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0.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기억은 빛나고, 우리는 멀어진다
"기억은 빛나고, 우리는 멀어진다" 내용보기
내가 이 위대한 작품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기억이라는 것이 파베세 자신에게 이토록 아름다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게 된다. 그의 문장은 건조하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기교를 덜어낸 정서 그 자체로 마음을 두드리기에 충분하다.그러나 그 아름다운 기억이 오히려 상실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슬퍼지기도 한다. 기억은 우리를 지탱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기억은 빛나고, 우리는 멀어진다" 내용보기

내가 이 위대한 작품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기억이라는 것이 파베세 자신에게 이토록 아름다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게 된다. 그의 문장은 건조하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기교를 덜어낸 정서 그 자체로 마음을 두드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기억이 오히려 상실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슬퍼지기도 한다. 기억은 우리를 지탱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더 이상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음을 증명한다. 붙들수록 선명해지고, 선명해질수록 멀어지는 것. 이 소설은 바로 그 아이러니 위에 서 있다.

이 작품에서 달과 불, 언덕과 흙, 포도밭 같은 자연의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주인공의 기억을 불러내는 매개이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대신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대신,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풍경 묘사를 통해 자신의 기억에 충실한다. 그 결과 문장은 서정으로 스며들고, 은유는 과장되지 않은 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고향을 떠나 성공한 한 남자의 귀향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돌아옴의 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공간으로는 되돌아오지만, 시간 속의 자신에게는 결코 닿지 못한다. 마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미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고, 사람들은 남아 있지만 그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이 놓여 있다. 달은 예전처럼 떠오르지만, 그 달을 바라보던 마음은 더 이상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소설의 배경은 전쟁 이후의 북부 이탈리아 농촌으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균열이 깊이 스며든 공간이다. 사람들은 다시 밭을 일구고 계절은 어김없이 반복되지만, 그 일상 아래에는 쉽게 봉합되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전쟁 이후의 침묵, 말해지지 않은 상처, 서로 다른 관념이 겹쳐지지 못한 채 흩어져 있는 마을의 정적. 그 정적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깊은 목소리다. 파베세는 그 침묵을 설명하지 않고, 다만 인물들의 짧은 대화와 멈춰 선 시선, 달빛 아래 드리운 풍경 속에 스며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거운 공기를 따라 서사보다 시간의 깊이를 체감하게 된다.

파베세 본인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이 소설은 감정으로 치닫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달라진 풍경 속에서 우리는 그의 고향을 함께 걷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실제의 장소라기보다, 그 위에 덧씌워진 기억의 빛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빛은 이미 과거로 남아 다시는 손에 쥘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추억한다. 아마도 인간이란,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기억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아름답기에 더욱 슬프다. 달은 여전히 떠 있고 누군가는 또다시 불을 지피겠지만, 지나간 자신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이토록 담담하고도 묵묵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을 오래도록 위대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소설 속 여성성에 대한 표현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시대적 배경과 작가 파베세가 지닌 여성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남성 화자의 시선 자체가 전후 농촌 남성성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다. 단순한 성적 편견이라기보다, 그 시대 남성 심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처럼 읽힌다. 그 불편함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이 소설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것이 고전이 지닌 복합적인 힘일 것이다.

#달과불 #체사레파베세 #소설추천 #이탈리아문학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s****7 2026.02.2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조금은 낯선 작가이지만
"조금은 낯선 작가이지만" 내용보기
다른 여타의 거장과는 달리 저에게 있어 체사레 파베세라는 인물은 자주 들어본 이름은 아니지만,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가 어떤 점을 일생에서 특히 탐구하고 탐독했는지 궁금하여 가장 대표작이라 불리는 '달과 불'을 선택했습니다.
"조금은 낯선 작가이지만" 내용보기

다른 여타의 거장과는 달리 저에게 있어 체사레 파베세라는 인물은 자주 들어본 이름은 아니지만,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가 어떤 점을 일생에서 특히 탐구하고 탐독했는지 궁금하여 가장 대표작이라 불리는 '달과 불'을 선택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e 2026.09.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