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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가 온 토요일입니다. 오랜 만에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 강아지들과 한참 놀다가 미뤄둔 시집을 꺼내 읽었습니다. 매번 제목에 반하게 되는 문학동네 시인선101번 입니다. 함께 온 카드에 인삿말 대신 시집에 있는 시 몇 줄 써넣은 뒤 보낸다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그런 시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첫장에 있는 '시인의 말' 마지막 세 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가서 세계가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니, 세계는 노동한다.
아마 시인은 노동하듯이 그렇게 열심히 시를 썼을 것입니다. 요즘 어떤 시인들은 그렇게 시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노동하듯이 하루 8시간을 지키며. 그렇게 쓴 시들은 참으로 고왔습니다. 한용운이 돌아온 것처럼, 김소월이 돌아온 것처럼 여성적이며 자연친화적이었습니다. 노동의 산물인 시는 그렇게 뾰족한 감정을 매만지고 매만져 모난 부분없이 몽돌처럼 매끈해졌습니다.
60여편의 시는 어디를 보나 따로 해설이 필요없을 만큼 편하고 쉽게 읽힙니다. 독자가 필요한 만큼 읽고 가져다 쓰기 좋도록 충분히 가공되어 있습니다. 오늘 마음에 들어오는 시가 내일 읽으면 싫증날수도 있고, 오늘 아무 생각없었던 시가 내일은 가슴을 파고 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제 마음에 들어온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저녁이 올 때
내가 들어서는 여기는 옛 석굴의 내부 같아요
나는 희미해져요 나는 사라져요
나는 풀벌레 무리 속에 나는 모래알, 잎새 나는 이제 구름, 애가(哀歌), 빗방울
산그림자가 물가의 물처럼 움직여요
나무의 한 가지 한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어요 새들은 나뭇가지를 서로 바꿔가며 날아 앉아요
새들이 날아가도록 허공은 왼쪽을 크게 비워놓았어요
모두가 흐르는 물의 일부가 된 것처럼 서쪽 하늘로 가는 돛배처럼
어디 하나 막힌 데 없이 잘 흘러가는 시어들이 독자의 생각을 막지 않고 충분히 흘러가도록 도와줍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하늘이 어둡지만 어제는 별이 반짝였습니다. 눈에 띄게 반짝였던 샛별을 보며 무슨 생각이라도 해봐야겠다고 궁리했던 어제의 시간이 이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하고 있었는데 이 시를 읽으며 그게 이렇게 표현되어도 좋구나, 싶었답니다.
제목이 들어있는 시를 볼까요.
호수
당신의 호수에 무슨 끝이 있나요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한 바퀴 또 두 바퀴
호수에는 호숫가로 밀려 스러지는 연약한 잔물결 물위에서 어루만진 미로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는데 마음이 쿵 내려 앉습니다. 작고 사소한 일들이 모여 역사가 되고 삶이 되고 바위가 되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내 마음을 붙든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다가 원래 아무것도 아닌 내가 이제는 정말 욕심을 버려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채우려고 하니까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부족함을 아예 몽땅 다 비우는 것으로 없애고 말면 되는데, 그게 또 잘 안되니까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이 시를 반복해서 읽다보니 한없이 주기만 하고 떠났던 부모님 생각도 나고해서 제대로 마음을 건드리는 시에 빠져듭니다.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더 소개해봅니다. 문태준 시인의 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쓴 시입니다.
오솔길
오솔길을 걸어가며 보았네
새로 돋아난 여린 잎사귀 사이로 고운 새소리가 불어오는 것을
오솔길을 걸어가며 보았네
햇살 아래 나뭇잎 그림자가 묵화를 친 것처럼 뚜렷하게 막 생겨나는 것을
오솔길을 걸어가 끝에서 보았네
조그마한 샘이 있고 샘물이 두근거리며 계속 솟아나오는 것을
뒤섞이는 수풀 속에서도 이 오솔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네
시인은 자연에서 삶의 질문을 구하며 부지런히 시를 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처럼 마음 편하게 자연을 느낄 수 없을지 모릅니다. 시를 써야하니까요. 이번 시집에는 유독 자연물을 의인화한 시가 많았습니다.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자연이 대신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오늘은 시집을 읽으며 시인도 무척 고단한 노동자란 생각을 했습니다. 출, 퇴근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시의 거미줄에 매달려 시만 생각해서 쓴 서정이 듬뿍 담긴 시를 읽으며 공연히 가슴이 아팠습니다. 날씨탓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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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새봄이 막 찾아왔을 때 구매했던 시집을 일 년만에 들춰보았다. 그동안 몇 번씩 들춰보긴 했지만 제대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니. 게으르다고 해야 할지, 그저 다른 책들에 밀려서 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산책에 나섰다. 일부러 차가 다니지 않은 길을 향했는데, 미세먼지가 많아도 햇볕이 좋아서인지 양지바른 곳에서는 매화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햇볕에 매화가 눈이 부신 순간이었다. 햇볕도 꽃도 눈부셔 그저 아득하게 좋은 날. 이런 걸 망중한이라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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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첫 시는 <일륜월륜(日輪月輪) - 전혁림의 그림에 부쳐>라는 시다.
