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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문학을 좋아하면서도 이제서야 발견하게 된『괴담 - 공포에 관한 11가지 짧은 이야기』는 엠브로스 비어스의 작품이 실려 있는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1년전. 그때는 다른 장르의 책들을 읽느라 공포장르에서 손을 뗀 시기였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보곤 했지만.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다. 목차를 살펴 보니 사실 엠브로스 비어스 외에는 아는 이름의 작가가 한 명도 없다. 그렇다 보니 좀 걱정되기도 했는데, 첫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걱정은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폐광산에서 노다지를 캔 기분이랄까. 이 책에는 총 11명의 작가의 작품이 실려있다. 그것은 또다시 세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는데, 첫 카테고리는 '미지의 존재'와 관련된 것이다. 마리오 조르다노의 <지하의 집>은 뱀파이어, 아데라이데 네레프의 <늑대인간의 냅킨>은 제목 그대로 늑대인간이 등장한다. 귄터 잘만의<은을 자아내는 거미>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와 관련한 것이다. <지하의 집>의 경우 과학과 논리를 신봉하는 의사가 자신이 인식하고 있던 범위 밖의 세상을 마주했을 때, 그 공포는 어떤 것을 의미할까, 를 생각해 보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더이상 전설을 믿지 않는다. 그저 옛이야기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현실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실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믿지 않았던 것이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주는 공포만큼 가장 큰 공포는 없을 것이다. <늑대인간의 냅킨>은 저주란 것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보통 늑대인간이라고 하면 늑대인간에게 물렸을 때 늑대인간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늑대의 저주가 그 시작이었다. 가련한 동물을 재미로 학대하고 죽이던 조상의 업이랄까. 어쨌거나 이 냅킨이란 것이 이 작품에서 아주 흥미로운 포인트다. <은을 자아내는 거미>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일종의 전설같은 것이다. 그 전설이 실제였다면?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과 그 구원의 실마리가 되는 아이.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두번째 카테고리인 '혼돈이 낳은 기이한 아이들'에 속하는 작품은 총 네작품이다. 헨키 헨첼의 <메피스토펠레스의 오류 수정>은 SF적인 공포물이다. 인공지능 컴퓨터 메피스토텔레스. 사실 나의 경우 컴퓨터를 인간에 가깝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공포다. 기계는 기계로만 존재하면 된다는 입장이랄까. 그것이 뒤집어질 경우, 그 끝은 파멸뿐이다. 헤닝 파벨의 <완성하라!>는 매일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 꿈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 후,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작품이다. <개와 바다>는 조난당해 바다를 표류하는 한 남자와 한마리의 개의 이야기로, 남자의 이기심에 분노하다가 마지막 부분의 인간의 착각에는 쓴웃음이 나와 버린 작품이다. 엠브로스 비어스의 <폐쇄된 창>은 다른 작품집에서도 읽었었는데, 역시나 마지막 문장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세번째 카테고리인 '홀로 남겨진 밤들'은 소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혼자'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원래 무서운 일은 혼자 있을 때 잘 벌어지지 않던가. 한스외르크 마르틴의 <13일의 금요일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한 한 아이의 이야기인데, 누군가 곁에 있어도 혼자만 잠들지 못하는 것도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난 무서워서 미칠 지경인데,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잠만 잔다면? 이 작품 역시 마지막 반전이 압권. 헤닝 클뤼버의 <톰 홀로 집에>는 부모님이 한 집안에 같이 있지만 톰에게만 공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를 혼자 감당해야할 순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베레나 C. 하르크센의 <트롬벨리이 피튼 뱀>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고통과 분노를 안고 죽어간 무엇인가가 잠든 아이를 노린다. 클라우스 뫼켈의 <물고기들과 지낸 밤>은 복수를 하는 물고기들의 이야기이다. 보통 물고기는 머리가 나빠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세 잊어버린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물고기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자신들을 괴롭힌 누군가가 혼자 있는 때를 노린다면? 앞으로 낚시는 절대로 못할 것 같다. (지금도 낚시는 하지 않지만...) 전설속의 존재들, 구전으로 전해오는 존재, 인간의 우위에 선 컴퓨터, 악몽속으로 찾아오는 존재들,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오는 두려운 존재들. 우리는 이것을 혼돈이 만들어낸 환상과 악몽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이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낯선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괴담』. 이렇게 스토리의 짜임새와 구성이 좋은 책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낯선 작가들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존재하겠지만, 때로는 용기를 내서 선택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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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소설을 5권 이상은 보았다고 한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읽어보면 다 어디선가 미리 읽었던 내용이므로. 아니, 뭐 몇몇 작품을 읽는 것이 좋을지도. 하지만, 당신이 호러소설 읽기를 무서워해서 한 편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면 처음 대하는 작품으로 이 책은 읽을 만할 것이다. 이 책은 다음의 세가지 주제로 나눠져있다. 처음의 시큰둥한 반응은 뒤쪽은 몇몇 작품을 통해 - 이제까지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이라 더 뿌듯하다 - 뿌듯함으로 바뀐다.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다 저자소개에선 이 이야기를 저자가 팩스로 제보받았으며 그 즈음 이상한 사망사고가 신문에 실렸다고 한다.
