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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들의 방문으로 2011년 퓰리쳐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제니퍼 이건이 벨기에 여행중 1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 성에서 영감을 얻어 이 세번째 장편소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책속에 나오는 아성은 아기牙旗를 세운 성이란 뜻으로 주장主將이 거처하는 성을 말한다는 군요. 아牙 는 어금니 "아" 인데 아성이란 보통 성주가 거주하는 제일 중요한 성을 의미하는것 같습니다. 장르는 고딕소설에 속하는데 고딕소설이란 18세기중엽에서 19세기초기까지 영국에서 유행한 중세의 고딕식 고성을 배경으로 공포,추리,괴기,음모 등을 주제로한 소설 입니다.
두개의 큰 틀에서 이 소설은 전개되는데,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 아성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뉴욕을 떠날수 밖에 없었던 대니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어릴때 친구 하위의 초청으로 독일,오스트리아,체코 국경사이에 있는 어떤 고성으로 향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고성을 상상속의 호텔로 만들고 싶어하는 하위와 그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주변인물들.. 아성을 뺏기지 않으려는 백작부인과의 조우, 그리고 추락으로 인해 부상을 입은 과정에서. 하위의 아내 앤의 비밀을 알게되고, 어릴적 하위를 동굴속 웅덩이에 버려둔채 달아났던 대니는 고통스런 환상의 세계를 배회합니다. 고성아래 동굴 탐사를 통해 하위는 대니를 동업자로 인정하게 되지만, 앤의 비밀과 자신을 지키려는 하위의 심복 믹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홀리와 레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혼생활과 불우한 인생에 대한 좌절감을 약물로 달래며,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홀리는 대학에 취직을 하게 되면서 새출발의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문예창작 석사과정을 시작하던 중 대학의 추천으로 교도소의 강의를 맡게 되고, 그곳에서 강의를 듣던 파란눈의 죄수 레이를 통해 삶의 행복을 조금씩 느끼게 되나 레이의 부상으로 만나지 못한채 종강을 하게 됩니다. 어느날, 레이의 글과 편지가 날아오고, 경찰은 레이의 탈옥을 알리면서 홀리의 공범여부를 조사하게 되고, 다시 홀리는 마약혐의로 구속되었다 풀려나게 됩니다. 탈옥한지 1개월이 지나면서 레이는 연락이 없고, 심한 우울증에 빠진 홀리는 재충전을 위한 여행장소로 유럽을 선택하게 되고, 그곳에서 아성 The Keep이란 호텔을 발견합니다. 레이의 소설속에 나왔던, 레이의 흔적이 느껴지는 아성에서 그녀는 레이와의 상상속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행복..삶의 기쁨을 찾아내면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 두가지 큰 테두리속에서 장면을 빠르게 전환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색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고전을 좋아하는 제겐 약간 난독의 경향이 있었지만, 제니퍼 이건 특유의 느낌을 공유할수 있는 책 이였습니다.
오래된 성 과 감옥, 과거와 현재, 소설과 현실을 빠르게 움직여가는 장면의 전환과 대니와 하위, 하워드와 데이비드, 레이와 홀리 라는 인물의 대조가 매력적인 책으로 느껴집니다. 역자의 말대로 "그 희한하게 아름다운 체험의 기회"를 가질수 있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그 줄거리와 재미가 가슴속에 담겨지는 기분이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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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써왔는지. 디즈니랜드가 그렇고,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그렇다.
'상상'의 힘이란 기실 고대부터 인류를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었고 지금의 문명을 있게 한 재료였다. 그런데 이제, 정보사회라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상상하는 힘을 잃게 되었다. 잠시라도 스스로의 머리 속을 유영하는 틈을 주지 않은 채, 사람들은 초 단위, 분 단위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리며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주인공 대니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온갖 정보기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 끊임없이 '피상적인'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어느 관계도 진실되게 갖고있지 못하다는 증거다. 본인의 내면에 확신이 없는, 이 상상ㅇ력의 부재가 결국 끊임없이 다른 이들로 자신을 채우려 하는 대니라는 인물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위는 그것을 보완하고싶어 하는 존재다. 그는 (약간 이상한 방식이긴 하지만)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환각이 될 수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피상적인 관계가 없으면 잠도 편히 자지 못하는 이들을, 아날로그적인 '생각'의 세계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위는 사람들이 개개인의 이야기를 만들기를 원한다. 중세의 성이라는 배경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걸음 나와서, 이야기를 짓는 자가 있다. 대니와 하위를, 킵을, 묘령의 여인들을 지어내는 자가 있다. 그는 또한 아성(keep)과도 같은 감옥 안에서 이야기에 침잠하는 사람이다.
