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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이 가진 본래의 모습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부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래 인간이 떠나온 자연과 그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준다. 얼굴에 내리는 비, 작은나무, 네자루의 총, 서있는 곰, 구름처럼 붉은, 머리맡에 두고자, 열 마리의 곰, 상처입은 가슴, 구르는 천둥, 동쪽에서 온 사람, 빨간 윗도리,느린 거북, 구르는 천둥--모든 이름들이 특색이 있고 재미있다. 언젠가 늑대와 함께 춤을 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인데, 인디언들은 이름이 평생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때 그 당시의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이름을 정한다고 하던가. 그래서 주먹쥐고 일어서, 머릿속의 바람, 뭐 이런 이름들이 있었다. 그 뒤로 우리도 그 사람의 특징을 잡아서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사람에게 등의 곰팡이라는 식으로...
또 “그곳에서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라는 책에서 읽은 것은 인디언들은 생일을 축하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일보다는 무언가 발전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을 모아놓고 축하받고 서로 축하하고 한다고 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무언가 제대로 사는 것처럼 의미를 느끼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우리 모두가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를 배우고 닮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점점 파멸을 향해 치닫는 우리 인류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읽고 덮어 버리기에는 마음에 새겨야 할 말들이 너무 많다. 줄을 그어가다 보면 매 페이지마다 줄을 긋게 되는 그런 책이다. 인디언들은 우리처럼 이렇게 책으로 써놓고 기억하지는 않고 마음 속에 새긴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이렇게 쓰여진 것을 다시 마음에 새겨넣기 위해서 반복해서 읽어야 하겠다. [인상깊은구절]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할 전사가 입술이 하얗게 되고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듯이, 홀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영혼이 중심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래서 인디언은 아이들을 키울 때 자주 평원이나 삼림 속에 나가 홀로 있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다. 한 두 시간이나 하루 이틀이 아니라 적어도 열흘씩 인디언 들은 최소한의 먹을 것을 가지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장소로 가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문명인들은 그것을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한 인간이 이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기 확인 과정이다. |
| 문명인과 문화인은 동의어일까? 처음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딛었을 때, 그들은 인디언들을 문명적 야만인 또는 미개인으로 치부하고 부당한 대우를 했다.그러나 인디언들은 하얀 얼굴의 문명인들을 문화적 철학적 미개인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살아가려고 했다. 이책을 통해 인디언들은 아름다운 생활속의 철학자였다는 것을 알았다.그들이 생각하는 삶이란 우리 늘 추구하고자하는 이상향이 아닐까? 침묵, 자연 그리고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 아름다운 마음씨와 평화롭고 자유로운 생각들은 내 가슴 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내게 여유로운 사색의 시간을 갖게 했다. 진정한 생활 속의 철학자인 인디언들의 영혼의 목소리에 우리 잠시 귀기울여 들어보자. |
| 요사이 나오고 있는 여러 인디언 관련 책들을 다 읽어 보진 못했고 내가 읽은 책은 '그곳에선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와 이 책이다. 하나는 백인들이 침략해서 지금 자신들 땅인 양 이민자 규제가 어떠니 하며 뻔뻔스럽게 주인 행세를 하기 전에 호주 대륙에서 5만년 동안 평화롭게 살아온 신의 부족 이야기이고, 이 책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글을 엮은 책인데 우연히도 두 종족은 굉장히 서로 많이 닮았다.그리고 두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호주의 부족과 인디언들을 마음 속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동양인들과도 유사한 면이 많고 어쩌면 정신적으로 더 진화된 듯한 인디언들의 글을 읽고 있자니 백인들이 얼마나 정신적인 야만족이고 지금의 현대 문명 또한 그 야만의 문명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그리고 사라져 버린 그 아름다운 그들에 대한 애틋한 향수와 슬픔 같은 것을 느낀다. 그들이 이야기했듯이 "하나의 문명이 가면 또 하나의 문명이 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듯이 지금 우리 인디언의 운명은 썰물이다. 슬퍼할 이유가 없다.언젠가는 저 백인 부족들도 스러 날도 올 것이다.그것이 자연의 흐름이고 이치다." 이 야만적인 문명 또한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서 아주 찰나의 현상임을, 우리 몸이 감기에 걸렸다 회복되었다 하는 것처럼 지구의 역사속에서 찰나의 감기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치료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몇 명 만나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을 분명히 밝혀 두고 싶다.