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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에 대한 번역은 당시 문화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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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개인, 근대, 존재, 권리, 자유.. 이런 단어들을 듣거나 말할 때, 우리는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이미 그 뜻을 알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다 한자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어로 society, individual, modern, being, right, liberty 등을 번역할 때도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영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를 비록 우리가 그곳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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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개인, 근대, 존재, 권리, 자유.. 이런 단어들을 듣거나 말할 때, 우리는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이미 그 뜻을 알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다 한자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어로 society, individual, modern, being, right, liberty 등을 번역할 때도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영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를 비록 우리가 그곳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이 단어를 접하고 그것을 마땅한 우리말로 번역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서 예로 든 단어들은 일상어와 격리된 다른 세계의 단어들이다. 우리들이 집이나, 친구들과 얘기 할 때는 잘 쓰지 않는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 단어들은 학문과 사상의 기본용어 들이다. 학문과 사상의 기본용어들이 일상어와 격리되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처음 들어올 때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쓰는 번역어들의 대부분은 중국이나 일본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여왔다. 그들은 맨 처음 이들 언어를 어떻게 번역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되게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들은 그들이 번역해 놓은 번역어를 보고 곧바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번역에 대한 심각한, 혹은 진지한 성찰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야나부 아키라는 일본 학계에서 번역어와 번역문화 연구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 한다. 그는 동양에서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학문과 사상의 기본용어가 어떻게 일본어로 번역되었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정착되었는지를 밝히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10개의 단어가 근대 일본에서 어떻게 새로운 언어로 번역되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그가 책에서 설명하는 열 개의 단어 중, 사회(社會), 개인(個人), 근대(近代), (), 연애(戀愛), 존재(存在)는 에도 막부시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에 걸쳐 번역을 위해 만든 신조어라고 한다. 즉 그 당시에 일본에서는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반면 자연(自然), 권리(權利), 자유(自由) 그리고 3인칭대명사 그()/그녀(彼女)는 원래 일본에서 일상어로 쓰였지만, 나중에 번역어로써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한자어들인 이 단어들은 대부분 서구의 언어가 일본에서 번역 되고, 정착된 것을 우리는 그대로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들 단어들이 번역되어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외래어의 번역이나, 이미 우리말 속에 범람하여 무분별하게 쓰이는 외래어를 적당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라고 번역된 society가 처음 일본에 소개되었을 대, 일본에는 적당한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society에 대응할 만한 현실이 일본에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 최초의 영일사전에는 여반(반려)이나 소반(상반)으로 소개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같이 좁은 범위의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동료, 교제, 일치로 번역되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메이지 초기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나, 그 모임의 이름에 社자를 붙이는 것이 유행했고(신문사), 그때까지 각각 다른 뜻으로 쓰이던 社와 會를 조합하여 사회라는 단어를 새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회에는 본래의 사의 어감도, 회의 어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단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면 자신은 정확한 뜻을 모르지만, 그 단어의 뜻이 명확하리라 생각하고 남용하기 시작한. 또한 이러한 단어들을 번역할 때, 번역자들은 한자어에서 그 답을 구했다. 일본의 오랜 전통으로 인하여 어려운 한자어에는 뭔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카세트(보석상자)효과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들은 카세트 안에 어떤 보석이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그 자체에 이끌린다. , 사회나 개인, 존재 등과 같은 번역어가 낯설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지식을 나타낼 수 있다 하여 동경하고, 쉽게 사용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Modern을 번역한 근대(近代)의 경우, 1942년 문예평론가들의 좌담회에서 그 의미가 혼란, 그 자체라는 의견과 뭔가 매우 훌륭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하나의 단어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 식의 평가가 내려지고, 가치가 부여되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본에서 번역어가 가지는 중요한 특질중의 하나라고 한다. 또한 그것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의미가 모호하다. 근대라는 말은 사전 등을 참고하면 시대구분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어가 성립된 이후 한참 동안 시대구분의 의미보다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가 따로 존재했던 것이다. 의미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유행하고 남용되기 시작했고, 유행하고 남용되었기에 다의적이 되었다고 한다. , 번역어는 남용되고 유행함으로써 점차 정당한 의미를 획득하여 번역어로써 정착되고 성립되었으며, 이것이 일본에서 번역어의 정의가 형성되는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유라는 말은 liberty, 혹은 freedom을 번역한 말이다. 원래 일본에서 자유라는 말은 제 멋대로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liberty의 번역어로 자유를 쓰는 것이 적절치 않음을 알고 적절한 번역어를 찾고자 하였으나, 결국 굴절된 사용과정을 거친 후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이나 권리 등이 번역어로써 정착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번역에는 문자의 의미로 보아서 가장 적절한 단어가 쓰이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번역어다운 말이 정착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번역어는 이질적인 뜻을 가진 말, 그러기에 이해하기 힘든 상태로 놔두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일단 받아들이고 차츰 그 뜻을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날 때, 처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번역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되는 언어와 번역어는 서로 대응하지 않는다. 번역자의 의도가 개입되고, 또 두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의미는 다의적이 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 일본은 서양의 학문을 모방하고 흡수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쏟아져 들어오는 생소한 개념과 전문용어를 어떻게 번역하여 보급할 것 인지가 당시 지식인의 최대과제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10개의 단어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함께 쓰인다. 그렇기에 동아시아의 번역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역자는 말한다. 우리는 이들 번역어에 대한 성립과정을 고찰해 봄으로써, 해방전후 우리의 번역어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유추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으로써 그 시기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이나마 더 넓어진다면, 우연치 않게 이 책을 읽은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다.