아름다운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내 고운 님의 맑은 눈 같았지 님의 가늘은 손가락에 끼워준 꽃반지 같았지 대지에서 부르던 어머니의 노래 같았지 아름다운 바퀴가 영원히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꽃, 돌, 물, 산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이 마음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해와 달은 내 님의 하늘을 굴러가네 (12페이지)
통영에 가면 들르는 곳의 하나인 전혁림 미술관. 미술관 건물에 들어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다. 공교롭게 12월말이나 3월초에 들르는 곳인데, 이번 봄에 또다시 발걸음이 미술관으로 향할 것 같다. 전혁림의 그림에 부친 시를 읽었으니 당연히 다시 보고싶지 않겠는가.
공교롭게 아래 사진도 작년 통영을 방문했을 때 거제 바람의 언덕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바로 읽고 리뷰를 쓰겠다고 다운로드한 사진이 있어 찾는 수고를 덜었다.
오늘 감꽃 필 때 만났으니 감꽃 질 때 다시 만나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요
감나무 감꽃 목걸이가 다 마르려면 오늘의 초저녁 이틀 나흘 닷새 아니면 여를 아니면 석 달 아니면 네 철
하나의 물결이 우리의 손으로 어루만지더라도 암벽에 새긴 마애불이 모두 닳아 없어지더라도 (20페이지, 「그사이에」 전문)
누군가와 아주 짧은 이별을 하더라도 곧 언젠가는 만날 날을 고대하는 언어던가. 우리의 마음만 그대로 있으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상관없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시의 언어는 이처럼 감성적이다. 마음을 툭 건드렸다가 놓아주지 않는다.
숨어 사는 단조로운 쓸쓸한 이 소리가 좋아 텅 빈 양동이처럼 앉아 있으니
컴컴해질 때까지 앉아 있으니
흉곽에 낙숫물이 가득 고여
이제는 나도 허드렛물로 쓰일 한 양동이 가을비 낙숫물 (24페이지, 「가을비 낙숫물」 중에서)
어쩐지 쓸쓸해지는 시다. 인생의 어느 시기를 지나와 이제는 가을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여름비라고 우겨보지만 결국 가을비에 들어서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생의 무상함이 엿보여 나도 몰래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시는 동감의 표시, 동조의 표시.
꽁지깃이 고운 새가 원고지에 내려앉는다 잘게 부스러진 글자를 쪼고 있다 나와 사월 사이 바람이 한들거린다 골격이 없는 남풍은 페이지에 숨는다 남풍은 나의 문장을 어루만진다 너의 부드러운 얼굴을 그려놓는다 작별의 눈물에 얼굴은 풀어진다 반복되는 질문과 습한 우울은 생겨난다 노트는 가랑잎처럼 다시 마른다 (79페이지, 「작문 노트」 전문)
작문 노트를 대하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는 것만 같다. 결을 달리한 바람이 불어와 문장 사이에 숨었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하는 풍경을 그려본다. 써지지 않는 글에 우울함 마저 들지만, 그럼에도 다시 작문 노트 앞에 앉아 있을 정경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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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붙는 동생을 저만치 떼어놓을 때 우는 내 동생의 맑은 눈물이 또르륵 굴러떨어져 피어난 꽃아 (78페이지, 「별꽃에게2」 전문)
아기별처럼 아주 조그맣게 피어있는 꽃. 별꽃을 가리켜 이렇게 아름다운 낱말로 만들다니. 역시 시인의 마음엔 동심이 가득한가 보다. 꽃잎 하나하나가 동생의 눈물 방울이 떨어져 피어난 꽃. 별꽃을 볼때마다 이 시가 생각날 것 같다.
