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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뉴스에서 한국의 평균연봉에 대해 다루었다. 누군가는 이 지표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누군가는 좌절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왜 이런지표를 보며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어야 하는 걸까? 누가 정한 기준인 것일까? 이것 뿐만 아니라, 지역별 평균 연봉, 연령별 평균키, 적정 결혼 연령 등등 많은 지표들이 평균을 기초로 한다.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던 기준인 '평균'. 누군가를 평가하는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아니,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우리 개개인들은 1억 5천만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들인데... 1950년경, 미국 전투기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전투기 비용은 물론이고, 훈련된 조종사들도 사망하거나 재기 불능이 되는 심각한 상황. 최초로 설계된 조종석이 1916년이라 불편하기 때문임을 원인으로 전사 신체검사를 실시하게 된다. 즉, 최적의 신체치수에 맞게 조종석을 재 설계하기로 한것. 그 검사에 참여했던 길버트 데니얼스. 그는 조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란다 여러 신체치수의 평균치와 동일한 인물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 즉 평균이 기준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평균주의의 등장
개개인은 오류이고, 오류를 최소화 하는 평균이 진리이다. 이것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있다. 골수 영국인이던 프랜시스 골턴. 평균사상을 지지했지만, 못마땅해 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평균이 진리라는 케틀레의 사상. 1851년 런던 대박람회에서 골턴은 평균을 향상시키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주장을 편다. 즉, 평균 이상의 삶(귀족)과 평균 이하의 삶(노예)로 구분한다. 이렇게 우월층 저능이라는 계층을 나누는 동시에 우월층은 모든면에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싸움도 잘 한다는 논리. 골턴의 계층 개념은 1890년대부터 세상을 지배한다. 평균은 평범한 것 이다. 개성은 회사를 망친다. 시스템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업무 효율성으로 볼때 표준화, 분업화, 업무 단순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했다. 그래야 불필요한 조사시간, 검증시간을 줄일 수 있고 각각이 내 일만 하면 회사가 더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입장이 아닌 개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그저 하나의 부품이 될 뿐이다. 사업을 하려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나는 내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부품으로 봐야 할 것인가? 평균의 오류를 알게 된 이시점 이후로 어떻게 회사를 꾸려야 할 지 고민이 필요하다. 아무튼, 1927년 국제연맹에서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을 문명을 규정하는 특징으로 칭송 할 정도로 표준화를 지지 한다. 테일러주의로 인해 대량생산 체제가 틀이 잡히며 표준화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 된다. 그리고 등장한 인물이 에드워드 손다이크이다. 대량생산체제를 관리하는 관리자와 노동자를 나누기위해 교육의 체계를 다시 쓴다. 영재, 우등생, 특수교육 등 등. 손다이크는 골턴의 '우월층은 모든면에서 우월하다.'는 주장을 다시 가져온다. 빠르게 배우는 사람이 머리도 좋다는 것. 이 시대 이후로, 교육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저능아로 취급된 것이다. 게다가 교육으로는 선천적인 우월함과 저능함을 고칠 수 없다고 믿었다. 교육의 거장이 교육을 부정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크게 이 네사람으로 인해 현재의 평균주의 단순 평가방법이 굳어졌다. 수학을 못따라오면 머리가 나쁜 사람, 고가점수를 잘 못받으면 무능한 직원으로 무시를 당한다. 이런 현실을 모두가 받아들였을까? 평균주의에 대한 반발1980년대 벤저민 블룸은 속도와 지능의 상관관계를 조사한다. 정해진 시간동안 어려운 주제를 공부 시키면 완벽히 이해한 학생은 20%정도. 하지만 총시간과 총 수업량은 동일하되, 개인별 그 시간 이용을 자유롭게(어떤 학생은 초반에 빠르지만, 후반엔 느리게 수업) 해주면 80%가량이 이해하는 것을 확인한다. 속도와 지능은 약한 상관관계이다. 2003년 피터 몰레나교수는 과학적 방법론의 유효성을 의심한다. 개개인의 측정치 배분을 그룹의 측정치 대표값으로 보는 과학은 개별값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에르고딕'상태(1.모든 구성원이 동일할 것 2.미래에도 모든 구성원이 동일할 것.)는 현실에서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즉 평균값은 대표값이 아닌 구제불능 값이라 여겼다. 20c초에는 테일러주의에 영향을 받은 아놀드 게젤의 '규범적 단계'가 유아의 발달단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총 53개의 단계로 구분되는 단계를 하나 하나 거처야 한다는 게젤의 발달단계를 실제로 거치는 유아는 극히 드물었고, 모두 문제아로 구분이 됐다. 하지만 커트피셔는 유아의 읽기 습득 실험을 하며(모든 아이는 개별적인 방법으로 읽기를 습득한다.) 변동성의 위기를 만들어 낸다. 발달의 사다리는 없다. 평균주의가 틀리다면? 개개인성에 집중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당연하게 뿌리내려있는 평균주의의 대안은 있는 것인가? 평균주의의 극복1. 들쭉 날쭉의 원칙 : 사람을 한가지 특징으로 정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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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부터, 평균주의에 물든 사회와 그로 인해 발생한 폐해, 그리고 평균주의에서 개개인 중심주의로의 변화를 위한 개념을 제시하며 평균과 그 종말에 대해 전적으로 다룬 책이다.