k*****1 2011.11.24. 신고 공감 15 댓글 27
리뷰 총점 종이책
문화 수용자로서의 번역어의 정신문화적 해석
"문화 수용자로서의 번역어의 정신문화적 해석" 내용보기
단어는 구체성을 띤 것이던 어떤 관념적인 추상성을 함축하는 것이던 그것을 통해 우린 그것에 해당하는 개념이나 이미지를 떠 올린다. 형체가 있는 사물일지라도 보지 못한 것을 지칭하는 단어를 들으면 우린 단어와 사물을 선뜻 연결하지 못한다. 연상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인데, 하물며 경험하지도 느낄 수도 없는 추상적 관념어야말로 그 의미 그대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실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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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는 구체성을 띤 것이던 어떤 관념적인 추상성을 함축하는 것이던 그것을 통해 우린 그것에 해당하는 개념이나 이미지를 떠 올린다.

형체가 있는 사물일지라도 보지 못한 것을 지칭하는 단어를 들으면 우린 단어와 사물을 선뜻 연결하지 못한다. 연상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인데, 하물며 경험하지도 느낄 수도 없는 추상적 관념어야말로 그 의미 그대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서구의 문명이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동아시아에 본격적으로 밀려들어 온 것을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을 기점으로 보면 150년 가까운 시간이 된다. 우리의 경우는 이러한 일본의 근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식되었으니 일본과는 다소 다른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 낯선 세계의 사물들과 관념의 이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했는데,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고, 느낀 적도 없는, 아니 생각해 본적도 없는 관념의 세계와 사물이니 당연히 자국의 언어에 그런 의미를 그대로 대체할 단어가 있을 리 없다. 당대의 번역어는 이처럼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시대상, 문화적 배경, 사람들의 정신적 구조 등을 반영하는 산물이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이질적인 서구문명을 표상하는 언어를 어떻게 일본의, 동아시아의 언어로 반영하는 가의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반영과 성립의 과정을 통해서 번역어에 침윤된 문화적 욕망의 재생산의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일례로 18세기 일본에는‘society’라는 특정의 목적을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광의의 공동체라는 개념이 있지 않았으며, ‘Individual'처럼 인간 개체에 대한 자율적 존재로서의 개인이란 인식이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이들 단어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자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실로 난감한 일이었으며, 결국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했는데, 바로 이 신조어의 제작과 자국의 언어적 습관에 정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여러 문화적 정신구조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단어로 사회, 개인을 비롯해 「존재, 미, 연애, 근대, 권리, 자연, 자유, 그(그녀)」등 열 개의 단어를 통해 이들 단어가 어떻게 번역어로 조성되고 살아남아 오늘에 기계적으로 치환되는 언어가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어떤 단어가 이질적인 사회에 지식으로 들어올지라도 그 구체적인 용례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에서 그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교제’나 ‘세상’과 같은 이미 사용하던 단어를 society 의 초기번역어로 사용하지만 이들 기존의 단어로 소사이어티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사(社)’와‘회(會)’의 합성을 통해 사회(社會)라는 신조어가 번역어로 정착되는 것처럼 두 글자의 고유의 의미는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단어를 만드는 것이다. 