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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은 나쁘다.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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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이 나왔다. <인종차별>이 정당할 수 없다는 근거를 <과학>스러움으로 집요하게 파헤친 책이다. 그러한 결과로 글쓴이는 <인종>이란 낱말 따위는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결론을 읽을 때 즈음 내 머리 속에서 꽝하는 울림이 들렸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인종차별>이 부당하다면서 어찌 <인종>을 나누고 달리 부른단 말인가. 그런데도 난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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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는 책이 나왔다. <인종차별>이 정당할 수 없다는 근거를 <과학>스러움으로 집요하게 파헤친 책이다. 그러한 결과로 글쓴이는 <인종>이란 낱말 따위는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결론을 읽을 때 즈음 내 머리 속에서 꽝하는 울림이 들렸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인종차별>이 부당하다면서 어찌 <인종>을 나누고 달리 부른단 말인가. 그런데도 난 <인종차별>은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고 딱 잘라 말하면서도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이라고 아무런 잘못도 느끼지 못하고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정말 부끄러웠다.

  제목이 뜻하는 바는 <인종> 사이에 유전자 DNA 차이가 겨우 0.1퍼센트 밖에 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온누리에 사는 65억 사람들 유전자 DNA 가운데 99.9퍼센트가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적어도 과학스럽게는 99.5퍼센트가 일치한단다.) 이런데도 <인종>을 나누는 짓이 잘하는 일일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남는다. 일란성 쌍둥이(세쌍둥이 그 이상)를 빼고는 65억 사람들이 참으로 <개성>스럽게 모두 <다르다>는 사실 말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딜레마(?)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답은 이미 앞 부분에 나왔다. <인종차별>의 무익함을 <과학>스러움으로 낱낱히 밝히고, 마무리에 <인종>을 나눌 까닭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예 <인종>이란 낱말을 없애는 것이 더 낫다고...그런데도 많은 사람들과 나라들이 <피부색>으로 사람을 나누고, 더 나아가 이런 <인종>을 나누는 것을 <정치>스럽게, <사회>스럽게, 심지어 <경제>스럽게 참으로 잘도 써먹고 있다.

  왜 그럴까? 이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이 책 속 내용 대부분은 바로 이런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세히 파헤쳤다. 그 때문에 <과학>스러운 내용이 상당 부분 담겨 있긴 한데, <과학>스러운 내용이 부담스럽다면 이 부분을 빼고 읽어도 무방하다. 뭐, 거의 절반을 들어내는 일이긴 하지만...뭐, 상관없다. 책이해를 위해서라면 분명 더 나은 방법이니까.