이웃분께서 시집 리뷰를 자주 올려주셔서, 책탑 속에 고이 모셔져 있던 시집을 꺼내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했다. 그래서 꺼내어 들고다니다가 읽은 시집. 역시 시집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언어다. 문태준 시인의 시를 읽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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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앓는 나를 들쳐업고 뛰던 어머니처럼 소낙비는 뛰네
곧 떨어질 것 같은 꽃모가지를 업고 뛰던 내 어머니처럼 소낙비는 뛰네
내 뜨거운 혈관의 맥박인 어머니처럼 소낙비는 뛰네
어머니는 잎 위에서 뛰네
어머니는 돌 속의 돌꽃처럼 뛰네
소낙비를 보고 아픈 아이를 들쳐업고 뛰는 어머니의 심정을 그린 시인가보다. 이 시집에서 가장 좋은 시인데(개인적으로 말이다.) 어머니의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뛰는 어머니의 걸음걸음이 보이는 듯하다. 내가 아플 때 나의 어머니도 이러하셨을 것이기에, 자식을 둔 모든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며 숱하게 겪었을 일이기에 이 시가 내 가슴에서 뛴다. 시의 마지막 '돌 속의 돌꽃처럼 뛰네'는 그렇게 뛰는 심장일망정 어머니이기에 단단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전해져서 더욱 아픈 시로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이제는 연로하신 내 어머니가 조금만 아파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그런 내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에는 비할 수도 없을 것임을 안다. '소낙비' 시가 참 좋다.
절망에게
당신은 허리춤에 요란한 바람과 자욱한 안개를 넣어두었네 내부는 깊은 계곡처럼 매우 신비롭네 외출을 앞둔 당신은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을 거울 앞에서 큰 빗으로 오래 빗어내리네, 장마처럼 저음으로 중얼거리면서 당신은 여름밤의 무수한 별들을 흩어버리네 촛불을 마지막까지 불태워버리네 밤마다 우리를 눈 감을 수 없게 하네 당신은 연륜 있는 의사들을 좌절시키네 지혜의 눈에 검은 안대를 씌우네 그러나 아이들의 꿈인 사과를 떨어뜨리지는 못하리
당신의 고백을 나는 기다리네 허공이 쏟아지기를 기다리는 절벽처럼 꽃을 기다리는 화병처럼
절망의 고백은 어떤 고백일까... '아이들의 꿈인 사과를 떨어뜨리지는' 못하였다는 절망적인 고백일 것이다. 절망이 절망한다는 고백의 아이러니를 상상하며 혼자 웃음짓는다. 시인이 기다리는 고백이 무엇인지는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절망의 절망을 상상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 절망에게 지지 말고 힘차게 살아가자...
석류
윗옷 단추를 끄르듯 웃음이 웃음의 앞자락을 헤치며
석류는 툭 터졌네 넘어진 화병처럼
언제라도 비탄이 없는 악보
속깊은 가을의 정교한 건축
붉은 잇몸의 빛 알알이 조용한 시간의 카펫 위에 흩어지네
커다란 알이 꽉 들어찬 붉은 석류가 그려진다. 입안에 석류알을 가득 머금은 듯하다. 그 달콤함이 입안에 감돈다. 손에 잡힐 듯 그려 놓은 '석류'를 읽으며 당장에 한입 베어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소개한 세 개의 시말고도 좋은 시들이 많이 담겨 있다. 내 마음을 뛰게 하는 시들임에도 이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읽는 내 마음이 그러해서인지 몰라도 왠지 무심한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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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시집 한권씩 통째로 읽는 재미에 푸욱 빠져있다. 한권을 다 읽어야 비로소 시를 읽었다는 느낌이 들만큼, 시에 목말라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한권씩으로는 웬지 성이 차지 않는다. 먹어도 먹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봐도 봐도 갈증이 난다. 왜일까. 왜 만족하지 못할까. 내가 읽은 시집들이 너무 적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와 있는 시집은 많은데, 오랫동안의 독서휴식은 나를 이렇게 목마르게 하고 있다. 그래서, 또 시집을 펼쳐들었다.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태준의 시집이다. 그렇지, 사모하는 데에는 끝이 없지. 끝이 있으면 그건 사모하는 게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한땀 한땀(?) 던지는 눈길. 첫장부터 시선이 고정된다.