이 신조어는 이처럼 의미를 대응시키지 않음으로써 원어와의 의미의 어긋남을 회피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대 일본인들의 한자어에 대한 일종의‘카세트 효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왠지 어감이 좀 더 고상하고 고급스러운 것과 같은 막연한 느낌, 사실은 텅 빈 보석함(카세트)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괜찮은 것이 들어 있을 것 같다는 매혹과 같은 현혹이라는 것이다. 이것에는 아주 중대한 시사점이 있다. 교제나 세상과 같은 말을 제치고 본래의 사의 어감도 회의 어감도 없는 사회라는 번역어가 살아남은 것에는 막연히 관련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의미 반영의 미흡함이 오히려 본래의 의미를 채워 넣을 수 있다는 빈 공간의 역설이라는 발견이다.

 

또한 기존에 사용하던 일상 속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여 바꾸고 그것을 통해 현실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이미 현실의 무게를 짊어진 단어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히려 의미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유행하고 남용되어 다의(多意)적이 되고, 이 다의적이라는 의미 없음으로 인해 그것에 표면적 의미를 부여하여 이면적 의미와 결합하여 번역어로서의 의미를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태로 형성된 대표적 번역어로‘근대(近代)’를 설명하고 있는데, modern이 지니고 있던 “시대의 구분중 하나”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가치로서의 시대적 개념인 이면적 의미를 떠맡게 된 것은 하나의 본보기다.

 

한편 또 다른 카세트효과의 일종으로 beauty의 번역어인‘미(美)’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다. 『금각사』와 『가면의 고백』으로 잘 알려진‘미시마 유키오’의 미의 트릭을 예로 들고 있는데, 대외적 대화나 평론에서는 미의 개념을 한없이 폄하하고 비난하다가 정작 자신의 소설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이중 행위를 함으로써 모호함과 알 수 없음이라는 인위적인 카세트효과를 불러 미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하여 고상한 언어로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구태여 허영과 유사한 의식으로 간단히 정의하고 있지만 ‘사카이 나오키’가 그의 저술『번역과 주체』에서 말한 일종의 ‘문화적 본질주의’라는 전체주의적 요소를 발견할 수 도 있다. 이것은 감정이 무매개적으로 공유됨으로써 공감의 일체화가 이루어지는 전체성으로의 합일의 사례처럼 보이며, 공유된 심미적 정서로 통합된 공동체와 국가의 통합체로서의 관점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책의 한계로 보인다. 비평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나 표피적인 판단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카세트효과를 야기한 그 근원의 심층에는 다가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책의 주제로 돌아가서 번역어의 문자 그대로 성립과정의 유형을 통해 정신문화적 현상을 탐색할 수 도 있다. 자국 언어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한 한계에서 비롯된‘존재(存在:being)’와 같은 단어들이나, 기존의 단어가 지닌 의미와의 모순을 일으키는‘자연(自然: nature)’이나 부정이 오히려 자체의 의미를 덮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자유(自由;liberty)'와 같은 단어가 그 예이다. 추상적 의미를 지닌 기본적 동사는 명사화하기 힘들다는 언어적 한계로 인해, be동사의 진행형인 being의 직역인 ‘있음’을 기초로하여 ‘있음론’의 활용이 아니라 ‘존재론’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있음’이 아니라 ‘존재’가 번역어로 살아남는 것이다. 자유의 경우는 ‘제멋대로 구는’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었었으나 liberty의 번역어로 자유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부정적 카세트효과가 이용되는 양상도 발견된다.

