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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동네 익선동, 뜨거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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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회가 닿아 익선동 일대를 걸었다. 책이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피맛골 등의 이야기를 접하기는 했지만, 익선동이라는 지명은 유독 낯설게 느껴지던 터였다. 한 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극장들은 이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넘치는 유동인구 중 얼마나 극장 안으로 발을 디딜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화려함보다는 투박함이 서려 있던 뒷골목이 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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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회가 닿아 익선동 일대를 걸었다. 책이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피맛골 등의 이야기를 접하기는 했지만, 익선동이라는 지명은 유독 낯설게 느껴지던 터였다. 한 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극장들은 이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넘치는 유동인구 중 얼마나 극장 안으로 발을 디딜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화려함보다는 투박함이 서려 있던 뒷골목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종의 선술집 분위기가 물씬 풍겼는데, 바로 옆으로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법한 수제맥주, 파스타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쪽방촌이 바로 옆 골목에서 펼쳐져 이질적이었다. 거기에 요정문화까지. 대체 이 정체성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지, 내 표정에선 절로 난감함이 피어올랐다.

 

딱 한 번의 방문만으로 해당 지역을 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경험은 무서운 것이었다. <익선동 이야기라는 책을 읽으며 적잖은 부분에서 나는 반가움을 표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익선동이라는 지역 자체가 그리 넓지가 않아 가능했던 일 같다. 정확히는 익선동과 그 인근의 낙원동이 이 책에서 주로 다뤄졌다. 이 일대는 과거 서울이 지금보다 훨씬 비좁았을 때에도 서울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예로부터 서울로 일컬어진 지역. 익선동의 문화는 곧 서울의 문화였다.

허리우드 극장, 악기상가, 파고다 극장. 지금도 서울 한복판이기는 하지만 이 일대의 유흥 문화는 뿌리가 깊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의 꽃피움에는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의 저명인사들의 공(?)도 컸다. 호텔로 변하고야 만 오진암이지만 지금도 그 앞에는 그곳에서 벌어진 역사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걸어 두었다. 요정을 드나들던 직업여성(?)들로 인해 생겨났을 한복집 마네킹들은 여느 곳에서는 보기 힘든 화려한 포즈를 자랑해댔다. 심지어 이곳에선 중국집마저도 24시간 운영이다. 아마 그 시절엔 이곳보다 더 활발한 장소를 찾기란 힘들었지 싶다.

하지만 익선동이 마냥 유흥의 공간이었던 건 아니었다. 저자는 적잖은 부분을 정세권이라는 인물에 할애했다. 그냥 언급하자면 부동산업 종사자 즈음이 될 법도 한데, 저자는 굳이 한국 최초의 디벨로퍼라는 수식어를 그의 이름 앞에 붙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찬사에 나 또한 동조하게 됐다. 1888년 태어난 그의 생은 적잖은 부분 일제 강점기와 겹쳐있다. 그는 한옥 단지를 만들었는데, 좁은 필지에 되도록 많은 가구의 사람을 들이기 위해 그는 전형적인 형태의 한옥을 탈피해 집을 지었다. 일본식 적산 가옥에 투자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리 하지 않았다. 집 없이 유랑하는 조선인들이 제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한옥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 오늘날 익선동 한옥 단지가 조성될 수 있었다. 그는 조선물산장려운동에도 적잖이 관여했다. 그가 힘을 쏟아 붓는 동안 운동은 활기를 띠었다. 일제의 눈에 그런 그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적잖은 재산을 상실했으며 투옥되는 등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상당했다. 그런데 정세권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크게 아쉬움을 표했다. 역사가 올곧게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울분도 일부 섞여 있는 듯했다.

책은 자유분방했다. 심오한 역사를 다루면서도 마냥 무겁지 않았다. 왠지 나 또한 익선동 뒷골목을 저자와 함께 오가는 것만 같은 착각에 때때로 빠져들었다. 새로이 생겨난 음식점까지 모조리 다루진 않았다. 그런 가게들은 어차피 임대료 등을 감당 못하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가장 한국스러운 무언가만큼은 빼먹지 않으려는 욕심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기준에서 선택 받은 음식점들은 하나같이 저렴했다. 익선동이 서민 동네임을 보여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린 후 기울이는 술잔, 뒤늦게 먹는 국밥 한 그릇. 2500, 3천원이라는 가격은 좀체 믿을 수가 없었다. 모두의 얇은 주머니를 향한 배려 같아서 괜실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익선동은 그런 동네였다.

일방적이었던 김유정의 박녹주를 향한 사랑 이야기까지.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조만간 잊혀졌지 싶은 많은 이야기들이 책에 수록돼 있었다. 기록을 뒤로 한 채 저자는 걸음을 북촌 일대로 옮겼다. 왠지 부지런히 그의 뒤를 좇아야만 할 것 같다

이달의 사락 q*****2 2018.11.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