무엇보다도,주술사(치료사와 같은 개념)가 되려면 주술사로 태어나야 한다.꿀벌에게 물어 보라, 여왕벌을 어떻게 아느냐고.인디언은 그냥 알 뿐이다." -이 대목은 현대의 의료제도에 대한 탁월한 혜안이다.단순히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돈과 안정적인 직업 때문에) 대학입학시험을 쳐서 점수가 높다고 의대를 다녀 면허를 따서 의사가되는 현 제도로는 진정한 의사를 양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태어나는 것이다.면허가 있다고 해서 이론적인 공부를 한다고 해서 실력있는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의사면허가 없어도 오랜 전생의 경험과 실력으로 재야에서 탁월한 치료능력을 발휘하는 명의가 많지 않은가. "모든 병과 고통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그것들은 늘 지나간 어떤 것,다가올 어떤 것에 따른 보상이다.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문명인 의사들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 않다.우리는 모든 것이 어떤 것의 결과이며,또 다른 어떤 것의 원인임을 안다.그것은 하나의 사슬처럼 이어진다.때로 어떤 병과 고통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일어난다.따라서 그것을 사라지게 하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3일 동안의 시간을 갖는 것이며,그 결과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육체의 고통은 이유가 있으며 그것들은 언제나 영적인 차원에서 시작된다...." -이 대목 또한 불교의 연기와 업의 개념과 통하는 놀라운 혜안을 보여 준다.병이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그 사람의 영혼의 상처,잘못,과오,잘못된 생활습관과 잘못된 길을 일깨워 주는 하나의 신호임을 통찰하는 높은 철학적 관점을 인디언들이 꿰뚫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문명인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오면 질병만 관찰할 뿐 사람을 관찰하지 않는다.그래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약을 주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든지 신체의 어떤 부위를 잘라 쓰레기통에 버린다.그것은 어쩌면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고 전혀 치료가 아닐 수도 있다.....자연 속의 모든 물질은 그 나름의 영적 차원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약초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것은 바로 그 약초의 영적 차원의 협력을 얻는 일이다.단순히 화학 물질의 합성만으로 치료가 가능하진 않다." -이 대목 또한 현대의학의 무지와 단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구절로서 서양에서 현재 붐처럼 일어나고 있는 대체의학의 자연요법의 선구자가 인디언이었음을 보여 준다.그리고 본토 서양에서보다 더 맹신적으로, 부작용이 많은 서양 화학 의학만을 고집하는 우리 나라의 의사들이 원래의 동양적이고 자연적인 의학을 연구하고 접목한다면 의학강국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그리고 본토 서양에서보다 더 배타적으로 기독교를 맹신하는 우리 나라 기독교 신자들이 이 인디언의 책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래의 동양적인 심성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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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저자 시애틀추장/출판 정신세계사/발매 1993.08.01.
누구도 대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으며, 누구도 한 번뿐인 삶의 소유자가 아니다. 사람이든 나무든 벌레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시각이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이 가진 시각이며,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들이다. 대지는 인간의 한 부분이며 인간은 대지의 한 부분이다.
P23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묶여 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사람이 삶의 거미집을 짜 나아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 역시 한오라기의 거미줄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그가 거미집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온다.
P41~42 할아버지는 칼로 흙 속에 묻힌 어떤 달콤한 식물 뿌리를 캐내어 절반을 잘라 나한테 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슴 사냥을 할 때도 가장 훌륭하고 멋진 놈을 잡아선 안 된다. 그중 작고 느린 놈을 잡아야지. 그러면 사슴들은 더욱 강해지고 그래서 늘 우리에게 고기를 마련해 주게 되지. 표범이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너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자연의 이치를 지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네 꿀벌만이 저한테 필요한 것 이상을 모아둔다. 그러니까 결국은 곰이나 사람한테 꿀을 빼앗기고 말지. 인간들 중에도 그런 자가 있다. 제 몫 이상을 저장하고 저 혼자만 잘 먹고 지내려는 자들이지. 결국은 빼앗기기 마련이야. 그 때문에 전쟁도 하게 되고……. 그들은 필요도 없는데 제 몫 이상을 차지하려고 별별 허튼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또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자기가 더 많이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사람들은 그런 명분과 허튼 소리 때문에 목숨까지 잃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자연의 이치가 바뀌진 않아.