"아름다운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 내 고운 님의 맑은 눈 같았지 / 님의 가늘은 손가락에 끼워준 꽃반지 같았지 / 대지에서 부르던 어머니의 노래 같았지 / 아름다운 바퀴가 영원히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 <일륜월륜 - 전혁림의 그림에 부쳐> 일부
아름다운 바퀴가 굴러가는 것이 님의 모습이라면, 삶은 바퀴가 굴러가는 수레 위에 있는 것이네. 그러니까, 문태준의 시들. 님과 함께 하는 노래라는 얘기가 되네. 내 고운 님이 오신다면, 아름다운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영원히 볼 수 있을까.
"홍천사 서선실 층계에 / 앉아 듣는 / 가을비 낙숫물 소리 // 밥 짓는 공양주 보살이 / 허드렛물로 쓰려고 / 처마 아래 놓아둔 / 찌그러진 / 양동이 하나 // 숨어 사는 단조로운 쓸쓸한 / 이 소리가 좋아 / 텅 빈 양동이처럼 앉아 있으니"
- <가을비 낙숫물> 일부
그저 소리가 좋아서 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시는 청량한 느낌이 난다. 마치,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듯한 느낌. 님이 좋으니, 소리가 좋고, 소리가 좋으니, 세상이 좋다는, 그러니까 그냥 다 좋다는. 그리움이 초조하고 긴장되는 그리움인 것이아니라, 맑은 님의 환한 웃음을 기대하게 되는 발랄한 그리움이다.
"당신의 호수에 무슨 끝이 있나요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 한 바퀴 또 두 바퀴 // 호수에는 호숫가로 밀려드는 밀려 스러지는 연약한 잔물결 / 물 위에서 어루만진 미로 /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 <호수>
사모하는 일에 끝이 없고 기다림에도 끝이 없다. 사모하므로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림이 있어 의미있는 삶이 된다. 님의 존재는 크고 그리고 나의 존개도 비로소 커진다. 끝이 없는 사모의 잔잔한 미로. 문태준의 시를 읽는 즐거움은 끝이 나지 않기 때문에 즐겁다. 시를 보고 싶은 마음에 끝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시집을 곁에 둔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시들은 내가 있어서 즐겁고 나는 그 시들이 있어서 즐겁다.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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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 휴일 그 위에 절망에게
이 네 편의 시가 제일 좋았다 아련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있다
* 그 위에 라는 시를 옮겨본다
설레는 물 물의 뿌리에서 자란 새순 위에 푸릇한 꿈 나의 잠 나의 머리 위에 나무 식물원에서 본 종려나무 모든 나무에겐 새가 앉고 새의 울음 위에 조금은 여린 햇살 그 위에 충분한 하늘 그리고 관대한 봄
* 눈 앞에 풍경이 그려지는 것 같다 천천히 읽었고 감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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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돌아오니 - 문태준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사잇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속에서 신록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에고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의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이웃의 목소리는 흥이 나고 커지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새로이 하려 하네 심지어 여러 갈래 진 나뭇가지도 양옥집 마당의 묵은 화분도
봄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봄을 기다리게 된다. 겨울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유도 있지만, 자꾸만 밖으로 나가기 싫어지는 추위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아하는 계절이 없어도, 마치 제자리인 것처럼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사계절의 확실한 구분이 좋아서 견딜 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구분은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이제는 자기 지분을 넓히는 계절들, 내가 싫어하는 계절들 때문에 우울해진다. 겨울이 그렇게 자리잡는 것 같기도 하고...
문태준 시인의 시 구절처럼, 봄이 오는 소리는 제법 향긋하고 살랑거리고 괜한 흥이 날 것만 같은데. 현실에서 마주하는 봄은 너무 짧아서 아쉬우니 이 짧은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다시 돌아올 봄이 또 언제 있었냐는 듯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계절이 흐르는 게 자연스러우니까. 추위를 겪는 지금보다 따뜻해질 봄이 기다려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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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 (문학동네시인선 101)
문태준 시집 문학동네 출판
‘복수초가 피면 제주에는 봄이 온다’ 오늘 문태준 시인님과의 줌토크에서 제주에는 풀이 참 많은데 봄이 오는 것은 언덕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어요.