늑대인간의 냅킨 (아데라이데 네레프), 예전 과학의 힘으로는 밝혀낼 수 없었던 수많은 죽음. 대부분 늑대와 같은 것으로 원인을 찾았지만 어떤 것들은 어쩜 밝혀내지 못한 살인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런 미묘하면서도 믿을 수없는 인간의 감각으로 목격한 늑대와 인간이 묘하게 합쳐져 늑대인간의 전설을 만들어 냈을지 모른다. 저자소개에 따르면, 그의 남편이 늑대연구가라고 한다.
은을 자아내는 거미 (귄터 잘만), 어떤 나라의 민담을 들여다 보아 인신공양의 내용이 없는 나라는 아마 없을지 모른다.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사실은 몇몇 기득권의 세력유지와 물질적 탐욕 때문이게지만, 이를 위해 어린 소녀나 여인들을 희생한다는 내용은 어디나 있다. 결론 또한 비슷할지 모른다. 너무나 큰 탐욕은 인신공양을 받는 괴물, 또는 영물마저 분노하게 만들어 악인은 망하게 된다는... 하지만 현대에 온 이 괴담은 조금 비틀려졌다. 은화를 던지며 "저런건 우리집에 많거든"하는 소녀의 모습에서.
혼돈이 낳은 괴이한 아이들
'...우리를 배반하면 당신의 고통은 지금보다 더 엄청나리라는 것을 각오하시오. 당신이 쓴 책을 읽는 것보다도 더 큰 괴로움을 맛볼테니까'..p.153
에선 뒤로 넘어갈 뻔했다. 하하하, 작가의 자학적 개그라니. 난 지금도 수학정석 앞부분을 풀다가 시험에 들어가는 꿈, 영어텍스트를, 외국 논문을 다 읽지도 한고 프리젠테이션이나 세미나에 들어가는 꿈을 꾼다. 그리고 가끔은 계단을 도약하지만 밑으로는 까마득한, 추락하는 악몽을 꾸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 에피는 작가들만이 꿀 수 있는 그런 악몽이 아닐까 싶다.
원래 저자는 코메디작가라는데 53세때의 어느날 겪은 공포로 하루밤사이에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뭘까? '그를 괴롭혔던 것은 참을 수 없는 식욕에 있었다'라고 하니....뭘까?
개와 바다 (베노 플루드라), 허거덕...
폐쇄된 창 (앰브로스 비어스), 저자의 이름은 꽤 유명하다. 웬만한 공포단편선에는 다 들어가 있다. '....불안이나 죽음의 공포 등 영혼의 극한적인 상태를 에드가 앨런 포우의 전토에 따라 표현했다. 쉬르레알리즘 (초현실주의라 말하면 될것을)의 기법과 죽음의 분위기를 드리우는 무시무시한 효과등이 그의 소설의 주된 표현방식을 이룬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특징은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 종결 (오~오, 나 이런거 좋아해), 아이러니, 냉소적인 위트와 신랄한 풍자 등이다.....' (지은이 소개 중에서)
이제 그의 작품을 읽어보니....오~오~오~! 실망시키지 않는군!
홀로 남겨진 밤들 13일의 금요일 밤 (한스외르크 마르틴), 응? 뭐라구?
톰 홀로 집에 (헤닝 클뤼버), 헉, 쳇! 제목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 영화랑 같지는 않군요.
트롬벨리이 피톤 뱀 (베레나 C. 하르크센), 역시...뿌듯한 마음이다. 죽은 동물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언제든 보답을, 아니 보답을 꼭 받아서가 아니라,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
물고기들과 지낸 밤 (클라우스 뫼켈), 흠...물고기스프라니. 생선스프랑은 어감이 다르잖아! (버럭)
내가 호러물을 좋아하는 것은 (B급호러영화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그대로 선호하는 류는 [슬리피 할로우]나 [What lies beneath] 등), 어쩌면 남자가 에로물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에로물은 별로 안좋아하니까). 호러물을 읽고 있으면 묘한 원초적 쾌락을 느끼는 것 같다. 갑자기 깜짝 깜짝 놀라다가 해소가 되다가 엔딩에 깜짝하면 놀라게 만드는, 매우 익숙한 패턴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익숙치 못한 미지의 것이라면...이때의 공포는 재미의 차원이 아니겠지.
p.s: 1) '책의 중간중간 삽입된 그로테스크한 일러스트레이션은 공포소설을 '보는 재미'를 한층 더한다'는 책소개는 같이 올린 '포토리뷰'를 보시고 판단하시길. 나로썬 I don't think so다.
2) 또 하나, 조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늑대인간의 피가 전해져오니 보름달을 조심하라는 편지를 받았다. 보름달밤 그는 자신을 감옥에 가두고 보름달을 지켜보았다. 그런데....변하지 않았다.
이런, 할머니인지 어머니인지 바람을 피웠나 보다. 하하하하 (난 꼭 이런 괴담만 들으면 이렇게 비꼬고 싶지?)
2005-10-30 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