평균이라는 개념에 함정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평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우리 사회가 점차 평균주의 사회가 되어감으로써 발생한 폐해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평균주의 구조에서 개개인 중심 구조로의 변화를 위해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 개념(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성적 대신 실력 평가,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 허용하기)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니 지금의 사회가 철저히 평균주의 사회라는 것이 더욱 실감이 났고, 저자의 그러한 제안이 실체화된 사회에서 공부를 하고 꿈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더라면 훨씬 행복했겠구나, 나도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평균주의 사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무조건적으로 평균의 무용성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평균은 개개인을 비교할 때는 부적절하지만 서로 다른 그룹을 비교할 때는 유용하다고 언급한다. 또 평균주의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번창을 누렸고,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개개인성은 철저히 무시되고 모두가 '평균적 인간', '평균 이상의 인간'이 되기 위해 끝없는 레이스를 달리는 몰개성적 사회가 되어버렸다. 여러 기업의 사례에서 나타나듯 평균만을 좇는 것보다 개개인성에 주목하는 것이 기업에게도 더 많은 이윤, 개인에게도 더 많은 기회와 만족감을 준다고 하니, 우리 사회가 서서히 개인과 개개인성이 중시되는 사회로 또 한 번의 변화를 맞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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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문장부터 마음이 확 사로잡혔다.솔직히 책의 제목을 보면 의아스러운 점이 많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확실할 수 없다는 생각이든다. 평균이 '종말'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평가함에있어서 특히나 개개인의 능력에 대해서는 평균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저자는 평균이라는 개념을 대체할 개념으로 3가지 원칙에 대해서 말한다.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이 그것이다. 3가지 원칙 중 가장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경로의 원칙이다.
내가 살아온 삶은 '평균'적이지 않다. 대학을 2번 나번 나왔고 지금도 대학에 다니고 있다. 앞으로 가고싶은길도 평균적이지 못한 길이고 험난해보이기만하다. 결혼도 하고싶고 아이도 낳고싶고 커리어도 쌓고싶고 욕심은 많은데 이미 나의 삶은 평범하진 않다. 앞으로 어떻게 해쳐나가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안다. 내가 원하는걸 꼭 반드시 이루고 말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은 나에게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운이 좋게도 이 책을 읽기전부터 나 자신의 개개인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것' 편입을 준비하면서 내새울 것 없는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하다가 찾은답, 내가 가진 것. 여러가지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내가 찾은 나의 장점은 '끈기와 성실'이다. 척하면 척 알고 무언가를 줄줄 알고 잘 기억하고 있는 능력은 내게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1번보고 모르면 2번, 3번, 10번 그 이상 볼 의지와 실행력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실패할 수 가 없다.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난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시험이 없어지니 스스로 공부하기도 어렵고, 눈 앞에 일을 해결하는데 급급해서 머리를 채우는거는 뒷전으로 하고 있다. 머리를 채우는 것을 뒷전으로 하다보니 책임은 커지는데 그에 걸맞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 느낌. 몸은 고되고 마음은 상하는데 나아지는 것은 없는 악순환에 있는 느낌. 심지어 책을 본다고, 공부를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실전도 병행해야하니 이도 저도 안되고 몸은 부서지는 듯한 느낌. 그래도 결국엔 적당한 해결방법을 찾을 것이고, 결국엔 내가 원하는 만큼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평균의 종말은 틀렸다. 아니 광고가 틀렸다. 교사, 학부모의 필독서라니. 이제 막 학교를 벗어나 헤매이고 있는 사회초년생들도 읽어보면 좋을 책일 것 같다. 특히나 난 왜 이것밖에 안될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있다면 더더욱 읽어보면 좋을 책인 것 같다.단, 아무 것도 안하면서 '난 원래 느려'라는 핑계로 만들지 않도록 주의는 해야겠지.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속담을 살짝 비틀어 마무리 해본다. "Slow but steady wins the rac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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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줄평
