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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의 밥과 숨 : 슬로우 라이프를 꿈꾸다.
*무엇이 필요한가? 숨 쉬는 것 외에, 배고픔을 면하는 것 외에, 살아있음을 감지하는 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P.21)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고 그리고 밥을 먹는 것. 또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저자에게 나는 할 말이 많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 25살, 욕심 많은 나에겐 삶이란 아직 복잡하고 어렵다. 세월이 흘러 내가 저자의 나이가 된다면 나도 절제하고 단순해지는 일상을 꿈꾸고 있을까. 책을 읽은 후, 저자가 슬로푸드 한국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계신 것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 슬로우 푸드는 공정한 재배과정을 시작으로 깨끗한 재료와 올바른 식사를 지향하는 건강한 삶을 꿈꾼다. 그 철학과 함께하는 이 책은 슬로푸드의 주최로 북콘서트도 진행하였다. 사실 나는 작년 교내에서 진행하는 해외학술탐방의 참가 주제로 '슬로우푸드'를 선택했다. 자취와 기숙사생활을 하던 나의 식생활은 학교 주변 값싼 음식과 인스탄트 식품이 중심이었다. 그렇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슬로푸드 한국협회 관계자분 그리고 청년대표님과 인터뷰도 진행하고 많은 자료들을 공부하며 준비하였다. 최종 합격 후 유럽으로 건너가 시장조사와 거리 인터뷰, 슬로푸드 독일 청년대표와 인터뷰 등 건강한 식문화에 대한 현지탐방을 진행했다. 하지만 비행기 연착과 숙소에서 생긴 문제는 슬로푸드 본부로 가는 기차를 놓쳤고 예상치 못한 지출로 식비를 아끼기 위해 끼니를 맥도날드 햄버거로 때웠다. 슬로푸드 운동의 시작이 맥도날드 반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외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으며 한 여름 유럽의 뜨거운 태양 아래 숨 쉬는 것도,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도 버거웠다. 꿈꿔왔던 상상의 나라 유럽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괄목할만한 결과는 없었고 슬로푸드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문성희의 밥과 숨'을 통해 다시 그 철학을 만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먹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잠자리에 드는 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오늘을 잘 마무리하면 내일이 쉬워질 것이고, 새벽의 시간을 잘 맞이하면 하루의 기둥이 바로 선다. (P.35) *밥상이 단순하고 소박해져야 한다. 그러면 몸이 건강해지고 덧없는 욕구가 줄어들어 삶에 대한 만족감이 커진다. (P.56) 요리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저자는, 조리사 시험을 위한 강습을 시작으로 화려한 요리의 권위자로 성장한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에 억지로 몸을 넣는 허탈함이 커지며 모든 것을 버리고 도시를 떠난다. 어린 딸과 산 속에 둥지를 트고 장작을 패고 식재료를 다듬으며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굳혀간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한 당시의 생활은 딸에게는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저자의 방황 아래서 딸이 겪었을 고통의 시간이 어떨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였다면 과연 견딜 수 있었을지 확신은 없다.하지만 그 시간은 저자와 딸 모두에게 삶을 지탱할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소박한 밥상을 차리며 찾은 안정으로 자신의 옷도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자연속에서 이제 몸에 맞는 옷을 찾았다. 마침내 요리하는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요리와 함께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자연요리라는 것은 사실 내게는 어렵다. 저자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으로 터득한 굳은 심지를 내가 안다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 수수한 음식보다 다채롭고 호화로운 음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나의 전공은 식품의 효과적인 가공 기술과 대량 생산을 배운다. 자연요리와는 정확하게 정 반대의 방향에 서있다. 자연요리의 맛이 어떠한지 문자로는 배웠지만 몸에 와닿지는 않는다. 저자와 딸은 '시옷'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을 요리한다. 금요일 하루 점심에만 예약으로 그 밥상을 맛 볼 수 있는데 꼭 한번 가봐야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찰나를 지나는 과정일 뿐이다.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느낌을 갖는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나의 느낌과 생각은 나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다. (P.154) 히말라야의 고산지대를 오르고 인도의 명상학교에서 수행을 거치며 생각을 정리하고 삶을 단순하게 비워간다. 새벽 명상과 절제하는 식습관으로 일상의 법칙을 지키기도 하고 다시 또 어겨보며 계속해서 자신의 실험을 진행한다. 많은 경험과 인연을 쌓은 저자는 이제 여행에도 모임에도 미련이 없다. 삶을 채워가는 단계에 서있는 나에겐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같지만 현재 저자가 고민하는 월다잉(well-dying)은 결국 나에게도 주어진 숙제이다. 이렇듯 책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음식은 나의 몸으로 들어와 내가 된다.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성찰에 달렸다. 