 

특히 자연은 “저절로 그렇게 된 모습”이라는 ‘자연스럽다. ’의 의미는 지니고 있었으나 nature가 지닌 “정신적이 아닌 외적 경험 대상의 총체, 즉 물체계 및 물체계의 여러 현상”이란 뜻은 없었다.

이것은 자연이 nature의 번역어가 되었다고 곧바로 nature의 의미를 제대로 갖게 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일본문학이 이러한 몰이해(기존의 자연에 대한 인식)로 인하여 소재의 이상화를 배격한다는 구실 하에 ‘자연을 그대로 쓴다’라는 왜곡된 도입으로 이어진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일본 자연주의 문학을 발흥하게 했으며 이것을 곧 극사실주의 문학인 사소설로 이어지게 한‘다야마 가타이’로부터 번역어 성립과정에서 발견되는 왜곡, 오해, 허영이라는 의식의 총체를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무심코 별다른 저항 없이 사용하는 이들 단어들이 이러한 번역어로서의 성립과정을 겪고 살아남은 언어라는 이해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관점을 일깨운다. 가장 의미적 접근이 잘 된 적절한 단어가 번역어로 성립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나, 빈약한 의미의 비대칭의 언어가 의미를 채워감으로써 완성되어간다는 것, 한자어 중심의 표현으로 자국 고유의 표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 등의 지적은 우리의 언어 사용에 반성과 귀중한 참조점이 되어 준다. 근대화가 이들 서구문명의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번역된 근대’라 불리듯이 서구에 대한 무분별한 동일화의 욕망과 상실한 주체성의 반영이 아니라 이제 우리의 번역된 단어 하나하나가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담아내는 것으로서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언어 습관이 떠오른다. 한자어의 조합을 통해 신조어로서 번역어를 만들어 낸 일본인들과 달리 최근의 우리는 영어를 그대로 우리의 언어로 이식하고 있다. 이것은 역시 일본의 서구에 대한 동일화의 욕망, 주체의 상실을 반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을 서구의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그것이 될 수 있다는 문화국민주의적 퇴보라 할 수 있다. 언어란 하루 아침에 자기의 것으로 정착되지 않는다. 어쩌면 속 빈 카세트에 의미를 채워 넣어 완성적인 진짜 보석함으로 만들어가는 일본인들의 일견 허영심 속에 진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자국의 정신이다. 이 책이 비록 문화적 본질과 주체의 탐구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문화로서의 외국어를 자국의 언어로 해석하려는 과정의 치열함을 통해 어떻게 정신으로서의 문화가 변화해나가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본, 동아시아의 근대를 언어와 문화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귀한 계기가 되어주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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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의 도입 그리고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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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각국은 풍전등화(風前燈火), 마치 꺼질 듯한 불씨를 움켜쥔 듯 벌벌 떨며 제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제 의지에 반하는 개항과 서구문명 도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이전까지는 존재치 않았던 많은 개념들 역시 밀려 들어왔다. 집단에 기초한 사회가 개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도 함께 경험했는데, 아무래도 충분히 긴 소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이 모든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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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각국은 풍전등화(風前燈火), 마치 꺼질 듯한 불씨를 움켜쥔 듯 벌벌 떨며 제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제 의지에 반하는 개항과 서구문명 도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이전까지는 존재치 않았던 많은 개념들 역시 밀려 들어왔다. 집단에 기초한 사회가 개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도 함께 경험했는데, 아무래도 충분히 긴 소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다 보니 마치 맞지 않는 옷에 몸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식일 때가 많았다.