  인종차별의 뿌리는 <유럽인>이 '지리상 발견'을 하면서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삼으면서 시작되었고, <유럽인>이 다른이들보다 좀 더 뛰어나다는 '근거'를 내세워 '제국주의'와 온누리를 대상으로 '식민지 쟁탈'을 벌이면서 더욱 널리 심해졌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잘못된 생각은 <유럽인>들만으로 그치지 않고, '노예들'과 '식민지인들'에게도 널리 퍼졌고, <인종차별>을 비판하기는커녕 그저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만을 고민하기에 바빴다. 잘못된 생각이 고쳐지기까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려주는 좋은 예이며, 잘못된 생각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더욱더 뿌리 깊어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왓슨과 크릭이 <유전자>를 밝혀낸 것이 20세기 들어와서고, 유전자 지도(게놈)를 밝혀낸 것이 고작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복잡한 <과학>스런 앎(지식)을 근거로 명확하게 <잘못된 생각>임을 밝혀내어도 좀처럼 바뀌지 않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나쁜 소문은 KTX보다 빨리 퍼지지만 좋은 소문은 걸어가듯 느리게 퍼지는 것처럼 <잘못된 근거('사이비 과학' 같은)>로 생긴 '상식'을 바로 잡으려면 엄청나게 힘들다는 사실 말이다. 다시 말해, 한 번 상식으로 자리 잡은 <잘못된 상식>은 아무리 <과학>스러움으로 명확하게 고쳐 밝혀도 좀처럼 고쳐지기 힘들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과학>을 통해서도 <인종차별>이 옳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호모속(屬)'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 우리다. 우리말로는 '슬기슬기사람'이고, <사람 가운데 뛰어나게 똑똑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결국 다른 '호모'들은 우리보다 슬기롭지 못해서 멸종에 이르렀다는 말이고, 우리는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뭐하는 짓일까? 더이상 나눌 수 없는 유일한 존재들이 고작 <피부색>이 다르다는 까닭으로 <인종>으로 나누고, <차별>까지 하다니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이런 잘못을 멈춰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까지 이해하긴 힘들 거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 사회속에서도 뿌리 깊은 <피부색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까닭만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을 차별하는 우리 모습이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역사>스러운 '민족 감정'은 이웃나라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옛날보다는 관계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축구'라도 할라치면 <차별>하는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나니...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차별>은 나쁘다. '남녀차별'뿐 아니라 '언니 동생'사이에도 조금만 차별하면 참으로 큰일이 나지 않는가. 그러면서 '자기'에게,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 <이득>을 얻는다는 까닭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일이 없어야 겠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하지 말자. 나부터 안 할란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1.05.01.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0.1퍼센트의 차이 서평.
"0.1퍼센트의 차이 서평." 내용보기
인종에 관련된 책은 처음이라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이 책은 인종에 대한 길고도 길었던 의학적 논증들과 사회적논증들을 이용해서 우리가 여태까지 가지고 있었던 인종에대한 시각을 새롭게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것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단연코자신에게 주어진 인종은 자기자신이 정할수 없다는 것을전제로 합니다. 인종주의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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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에 관련된 책은 처음이라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인종에 대한 길고도 길었던 의학적 논증들과 사회적
논증들을 이용해서 우리가 여태까지 가지고 있었던 인종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것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단연코
자신에게 주어진 인종은 자기자신이 정할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인종주의의 역사를 찾아보면 우리 인간이 종류를 나누어
인간 자체를 각각의 '종' 으로 분류하게 된 것은 서양열강
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주로 흑인들의
인간적인 권리를 빼앗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 라거나 모든 인간은 종류에 따라
다른 성격을 가진다라는 지금은 공공에게 말하기 어려울
주장들을 펼치던 학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식민지를 차지하고 빼앗는 과정에서 당연히 지배를 받는 쪽
그리고 지배를 하는쪽이 생기게 되고, 지배를 받는 쪽에게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종에 관한 구별은 더 나아가서 인간에 대한 가치
를 매기는 척도로 작용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나치가 유대인
들에게 가했던 인종학대가 대표적인 예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 이제는 인종주의에 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인종주의
혹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반인종주의는 모두 옳지는 않다 합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지만 결코 모두 같을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이라고 하는것은 모두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들만의 개성을 찾는것을 삶의 의미로 삼게 될 것입니다.