결국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임을 알고, 소박한 재료가 만드는 건강함에 저자는 남은 삶을 걸었다. *어떠한 상황도 변화될 수 밖에 없으며, 어떠한 상처도 아물 수 밖에 없다.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변화될 수 있다.( P.171) 저자의 첫번째 결혼생활은 짧았다. 스무살부터 함께한 남자친구이자 남편은 스물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세월과 함께 외할머니와 이모님, 어머님은 차례로 저자의 곁을 떠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별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나는 두려움에 숨이 탁 막혔다. 언젠가는 나에게 벌어질 순간일 것이다. 꼭 죽음과 이별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기쁨보단 더 자잘한 절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그래도 그 순간순간 나를 잃지 않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응원한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 위해 애쓰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밝아졌고 행복했다. 이처럼 요가의 길은 쉽고 단순했다. (P.195)
저자는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한 뒤에 깨달았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사실 나도 한달 전부터 매일매일 요가학원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아직은 잡생각도 많고 몸도 뻣뻣해서 힘이 든다. 약간의 즐거움과 이미 낸 수강료가 지속의 이유다. 곧 나 자신에게 진정으로 집중하는 시간이 되어 내 삶에 좋은 영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내게 애쓰지 말라는 말은, 지금 무엇이든 더 해야한다는 불안함으로 떠도는 나를 잠재울 수는 없다. 당장 마음을 비우고 소박한 밥상을 차리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내 존재를 인정하고 더 사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고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고 싶다.
이어서 한번 쯤 도전해볼만한 저자의 10가지 죽 요리와 저자의 딸의 혼밥요리 10가지가 나온다. 정갈한 사진과 덧붙인 글들은 책을 보는 것 만으로도 차분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 책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한 사람의 요리인생이 담겨져있다. 건강한 몸과 소박한 마음 그리고 그것의 기반이 되는 음식에 대한 철학이 있다. 누구나 먹는 음식이기에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정갈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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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다.
나이와 음식에 "먹다"라는 동사를 붙은 이유는 두 가지 다 나의 존재 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다. 어딘지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냥 흘러가지 않고 내 몸속에, 내 마음속에 분명히 남는다. 그렇기에 음식을. 나이를.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먹는 것 가운데 하나를 제대로 먹기도 쉽지 않다.
《문성희의 밥과 숨》은 먹기와 숨쉬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참 많지만,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고 소거해나가면 "먹기"와 "숨쉬기"만 남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저자의 글들을 읽다 보면, 음식을 잘 먹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잘 먹은 사람의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과 이를 만드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치열하게 고찰했던 저자의 삶 자체가 글 속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글에 시간의 흐름이 오랜 고목의 나이테 같은 고아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 당연함이 소중해진 때이기에, 《문성희의 밥과 숨》 속 글을 읽는 시간은 즐거웠다.
"먹는 목적을 오직 존재함에 맞추면 삶이 정렬되고 가벼워진다.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걸 실천하는 것이 '절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인,
저자는 먹는 것 하나하나를 남다르게 들여다본다. 그 하나하나가 나를 만드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재료 하나하나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요리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조리하고 반찬 없이 밥을 먹을수록 커지는 사유의 힘"을 얻는 즐거움이 컸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먹을 때 느끼는 즐거움도 크지만 음식을 통해 나의 존재를 들여다볼 때 느끼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 주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게 컸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100% 동의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무엇인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먹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뒤로하고, "진정으로 존재하는 때에 느끼는 즐거움"이 삶의 종심이 된 과정이 어땠는지 말이다.
"전복은 솔로 박박 문질러 씻은 뒤 내장을 따로 떼어내 모아서 오분자기와 함께 젓갈을 담글 때 쓰고, 전복 등에 사선으로 잔 칼금을 넣어 비슷한 방법으로 손질한 갑오징어와 대하를 김 오른 찜 솥에 살짝 익혀낸 다음 졸아든 산적 국물을 솔로 발라가며 석쇠에 구운 이들의 맛은 특별했다."