한 권의 시집이 주는 충만감, 이 계기로 시집을 읽으며 쌓이고 쌓이는 충만감은 큰 선물이 될 것이고 이것은 소중한 것이라 하셨어요. 요즘 저도 어려워서 시도조차 안한 시들을 찾아서 읽는 나를 발견할 때면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이 시도들이 쌓여 소중한 것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재현 편집자님은 이 시집은 기다림, 만남,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의지가 남는 시로 새해 읽기 좋은 시집이라 했는데 공감이 되었어요. 아직 겨울이지만 봄과 닮은 시집으로 시작해서 마음은 따스했습니다.
<어떤 모사>
마른 풀잎의 엷은 그림자를 보았다
간소한 선(線)
유리컵에 조르르 물 따르는 소리
일상적인 조용한 숨소리와 석양빛
가늘어져 살짝 뾰족한 그 끝 그 입가
그만해도 좋을 옛 생각들
단조롭게 세운 미래의 계획 저염식 식단
이 모든 것을 모사할 수 있다면
붓을 집어 빛이 그린 그대로 마른 풀잎의 엷은 그림자를 따라 그려보았다
*** 문태준 시인은 <어떤 모사> 라는 시를 보면 지금 제주의 풀밭에 사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이 시가 특별하게 생각되었다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생각과 빛과 물 소리들을 모사한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반대로 모사를 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일상의 일부를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사이에>
오늘 감꽃 필 때 만났으니 감꽃 질 때 다시 만나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요
감나무 감꽃 목걸이가 다 마르려면 오늘의 초저녁 이틀 나흘 닷새 아니면 열흘 아니면 석 달 아니면 네 철
하나의 물결이 우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더라도 암벽에 새긴 마애불이 모두 닳아 없어지더라도
*** <그사이에> 시가 기억에 남아요. ‘감꽃 필 때 만났으니 감꽃 질 때 다시 만나요’ 라는 문장에서 꽃이 피고 지는 동안의 시간이 언제 일지 알 수 없으나 언제든 꼭 다시 보자는 기다림이 느껴졌어요.
미륵이나 돌처럼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다른 시에서도 자주 보였는데요. 지금은 헤어진 연인일 수 도 있지만 만나는 동안의 예쁜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하기도 하고,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듯하기도 한 감꽃 필 때의 시간을 돌처럼 나는 그 때의 나로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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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당신의 호수에 무슨 끝이 있나요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한 바퀴 또 두 바퀴
호수에는 호숫가로 밀려 스러지는 연약한 잔물결 물위에서 어루만진 미로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 <호수> 시는 시 제목처럼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장을 발견했을 때 기뻤고,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구절은 사랑의 감정을 흔들리는 물결에 비유한 것이 꼭 나 같아서 와 닿았어요~
<사랑에 관한 어려운 질문>
너는 내게 이따금 묻네 너와 나의 관계를 그것은 참 어려운 질문
그러면 나는 대답하네 나란히 걸어가면서
나는 너의 뒷모습 나는 네가 키운 밀 싹 너의 바닷가에 핀 해당화
어서 와서 앉으렴 너는 나의 기분 위에 앉은 유쾌한 새
나는 너의 씨앗 속에 나는 너의 화단 속에
나는 너를 보면 너의 얼굴만 떠올리면 산나무 열매를 본 산새처럼 좋아라
그러면 너는 웃네 분수 같은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등불 남을 온기 움직이는 별 멀리 가는 날개 여러 계절 가꾼 정원 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 풀에게는 풀여치 가을에게는 갈잎 귀엣말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저녁 서로의 바다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파도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 날마다 석양 너무 큰 외투 우리는 서로에게 절반 그러나 이만큼은 다른 입장
<꽃의 비밀>
숨을 쉬려고 꽃은 피어나는 거래요 숨 한 번 쉬어 일어나서 일어나서 미풍이 되려고 피어나는 거래요 우리가 오카리나를 불던 음악 시간에 꽃들은 더욱 보드랍게 피어났지요 꽃밭에서 꽃들은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 홍조를 얹고 호흡을 주고받고 서로의 입구가 되었지요 꽃들은 낮밤과 계절을 잊고 사랑하며 계속 피어났지요
*** 옛 사랑의 기억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꽃의 비밀에서 ‘숨을 쉬려고 꽃은 피어나는 거래요’ 문장처럼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서 예뻤던 기억을 가슴 속 꽃 한송이 피어있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다린다고 그리움을 볼 수 없겠으나 그리움. 하면 그 때의 기억뿐이예요.