평균이라는 동굴 안에서 발견한 개개인성이라는 횃불. ■■■ 평점
9.8 / 10
고영성 작가, 신영준 박사가 추천한 책이므로, 구매 후 호기심이 발동될 때 읽게 되었다. ■■■저자 소개 ![]() 저자 : 토드 로즈 tode rose 출처 : 구글
교육 신경과학 분야의 선도적인 사상가로서,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지성·두뇌·교육(Mind, Brain, and Education) 프로그램과 개개인학 연구소를 맡아 이끌고 있다. 위스 생체모방 공학 연구소에서 부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중학교 때 ADHD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나 그 이후 대학 입학자격 검정시험(GED)을 통과해 지역대학에 입학했다. 야간 수업을 들으며 주경야독한 끝에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인간발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수과정을 마쳤다. 비영리단체인 개개인의 기회연구소(Center for Individual Opportunity)를 공동 설립했고, 구글, 애플, TedX, SXSW(창조산업 박람회),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 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다. 비영리 단체인 포퓰리스(Populace)의 공동 설립자로서, 모든 사람이 충족감 있는 삶을 살아갈 기회를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배우고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활동에 매진 중이다. ■■■ 저자에 대한 생각
이름만 보고 여성인 줄 알았는데, 사진을 보니 덩치가 있는 해맑은 남성이었다. 저자 토드 로즈는 ADHD를 극복하고 매우 성공적인 교수, 작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경험과 진실.
이 책은 두 가지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서 더욱 울림이 크다. 실제로 어떤 병을 앓은 사람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여 극복하고, 그럼으로써 어떤 돌파구를 제시해준다면 신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더욱이 그 방향이 기존의 것보다 더 바람직하게 느껴지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 ![]() ![]() ■■■■■■ 본문 1 대니얼스가 조사 자료를 평균화해 비교해본 결과 평균 치수와 비슷한 학생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값을 일람표로 작성해보니 대니얼스조차도 깜짝 놀랄 만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0명이었던 것이다.
조종사 4063명 가운데 10개 전 항목에서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3개의 전체 항목에서 평균치에 드는 조종사의 비율이 채 3.5퍼센트도 안됐다.
평균적인 조종사 같은 것은 없었다. ■■■홍트리버 생각 평균은 매력적이고, 치명적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측정할 때 평균과 비교하는 것이 가장 처음 떠오르는 쉽고 간편하고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의 길버트 대니얼스는 4000명이 넘는 조종사 가운데 단 한 명의 평균적인 조종사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책 전반에 걸쳐 나오지만, 평균적인 개개인은 없다.
책에서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시피 평균에 기반하여 만든 개개인 대상 시스템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피터 드러커, 토드 로즈의 말을 종합해보면 과학적 관리나 평균이 득세하게 된 원인에는 타일러가 빠질 수 없다.
타일러 주의.
타일러가 숙련공의 업무를 각각의 개별 행동으로 분해한 후 그 행동을 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생산성을 끌어올린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일러는 개별 근로자가 가져가는 이득을 늘려주기 위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서 과학적 관리를 만들었고 이는 성공했다.
하지만 향상된 생산성의 대가로 평균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 평균을 집어던질 때가 되었다. ■■■일의 관점 피터 드러커, 레이 달리오, 갤럽의 스트렝스 파인더 등 다양하고 신뢰성 있는 주체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강점’에 집중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드러커에 의하면 조직의 목적은 항상 공급이 부족한 천재 대신에, 평범한 사람들로 비범한 결과를 내는 것이다.
조직은, 평범하지만 약간 뛰어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의 강점을 잘 활용하고, 평범하거나 약한 부분은 의미 없는 구조를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영속성을 달성해야 한다. 결국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최적의 업무 흐름을 만들고, 그 업무 흐름에 필요한 다양한 특성과 능력들을 확정하고, 그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개인을 고용하여 자리를 채우는 방법뿐이다.