비슷한 듯 다른, 일본과 우리의 역사는 완벽히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구석이 많다. 일본이 개화 이래 좀더 적극적으로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다 못해 우리가 소중화를 꿈꾸듯 탈아시아를 꿈꾸었다면, 우리는 일본이라는 ‘막’을 하나 더 거치면서 서양의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양의 개념들은 온전한 서양의 것이기 보다는 일본인들에 의해 한 차례 정화(?)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용어들 역시 일본인들의 고뇌가 빚어낸 결과물인 경우가 많았으니, 양자 모두 주체로서는 자리매김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말은 쉬이 못하겠으나 적어도 개념의 왜곡 면만 놓고 본다면 일본보다 우리 쪽이 더욱 심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간다.

이 책에는 몇몇 용어들이 처음 일본 사회에 소개되었을 때 그들이 겪었을 혼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용어들 전부가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기에, 길게 잡아도 불과 150년이 채 흐르지 아니한 상황이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society, 즉 ‘사회’라는 단어가 책의 가장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있고, 살아가는 공간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용어로 우리는 이 단어를 흔히 사용한다. 그런데 일본어에는 이 단어가 존재치 않았단다. 단어뿐만이 아니었다. 이에 대응할 만한 현실 자체가 일본에는 없었다 한다. 번역하기 매우 어려웠다는 이 단어는 처음에 동료 혹은 친구와의 긴밀한 결합을 뜻하는 실로 좁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일본인들의 사고가 그 이상을 허락하질 않았던 탓이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사용한 ‘인간교제’라는 번역어는 이러한 일본인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바라 할 수 있겠다.

이어지는 단어 ‘개인’도 마찬가지. 여전히 강력한 집단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 비해 잘은 모르겠으나 일본의 문화는 더더욱 집단주의적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겠으나, 제2 차 세계대전 중 보여준 일본인들의 전체주의적 성향이나 그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갔을 때 만날 수 있는 사무라이 정신 등은 개개인의 고결함을 부각시킨다면 좀체 양산되기 힘든 형태라 하겠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개인은 독립성을 지닌 존재로서 보다는 한 집단 안에 소속된 무언가로서 더욱 큰 가치를 인정받았고, 용어 역시, 굳이 개인을 지칭하는 낱말을 만들어낼 필요성이 없었다. (독)(일)개인. 비슷한 한자어의 반복나열이 일본인들이 처음 individual이라는 영어를 번역할 때 사용한 말이었는데, 그 외에 어떠한 단어를 사용해도 이 individual 의 본디 뜻을 충분히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던 듯 싶다. 평이한 중국의 한자를 통해 많은 개념들을 받아온 일본인들의 경험 역시 이러한 현상의 고착화에 한 몫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서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단어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그 단어의 뜻이 명확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모든 말에는 당연히 명확한 뜻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쓰는 당사자는 잘 모르더라도 단어 자체에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고 믿게 마련이다. 어쩌면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남용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단어는 문맥상 다른 단어와의 구체적인 연관성이 부족하더라도 막연히 관련이 있을 거라는 믿음에 의해 사용된다. -p36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전에는 개개 용어들의 정확한 의미가 담겨 있다. 특정 단어가 도입된 이래 지금의 개념으로 진화하기까지 얼마나 다이내믹한 과정을 겪어왔겠는가! 하등의 사용 필요가 없던 ‘권리’나 ‘자유’, 신선하다 못해 방탕과 같은 맥락마냥 받아들여졌던 ‘연애’ 그리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지칭어 ‘그, 그녀’까지. 이들 용어의 도입은 단순히 글자 몇 개의 도입 수준이 아니라 없던 개념의 창조였고 변화라곤 모르던 가치관에의 지각혁명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모든 용어가 고유의 의미를 완벽히 획득했을까? 사용하면서 해당 단어들의 정확한 뜻이 무어냐고 묻는 이들은 극히 드물게다. 허나 개개의 개념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자리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사고가 서구화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본인은 일본인 특유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 정체성 중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서양인과 동일해질 수 없는 소위 ‘핵심’이라 부를만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다‘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도 어쩌면 우린 애당초 우리의 것이 아닌 개념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이해하기 위해 분주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번역어가 생성되고 뭇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필요했을 많은 시간들이 내겐 오히려 낯설다. 명확히 답변할 순 없지만 ‘자연’이나 ‘존재’ 따위의 의미를 묻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할 자들은 이 세상에 없다. 그만큼 세상이 변화한 셈이다. 그렇지만 질문은 멈추어서는 아니된다. 여전히 우린 서양인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만의 관점을 확립하는 일은 수도 없이 도입된 서양 세계의 용어들을 우리 자신의 시선으로 다시금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될 것이다.