거미줄과도 같은 관계를 따라가다보면, 중앙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짓고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중 최고다.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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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인이 된 뒤 아침에 일어나는 것 때문에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6시에 일어나야 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핸드폰 알람은 기본, 미니컴포넌트를 이용해 6시면 락 음악이 나오도록 시간을 맞췄다. 그런데 어느 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황당한 꿈을 꿨다. 내가 일어나서 음악을 끄고 화장실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곤 열심히 씻고 회사로 출근하는.....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게 꿈이었다-_- 덕분에 지각을 했는데 기분이 정말 묘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꿈을 꾸는 나 조차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꿈을 꿈이 아닌 현실로 받아드린 것도 황당했다. 그런데 분명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소설들의 플롯은 어느 정도는 정형화 돼있다. 이야기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주인공이 있으면 그 주위엔 조연들이 있다. 가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건 둘 중 하나다. 정말 상상력이 뛰어나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소설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안드로메다 같은 소설이거나. <킵>은 어떤 소설일까?
성을 호텔로 개조하는데 도와달라는 친척의 부탁을 받는다. 어떤 제안이나 설명도 없이 비행기 티켓만 날아온 상황. 낡은 성에 아무 것도 없고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묘한 분위기에 빠져든다. 그 친척은 어떤 식으로 리모델링할지 얘기조차 없이 알 수 없는 성에 이리저리 배회하기만 하는 주인공. 이게 하나의 이야기로 흐른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글로 쓰는 수감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또 다른 이야기. 무료한 생활에 벗어나기 위해 글쓰기 강의를 듣는데 강의 때마다 글로 쓴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로 다른 두 이야기가 묶여 묘하게 흘러가는데도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내려 놓지 못하게 만든다.
<킵>을 읽는 내내 정말 다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한동안 정신이 멍했을 정도다.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는 미스터리적인 이야기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제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당신도 한번 도전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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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곳, 호텔 '킵'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문구인가... 그러한 환상적인 곳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판타지 가득한 동유럽 어딘가의 고성과 중독성 강한 스마트 폰이 위세를 떨치는 뉴욕이 공존하면서 '킵'은 쉴새없이 두 세계를 공존하면서 보여주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다 이 이야기에 익숙해질만했을 때, 난데없이 이야기 속에 적극 개입하는 화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누구인가하는 궁금증과 함께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이 이야기 전부를 쓰고 있는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 레이이며 그를 글쓰기와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홀리의 이야기로 연결되며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미로 속으로 내달리게 된다.
뉴욕에서 커다란 성공을 꿈꾸었지만 이인 자에서 결코 벗어나 본 적이 없고 그나마 그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인생의 고달픈 기로에서 선 대니는 꼬여가기만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동유럽 어딘가에서 9백년 된 고성을 신개념 테마파크로 개조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한 사촌 하위의 연락을 받고 무조건 떠나오게 된다. 그런데 사촌 하위와는 어린시절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껄끄러운 관계이고 이보다 더 끔찍한 것은 하위에 대한 대니의 죄책감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도착한 고성은 유선 전화도 먹통이고 스마트 폰도 되지 않는 폐쇄적인 공간이었기에 통신 중독자인 대니는 거의 공포에 질리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나약했던 어린 시절과 전혀 다르게 변한 부자 사촌 하위는 당당한 자신감과 함께 고성 테마파크를 진행하고 있고 아름다운 아내, 아이들, 그리고 거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믹과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대학원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니는 그들과 동화되지 못한 채, 겉돌며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고 골머리를 앓게 되고 우연히 고성의 가장 안전한 곳이자, 위험한 곳인 '아성'의 창가에 서 있는 아름다운 금발머리 소녀를 보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없이 펼쳐진 고성의 복도와 비밀로 가득한 미로로 이루어진 9백 년 된 성으로 정처 없이 이끌게 된다. 그리하여 읽는 독자는 살짝 흥분되는 기대감과 두려움과 함께 작가가 이끄는 그 곳으로 한 발 내딛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결코 끝나지 않을 그 이야기 속으로.......
