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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은【한국고전문학전집】시리즈 9번째 이야기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이다. 일반적으로 ‘소화’하면 ‘섭취한 음식물을 영양분을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변화 시키거’나 ‘지식이나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또한 ‘소화’에는 불을 끈다는 뜻도 있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소화’는 ‘우스운 이야기’를 말한다. ‘패설’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 인물, 세태 풍속, 기이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이야기는 재미있는 얘기도 있지만 교훈적인 내용도 있고 슬픈 내용도 많다. 패설이 소화보다 넓은 뜻이지만 이 책에선 ‘소화’와 ‘패설’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은 「이야기책」, 「소낭」, 「각수록」등 여러 패설집에 등장하는 성에 관한 패설 234편을 묶은 책이다. 어떤 내용은 웃음이 났고 어떤 내용은 슬펐고 어떤 내용은 민망했고 어떤 내용은 불쾌했다.
![]() 패설엔 이항복이나 권율 등 실존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항복과 권율은 사위와 장인의 관계였다. 실제로 이항복의 성격이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일반 사람들이라면 하지 못하는 성에 관한 농담을 장인에게 거리낌 없이 한 것을 보면 권율이 호탕한 성격이었던 걸로 보인다. 아랫사람의 성격이 거리낌이 없어도 윗사람이 받아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남편은 하늘같은 존재였지만 패설을 보면 엄한 부인의 눈치를 보던 남자들도 많았다. 물론 그 속에서도 욕망을 감추긴 힘들었지만. 여자들의 욕망은 금기였던 시대 패설을 통해 감춰진 욕망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지만 중기, 후기로 가면서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접하면서 남자들과 여자들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죽이다’는 어떤 대상의 목숨을 끊어놓은 것을 뜻한다. 하지만 성과 관련된 ‘죽이다’의 뜻은 삶의 끝,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 패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높으신 양반들의 행동을 언어유희를 통해 비판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지만 가짜 곡으로 미모의 과부를 아내로 맞은 소년도 있었다. 임기응변으로 위기의 상황을 벗어난 생원도 있었다. 잘못된 말은 사람을 위기로 몰지만 지혜로운 말은 사람을 수렁에서 건지기도 한다. 때로 말은 그 어떤 힘보다 세다. 음과 훈으로 이루어진 한자는 동음이의(同音異義), 같은 음이라도 다른 뜻을 갖고 있다. 우린 오랫동안 한자를 써왔고 지금의 우리말 역시 한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터넷 용어들을 비롯하여 학생들이 쓰는 말을 보면 단어가 축약되고 본래의 뜻이 변질되어 뜻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선시대에는 음은 같지만 성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이 많았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를 읽는 재미 중 하나는 단어의 중의성에서 유발되는 웃음에 있다. 밤하늘엔 달이 뜬다. 우리 말 중에 ‘달뜨다’ 라는 단어가 있다. 성에 대한 욕망은 몸을 달뜨게 만든다. 인간에게 성에 대한 욕망은 본능이라 상중이어도 감출 수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도 세월의 흐름 앞엔 의도와는 다르게 사라진다. 내용만 보면 민망한 이야기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패설집은 언제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소낭」은 편찬자는 적빈자이고 황교산옹의 평비(評批)가 붙어 있다. ‘눈물을 머금으며 울고 싶었지만’는 기생의 죽음에 울고 싶었지만 차마 양반의 체면에 울 수 없어 엉뚱한 핑계를 대고 울었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남편이 막 문 앞에까지 와 있다는 점괘’와 「성수패설」에 실린 ‘지아비가 문 앞에 서 있다’는 같은 내용의 작품으로 모두 다른 사람의 점을 봐주지만 정작 자신의 앞을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내용이다. 위 내용은 「기문」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어수신화」는 장한종의 패설집으로 유일하게 작가의 실명이 밝혀진 패설집이다. ‘홑바지도 어려워’는 「이야기책」에 실린 ‘오늘 밤 잠자리는 아홉 번이라’는 글이 확장판으로 보인다. 전승된 이야기를 기록하다보니 같은 내용의 패설들이 다른 패설집에 실리기도 했다. 같은 일을 저질러도 모두 범인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이로운 사람은 죄를 지어도 범인이 아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속담의 기원인 듯 보이는 「진담론」의 ‘어진 백성을 찬양하다’와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이야기「성수패설」의 ‘오십보백보’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이기심을 풍자한 내용으로도 읽힌다. 「파수추」에 실린 ‘가짜 꼭두각시’는 지혜로 양반에게 망신을 주고 아내를 구한 광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성수패설」에 실린 ‘가장을 구타하다’는 ‘가짜 꼭두각시’와 같은 괘를 하는 작품이다. 「교수잡사」의 ‘매부의 상중에 있다’ 등 패설집의 내용들 중엔 힘을 이용해 종의 아내나 누이를 탐하는 등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양반들을 조롱한 내용들이 많다. 