q*****2 2011.11.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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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어를 통한 일본 근대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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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세 문화에서 가장 놀랍고, 빛나는 순간으로 18, 19세기 난학(蘭學)을 꼽는 이는 고종석이다. 서양의 서적으로 일본의 언어로 읽고 이해하기 위해 난학자들은 말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는 없던 말이었다. 한자에서 글자를 가져와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거나, 이미 있던 한자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작업을 해냈다. 그리고, 그 번역어들은 원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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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세 문화에서 가장 놀랍고, 빛나는 순간으로 18, 19세기 난학(蘭學) 꼽는 이는 고종석이다. 서양의 서적으로 일본의 언어로 읽고 이해하기 위해 난학자들은 말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는 없던 말이었다. 한자에서 글자를 가져와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거나, 이미 있던 한자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작업을 해냈다. 그리고, 번역어들은 원래 있었던 말인 고착되었고, 한반도에까지 전해져 우리에게도 말이 원래 우리에게도 있었던 말인 쓰이고 있다. 실로 엄청난 문화적 사건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찌 생각하든 이것은 있는 그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번역어를 그냥 무비판적으로 써도 되는 것인가?

일본인들이 만들어내고 쓰고 있고, 또한 우리도 쓰고 있는 번역어가 과연 서양에서 의미대로 쓰이고 있는지, 혹은 어떤 왜곡이 있었는지 과연 생각해보았는가? 그래서 말이 생성되고, 고착되는 과정에서 말을 쓰는 이들의 의식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야나부 아키라는 그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야나부 아카라가 분석하고 있는 번역어는 모두 10개이다.

사회, 개인, 근대, , 연애, 존재, 자연, 권리, 자유, 그리고 (그녀).

 

우리에게도 정말로 친숙한 말이다.

그런데, 말들은 우리에게도, 일본에게도 없는 말이거나(사회, 개인, 근대, ), 다른 의미로 쓰였던 말들이다.

번역어들은 society, individual, modern, beauty, love, being, nature, right, freedom, he(she), 혹은 이에 관련된 다른 (서양)언어의 번역어로 소개되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번역할 때도 별로 고민 없이 그렇게 번역하는 말들이다.

그만큼 이제는 번역어라는 의식도 없이 쓰이고 있는 말들이며, 의미도 대충은 공유하고 있는 말들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야나부 아키라가 분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쓰이는 과정은 정말 복잡했다는 것을 있다. 이를테면, 사회라든가 개인 같은 것은 아예 동아시아에서는 의미조차 없었던 말이다. 원래 서양에서의 의미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한자의 조합을 통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대단한 작업이라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정작 원래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일부만 반영을 하거나 했다는 것이다. 야나부 아키라는 카세트(cassette) 효과 부르는 것이 이러한 번역어가 정립되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쓰고 있다. 카세트 효과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카세트란 작은 보석상자를 의미하며, 내용물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매혹하고 끌어당기는 물건이다. ‘사회, 그리고 개인 일찍이 이런 카세트 효과 발휘한 단어였으며, 효과는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도 여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9)

 

,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가 있을 같은 번역어를 그냥 나름대로 쓰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문자는 의미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선 구불구불한난해한 형태로 사람들을 끌었고, 사람들은 점차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독점하게 것이다.” (94)

 

그런 오해와 굴절의 과정을 거친 것이 일본의 번역어라는 것이 야나부 아키라의 견해이고 주장인데, 물론 자유 같은 서양에서의 freedom이나 liberty 같은 장구한 역사와 배경을 갖지 못한 동아시아로 들어와서 번역된 말은 숭고하고 긍정적인 의미와 함께, ‘그건 자유야!’ 식의 마음대로 같은 부정적인 의미까지 가져버리면서 헷갈리는 말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그런 과정을 거쳐 정착된 말은 처음과는 달리 오해의 여지가 없이 사용되게 된다.