P92~93 나와 내 친구는 그날 하루 종일 그 강에서 놀았다. 그리고 강가에는 우리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어떻게 보면 다른 세상에서 온듯한 남자가 인디언 천막을 짓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저녁 어스름이 안개와 함께 밀려오는 강물 아래쪽을 바라보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덧없는 것이라고.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한순간에는 반짝이지만 다음 순간에는 헤엄치는 사람보다 더 빠르게 흘러가 버린다고. 하지만 흐름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가 아직 어리지만 강물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럴 이해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걸 이해하게 되면 인생에서 아무리 슬픈 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 닥쳐와도 그것들이 곧 흘러가고 마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며, 그 밑바닥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흐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리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사람들이 세상의 일에 매달리는 것은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 순간의 일을 전부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꿈에 매달려 쫓아가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고 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시애틀 추장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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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에게 배워야 한다. 유럽에 건너 온 사람들을 친구요, 형제로 맞아들였던 인디언들. 얼굴 이 흰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땅을 내어 주고 먹을 것을 제공해 주었던 인디언들에게 현대인들은 삶의 지혜를 얻고 삶의 양식을 배워야 한다. 인디언들의 사상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슴 사냥을 할 때도 가장 훌륭하고 멋진 놈을 잡아선 안 된다."(41)
"부(富)라고 하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린 저 세상에 그걸 함께 갖고 갈 수가 없다. 우린 부가 아니라 사랑과 이해를 원한다"(101)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사상과는 정반대의 삶이다. 막스 베버의 사상은 기독교인들에게 물질적 부를 취득함에 있어 날개를 달아 주었다. 성실하게 일하여 부를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인디언의 사고는 다르다. 부는 필요한 만큼만. 어차피 죽으면 가져 갈 수 없는 것, 부를 취하는 것보다 존중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녀들에게 꼭 교육시켰다.
"인디언들은 말 그대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친구나 다른 부족에게서 온 손님에게 나누어 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난하고 늙은 사람에게 먼저 나누어 준다. 그리고는 절대로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165)
성경적인 사고방식이다. 황금률이다. 받기보다 주기를 원하는 삶,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삶, 약자와 소외된 자를 돌보는 삶, 아낌없이 꾸어주는 삶. 인디언의 삶은 성경적인 삶과 일맥상통한다.
"문명인들은 정말로 특이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은행이라는 큰 집에 돈을 맡기고 가끔씩 이자를 붙여 찾아간다. 우리는 돈이나 담요가 남으면 그것을 부족의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필요할 때는 그들에게서 얻어다 쓴다. 주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은행인 셈이다."(170)
돈을 축적하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고, 결국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은 돈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행위다. 인디언의 삶은 다르다. 주는 것이 은행이라고, 베푸는 것이 곧 돈을 쌓는 일이라는 사상이다. 땅에 보물을 모으기보다 하늘의 곳간에 쌓아두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추장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위대할 게 하나도 없었으며, 나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위치일 뿐이었다"(186)
문명인들은 계급과 신분을 따진다. 추장은 계급이 아니라 하나의 '위치'라고 생각하며 그들은 모일 때마다 원(써클) 형태를 고수한다. 서로의 위치가 평등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중요한 경우라도 성급히 질문을 하지 않았으며, 대답을 강요하는 법이 없었다" (68)
인디언들은 말보다는 진실을 원하며 침묵을 강조한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인디언 부족의 예의다. 홀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영혼이 중심을 잃고 헤매게 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이 매일 정한 시간에 성경을 묵상하는 이유도 영혼의 중심을 잡기 위한 삶의 태도다. 인디언들의 삶에서 영혼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인디언은 종이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 진실이 담긴 말은 그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기억된다."(57)
"백인 부족은 신에게 이 세상을 바꾸라고 끝없이 요구한다.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신이 만들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부족 중의 악한 사람을 벌하라고 신에게 끝없이 애원한다." (64)
이것은 가리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적.반.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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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고, 퐁카족이라는 아메리카 인디언은 10월을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이 가을을 나는 '책읽기에 좋은 달'이라고 붙여보고 싶다. 이렇게 '책읽기에 좋은 달'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하나가 바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이다. 이 책은 '씨에틀 추장 외 여러 명의 인디언'이 쓰고, '류시화'가 옮겨서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책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이 책이 처음 나올 즈음에도 짤막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유행처럼 나오고 있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류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 또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선정하는데 있어서 도움주는 분이 읽어보았는데 감동적이라며 읽기를 권했다. 빌려달라고 했는데 사서 보아도 아깝지 않은 책이라며 사서 보라고 하였다.
