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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디트리치의 『환자 H.M.』은
여러 방면에서 수잰 코킨의 루크 디트리치의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과 비교된다. (『환자 H.M.』에서는 수전 코킨이라고 번역했다. 영어는 Suzanne Corkin. H.M.도 『환자 H.M.』에서는 헨리 몰래슨으로,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에서는 헨리 몰레이슨으로 썼다. 영어로는 Henry Molaison이다.)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를 읽고 쓴 리뷰는 http://blog.yes24.com/document/8267158. 제목을 <기억을
잃고 기억에 남다>라고 했었는데, H.M.에 대해 좀
낭만적으로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전 코킨이 H.M.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이 연구된 기억상실증 환자를 평생 동안 연구한 과학자로서,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에서는 주로 H.M.과 그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알아낸 ‘기억’에 관한 연구가 중심이다. 반면 루크 디트리치의 『환자 H.M.』는 기자답게 H.M.과 그의 기억을 앗아간 수술과 관련한 인물과
사건들에 좀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책 모두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수전 코킨은 연구자로서 자신을 이야기하고, 루크 디트리치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이
좀더 과학교양도서 쪽이라면, 『환자 H.M.』은 탐사보도기사, 혹은 회고문 같은 느낌이다(그래도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과학’쪽에 넣을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인지 『환자 H.M.』은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보다 감상적이면서도 날카롭다. ‘기억’의 과학적 연구에
관해서도 쓰고 있지만, 그 기억을 둘러싼 사람들의 음울한 기억이 더 인상 깊을 수 밖에 없다.
읽기도 전에, 그리고 읽으면서도 흥미롭게
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루크 디트리치라는 사람의 가계도이다. 바로
헨리 몰래슨을 수술하여 해마를 제거한 의사, 헨리 워드 비처 스코빌이 바로 그의 외할아버지다. 뇌엽절세술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무지막지한 수술을 통해 의학의 진보를
꾀하고자 했던, 내지는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의사가 바로 그의 외할아버지인 것이다.
거기에 하나의 중요한 인관 관계가 끼어든다. 바로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의 저자이자 H.M.을
가장 많이 연구한 수전 코킨. H.M.(그녀는 한사코 그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으니까)을 거의 소유하다시피 하면서 연구한 MIT의 연구자가 루크 디트리치의
엄마와 학창 시절 절친이라는 것이다. 바로 옆집에 살면서 실로 연결된 전화로 서로 꿈과 고민을 나누던
사이였다(그러니까 H.M.을 수술한 헨리 스코빌과도, 옆집 아저씨로, 친구의 아빠로 잘 알았을 텐데, 그 이야기가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에 나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와 있어도 깊게는 다루지 않았을 것 같다).
이 묘한 관계가 이 작가로 하여금 H.M.에
관한 기록을 모으고, 그를 둘러싼 의사, 과학자들의 관계를
추적하게끔 하였다. 이야기는 사실 조금 음울하다. 기억을
잃고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했던 H.M.의 운명도 음울하며,
그의 외할아버지도 그리 밝아 보이진 않는다. 더욱이 한순간 정신을 놓아버렸고, 그로 인해 지금 기준으로는 매우 비인간적인 치료를 받았던(당시는
매우 진보적인 치료 방법이라 하더라도) 외할머니도 그렇다. 거기에 H.M.의 뇌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다툼도 음울하다. 이 책이 나온
이후, 이 책을 둘러싼 논란도 어찌 보면 음울한 것이다(이
책은 어쩔 수 없이 MIT의 수전 코킨에 대해 부정적으로 쓸 수 밖에 없었고, 그에 대해 MIT 측에서 강력하게 항의를 한 모양이다. 수전 코킨이 얼마 전 사망했다는 걸 이 책의 주를 통해서 알았다.).
그런데 그래서 이 책은 더욱 흥미롭다. 어쩌면
끝까지 완벽하게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을 지 모르는 ‘기억’이라는
현상을 밝혀내기 위한 여정에서 매우 진취적이지만 비인간적인 행위가 있었고, 과학적 업적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나고, 그 가운데 밝히고 싶지 않은 가족의 치부가 드러나고. 어쩌면 고백 같기도 하고, 폭로 같기도 한데, 혀를 끌끌 차면서, 화들짝 놀라면서, 한숨을 쉬면서, 감탄을 하면서, 걱정을
하면서 읽게 된다.