'킵'은 우선 묘하다. 9백 년 된 고성에서 환상 가득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다가도 레이와 홀리가 있는 현실의 삭막하고 짠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고 온통 회색빛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바로 그 때, 다시 환영과 환상이 공존하고 우리가, 당신이,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곳인 호텔 '킵'으로 안내한다. 물론 호텔 '킵'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바로 '킵'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는 시작되는 곳이고 당신이, 내가 만들어내고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킵'의 이야기는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인 것이다. 이쯤에서 갑자기 살짝 골몰해지고 두려워지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꿈꾸고 상상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텔 '킵'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상상이 무엇일까? 무수한 비밀과 사연이 가득하고 환영이 가득한 고성에서 고딕소설, 영화 한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완전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의 한 장면이 되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럼 완전 공포인데......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킵'의 세계를 만나보고 싶어진다. 무한한 상상력과 현실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소설 '킵'을 통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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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감옥에서 작문 수업을 받는 범죄자와 작문 강사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이 먹어서 사업이 망한 뒤에 어려서 괴롭혔던 사촌에게 부양받는 입장에 처하게 된 예전에 잘 나갔었던 남자의 이야기. 두 이야기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진행됩니다. 나름의 반전이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첫번째 이야기속의 범죄자가 작문 수업을 들으면서 쓴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야기에 첫번째 이야기 속의 범인의 마음이 들어난다면, 이것이 중요한 반전이 될 테지만, 두 이야기 속의 연관 관계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냥, 식스 센스의 반전..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는 반전이지만 영화가 끝이나면,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는 반전... 그런 반전이지요. 두번째 이야기는, 어려서 괴롭혔던 사촌이 나중에 성공해서 다 망한 자신을 구해줍니다. 그리고는 외진 곳의 성을 개발하는 책임자로 발령을 내지요. 낯선 곳에서 혼자 성을 돌보면서, 주인공은 고민합니다.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주지? 내가 괴롭혔던 것을 용서한 것인가? 잊은 것인가? 아니면, 지금 그 예전일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인가? 주인공은 혼자 모르는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겪어가면서 조금씩 미쳐갑니다. 마치 샤이닝에서의 잭 니콜슨 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순간 "짠" 사실은 다른 이야기 속의 소설일 뿐이지! 하고 끝이 나 버립니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쓴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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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은 다층적으로 다층적이다. 영어의 명사 ‘keep’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아성. 둘째, 감옥. 어떤 상태를 유지하게 둔다는 동사 ‘keep’에서부터 사람을 ‘킵’한다는 생각에서 두 가지 의미의 명사가 파생되었을 것이다. 첫째는 자의로, 둘째는 타의로. 그러나 적군을 피하기 위해 아성에 들어가거나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다면 어쨌거나 모두 외부와 닿을 수 없는 소통 불가의 상태가 된다. 여기서 제니퍼 이건은 또하나의 층위를 건설한다. 외부와의 연락 두절이 자연스럽게 내면으로의 침잠, 나를 관찰하는 성찰을 이끌어낸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친밀하지 않다 하더라도 언제나 수많은 타인들 속에 존재하고자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하는 대니, 하다못해 별을 보면서 자신이 세상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대니는 그래서 이 책의 첫번째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단절과 외로움을 극복하고 내면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대니가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대니를 첫번째 주인공이라고 한 것은 두번째, 세번째 주인공이 있기 때문이다. 대니 이야기의 화자는 꽤나 시니컬하다. 대니라는 인물과 그의 심정 묘사에서 시작하여 꽤 긴 괄호 안의 영역을 차지하면서 점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마침내 4장에 이르면 자신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내고 스스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아성에 갇힌 대니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수감자, 레이. 그러나 이렇게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 대니 이야기는 박진감을 상실한다. 독자는 대니 이야기가 레이의 머릿속에서 나온 허구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니퍼 이건은 이 이중 구성을 포괄하는 또하나의 층위를 만들어 대니 이야기와 레이 이야기를 엮어내고 둘 모두에 ‘실제로 있을 법하다’는 현실감을 부여한다. 세번째 주인공 홀리가 등장하여 대니 이야기 속의 믹과 레이, 어쩌면 대니까지도 하나의 인물이라는 점이 밝혀지고, 전체 이야기의 화자, 또는 저자는 홀리가 된다.