이 과정에서 업무가 요구하는 특성과 능력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조직은 개인에 맞춰 틀어질 수밖에 없게 되며, 그 결과 가식적으로 좋은 관계와 목표 달성 실패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업을 하면서도 목표 달성이 아니라 다른 것 예를 들면 가족과 친구, 대인 관계 등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직무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작동하는 기업을 보면 항상 불협화음과 실패만 보일 뿐이다.
기업의 정신과 문화는 반드시 최고경영자가 주도하게 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는 이런 점을 인식하고 사업을 더 무겁게 느껴야 하지 않을까? ![]() ![]() ■■■■■■ 본문 2 에르 고딕 이론 ergodic switch
그룹의 평균을 활용해 개개인에 대한 예측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에르 고딕의 조건 1.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동일할 것. 에르 고딕의 조건 2.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미래에도 여전히 동일할 것.
그룹의 평균을 활용해 개개인을 평가하는 것은 인간이 모두 동일하고 변하지 않는 냉동 클론이어야만 유효한 일이 되겠지요.
그런데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인간은 냉동 클론이 아닙니다.
이 에르고딕 스위치라는 것은 일종의 지적 유인술로 생각하면 된다.
말하자면, 과학자, 교육가, 기업 리더, 채용 관리자, 의사가 평 균주 의의에 유혹에 속아 개개인을 평균과 비교함으로써 개개인에 대해 뭔가 중요한 것을 알아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지만 정작 실제로는 개개인에 대해 중요한 것을 모조리 무시하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홍트리버 생각 본문에서 처럼 인간은 모두 동일하지도, 미래에 같지도 않다.(인간은 에르 고딕 하지 않다.)
따라서 개개인에 대한 예측에 집단의 평균을 사용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평균에 해당하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정말 평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생각해보니, 암담하다. 그럼 개인을 어떤 기준으로, 무엇으로 측정해야 한단 말인가? ■■■일의 관점
개인을 집단의 평균으로 측정할 경우 반드시 실패한다면, 개인은 무엇으로 측정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평균에 비교한 측정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기업의 최상위 목표에서부터 하향식으로 목표를 나눈 후 그것을 달성하느냐 마느냐로 측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목표와 유지를 위해서 목표를 나누어 각 부서장급들에게 전달하고 부서는 부서별 목표를 갖는다.
부서별 목표는 개인에게 나눠 할당되며, 개인별로 나눠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채용 대상이 되어야 한다.
개인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게 되고 초과 달성하면 추가 보상을, 일정 기간 내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해고되어야 한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충분한 생산성, 실적이 동반되지 않는 좋은 관계는 허울로 끝난다.
결국 기업에서의 인간관계는 서로가 얼마나 생산적인 관계냐에 따라 결정된다. 범죄, 부패 등을 제외하면 상대가 인간적으로 정말 싫더라도 생산적이라면 견딜 수 있다.
기업에서 좋은 관계를 강조하다가 성과 달성에 실패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기업은 동아리가 아니고, 성과 없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 ![]() ![]() ■■■■■■ 본문 3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교육학자 벤저민 블룸 benjamin bloom
학생들에게 독자적 속도로 학습하도록 허용해줄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구상했다.
고정 속도형 그룹은 약 20퍼센트가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이었다.
반면 자율 속도형 학생들은 90퍼센트 이상이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이었다.
속도가 곧 능력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빠르거나 더딘 학습자는 없다. 물론 이러한 연구를 통한 논리적 결론은 명백할 뿐만 아니라, 유감스러운 부분도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고정된 속도의 학습을 강요함으로써 수많은 학생의 학습 능력과 성취력을 인위적으로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속도의 조절을 허용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도 배울 수 있다. ■■■홍트리버 생각 벤저민 블룸의 실험에 의하면, 한 교육에 있어 전반적으로 빠르거나 느린 학생은 없었다. 결론은 명백하다.
개인의 학습 능력과 성취력을 제한하지 않으려면, 학습의 속도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고정 속도 학습이 전체 학생 중 20%가 완전히 이해하고, 자율 속도 학습이 전체 학생 중 90%가 이해한다면 고정 속도 학습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무한정 기간을 줘서도 안될 것이다. 최종 마감 기한만 조절하고 나머지 부분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명확한 범위 제시와 그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일의 관점
이 내용을 업무에 적용한다면 최종 결과에 초점을 두고 다른 부분은 거의 자유롭게 두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목표치가 100이고 마감이 7일이라면, 그 안에 어떤 방식으로 달성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를 포함해 다다 수의 사람들은 그 꼴을 못 보거나 적어도 불편해한다. 기술과 방법을 통해 남들보다 몇 배 빠르게 일을 끝내고 나도 남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거나 보상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굳이 좋은 방법을 써서 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도하지 않은 고성과에 대한 방해는 아마 진정한 측정과 보상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로 추측된다.