이제 환자 H.M. 헨리 몰래슨과 그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이들은 거의 세상에 없다. 헨리 몰래슨은 평생 동안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살다
요양원에서 삶을 마쳤고, 그를 수술한 스코빌 박사는 두번째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다 사고를 세상을 떠났다. 그와 함께 새로운 수술법을 도입하고 널리 알렸던 이들도 진작에 하직했다. 그를
거의 소유하다시피 했던 수전 코킨도 세상에 없다. 다만 H.M.에
관해서 맨 처음 연구를 시작했고, 스코빌 박사와 H.M.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했던 브랜다 밀러만 아직 살아 있다. 그녀가 수전 코킨을 H.M. 연구에 끌어들이고, 자신은 그 연구에서 손을 뗀 것을 생각하면
비교되기도 한다(사실 난, 이 책에서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된
수전 코킨의 연구에 관한 욕망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들이 살아 있건,
이미 세상을 떠났건 그들에게서 남는 것은, 남은 사람의 기억에서다. 그게 기록에 의한 기억이든, 뇌 속의 기억이든. 이 책은 바로 그런 기억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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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과거의 기록들을 이용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주인공은 환자 H.M. 헨리 몰리슨이다. 그는 어렸을 때 자전거와 부딪히며 뇌에 손상을 입고 간질 증상을 얻게 된다. 그 증상은 약물로도 잡히지 않고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면서 저자의 외할아버지인 스코빌에게 뇌 절제술을 받게 된다. 책에서 언급된 바로는 수술 과정에서 뇌 외관에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질 않았음에도 스코빌은 해마 부분을 비롯한 뇌 일부의 제거를 강행 했다고 한다. 그 수술을 받고난 이후 헨리는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도 완벽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흔히 알려진 마루타. 이 책에서는 2차 대전 당시에 나치가 행한 독일판 마루타의 사례가 언급된다. 실험의 명목은 항상 그렇듯 전쟁에서 경험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실험들은 의사가 뿐만이 아닌 그 누가 보더라도 비윤리적인 실험이었다. 책은 그것을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그로 인해서 당시 실험에 가담했던 의사들은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내용도 언급된다. 이 책의 중반부까지는 스코빌을 필두로 한 내용이 전개된다. 그의 성장 과정과 그의 와이프이자 저자의 외할머니가 정신병을 겪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당시의 신경외과 사회의 모습들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비윤리적인 실험, 그 실험에는 훗날 정신병원에서 행동교정을 위해 쓰이는 방법의 모체가 되는 것도 있다. 그 실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여러가지 치료법들, 이 책에서 보여지는 그 치료법들은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느껴졌다.(그마저도 굉장히 불확실하고 고문같은 방법이었지만 말이다)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채 뇌를 마구잡이로 잘라대는 것보다는 말이다. 스코빌의 이야기가 지나면 헨리를 대상으로 한 정신분석 실험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반복된다. 왜냐하면 헨리가 뇌 절제술을 받고난 이후에는 새로 경험하는 것들을 자신의 기억으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험을 받는 그 순간에도 잠깐의 텀만 있다면 바로 직전의 일도 까먹는게 바로 헨리 몰리슨의 상태였다. 중간 중간 헨리 몰리슨의 몇몇 특별한 재능이 드러나는 연구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바로 이후 등장하는 이야기 때문에 연구 자체의 신뢰 자체가 무너진다. 내가 이 책의 후반부를 읽으면서 굉장히 열받았던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스코빌이 자신의 아내가 정신병을 겪는다는 이유로 뇌 절제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언급 됐다는 점과 다른 한가지는 헨리 몰리슨을 독점하다시피 한 수전이 실험 데이터를 본인이 공개하고 싶은 것들만 남긴채 전부 없애버렸다는 점이었다. 이는 책에 대충 이유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헨리 사후에 UCSD의 애니스 박사가 헨리의 뇌를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전두엽 부분의 인공적 손상을 발견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기존의 정신분석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해짐을 지적할 수밖에 없어졌다. 이미 뇌 소유권을 두고 수전과 애니스가 다툰 상태였다. 헨리가 죽기 전까지 독과점하던 수전은 아마도 이런 애니스의 지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과학자가 이런 태도를 가졌다는 점에서 정말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이 책은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굉장히 찌질한 욕망부터 광적인 욕망까지 말이다. 스코빌의 광적인 욕망을 굳이 해몽하자면 공리주의에 기반했다고 할 수 있다. 신경과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헨리를 독과점 하고싶은 수전의 찌질한 욕망도 비슷한 실험이 많았다는 변명을 댈 수 있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이 욕망들 사이에서 헨리는 그저 서로 '내가' 밟고 올라가야하는 사다리였다는 것이다. 헨리로 인해 해소한 본인들의 욕망의 크기에 비하면 헨리에게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러니와 측은함. 그것이 내가 느낀 감정이다. 비윤리적 실험에서 아이러니를, 헨리가 받지 못한 충분한 대가 때문이 아니라 인색함을 정당화 시킨 그 많은 과학자들에게서 측은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