극단적으로 실험적인 형식의 소설은 문단 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지 모르나 독자로서는 ‘그래서 어쩌라고?’가 반응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니퍼 이건은 마치 마뜨로슈까와 같은 다층적 구조를 통해 형식적 실험을 시도할 뿐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자기 내부의 마뜨로슈까를 분해하여 뜨거운 내핵에 다다르고, 이로써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어째서? 하위의 부인 앤이 호텔의 존재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말한 수영장에 몸을 담그자마자 기나긴 우울증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오는 여인처럼, 그리고 (결국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특이한 호텔을 찾아가 수영장에 들어가면서 우울증과 마약으로부터 벗어날 활력을 되찾는 홀리처럼, 내면으로 침잠하여 자기와 소통하는 것이 과거의 상처와 그로 인한 아픔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라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텍스트를 제멋대로 해석할 권리를 가진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나는 홀리가 1부부터 3부까지 이 이야기 전체의 지은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원고를 보내 이야기를 완성해달라고 한 레이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홀리 자신의 과거로부터 해방되었을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자신이 만들어낸 죄책감의 족쇄에서, 표면적으로는 감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레이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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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 [킵(The Keep)]에서 작가는 매우 대담하고 실험적인 구도를 채택하여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이름 모를 고성에서 겪는 통신 중독자 ‘대니'가 감옥에서의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싶다가 감옥에서 문학 수업을 받는 ‘레이'가 ‘대니'의 이야기를 쓰고 있고 이 이야기를 수업을 하는 ‘홀리'가 읽고, 고성에서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전개되다가 마치 아마추어가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듯 뜬금없이 중간에 장면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나가기도 하는 등 혼란스럽다. 그러나 계속 읽어 나갈수록 하나 둘 선후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어느새 스며들어온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되면서 작가의 대담한 구도와 전개를 느낄 수 있었다.
접속되지 않은 상태를 단 일초도 견디지 못하는 통신 중독자 ‘대니'. 그는 어쩌면 이토록 거대한 소통의 세계를 살면서 역설적이게도 유래 없는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TV, 라디오, 유선 전화의 시대를 넘어 인터넷, 휴대폰, SNS 까지 개개인이 수많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연결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모습을, 모든 연결이 끊어진 고성에서 단 하나의 강렬한 연결을 갈망하는 ‘대니'와 한 마디 말로 자신의 문이 열린 것을 깨달은 ‘레이' 그리고 그 문을 열어준 ‘홀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모든 전자 기기를 끊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 대화하는 ‘고성'에서 우리는 진정한 소통과 자유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한 편 두 편 리뷰라는 명목으로 부족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책 읽기에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읽으면서 어떤 리뷰를 쓸 것인가 구상하게 된 것이다. 인상적인 구절을 만나면 메모를 해 두기도 하고, 어떻게 리뷰를 시작하고 어떤 이야기를 중심에 둘 것인지, 등등……. 그러나 가끔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도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가닥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그저 재미가 없다거나 아무런 느낌이 없다거나 하면 오히려 쉽다. 그 ‘없음'을 이야기 하면 되니까. 하지만 아주 드물게 무엇인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무엇인가 받았음에는 분명한데 우윳빛 반투명한 막에 가려져 있는 듯한 ‘모호함', 이럴 때가 난감하다. 답답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제니퍼 이건'의 [킵]은 이렇게 드물게 만나는 감각의 소설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필자가 [킵]을 만난 것은 ‘알라딘'의 광고를 통해서였는데,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광고의 전체적인 느낌은 ‘수수께끼의 고성으로의 초대'같은 느낌이었다. 