모국어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린, 역사가 오랜 말에는 오해의 여지가 없는 법이다.” (176)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우리나라는?’이라는 물음이었다.

우리는 서양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우리의 번역어는 어떤 것이었나?

모든 것은 아니겠지만,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서양의 개념어들은 그냥 우리 말인 쓰이고 있다. 따라서 과정에서 어떤 혼란이 있었던 것도 같지 않다. 그러니 고민도 없고, 반성도 별로 없었다. 일본에서 말을 되도록이면 쓰지 말자는 운동도 결국엔 일본말에 대한 것이었지, ‘사회 개인’, ‘학교 같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무임승차한 셈인데, 그게 과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보지도 않은 같다. 말이 의식을 좌우한다면 우리의 의식은 일본에서 만든 번역어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번역한 사회라는 번역어는 그들이 생각한 society로서 우리에게 것이니 말이다.

 

책을 번역한 김옥희씨의 말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책과는 다른 작업일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15.11.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번역어의 성립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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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잘 끌어모아서 나타내는 결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아직도 한국에서 정말 언제 어떻게 자리잡고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지 애매한 근대라는 단어를, 그 중에서 중요한 몇 개를 통해서 일본의 대표 사례로 분석한 소중한 내용이 이 책이다. 오늘날 한국인이 쓰는 말중에서 번역없이 대놓고 사용하는 영어, 한자스러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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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우리의 생각을 잘 끌어모아서 나타내는 결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아직도 한국에서 정말 언제 어떻게 자리잡고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지 애매한 근대라는 단어를그 중에서 중요한 몇 개를 통해서 일본의 대표 사례로 분석한 소중한 내용이 이 책이다오늘날 한국인이 쓰는 말중에서 번역없이 대놓고 사용하는 영어한자스러운 일본어(주로 식민지 때 흘러들어온 말)가 아주 많이 쓰여진다영어는 말하면서도 우리 말이 아니라는게 느껴지지만이제 일본식 한자는 아무런 거리낌이나 불편함없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말과 글은 그 나라의 얼이라는 표현도 있는데우리가 쓰는 말을 들여다보면 근대 이전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근대 이후에는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 우리를 거의 사로잡고 있다이렇게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그러함에 길들여져가는건가 싶은 마음이 더욱 굳어진다.

크게 와닿을지 모르지만일본처럼 우리도 당시의 대세인 서양 문물을 우리 말로 나타내는 싸움을 우리 스스로 했다면 오늘날의 우리 말과 글은 많이 달라졌을거란 아쉬움이 든다.

바쁘고급하고빨리 커서 앞서 가는 나라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정치 구호하에우리는 스스로를 사회로 아무 생각없이 뜻매김하고왜 우리 하나하나가 개인으로 써지는지 곱씹음없이 어하고 받아들였다근대는 서구 문물에서 왔음을 알고 있던 때도 있지만어느 순간 근대는 일본이라는 나라로 터잡고 가져와서 그 다음은 현대에게 자리를 주고어느 대기업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미라는 말은우리 조상도 써왔지만, art에 맞는 그 말은 아니지 싶다연애는 1900년 이전의 우리에게는 정말 그런게 있는지 모를 말이다좀더 아쉬운건존재와 자연,권리자유와 같은 말이다멀리 거슬러가지 않더라도조선의 성리학이라는 철학 사유체계는 충분히 이런 말의 짝이 있을 터인데 놓치다 보니 이제 지나간 버스처럼 보인다.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정말 하는 그 때를 기다리기에 앞서이 문구가 우리 입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자주 오르내리는 때가 얼른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s*****s 2016.03.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