역시, 저자도 쉽지 않았다. 고기를 포기하는 것이 쉬웠다는 말에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그 뒤에 어패류를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맛깔스럽게 설명한 문장을 읽으며, 저자 역시 보통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 어쩌면 보통 사람들이 "삶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음식을 내려놓기보다 더 힘든 과정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연구가였던 저자에게 "맛있는 음식"은 일반 사람들 보다 더 놓을 수 없는 가치였을 것이다. 자신의 요리 철학이 대다수의 요리사들이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과 조금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과 "맛"은 분리할 수 없는 그 자체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맛'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요리 과정을 거치는 점과 우리 삶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행복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너무 많은 관계를 맺는 데, 장작 그 속에서 나의 행복은 멀리 달아나버린다. 혹은 순간순간 조금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볍고 단순한 살아가는 순간이 주는 희열"을 잃어버리게 된다. 저자는 요리에서 이 깨달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음식 과정을 단순화하고 재료 자체에 집중하면서 "본연의 삶이 주는 즐거움"에 오로지 집중한다. 그렇기에 이는 인내, 수행, 절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선택하도록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삶을 살아내면서 얻은 힘이 나머지 생을 살아가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을 저자가 얻을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 계기에 대해 어렴풋 가늠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죽음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듯싶다. 젊은 시절 저자가 겪었던 인생의 고락은 저자가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아프고 슬픈 과정"이었다. 음식의 묘사와 달리 감정으로 남은 기억을 옅게 스케치하듯 쓴 글이 "슬픔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금 삶의 자리로 돌아오기로 결단한 저자는, 오늘의 삶까지 이어오게 되었다.
"인생은 마라톤이야. 빨리 달리는 것보다 완주하는 것이 더 중요해. 사람들에겐 각자의 속도가 있는 법이란다. 엄마도 늘민하다(어리석다), 늦되다, 뒤숭스럽다(야무지지 못하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있잖니. 슬픈 일이 있더라도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단다.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몰입되지는 말거라. 이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야.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달리되 초반에 너무 많이 힘을 쏟지는 말거라. 지치지 않고 완주하려면 속도를 조절하고 자기 자신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
하지만 저자는 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부모였고, 엄마였다. 슬픔에 젖어 다시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지만 그 방식이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이를 어린 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저자도, 딸도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저자는 슬픔 이후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고,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지만, 딸도 그 시간 동안 엄마와 비슷하면서 다른 무언가를 얻은 것 같다. <디 아워스 The Hours>를 보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어."라고 하는 말과 엄마의 지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고군분투하느라 수고했어, 우리 엄마."라는 말속에서 "그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런 딸에게 삶 전체를 통해서 얻은 것을 고스란히 전하는 저자의 마음에 내 마음이 덩달아 따뜻해졌다.
요리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따라가다 보면,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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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세이 류의 책을 좋아한다. 책을 통해 한 인간의 생각과 살아가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얼마 전 읽었던 한병철의 『땅의 예찬』처럼, 그리고 오늘 읽은 『문성희의 밥과 숨』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꽃과 음식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을, 삶을, 생각을 찾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유한한 삶을 무엇으로 채워나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라는 여러 삶의 방식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너무 많은 관계를 맺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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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한 알의 작은 씨앗에 불과했던 어떤 가능성이 땅에 심어져 흙에 뿌리를 내리고 햇빛과 공기와 비로 키워지는 동안 형체와 성질을 달리하여 산나물이 되고, 콩나물이 되고, 무와 감자가 되고, 쌀이나 과일이 되어서 나를 위한 먹을거리가 된다. 음식을 일생에 걸쳐 연구한 음식 전문가다. 노년이 됐을 때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것 같다. 전문 분야라는 것은 남이 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즉 나만의 분야인 것이다. 너도 나도 다 할 수 있는 것을 전문 분야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전문 분야라는 말이 어느 특정 영역에만 붙일 수 있냐? 그것도 아니다. 모든 것에 다 붙을 수 있는 말이지만, 너도 나도 할 수 없는 것을 전문 분야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전문 분야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을 답습하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전문 분야가 될 수 없다. 전문 분야가 되기 위해선 남을 답습하고 연습을 반복해 나만의 색을 입히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문성희 역시 그렇다. 음식은 누구나 한다. 나 역시도 한다. 그런데 그의 음식은 오로지 요리법만을 보고 할 수 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지금껏 음식을 다뤘던 손이 필요할 것이고 그녀가 음식을 대하는 철학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요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요리를 자신의 색을 입힘으로써 남들이 할 수 없는 그만의 전문 분야를 구축했다. 분명히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포기하고 싶은 시련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 시련을 겪으면 자신의 생각을, 철학을 담아냄으로써 그만의 전문 분야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버텨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순간에 몰입하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복잡하고 바쁜 시간과 시간의 틈 사이를 비집고 고요히 앉아 숨 고르기에 열중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학교에서 요리 실습이 있었다. ‘요리는 요리법만 보고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요리법을 보고도 내가 생각한 맛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요리하는 과정 말고도 준비, 정리 과정은 그 이상으로 힘들었다. 참 쉬운 일은 없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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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여유로운 분위기와 함께 읽었던 책, 엄마의 포근함도 느껴졌던 책이다. 저는 다른 사람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에세이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실 중고등학교때만해도 성공한 사람, 멋진 사람의 글을 읽고 자극 받아서 나도 성공해야지 ! 이런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의 저는 고집도 더 쎄지고 저만의 가치관도 더 성립이 된 상태여서 다른 사람의 책을 읽고 당장 바뀌지는 않는 거 같아요. 특히나 이 책은 지금 현재 너무나도 바쁘게 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도전하고 경험하려는 저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인, 가치관을 가진 책이었어요. 이런 사람도 있고, 이렇게 바뀔 수도 있겠지라고 충분히 생각을하고 지금 제 생활에 회의감이 들 때, 그럴 때 다시한번 꺼내보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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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깃든 밥과 숨, 그리고 삶을 읽다.
