄로 갔으며, 그가 목숨을 부지하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암담한 기억과 슬픔, 자괴감 등을 마치 그의 일기를 엿보는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헤이그 특사 파견의 책임을 물어 고종은 황제의 자리를 그의 차남 순종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황제라 불리지만 그가 황제로서 행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신하된 자들은 그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고, 순종의 주변에는 늘 감시의 눈초리가 따라다녔다. 조선 왕실의 황태자이자 순종의 이복동생인 유길은 어린 나이에 어미와 생이별을 하고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고 덕혜의 운명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본의 선진 문물과 학문을 가르친다는 명목하에 왕실의 가족을 인질로 잡은 일본은 사실상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조선 황제의 목숨을 살려둔 이유는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전시 행정의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
<길 위의 황제>에서 순종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와 일본의 술수에 어쩔 수 없이 도쿄 방문길에 오른다. 기차에 몸을 싣고 부산을 거쳐 일본의 군함을 타고 일본 본토에 들어가 천황 앞에 절을 한다. 그리고 곤도가 작성한 일왕와 황후에게 바치는 글을 읽어내려가는 순종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저절로 울분이 치솟하았지만 순종은 의외로 무감하고 담담한 모습이었다. 승자의 미소를 만면에 짓고 있으리라 상상했던 일왕 요시히토의 얼굴에서 그는 자신과 비슷한 폐주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을까? 씁쓸함을 뒤로하고 그는 요시히토에게 유길을 다시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애쓰지만 그 역시 쉽지가 않았다. 일본에서 학문을 닦고 군사 훈련을 받는 유길이 혹여 일본색으로 물드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마음과 함께 그런 유길에게 조선의 독립과 대한제국 황실의 부흥이라는 크나큰 과업을 물려주어야 함에 순종은 몹시 힘들어 했다.
어린시절에는 할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어머니 명성황후의 대립과 갈등으로 공포에 떨어야 했고, 결국 그 여파로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어머니의 죽음을 견뎌야 했으며, 그 자신 역시 다량의 아편이 든 커피로 독살될 뻔하는 등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모진 삶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일본이 망하고 대한제국이 다시 일어서는 날을 지켜보리라 그는 다짐한다. 그의 아버지 고종이 그에게 말했듯이 그 또한 동생 유길에게 말한다.
"...꼭 힘 있는 황제가 되거라. ...(중략)... 적들을 섬기고, 적들을 배우고, 적들을 안심시켜라. 그리고 비수를 품어라." (p.26)
산다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던 그에게 고종이 공민왕의 이야기를 들어 전한 이 말은 순종의 마지막 황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서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임을 반복하며 결국 그 말이 사실임을 지금의 대한민국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파란이 많았던 조선의 근대사를 다른 누구도 아닌 순종의 기억을 통해 재조명 하였다는 점이 매우 신선했다. 그 중에서도 민족의 독립투사로 칭송받는 안중근에 대한 민중과 대한제국의 황실, 그리고 일본이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이 특히 그러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가능한 듯 이 책의 결말은 상상조차 쉽지 않은 용서와 화해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는 그러한 삶을 살다 갈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이해해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본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으나, 책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담은 진솔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라는 부제가 붙여진 소설을 읽었다. 순종의 삶을 되살려 쓴 역사소설이다.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간에 담겨진 조선 왕실의 내면의 모습을 엿볼수 있는 길이며 감춰졌던 순종의 모습을 다시금 눈 앞에서 느끼고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작가 또한 내가 좋아하는 박영규 작가였으니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우리는 흔히 순종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그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숨고 싶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맙게 생각했던 것이 그를 다시금 눈으로 읽어가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숨이 절로 나오면서도 다행스럽게 내가 알고 있는 순종의 모습이 아니어서 부끄럽거나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행간에 담겨진 그에게도 백성의 숨소리가 들리고 흐느끼고 있는 백성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세상을 넓게 살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하나 자신을 생각해 주지 않는 현실이 그에게는 모든 것들이 낯설게만 느껴졌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그도 곧 익숙해졌음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느 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증거이며 조선과 다른 일본은 그런 면에서 자유롭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이 모든 문명의 발달은 여러 해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들이지만 그는 딴청을 부리지 않았고 모든 것을 배우고 백성에게 베풀고자 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조선의 왕이었지만 그를 얕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주변에는 어떻게든 자신을 밟고 일어서서 자신의 힘을 능가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그를 더욱 더 움추리게 만들었고 그저 궁금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평범하게 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써 이러한 마음을 감추는데 도가 텄던 것이 당연한 일이고 또한 그도 그런 표정으로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
|
몇 주 전에 친구와 경복궁 근처에 갔다가 고궁박물관에 들러서, 시대별 왕조의 계보며 유물들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때 조선 시대의 마지막과 짧은 대한제국 시대의 사진과 유물을 보면서, 지금으로부터 100년밖에 안 되었는데도 벌써 아주 오래된 과거처럼 아득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동생에게서 꿈을 삼으로써 후일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의 아내가 되는 문희의 이야기나, 계백과 관창의 일화를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세습과 봉건 왕조가 계속되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외세에게 굴복하게 된 고종과 순종의 일생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라는 부제를 단 소설 <길 위의 황제> (2011, 박영규 지음, 살림 펴냄)이다. '태정태세문단세'로 외우는 조선왕조의 마지막이면서 지금껏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삶을 마감했는지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고종까지만 해도 그 긴박한 상황 때문에 국사 과목의 근대사 시간에 꽤 배웠는데, 고종 대에서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상황이 확정되고 나니 순종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몰락의 시간만 허락되었던 것이다.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를 지은 저자는 <순종 실록>의 부록에 실린 1917년 6월의 도쿄 방문기 네 줄의 기록을 바탕으로 <길 위의 황제>의 순종을 살아냈다고 한다. 그 기록은 참으로 짧다.
<길 위의 황제>는 고종이 일본의 협박으로 강제 퇴위하고 덕수궁에 유폐된 후 이름뿐인 황제로 남은 순종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벌써 10년째 제위에 올라 있지만 궁궐 안에는 일본 군인들의 군홧소리가 요란하고, 왕으로 강등된 순종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게다가 일본인들에게 전리품으로 전시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삼배구고두(三跪九叩頭)의 치욕을 당한 인조는 전쟁이라도 치를 힘이 있었으나, 순종은 할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게 삶의 위협을 받고 을미사변으로 어머니를 잃고 강제 퇴위로 아버지를 잃고 우월한 군대로 쳐들어온 일본에게 대항할 힘도 없어서 더 슬프고 외롭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망국의 황제가 적국으로 끌려가 신하의 예를 다하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웠으랴. 저자는 순종의 절절한 마음을 묘사함으로써, 단지 국사책의 일부분으로 남은 한 남성의 쓸쓸한 삶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 외로움과 무력감 때문에 책을 덮는 내 손마저 너무나도 무겁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