귀가 얇아서인지 타인의 의견에 쉽게 경도되는 편이라서 서평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소개글도 잘 읽지 않는 편인 필자에게 당연하게도 [킵]의 이야기는 미스테리 혹은 스릴러의 장르로 은연중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새하얀 반투명의 얇은 커튼 뒤에 흐릿한 실루엣으로 서있는 고성을 배경으로 하는 표지 디자인 또한 이러한 미스테리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실지로 이야기의 구도는 몽환적인 느낌의 고딕 스릴러의 구도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미스테리 & 스릴러’의 코드로 이야기를 바라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편견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소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설을 읽고 접근하는데 있어서 이 ‘장르'의 구분이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논픽션을 픽션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미스테리를 순문학의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순문학을 SF나 환타지의 코드로 읽는다면? 뭔가 굉장히 대범한 상상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어긋난 관점에서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것은 작품을 제대로 즐기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다행히 이야기의 초반에 눈치를 채어(눈치는 빠르다..ㅡㅅ-v) 몇 달간 묵혀두고 다시 읽는 방식으로 어긋난 길을 바로 잡을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얇은 장막에 가리운 듯한 모호함은 그대로이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무언가를 [킵]으로 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공부가 쌓이고 사고가 열려 스스로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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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문학상들 중에서, 재미 면만 따지자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상이 퓰리처상입니다. 미국의 퓰리처상과 영국의 부커상 이렇게 두 가지에요. 이를테면 항상 그렇지는 않겠지만 두 가지 상에서 배출한 작가의 작품들이 저하고는 좀 잘 맞더라 하는 게 그냥, 저만의 거시기, 뭐 그런 건데요, 문학상의 조상이신 노벨상 수상자는 거기에 별로 해당되지 않더군요. 그쪽은 어쩐지 좀, 난 그냥 그렇더라. 아무튼 그리하여 이 작품의 작가 제니퍼 이건이 올해 퓰리쳐상을 수상한 작가라서 당근 호기심이 당길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 작품으로 상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이 정도 상을 수상할 정도의 공력이면 굳이 상 받은 해당 작품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일 경우가 많지 않겠습니까? 이 언니도 아마 그렇겠죠. 그래서인지 이 작품 또한 나쁘지 않았습니다. 띠지에 소개한 카피처럼 소설의 신세기를-신세경이라면 또 모를까.- 열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흡인력 있는 작품이었다구요.
구성의 묘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걸 뭐라 그러나 액자 소설이라 그러나 여하튼 아마 그런 구조일 겁니다.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소설이 실려있는 건데요, 이 작품에선 주인공이 쓴 소설의 내용이 팔할을 차지하고 주인공이 그 소설을 쓰게 된 원인 혹은 배경 따위의 소설 속에서의 실제 상황이 나머지를 차지해요. 여기서 살짝 반전이라 하기엔 조금 밍숭맹숭한 반전 같은 것도 이루어지고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서는 화자가 바뀌고요. 이전의 '나" 가 더는 그 '나'가 아닌 상황이랄까나요? 설명이 좀 거시기해서 그런데 복잡한 구성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작중 주인공의 챕터는 일인칭이고 주인공이 쓴 소설에 관한 내용은 삼인칭이니 구별하기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그냥 숨만 쉬면서 읽으시면 되요.
처음부터 아주 재미있었던 건 아니었구요, 끝까지 계속 재미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후반부 어디쯤에 이르면서 폭풍 흡인이 되었던 지점이 있었는데 그전까진 뭐랄까, 딱 지루하지 않을만큼 쏘쏘하게 진행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한가지 특이할만한 점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과 살짝 비슷한 분위기를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고딕 타입의 성이 등장하고 고스트 비스무레한 요소가 덧 씌어져서 그런 경향이 있겠습니다만 여하튼 뭔가 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것은 사실인 것 같고 또 그 점은 이 작품의 상당한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푹 빠져 읽고 나면 뭔가 안개 잔뜩 낀 중세의 성에 다녀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분위기는 이를테면 <천사의 게임>을 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작품들과도 유사한 점이기도 합니다. 허나 오로지 고딕적인 느낌의 묘한 분위기만을 두고 본다면 앞서 예를 들어드린 헨리 제임스의 작품이나 사폰의 작품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읽고 그런 면이 좋았다 하시는 분은 <나사의 회전>이나 사폰의 작품으로 고고씽.
끝으로 번역 문장이 좋았습니다. 쏘쏘한 지점에서 쏘쏘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장점은 센스있는 번역 문장들도 한 몫했는데요, 다만 그 센스 있는 번역 문장 틈틈이 과도한 욕설, 이를테면 조영학 씨를 떠올리는 좆까의 향연이 마음껏 벌어진다는 흠이 좀 있고요, 또한 조영학 씨가 자주 쓰는 표현 ~되겠다. 로 문장을 마무리 하는 뭔가 무성의한 느낌의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두 분이 친한가? 여하튼 엿먹어, 라든가 빌어먹을, 젠장 등 조금 더 유순한 욕으로 번역해도 상황상 전혀 문제가 없을 듯 보이는 데서도 좆의 향연을 벌이시니 그건 조금 거시기했습니다. 좆을 입에 달고 사는 건 고딩 혹은 중딩들이나 그렇지 않나요? 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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