책을 읽은 후 드물게 작가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장르나 분야와는 상관 없이 작가의 생각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는 다르더라도 내게 유의미한 시사점을 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신기한 점은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많이 풀어 놓는다고 해서 작가와의 조우가 쉬워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책은 사람이 쓴 것이기에 관계 형성의 매개로 기능하곤 하지만, 그 매커니즘은 직접적인 인간관계 만큼이나 복잡하다. <문성희의 밥과 숨>은 첫인상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던 누군가와 점차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로 발전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 문성희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내보인다. 보통의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개인적 이야기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툭툭 던져내는 것이, 초반에는 조금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내용이 전개되면서 이게 자신이 원하는 말을 전달하는 저자의 방식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저자 그 자체임을 느낄 수도 있었다. 독서를 마무리한 순간에 나는 마치 작가와 막역한 사이가 된 듯한 묘한 기분을 경험했다.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삶을 읽어 내리면서 나와 같지는 않을 지언정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네 부분으로 짜여진 1부에서는 그녀의 삶과 철학을 덤덤히 풀어낸다. 요리를 하신 어머니에게 받은 영향, 사랑했던 연인을 먼저 떠나 보낸 상실감, 딸을 만나고 수행길에 오르며 깨달은 삶의 방식 등이 오롯이 담겨있다. 책에 실린 건 극히 일부분일 것임에도 저자를 만든 경험들은 다소 낯설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먹기와 숨쉬기만 잘하면 생명은 이어진다"는 말,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야.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달리되 초반에 너무 많은 힘을 쏟지는 말거라. 지치지 않고 완주하려면 속도를 조절하고 자기 자신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는 조언은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또 명상을 위해 인도에 다녀 오는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밥도 숨도 거저 얻어진 건 없다. 한편 2부에서는 작가와 그 딸이 엄선한 스무 가지 요리를 소개한다. 작가가 몸에 좋은 열 가지의 죽 요리를 꺼내들었고, 딸은 젊은이들이 쉽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열 가지의 음식을 공개했다. 자연적인 재료와 레시피를 통해 건강을 챙기면서도 모든 연령대가 좋아할만한 메뉴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요리에 담긴 이야기와 그 요리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사진, 그리고 간단한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 내가 만들면 그와 같은 모양새와 맛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 위해 애쓰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것이었다. (166쪽)
스파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삶'을 부정하려 했지만 결국 원래의 길로 회귀한 내게 작가가 추구하는 삶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상과
현실의 기로와 그 속에서 경험하는 무한대의 무기력. 작가에게도 이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닐테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된다"는 이야기로 현실이 곧 이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양자를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건 너무 많은 기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 아닐까. 완전한 이상도 없고, 완전한 현실도 없지만 100%의 만족 혹은 크나큰 성공을 꿈꾸기에 선택이 더욱 어려웠던 것도
같다. 삶에 경향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각각의 삶은 저마다의 모습을 지닌다. 그렇기에 획일적 모습은 '으레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 이렇듯 생각이 꼬리를 무는 과정에서 작가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숨쉬기를 멈출 때, 밥 먹기가 끝날 때,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게 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 (1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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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매일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챙겨 먹었다. 잠도 깨지 않은 채, 입 안 가득 밥을 욱여넣었다. 밥알을 하나하나 씹으면서 잠을 깨웠다. 늦잠을 자더라도, 하루의 원동력은 '밥심'이라는 엄마의 철학 때문에 적은 양이라도 먹고 등교를 했다. 내가 아침밥을 잘 먹지 않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자취를 시작하고서부터였다. 아침밥을 먹는 것보다 1시간 더 자는 것이 중요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아침을 거르기 시작했다. 집에서 조금 일찍 나오는 날이면, 편의점에 들러 인스턴트를 사 먹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밥부터 부실했던 자취생의 밥상에서 '건강함'은 늘 빠져 있었다.