별다른 기준 없이 시간으로만 측정을 해오다 보니, 실제 결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는 측정이 너무 쉬웠다.
1시간 내에 10개의 제품을 만들면 보통, 12개면 고성과 8개면 저성과 이다. 그러나 현대는 전혀 다르다.
업무의 중심이 노동에서 지식으로 넘어가면서, 양이 아니라 질을 측정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1일에 디자인 1개를 한 사람이 잘한 것일까, 디자인 5개를 한 사람이 잘한 것일까? 디자인에 대해 수량으로 성과 측정을 할 수 없다면 어떤 식으로 측정해야 그것이 그럭저럭 신뢰할 만 한가? 측정 기준에 대한 깊은 생각은 반드시 판단이 개입된다. 즉 측정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기업의 최종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의 매출만 가지고 마케팅 부서의 상급자로 진급을 시키면서, 부하직원들이 제대로 교육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소모되는 것에 지쳐 지속적으로 퇴사하는 상황을, 단지 부하직원 개개인의 인내심 부족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어떤 평가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이것을 고민하는 것은 책임자의 의무일 것이다. ■■■삶의 적용점 1. 볼 때는 이해 가지만, 완전히 내면화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핵심 주장들을 정리해서 외우도록 해본다. ■■■아쉬운 점 1) 시각화 요소가 매우 적은 점. ■■■마무리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더라도 역시 신선하다.
구조가 탄탄하고 논리 전개가 우수하다.
평균의 역사부터 시작하는 전체적인 접근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평균이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결론이 바람직하게 느껴지면서도 생각을 자극한다.
아주 좋은 책으로서 누구에게나 추천한다.
특히 경영자, 교육자, 인사담당자, 부모, 코치 등에게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by 홍트리버 이 POST 가 도움이 되었나요?정말 도움이 되었을 때만, <좋아요>, ♥ 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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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치에 따라서 조직을 설계하고 연구를 수행하면서 우리 스스로와 다른 이들을 허상적 이상과 비교하도록 내몰고 있다.-29p-
토드 로즈가 이 책에서 알려주려 했던 개개인성의 3원칙인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이 궁금해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현재 나는 2001년생 19살 아들과 2010년생 10살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이 책은 교사 학부모 필독서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능한 한 평균을 훌쩍 뛰어넘으려는 압박감을 느낀다. 우리가 평균 이상이 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평균 이상이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가 아주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하거나, 아니면(정말 끔찍하게도!) 평균 이하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64p)
10살 된 딸아이가 9살 때 영어공부를 하면서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다. 내 딸이 단어를 잘 외우지 못한다고! 파닉스를 알려줘도 못 알아듣고 그냥 통문자로 외워버린다! 그래서 그 반에 있는 다른 아이들보다 단어 시험을 치면 너무나도 많이 틀린다는 말을 전해주셨다. 그 순간 내 딸의 개개인성이 제거가 돼버리고 내 딸의 지능이 평균 이하인가 하며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평균주의에 빠져버린 엄마가 되고 만 것이다. 들쭉날쭉의 원칙!! 체격, 재능, 지능, 성격, 창의성 등등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인간의 거의 모든 특성이 들쭉날쭉하다.
내 딸아이는 영어 단어를 보고 외우는 방식이 평균주의로 놓고 봤을 때 평균 이하였지만 개개인성으로 놓고 봤을 때는 다른 아이와 외우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으로 마음이 놓였다. 딸아이는 작업 기억 working memory(정보들을 일시적으로 보유하고, 각종 인지적 과정을 계획하고 순서 지으며 실제로 수행하는 작업장으로서 기능하는 단기적 기억-옮긴이)이 별로 뛰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딸아이의 둘쭉날쭉성을 인식하고 나니 딸의 재능에 대한 일차원적인 관점에 사로잡혀 아이의 역량을 제약당할 위험을 그만큼 줄어든 것이 아닌가?
맥락의 원칙!!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평균적 경향이나 ‘본질적 기질’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맥락에 따른 행동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158p)
엄마인 내가 강박에 내몰리고 있었구나...