과연 책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은 내용이다. 지금까지 네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읽을수록 의미가 가슴에 와닿는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친 부분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마음에 남는다. 저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인데 이 책이 내게 준 영향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인디언들의 이야기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전에 읽었던 다른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 즉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생명에 대한 이해와 생명법칙에의 순종, 그 속에서 삶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람들. 객관적으로는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삶의 용사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유가 글을 읽는 내 가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글 하나 하나마다에서 배어 나오는 자연에 대한 찬탄과 감사하는 마음을 읽고 나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나에게 베풀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인상깊은구절] 당신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장소라는 것이 없다. 봄의 나뭇잎 소리를 듣거나 곤충의 날개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아마도 내가 야만인이라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일 테지만, 당신들의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은 귀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인디언은 물웅덩이의 수면으로 내리꽂히는 바람의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한다. 한낮에 비에 씻겨진 바람 그 자체의 냄새를 좋아한다. 미국산 소나무의 향내도 마찬가지다. 얼굴 붉은 사람에게 있어서 공기는 더없이 소중한 것! 그것은 동물이든 나무든 사람이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똑같은 숨결을 나눠 갖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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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너무 풍족해졌다. 많은 것을 사들이고 소비하고 또한 낭비해왔다. 결국은 땅에서 물에서 바다에서 산에서 들에서 고스란히 되돌려 받고 있다. 무서우리만큼 황폐해지는 환경앞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경각심내지는 일깨움을 전해주고 있다. 자연을 벗삼고 자연에 결코 거스르지 않는 자연적인 삶에 대해 인디언들은, 향락적인 문화에 젖어 자연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경고를 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자연의 정복자가 될수 없는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또한 자연의 일부이기때문에...욕심은 욕심을 낳는다. 인디언들은 말한다. 필요이상의 내 몫은 반드시 잃게 된다고..땅으로 돌아갈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져갈수 없다. 그 사실을 잊지 않을수 있다면 지금같은 치열한 경쟁도 피흘리는 투쟁도 혈육간의 불신도 모두 필요없는 에너지 낭비는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꿀벌만이 저한테 필요한 것을 그 이상을 모아둔다. 그러니까 결국은 곰이나 사람한테 빼앗기고 말지. 인간들 중에도 그럴자가 있다. 제 몫 이상을 저장하고 저 혼자만 잘먹고 잘지내려는 자들이지 결국은 빼앗기게 마련이야. 그 때문에 전쟁도 하게 되고, 그들은 필요도 없는데 제몫 이상을 차지하려고 별별 허튼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또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자기가 더 많이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사람들은 그런 명분과 허튼소리 때문에 목숨까지 잃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자연의 이치가 바뀌어지진 않아. |
| 이 책을 읽고나선 왠지 인디안들이 좋아졌다. '인디안이 좋다' 어딘가 유치한 표현같지만 인디언의 언어구조에 맞는 정말 진솔한 나의 표현이다. 지혜와 대자연과 어우러진 자연의 심성을 지녀 대자연을 어버이 삼아 그 속에서 사이좋게 어울어지는 순수한 사람들..그들의 용맹은 우리가 말하는 용맹과 다르고, 그들이 말하는 소유는 우리가 말하는 소유와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용맹과 그들의 소유개념에, 나자신 절대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누가 자신의 어머니(땅)를 소유했노라고 표현하는가. 어머니의 자손인 우리는 그 어머니 품안에서 사이좋게 노닐뿐이다.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길이다(돈후앙)'.. 인디언의 삶이 대자연을 품은 삶이라선지 그들의 언어엔 지혜가 묻어있다. 모든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아름다운 책이다..누구에게나 선물하고픈 책이다. |
| 인디언의 세계에 대해 처음이나마 조금이나 알게 된것은 아마 이 책을 통해서일것이다. 류시화님의 많은 명상서적들은 세상사에 사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이 책이 다른 신선함은 우리가 늘 미지의 세계로만 알고 있던 인디언들의 세계.. 그 세계의 일면을 보여 주었던 점이다. 똑같은 자연의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여유로운 인디언들의 모습속에서 탁한 흐린물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름하나에도 자연을 담고 있는 인디언들과.. 남의 고통까지 업고 가는 친구의 모습.. 나 하나가 아닌 공동이라는 커다란 메세지와 자연의 경이로움.. 이 책은 그렇게 다가왔다. 책이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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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게 된 건 고3때 내 짝을 통해서다. 표지만 봤을 땐 그냥 단순한 인디언 전래 동화 같은 건 줄 알았다. 머리도 식힐 겸 부담없이 읽으려고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어느 순간 내 맘엔 꽉 차오르는 흐느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들의 역사는 슬프다면 슬플 수 있지만.. 얼굴 붉은 사람들은 슬픈 것을 드러내진 않는다. 영혼의 흐름은 정말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땅은 순순히 내 줬지만 그것마저 백인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이 단순할 수 있는 에세이에 많은 시간을 들이며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이미 아는 내용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읽을 때마다 또 다시 나의 영혼을 뒤엎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나의 체계를 뒤흔들지는 않는다. 그냥 읽을 때마다 쳐 놓은 그 많은 줄들... 다시 공감하고 또 공감하게 할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할머니는 우리가 죽은 인간들을 손쉽게 가려낼 수 있다고 하셨다. 죽은 인간들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여자를 볼 때도 추잡한 것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타인을 볼 때도 나쁜 면밖에 볼 줄 모르고, 나무를 볼 때도 아름다움은 잊은 채 목재나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밖에 볼 줄 모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세상을 걸어다니지만 사실은 죽은 인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