<작문 노트>
꽁지깃이 고운 새가 원고지에 내려앉는다 잘게 부스러진 글자를 쪼고 있다 나와 사월 사이 바람이 한들거린다 골격이 없는 남풍은 페이지에 숨는다 남풍은 나의 문장을 어루만진다 너의 부드러운 얼굴을 그려놓는다 작별의 눈물에 얼굴은 풀어진다 반복되는 질문과 습한 우울은 생겨난다 노트는 가랑잎처럼 다시 마른다
*** 산책할 때 꽃봉우리들이 꽃이 피고 초록잎이 무성해지는 나무들을 볼 때 생동하는 자연을 느낍니다. 늘 보는 식물들의 모습으로 우리의 현재를 보는 것 같아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미륵 석불>
나는 당신을 기다려요 산나물과 나무 열매를 얻으러 산속으로 간 당신을 기다려요 금방 돌아오마고 아랫마을로 간 당신을 기다려요 산들바람이 내게 불어오는 것을 보고도 나는 당신이 올줄을 알아요 떠났던 자리로 당신이 다시 올 줄을 알아요 큰 산 아래 작은 언덕은 홀로 앉아 길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당신은 저녁보가 한 발 앞서 오세요 개밥바라기보다 먼저 능선을 넘어 오세요 밤의 검은 암벽을 지나 오세요 어제의 오해가 다 풀리지 않았더라도 새벽이 오는 것처럼 제 앞 아니더라도 어디에든 당신은 돌아오세요
#내가사모하는일에무슨끝이있나요 #문태준 #시집 #문학동네 #독파 #북클럽문학동네 #겨울시집 #문학동네시인선 #완독 #내돈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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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시인선은 항상 믿고 구매합니다. 구매한 시집이 항상 실망시키지 않았거든요. 왜 때문인지 문태준 시인은 제대로 접한 적이 없더라고요. 이번에 구매할 시집 찾아보면서 알게 됐는데 시들이 너무 취향저격이라 바로 구매했습니다. 당신은 허리춤에 요란한 바람과 자욱한 안개를 넣어두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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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창가에 놓아다오 화분이 그러하듯이 나로부터 뭔가 나오고 계속 자라게 - 어떤 부탁 - 이상의 집에서- 시집은 얇고 시인의 시는 간결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것 같다. 만일에 내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창백한 서류와 무뚝뚝한 물품이 빼곡한 도시의 캐비닛 속에 있지 않았다면 맑은 날의 가지에서 초록잎처럼 빛날 텐데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시인은 우리가 지나온, 그리고 잃어버린 이 세계의 아름다움에 빛나는 가치를 부여해왔다는, 해설의 문구가 공감이 되는 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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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책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사랑스러운 색감의 시집이어서 좋았다. 그게 문태준 시인의 작이어서 더 좋았고.
1970년대의 첫차를 타고 태어난 중년의 감성에 아직도 가슴이 아린 일은 내가 작가에 상관없이 시집을 읽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시집을 다 읽고 나서 그가 불교 방송 피디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종교는 없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서 이 시집을 읽게 되서 더 놀라웠을지도 모른다. 관심이 생겨 인터뷰를 찾아 보던 중
“시는 샘물과 같으며, 봄이 되면 새순이 돋듯이 도처에서 시가 생겨난다”는 문 시인은 벌써부터 다음 시집에 대한 구상에 들어갔다. 차기작은 생명에 관한 짧은 단시를 쓸 계획이다. 그는 “예전부터 ‘시의 위기’라는 말은 수없이 많았지만, 뿌리가 깊은 봄 나무처럼 시는 늘 살아났다”면서 “최근 불교계에도 실력 있는 젊은 문인들이 불교적 상상력을 통한 좋은 시를 많이 선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나 역시 불교적 안목을 갖춘 ‘시심’을 유지하는 시인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라는 말을 보았다.
신작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