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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이 나왔다. <인종차별>이 정당할 수 없다는 근거를 <과학>스러움으로 집요하게 파헤친 책이다. 그러한 결과로 글쓴이는 <인종>이란 낱말 따위는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결론을 읽을 때 즈음 내 머리 속에서 꽝하는 울림이 들렸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인종차별>이 부당하다면서 어찌 <인종>을 나누고 달리 부른단 말인가. 그런데도 난 <인종차별>은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고 딱 잘라 말하면서도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이라고 아무런 잘못도 느끼지 못하고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정말 부끄러웠다. |
![]() 인종에 관련된 책은 처음이라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인종에 대한 길고도 길었던 의학적 논증들과 사회적 논증들을 이용해서 우리가 여태까지 가지고 있었던 인종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것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단연코
자신에게 주어진 인종은 자기자신이 정할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인종주의의 역사를 찾아보면 우리 인간이 종류를 나누어 인간 자체를 각각의 '종' 으로 분류하게 된 것은 서양열강 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주로 흑인들의 인간적인 권리를 빼앗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 라거나 모든 인간은 종류에 따라 다른 성격을 가진다라는 지금은 공공에게 말하기 어려울 주장들을 펼치던 학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식민지를 차지하고 빼앗는 과정에서 당연히 지배를 받는 쪽
그리고 지배를 하는쪽이 생기게 되고, 지배를 받는 쪽에게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종에 관한 구별은 더 나아가서 인간에 대한 가치
를 매기는 척도로 작용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나치가 유대인 들에게 가했던 인종학대가 대표적인 예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 이제는 인종주의에 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인종주의 혹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반인종주의는 모두 옳지는 않다 합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지만 결코 모두 같을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이라고 하는것은 모두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들만의 개성을 찾는것을 삶의 의미로 삼게 될 것입니다. 우수하다거나 우수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가치에 관한
개인적인 평가로밖에 인식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단지 서로 다를 뿐인것을 점수를 매겨 한줄로 세우는것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아 버리는것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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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무능하거나 유능하다는 식의 비이성적인 결론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유전학이다. 문제는 이 유전학 너머엔 불합리한 증오와 경계심, 그리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한다. 사실 유전학이 만든 병폐는 2차 대전에서의 유태인 학살이나 흑인 노예와 같은 사례에 국한되진 않는다. 아시아에선 현재 한중일 간의 민족적 갈등을 구현하는 방식이 유전학에서 이야기되는 방법론과 하등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인류가 그렇듯 현인류 역시 이런 점에서 과거와 너무 닮아 있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 한중일의 문제가 다민족 공동체로 확장하면서 공동의 유대감을 얻으려는 노력보다 배제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동남아시아 민족에 대한 유전학적 민족론이 드세지고 있다. 계속 유전학이 악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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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흐름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인종이라는 개념의 탄생. 둘째, 개별 유전자 분석을 통한 유전적 차이의 입증. 셋째, 인간 집단간 다양성의 인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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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몇년전에 이슈가 되었던 모 쇼핑몰 광고가 생각났다. 유명연예인이 입고 있던 옷의 색상을 '살색'이라고 표기했다가 인원위원회의 항의를 받고 살색으로 수정한 일이었다. 과학적으로 인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피부색에 따른 인종의 구분은 우리가 아는 가장 일반적인 인종의 구분법이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적으로 인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대 생물학은 인간유전자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은 유전적으로 99.9퍼센트 동일하며 0.1퍼센트만의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한 집단별 차이는 유전학적인 차이가 아닌 문화적, 환경적 차이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0.01%의 차이로 인한 인종별 구분이 인류역사상 가져온 결과를 돌이켜보면 얼마나 그것이 무의미한 일이었는지를 알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인 결과를 마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다름이 틀림은 아니다. 우리는 나와 다름을 틀린것이라는 판단의 오류는 쉽게 고쳐지지 않고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한다. 그러나 그결과가 차별이라고 하는 형테로 나타난다면 이제는 그 오류를 수정해야만 한다. 인종주의는 집단을 결속시키는 구심점이 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정치적인 수단에 불과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인종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야할 때라고 본다. 이미 과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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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0.1%의 차이’라는 제목이 왜 붙여졌을까 궁금했었다. ‘전세계 60억의 인구를 유전자로 비교했을 때 99.9%는 같고 단지 0.1%만이 서로 차이가 난다’고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책의 제목이 유래하였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유전학이 우생학으로 변질되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무능하거나 유능한 것이 결정된다’는 시각이 우세하였던 적도 있었다. 바로 그러한 사례가 유태인의 학살이고 흑인 노예가 아니었던가. 유전학이 악용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베르트랑 조르당’은 인간을 종으로 구분하는 인종주의를 과학을 바탕으로 비판하면서, 0.1%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과학자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는 인류의 동일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치를 갖고 사실을 연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가치는 분명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주제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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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저 멀리 다른대륙에 사는 지구인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유전자적인 관점에서 볼 때 99.9퍼센트는 동일하고 0.1퍼센트는 다르다. 황인, 흑인, 백인으로 이렇게 구별을 하고 나와 당신의 '살색' 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지만 이들의 겉으로 보이는 차이에 비해 DNA 적인 차이는 너무나 작다. (비록 이것이 300만개라는 큰 염기 차이 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나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는 집단 내부에서의 차이가 외부 집단과의 차이보다 크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존에 '인종'으로 구별하고 있던 인간들의 다양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의도적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용어인 '인종'대신에 가치중립적인 '조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책은 '차이가 차별이 되지는 않아야'한다는 것에 대해 책 전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유난히 '단일민족'임을 강조해 온 대한민국이기에 점점 늘어만 가는 '다른 생김새'를 한 다문화 가정들과 앞으로 어떻게 융화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온정주의 적으로 그들의 우리나라 생활 적응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대한민국 사람이고 우리가 오히려 그들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생김새는 비록 같더라도 앞으로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살아 온 북한 사람들과도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차이는 누군가의 우월함과 열등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다양성을 어떻게 우리가 더 풍부하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종적인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음을 느낌과 동시에 우리가 수 많은 차별의 근거로 삼았던 그러한 기준들도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을 자동적으로 내리게 하는지 되돌아 보았다.
과학은 이제 생물학적인 구분은 인종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없음을 밝혀주었다. 인종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이제 던져버리고 개개인에서 부터 전 인류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넉넉하고 열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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