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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책 중에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란 게 있었는데요. 일리노이 大 교수 로이드 이스트만의 저서였고 동양사학의 대가인 故 민두기 교수가 번역했던 명저였습니다. 그리 두껍지는 않지만 영미 진영의 세계사적 전략에서 뼈아픈 후퇴였을 듯한 중국 대륙의 적화를 냉랭히 분석한 내용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이면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들이 알게 모르게 덩샤오핑 치하의 중국에 다녀들 오고 할 시절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장개석이 참 나쁜 사람이다. 이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을 저리 못살게 내버려뒀으니..."였는데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글쎄요. 저런 코멘트의 요지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넉넉한 발전을 진즉부터 이뤘어야 할 중국이.."였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너무도 크게 바뀌어 뭐라 평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싸움이건 뭐건 "패하고 싶어서 패하는" 사람이나 진영은 없습니다. "왜 졌냐?"고 물으면, 누구에게서건 "응. 지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주 까탈을 부리자면 "왜"가 아니라 "어떻게"가 옳다고 토를 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버드의 모범생이었던 존 F 케네디가 자신의 책으로 <와이 잉글랜드 슬렙트>란 낸 사례도 있듯, "왜?"라는 의문 부사는 그간의 경위를 묻는 취지로 넉넉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왜 자고 있었으며, 장개석은 왜 기존의 권위와 체제를 지켜 내지 못하고 섬으로 도주하였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나 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듣고 싶어하지만 당연히 이런 난문이 그리 쉽게 해결될 리가 없습니다. 청나라는 왜 멸망했는가? 이 질문 역시 생각하면 할수록 수수께끼입니다. 정복 민족 특유의 호탕하고 클린한 기풍에다, 여태 없던 정교한 통치 기제, 생산 체제의 정비까지 깔끔히 마치고, 각별히 뛰어난 유전자를 대대로 물려받은 듯한 영명한 군주들까지 연이어 출현했으며, 농경 문화권을 내내 위협했던 북방으로부터의 위협도 (자신들이 대표 주체였던 만큼) 거의 항구적으로 제거한 판에, 수천 년 간 이어져 온 農과 牧의 변증법적 대립은 진화한 合으로 영원히 승화된 듯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몽골의 원이 외화내빈이었다면 여진의 청은 명실상부였습니다. 적어도 초중기까지는 말입니다. "모택동 동지는 '역사를 읽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현대 독자의 눈으로 다소 어색한 구석이 보이는 건, 이 책의 저자가 마오를 "동지(물론 공산주의의 맥락에서)"라 부를 수도 있을 만큼 아득한 원로 세대 학자이기 때문입니다. 왜 청조는 멸망했는가? 저자가 짚은 중요 포인트는 바로 "변질"입니다. 무엇이든 야심찬 배포를 품고 새로이 시작할 때에는 못 이룰 일이 없을 만큼 대단한 기세를 보입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어느 누구도 필연적 쇠퇴, 사멸의 경로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우아한 방식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날개를 접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문제를 잘 파악하면 올바른 해답은 반절 정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쉬워 보이는 듯해도 따지고 보면 세상만사가 모두 난제이며, 또한 초등 수학만큼이나 쉽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