역시 「교수잡사」에 실린 ‘악취로 인해 활을 쏠 수 없게 되다’를 보면 욕망 때문에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조차 하지 못하게 된 한량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문」의 서강대본은 혁명과 학문 사이에서 고민하던 김태준이 제자들과 필사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옮긴이의 글처럼 김태준에게도 탈출구가 필요했으리라. 「각수록」에 실린 글들은 다른 패설집에 실린 글들보다 반사회적, 반도덕적인 글이 많다. 다른 패설집에 비해 성에 무지한, 그래서 더 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치정에 얽힌 살인이 등장할 법한 이야기임에도 웃음으로 넘기는 호탕함을 보여준다. 범인(凡人)으로는 상상도 못할 행동이다. 성(性), 아니 성(姓)중엔 임, 류, 김씨가 있다.「파적록」에 동물의 성(性)과 연결된 임, 류, 김의 기원이 실려 있다. 시대가 변했어도 조선시대는 조선시대였을 것이다. 양반에게 아내를 빼앗겨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했을 것이다. 패설집의 천민들은 양반에게 속수무책 당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천민들의 모습을 보면 통쾌감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천민인 여성들은 가장 약한 존재다. 패설집에서도 그녀들은 양반에게 당한다. 그녀들 중엔 과감히 행위를 자체를 즐긴 여성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천민 여성들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녀들이 힘없는 존재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까웠다. 이 책에 실린 성에 관한 이야기들은 과감하며 직설적이다. 어떤 글들은 낯이 뜨겁기도 했다. 체면을 중시하던 사람들은 욕망을 감추고 사느라, 체면에 뻔뻔했던 사람들은 욕망을 과하게 사용하느라 늘 소화불량에 걸려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패설집은 체면을 중시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소화제 혹은 배설의 창구였고 양반들에게 무참하게 당할 수밖에 없던 민초들에겐 억울함을 날리는 한 방의 펀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엔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내밀한 기록이 담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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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누구나 관심 있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점에 있어서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말에 걸리지 않고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쉽사리 흘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때론 웃자고 시작한 이야기에서 울게 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과유불급이 문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性)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무관하지 않을 이 성 이야기는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하며 각색되고 변색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성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시기는 따로 있는 듯하다. 생활이 각박하거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도 그런 의미에서 불안정했던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 책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이야기책’, ‘소낭’, ‘진담론’, ‘파수추’, ‘어스신화’, ‘성수패설’, ‘기문’, ‘교수잡사’, ‘각수록’, ‘파적록’, ‘거면록’ 등 여러 종류의 책들이 만들어진 시기 역시 신분상의 문제나 사회적 제약에 의해 뜻한 바를 이뤄가기 힘들었던 시기에 작성된 것들이 대분이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기록물들에서 성 이야기만을 선별하여 해석하고 편찬한 책이다. 은밀하고 때론 도발적인 이러한 이야기들이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공유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되었다는 점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대놓고 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러한 성과 관련된 이야기로 풍자하여 양반이나 권력에 대한 대항의 의미도 있었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성로비 등에서 보이듯 돈,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권세를 부리는 양반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던 기생이나 첩들과 사이의 이야기다. 또한 그 범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버젓이 행세께나 했던 양반가의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색하고 당혹스러운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관련된 것이 바로 성 이야기이기에 저변에 확산되고 소통되는 근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열 한권이나 되는 여러 책에서 발간 시대 순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책들에서 모았기에 비슷한 이야기가 중복되기도 한다. 