우수하다거나 우수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가치에 관한
개인적인 평가로밖에 인식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단지 서로 다를 뿐인것을
점수를 매겨 한줄로 세우는것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아 버리는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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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7 2011.05.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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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고 비난 받는 이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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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무능하거나 유능하다는 식의 비이성적인 결론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유전학이다. 문제는 이 유전학 너머엔 불합리한 증오와 경계심, 그리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한다. 사실 유전학이 만든 병폐는 2차 대전에서의 유태인 학살이나 흑인 노예와 같은 사례에 국한되진 않는다. 아시아에선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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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무능하거나 유능하다는 식의 비이성적인 결론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유전학이다. 문제는 이 유전학 너머엔 불합리한 증오와 경계심, 그리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한다. 사실 유전학이 만든 병폐는 2차 대전에서의 유태인 학살이나 흑인 노예와 같은 사례에 국한되진 않는다. 아시아에선 현재 한중일 간의 민족적 갈등을 구현하는 방식이 유전학에서 이야기되는 방법론과 하등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인류가 그렇듯 현인류 역시 이런 점에서 과거와 너무 닮아 있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 한중일의 문제가 다민족 공동체로 확장하면서 공동의 유대감을 얻으려는 노력보다 배제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동남아시아 민족에 대한 유전학적 민족론이 드세지고 있다. 계속 유전학이 악용된다.
  ‘0.1%의 차이’의 저자 ‘베르트랑 조르당’의 지적은 그 날카로움에 걸맞게 현시대의 인류에게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치를 갖고 사실을 연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가치는 분명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주제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통해 사회과학의 주장들을 입증하는 방법론이 현재 많은 의문점들을 해소하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시도의 결과물이다. 통섭이라 불리는 이런 방법론의 가치를 잘 활용한 이 책은 DNA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례들을 통해 현인류의 무지와 위기를 조목조목 짚어 나간다.
  아프리카로부터 온 각지의 인간들은 공동의 조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역적인 차이와 그로 인해 발생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분명 다양성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런 환경적 문화적 차이가 유전적인 변화를 일으켰으며, 또한 여러 차이들을 양산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차이 역시 지역적 환경적 공통점이 크다면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며, 특히 특정한 곳에서 폄하되거나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다른 지역에선 그 반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것일 뿐, 폄하될 필요는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상대를 폄하하고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이는 정치적 의도는 언제나 나와 같은 인간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 나와 다른 것들을 상대편으로 구분하면서 편향적 속성인 인종이란 단어를 통해 상대를 탄압하는데 여념이 없다. 인간의 DNA에 이런 자극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지만 현실이 이렇다. 최근 인종의 부정적인 요소로 인해 민족이란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그렇다고 인종차별이란 부정적인 요소가 민족주의 내에서 사라진 것도 아니다. 우린 아직도 피부색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과 공유하길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이고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 갈라진 사람들의 묶음을 영원한 유전자적 속성으로 구분하려는 인간의 저의는 확실히 먹고 살기 위한 것이리라. 그러나 이런 것은 너무 치졸한 것이고, 결국 사회의 구심력을 깨뜨리고 파괴로만 가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도 이런 충돌은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어쩌면 인종적 환타지를 통해 현실의 갈등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문화적 구분점인 민족조차 상상으로 만든 공동체란 인식이 널리 인정되는 이 시점에서 어서 빨리 인종차이를 우월의 구분점으로 인식은 어서 제거되어야 한다. 차라리 즐거운 여행지를 떠나는 기분으로 문화적 차이를 바라봤으면 한다. 그래야 세계적으로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이 때에 좀 더 건설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n*****1 2011.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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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통해서 본 인간:인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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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흐름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인종이라는 개념의 탄생. 둘째, 개별 유전자 분석을 통한 유전적 차이의 입증. 셋째, 인간 집단간 다양성의 인정이다.첫째, 인종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인종 혹은 인종주의라는 말은 일단 차별의 어감을 지닌다. 인종주의의 개념이 등장한 시기는 17,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였다. 특히 당시 신대륙이었던 미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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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흐름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인종이라는 개념의 탄생. 둘째, 개별 유전자 분석을 통한 유전적 차이의 입증. 셋째, 인간 집단간 다양성의 인정이다.

첫째, 인종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
인종 혹은 인종주의라는 말은 일단 차별의 어감을 지닌다. 인종주의의 개념이 등장한 시기는 17,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였다. 특히 당시 신대륙이었던 미국에서는 원주민에 대한 대규모 노동 착취와 흑인에 대한 노예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 인종주의 개념을 현실에 광범위하게 이용하였다. 피부색이 검은 이들을 열등한 종으로 규정지음으로써 차별과 학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백인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삼았다.
19세기 외교관이자 작가인 고비노 같은 이는 자신의 저서 <인종 불평등론>에서 인간과 인종의 기원을 조사한 뒤 신체의 힘과 외적인 아름다움, 특히 지적 능력의 차원에서 인종 사이에 불평등함이 존재함을 밝혀냈다고 하였다. 또 19세기의 인류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다윈의 진화론을 이용하여 흑인종을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와 함께 유인원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다른 많은 학자들도 유색인들의 후진성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많은 발전을 이루었던 20세기에 들어서는 유전자를 이용하여 인종간 우열성을 구분지으려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흑인종과 원주민들의 생물학적 열등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식민지에서의 차별과 노동력 착취의 도덕적 합리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었다.
인종주의자들이 이용한 인종의 구분 방식은 피부색,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 얼굴의 골격 등과 같은 신체적 차이였는데 이러한 차이는 바로 유전적인 차이로 인한 것들이다. 오늘날에도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다. 저자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인간종은 다른 종보다 별로 다양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동질적인 종들 가운데 하나다. 인종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적 차이로 구분할 수 있을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종의 동질성을 입증하는데 절대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현대의 DNA 분석기술이었다.

