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10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6.0
리뷰 총점 종이책
노작가의 뛰어난 통찰성
"노작가의 뛰어난 통찰성" 내용보기
소설 푸른꽃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 노발리스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열 두 살의 소녀 조피를 사랑했던 노발리스는 그녀와 약혼을 했지만 그녀는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죽고 만다. 노발리스가 조피를 사랑하면서 겪는 애틋한 마음과 사랑의 본질에 눈뜨는 과정이 이 소설엔 투명하면서도 생생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내겐 투명한 문체에서 엿뵈는 설렘이나
"노작가의 뛰어난 통찰성" 내용보기
소설 푸른꽃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 노발리스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열 두 살의 소녀 조피를 사랑했던 노발리스는 그녀와 약혼을 했지만 그녀는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죽고 만다. 노발리스가 조피를 사랑하면서 겪는 애틋한 마음과 사랑의 본질에 눈뜨는 과정이 이 소설엔 투명하면서도 생생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내겐 투명한 문체에서 엿뵈는 설렘이나 사랑의 과정보다 몇가지 대사와 문장만이 기억된다. 문체는 투명할 정도로 섬세하나 일정한 서사는 기억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61세의 나이에 소설가로 이름을 얻은 피넬로피 피츠제럴드의 능력이 아닐까. 연륜이 주는 삶에 대한 통찰성,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 빚어낸 단 몇마디의 언어가 이 소설의 매력이며 피넬로피 피츠 제럴드의 재능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노발리스가 조피에 대한 느낌을 서술한 대사들이 나의 그런 생각을 굳혀준다. 사랑은 서로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가까이 있는 것만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만났을 때에도 아무런 간격을 느끼지 않는 것이란 대사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그 지독한 열병에 빠져 본 사람은 위의 대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고통에 대한 인식을 서술한 작가의 문장 역시 내 깊은 심연을 잔잔히 흔들어 놓으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병에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하는 조피에게 그녀의 언니 프리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 정직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고통이란 것을 몰랐단다. 태어났을 때부터 고통이라고는 몰랐기 때문에 마흔 다섯 살이 되어서도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고, 의사를 부를 생각도 못한 채 죽음의 신을 맞았지. 기침 때문에 고통을 겪는 조피를 위해 들려준 프리케의 이야기에 조피는 그 사람이 복이 많았나봐, 라고 대답한다. 이때 프리케는 이렇게 말한다. " 천만에. 고통을 느낀다는 건 자기가 병들었다는 경고인 셈인데, 그 사람은 그런 경고를 받지 못했던거야." 프리케의 말에 의하면 고통이란 병이 들었다는 걸 알리는 일종의 경고이다. 인간은 고통을 느낌으로인해 병을 치료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통이란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주신 인자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렇게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통찰력을 이 소설의 곳곳에 아름다운 문장으로 배치해 놓았다. 나는 고통을 느끼는 조피와 그녀를 위로하려는 프리케의 대화를 읽으면서 마음의 고통도 신이 주신 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에게 뼈아픈 고통이 온다면 우리는 그 고통과 원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생각해 봄으로인해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혹은 반성해 볼 수도 있고, 또 그럼으로인해 심적 성숙으로 치달을 수 있지 않겠는가. 고통이란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작가의 육성에 나는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인의 사랑과 노발리스의 애정에도 불구하고 끝내 숨을 거두는 조피를 보았을 땐 내 마음에도 깊고 슬픈 울림이 왔다. 열 다섯 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음이라니, 그리고 그만한 나이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아야 하다니. 조피의 꺼져든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노발리스의 슬픔에 나는 내 마음에도 쓸쓸한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일들을 몹시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예순의 나이에 이르면 삶과 죽음을 한 통속의 일상으로 보아 넘길 수 있는 눈이 자연스레 생기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 나이 동안 거쳐간 숱한 삶의 모습들이 모든 것을 담담히 보아넘기게 해 주겠지. 열정이 지나간 나이, 그 때에 느끼는 감정들은 또 얼마나 스산한 것일까......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깊은 통찰력으로 주목한 작가 피넬로피 피츠 제럴드,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 낭만주의 시대가 품고 있던 철학과 문화도 세밀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니깐 이 소설엔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의 사랑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열정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란 어떤 것인가? 이 세계 너머, 아주 먼 세계에 이 세계와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이 팽배해 있던 시대가 아닌가. 그렇다면 노발리스는 저 세계로 떠난 조피를 여전히 살아 있다고 느끼고 있지 않을까......그리고......저 세계에서 다시 만났을 때 아무런 간격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떠나 있을 때조차도 당신이 뚜렷하게 떠올라서 여전히 가까이 있는 것만 같고.....,우리는 미리 똑같이 시간을 맞춰 놓은 두 개의 시계와 같아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아무런 간격이 없고......여전히 동시에 움직이고 있지요
m****r 2001.08.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