이해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무슨 뜻을 담았는지 모두지 알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기에 읽어가는 대에는 무리가 없다. 번역자는 이들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이 사회적으로 억눌린 감정을 발산했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면 타당성이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누구도 대놓고 이야기 하지만 못하더라도 은근히 관심 갖는 것이 성 이야기다. 이것은 시대나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타고난 인간의 본성이기에 그럴 것이지만 이러한 이야기 속에 사회적 한계나 본능에 대한 욕심을 해학을 통해 그 속에 진정으로 담고 싶었던 뜻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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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은 굉장히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척 읽기가 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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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접한 야담은 중앙서관에서 나온 10권짜리 세계대표풍류전집이다. 80년대 초반 국내에 한창 전집류 발간의 바람이 불었을 때 꼬임에 속아넘어가신 아버지께서 10권짜리 [삼국지]와 박종화 역사소설 등과 더불어 같이 구매한 책이다. 그 때 산 책들은 아직도 다 못보고 있다. 각설하고, 소년 시절 내 성 지식은 모두 이 전집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서고금의 해학의 보고가 아닐 수 없었다. 한국편은 1,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김삿갓의 얘기 외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내가 특별히 두 눈에 불을 켜고 본 것은 유럽편과 중동편의 이야기였다. 세계명작에 길들여진 나는 틀림없이 유럽에 은근한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소년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국내 동화책보다는 외국의 동화책을 많이 읽게 되는데 아마도 그런 영향들로 인해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그리고 신밧드가 나오는 외국편의 골계문학에 더 흥미가 쏠리는 것 같다. 세계대표풍류전집의 서문을 누가 썼는지 아직도 모른다. ‘인생과 해학’이라는 주제로 유우머와 웃음 그리고 해학에 대한 유명인사들의 인용구를 늘어놓은 글이다. 니이체, 빅토르 위고, 에메트 폭스 박사, 임어당 박사 등의 굵직한 이름들이 나오는 만큼, 소년 시절 순진한 나는 이런 서문에도 경건한 태도로 자를 대고 연필로 밑줄까지 그으면서 읽어내려 간 것이다. 전집을 완파하여 해박한 풍류로 무장한 나는 20년간 이러한 골계문학, 풍자문학, 염소문학을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고금소총이나 금병매 등에서 배운 해박한 지식을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려는 불경한 마음조차 품은 적 없다. 문학동네의 [조선 후기 성소화 선집]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우선 반갑다. 오래도록 이국을 떠돌던 유객이 고향의 소식을 전해들은 기분이다. 조선 후기 11권의 패설집에 전하는 234편의 질탕한 성 이야기를 모았다는 이 책은 [이야기책利野耆冊] 24편, 적빈자의[소낭笑囊] 14편, [진담론陣談論] 20편, [파수추破睡椎] 8편, “각 장에는 포복절도할 골계, 황당무계한 거짓말과 허풍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기미에 언급한 에스프리와 델리킷한 기지, 사람의 의표를 찌르는 기발한 착상과 슬기로운 지혜가 있습니다.”
맞다. 풍류와 위트가 넘치는 조선후기의 성담론을 맛보길 바란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조선 후기의 남녀상열지사는 그렇게 에로틱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강조하는 것은 절제된 해학과 풍류이다. 그렇다. 서양문학이나 프랑스 철학에서 말하는 농염한 에로티시즘은 보이지 않는다. 에로티시즘을 배제한 해학의 분위기가 조선 후기 성담론의 특색이 아닐까 싶다. 소년시절이나 성인이 된 지금이나 동양의 성 담론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너무 솔직한가. 하긴 여전히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서양물이 많이 든 ‘바나나’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국내 동화책을 많이 못 읽어서 일어난 국내문학 빈혈의 부작용일 것이다. 그럼 맛보기로 이야기 한 토막 소개해볼까 한다.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야담인데 제목은 <말 위의 송이버섯>이다. [어수신화]에 전한다. 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냇가에 이르러 물을 건너려고 할 즈음이었다. 냇가에는 빨래하는 촌아낙들이 많았다. 그 때 마침 지나가는 중을 보고 선비가 농담조로 말했다. “자네는 글을 아는가? 시 한 구를 지어보게.” “소승은 무식하여 능히 시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선비는 막무가내로 먼저 읊었다. 시냇가에 홍합이 열려있네溪邊紅蛤開. 선비는 시 한 구를 짓고 중에게 빨리 짓기를 재촉하였다. “자네는 빨리 대구를 맞추게.” "생원님의 시에는 고기와 같은 물건이 있습니다. 그러니 산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감히 대구를 맞출 수가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채소로 대구를 맞춰도 용서하시겠지요?" “뭐 문제 될 게 있겠나?” 중은 옷을 걷고 먼저 물을 건너 맞은편 한 귀퉁이에 이르자, 시를 외쳤다. 말 위에는 송이버섯이 움직이네馬上松茸動. 이른바 적절한 대구라 하겠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