둘째, 인간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인간종의 동질성을 확보하였다
. 즉, 인종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였다. 입증의 시작은 인류의 거대한 생물학적 시도였던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을 때부터였다. 인간 유전자 지도인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인간은 유전적으로 99.9퍼센트 동일하며 0.1퍼센트만의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인류의 유사성을 밝힌 놀라운 성과였다. 이후 이 인간 유전자 지도를 바탕으로 수많은 개별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연구기술 역시 함께 발전하여 유전자를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로부터 아주 놀라운 결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전자의 작동 메커니즘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DNA를 구성하는 염기들의 배열 방식에 따른 DNA상의 변이영역인 부수체, 미소부수체, STR 등  에 대한 연구는 인간 유전자의 다양성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하였다. 모계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미토콘드리아 DNA와 부계로만 전달되는 Y염색체의 연구를 통해서는 각각 모계와 부계의 조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연구 대상인 SNP(스니프)는 두 사람의 DNA상 같은 지점에서의 뉴클레오티드의 차이가 발생하는 다형성을 가리키는 개념인데, 수천 개의 SNP를 분석함으로써 유전적 다양성을 상세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인종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는 SNP의 차원에서 발견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후 특정 집단 내 수천 명의 사람들의 SNP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 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Fst라는 통계학적 기준이 마련되었고 이를 통해 인간 유전자의 다양성은 집단 내에서 크게 나타나지만 집단 간 차이는 크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리적 구분(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 아시아인, 유럽인 등)은 있을 수 있으나 생물학적 구분은 무의미할 정도로 인간의 유전자 차이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 다양성의 차이는 인종이라는 개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셋째, 한 집단과 다른 집단간의 차이는 대체적으로 문화적 차이, 환경적 차이에 기인한다. 유전적 차이를 배제한다면 인간 다양성은 먼 옛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유럽으로, 아시아로, 그리고 아메리카로 점차 이동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빈번히 발생한 전쟁과 정복 등 인간의 사회적 특성이 야기한 행동 때문이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인간 집단의 다양성이 나타나게된 요인이다. 지리적 위치에 따른 피부색의 차이 등 신체적 차이는 유전자의 차이이며, 유전적 변이는 바로 이러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생겨날 수 있음이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한편, 인류의 유사성을 말하기 위해 저자는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의 유전자 연구 결과를 제시하였는데, 재미있고도 흥미로운 비교였다. 350여종이 있다는 개의 품종은 각각이 생물학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이며, 이것이 각 품종간 기능의 차이로 나타나므로 품종 분류의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인간의 미세한 유전적 차이는 외부로 발현되는 기능상의 차이를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인종분류가 불가능하고 또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바의 요점이다.

결론적으로 유능한 인간, 무능한 인간 또는 우월한 인종, 열등한 인종은 없다는 이다. 집단 내 개체들의 유전적 차이는 비교적 넓은 범위로 존재하지만 집단 간의 유전적 차이는 무시할 정도의 수준이므로 집단과 집단을 인종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DNA 분석 기술이 거의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세상을 지배했던 인종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폐기되어야 마땅한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허구성이 밝혀진 이상 인종이라는 개념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용납되어서는 안되고 더구나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서는 절대 안될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의 오랜 진화 역사에서 뿌리를 내린 인간 집단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인정하고 과장하거나 부인하지 않으며 그 진가를 평가해, 이를 증오나 대립 또는 배척의 동기로 삼지 말고 기회로 삼을 을 충고하였다.

c******e 2011.04.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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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몇년전에 이슈가 되었던 모 쇼핑몰 광고가 생각났다. 유명연예인이 입고 있던 옷의 색상을 '살색'이라고 표기했다가 인원위원회의 항의를 받고 살색으로 수정한 일이었다. 우리가 어릴 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사용하던 크레파스에는 '살색'이라는 색이 있었다. 핑크색에 가까운 살구색. 재미있는 것은 그 색이 우리의 피부색과는 다른 색이었음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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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몇년전에 이슈가 되었던 모 쇼핑몰 광고가 생각났다. 유명연예인이 입고 있던 옷의 색상을 '살색'이라고 표기했다가 인원위원회의 항의를 받고 살색으로 수정한 일이었다.
우리가 어릴 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사용하던 크레파스에는 '살색'이라는 색이 있었다. 핑크색에 가까운 살구색. 재미있는 것은 그 색이 우리의 피부색과는 다른 색이었음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색이 사람의 피부색이라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살색은 백인의 피부색이었고 은연중에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편견이 심어졌음을 알게된다. 지금은 살색이라는 색자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그 광고를 보고 알게되었다.