저자 문성희는 자신이 살아가는 것을 위한 증거로 '먹기'와 '숨쉬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일매일 숨을 쉬는 것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숨결을 헤아리는 동안 오로지 나를 위한 밥 한 끼를 마련한다. 그래서 저자 문성희가 택한 방식은 다름 아닌 '생식'이다. 가장 좋은 재료를 골라내어 햇볕에 말린 후 고운 가루를 내어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 또, 몸이 좋은 방식으로 가기 위해 고기와 생선을 끊고, 파와 마늘을 먹지 않는 식습관을 보여준다. 정성 가득한 그녀의 한 끼는 그녀의 몸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어 그녀를 깨운다.
저자 문성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녀가 만든 밥상이 궁금해졌다. 물론 책의 2부에서는 저자 문성희와 그녀의 딸 김 솔이 들려주는 요리 레시피가 나오긴 하지만 내가 그들의 정성을 따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누구보다 자연의 숨결을 담기 위해 노력한 저자 문성희의 건강한 밥상. 그녀의 손길이 닿은 요리 공간에 방문해 그녀가 만든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요리 공간에 들어서는 것부터 건강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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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함’에 집중하기_문성희의 밥과 숨 숨 쉬는 것과 밥은 우리에게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당연한 일이기에 숨 쉬고 밥 먹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게 맞지만 요즘의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작가의 경험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야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 갖가지 일들과 상념에 둘러싸여 잘 느껴지지 않던 내 본래의 존재는 그제야 커다랗게 느껴진다.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 숨 쉬는 것과 밥 먹는 것이다.”_16쪽 두 가지에 집중하면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간단한 일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나를 둘러싼 층들을 하나둘씩 내려놓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작가는 직접 옷을 만들고, 명상을 하며, 생식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가간다. 때로는 신앙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에게 주어진 ‘카르마’가 무엇이며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곱씹는 일은 삶을 바라보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 내 존재가 단단해야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혜안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작가는 명상법과 생식을 택했다. 안정된 마음을 갖기까지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산 속에 들어가 살기도 하고 타국의 성인(聖人)에게서 가르침을 얻기도 했다. 작가의 삶은 평탄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내면의 혼란과 다양한 상황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수많은 일을 겪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그렇게 찾아온 평화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묘하게 고요함이 느껴진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살기 위하여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나는 계속 묻는다.”_189쪽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하게 하려면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계속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각자의 올바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선 자신을 잘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버리고 취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도 바뀌게 될 것이다. 작가의 삶이 되어버린 명상도 그 방법을 알려줄 좋은 수련활동이라 생각한다.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요즘의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정갈한 식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그동안 바쁜 삶에 치여 단순하게 밥을 먹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들이 몇 번이나 있었을지 생각해봤다. 단순하게 이 순간과 나를 형성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단순해지기. 이것은 나의 존재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다 보면 내 신체에 대한 감각도 예민해진다. 몸 속 세포를 형성하는 음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 나는 음식이 가진 에너지가 일상생활과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 집에서 한 밥은 겉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에너지 측면에서 큰 차이가 났다. “영양분만큼 중요한 것은 음식이 가진 에너지이다.…에너지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진기와 허기로 나뉜다. 때로는 생기라고도 표현된다.” _49쪽 바쁠수록 더욱 이 생기를 놓쳐선 안 된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지만 생기를 품은 밥과 그렇지 않은 밥에 따라 하루의 질이 달라진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내 존재는 생기를 바탕으로 활성화된다. 한 때 나에게 밥은 허기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온전히 나 자신을 생각해서 밥 먹는 일에만 집중해도 활력이 생겼다. 숨 쉬고 밥 먹는 것이 일상에서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나를 이루는 세포들이 가진 힘의 원천은 어디서 온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숨쉬기와 밥 먹기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심심한 맛의 반찬과 따뜻한 쌀 밥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진다. 한동안 얕봤던 음식이 가진 힘을 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