과학적으로 인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피부색에 따른 인종의 구분은 우리가 아는 가장 일반적인 인종의 구분법이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적으로 인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대 생물학은 인간유전자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은 유전적으로 99.9퍼센트 동일하며 0.1퍼센트만의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한 집단별 차이는 유전학적인 차이가 아닌 문화적, 환경적 차이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0.01%의 차이로 인한 인종별 구분이 인류역사상 가져온 결과를 돌이켜보면 얼마나 그것이 무의미한 일이었는지를 알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인 결과를 마음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다름이 틀림은 아니다.

우리는 나와 다름을 틀린것이라는 판단의 오류는  쉽게 고쳐지지 않고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한다. 그러나 그결과가 차별이라고 하는 형테로 나타난다면 이제는 그 오류를 수정해야만 한다.

인종주의는 집단을 결속시키는 구심점이 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정치적인 수단에 불과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인종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야할 때라고 본다.

이미 과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d****a 2011.05.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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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0.1%의 차이’라는 제목이 왜 붙여졌을까 궁금했었다. ‘전세계 60억의 인구를 유전자로 비교했을 때 99.9%는 같고 단지 0.1%만이 서로 차이가 난다’고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책의 제목이 유래하였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유전학이 우생학으로 변질되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무능하거나 유능한 것이 결정된다’는 시각이 우세하였던 적도 있었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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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0.1%의 차이라는 제목이 왜 붙여졌을까 궁금했었다. ‘전세계 60억의 인구를 유전자로 비교했을 때 99.9%는 같고 단지 0.1%만이 서로 차이가 난다고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책의 제목이 유래하였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유전학이 우생학으로 변질되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무능하거나 유능한 것이 결정된다는 시각이 우세하였던 적도 있었다. 바로 그러한 사례가 유태인의 학살이고 흑인 노예가 아니었던가. 유전학이 악용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베르트랑 조르당은 인간을 종으로 구분하는 인종주의를 과학을 바탕으로 비판하면서, 0.1%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과학자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는 인류의 동일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치를 갖고 사실을 연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가치는 분명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주제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k******m 2017.02.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0.1퍼센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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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저 멀리 다른대륙에 사는 지구인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유전자적인 관점에서 볼 때 99.9퍼센트는 동일하고 0.1퍼센트는 다르다. 황인, 흑인, 백인으로 이렇게 구별을 하고 나와 당신의 '살색' 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지만 이들의 겉으로 보이는 차이에 비해 DNA 적인 차이는 너무나 작다. (비록 이것이 300만개라는 큰 염기 차이 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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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저 멀리 다른대륙에 사는 지구인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유전자적인 관점에서 볼 때 99.9퍼센트는 동일하고 0.1퍼센트는 다르다.

황인, 흑인, 백인으로 이렇게 구별을 하고 나와 당신의 '살색' 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지만 이들의 겉으로 보이는 차이에 비해 DNA 적인 차이는 너무나 작다.

(비록 이것이 300만개라는 큰 염기 차이 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나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는 집단 내부에서의 차이가 외부 집단과의 차이보다 크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존에 '인종'으로 구별하고 있던 인간들의 다양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의도적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용어인 '인종'대신에 가치중립적인 '조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책은 '차이가 차별이 되지는 않아야'한다는 것에 대해 책 전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유난히 '단일민족'임을 강조해 온 대한민국이기에 점점 늘어만 가는 '다른 생김새'를 한

다문화 가정들과 앞으로 어떻게 융화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온정주의 적으로 그들의 우리나라 생활 적응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대한민국 사람이고 우리가 오히려 그들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생김새는 비록 같더라도 앞으로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살아 온 북한 사람들과도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차이는 누군가의 우월함과 열등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다양성을 어떻게 우리가 더 풍부하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종적인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음을 느낌과 동시에 우리가 수 많은 차별의 근거로 삼았던

그러한 기준들도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을 자동적으로 내리게 하는지 되돌아 보았다.

 

과학은 이제 생물학적인 구분은 인종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없음을 밝혀주었다.

인종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이제 던져버리고 개개인에서 부터 전 인류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넉넉하고 열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s*******6 2011.05.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