심리학자 토머스 R. 거스 키가 『성적 매기기의 개혁의 5가지 장애물』에서 말했다시피 “누군가 키, 체중, 식생활, 운동 활동을 종합적으로 측정해 단 하나의 숫자나 기호로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표시하자고 제안한다면 비웃음거리가 되기 쉽다.(중략) 하지만 교사들이 매일같이 학생들의 성취도, 태도, 책임감, 노력, 품행 등의 측면을 종합해 단 하나의 점수를 내서 통지 표에 기록하는 것에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250p)
경로의 원칙!! 인간의 발달은 (생물학적 발달이든, 혹은 정신적· 도덕적· 직업적 등등의 발달이든) 그 종류를 막론하고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하는 것이 없다. 경로의 원칙은 2가지 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첫 번째,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는, 그리고 그 어떤 특정 목표를 위한 여정 역시도 똑같은 결과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 두 번째,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경우는 당신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 (190p)
경로의 원칙이 달랐을 뿐이다. 딸아이의 영어 단어도 그랬었다. 속도가 곧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과 전반적으로 빠르거나 더딘 학습자는 없다는 사실을 경로의 원칙 내용 중에서 나에게 말해 주었다. 학습 속도를 학습 능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반박의 여지없는 오류라고! 영어 단어를 빨리 외우지 못하는 속도의 빠름이 아니라 잠재력과 재능을 믿고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주고 싶다. 나 역시 대학원에 가지 못하고 박사논문도 써보지 못한 것과 상관없이 나의 잠재력과 재능을 정상적인 경로 이탈로 나를 괴롭히지 말고 내가 갈 수 있는 길과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천천히 한 발자국씩 걸어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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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딸아이와 대화를 하던 중 딸아이는 내심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러저럭 괜찮은 아이같아.뭘 해도 평균보다는 나으니까." 이 말을 듣고 두가지 상반된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착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평균과 비교해서 조금 낫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학창 시절과 대기업에 다니며 숱한 시험, 평가를 거치며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는 비단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평가하는 그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또한 그 기준은 아무 문제 없이 우리를 합리적으로 평가했던 것일까요? 그 기준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저자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기준이 "평균"에 입각한 기준이라 이야기 합니다. 평균에 입각한 기준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배적인 이념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와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 바로 토드로즈의 "평균의 종말"입니다. 저자 자신이 평균적 기준에 미달한다는 평가를 받아 자퇴를 했지만 결국 하버드대 교수로 성공한 경험을 가진 저자는 평균이라는 허상을 기반으로 만든 기준이 우리의 삶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잘못된 인식임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 합니다. 평균은 허상에 불과할 뿐임을 보여주는 들쭉날쭉의 원칙, 본질적인 천성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맥락의 원칙, 성공으로 가는 정해진 경로, 보편적 경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경로의 원칙 등 평균주의를 뒤짚은 세가지 원칙을 통해 평균주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원칙인 경로의 원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비롯한 인생의 선배(?)들은 우리게게 "너는 공부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이 되는 게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이다."라는 식으로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또 우리가 다음 세대에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고 방식은 우리에게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마치 정해진 길이 있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줬습니다. 이러한 환상은 마치 정해진 경로에서 이탈하면 경보음을 울리는 네비게이션 처럼 성공적인 삶의 경로에서 벗어나면 큰일이 날 것 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삶에 정해진 경로는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단지 개개인성에 기반해 자신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경로를 선택하는 삶의 주체만 있을 뿐 정해진 경로는 없다고... 저자는 평균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회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들쭉날쭉의 원리, 맥락의 원리를 통해 자긴 자신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개개인성에 입각해 자신의 경로를 스스로 정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실재하지 않는 허상인 평균과의 비교를 거부하고 자신의 개개인성에 기반한 삶을 살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그 판단의 정당함을 깨닫게 해주는 책, 평균주의에 빠져 스스로를 질타하는 삶을 살고 계신 분들에게 개개인성에 기반한 삶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책, 바로 토드로즈의 "평균의 종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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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경주에서 있었던 진로/진학지도 연수의 강사로 오신 대구교육청 장학사님의 소개로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을 접하였다. 책의 제목만으로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였으니, 제목을 정한 그 누군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교직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끊임없이 든 생각은 하나였다. 학생들은 모두 각자의 다양한 개성과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효율성'을 이유로 여러 명의 학생들을 하나의 공간에 모아두고 가르치고 있는 교육의 현실 속에서 과연 학생들을 '집단'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개인'으로 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러한 평소 나의 고민과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데 실마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책의 구성 및 흐름은 이렇다. 우리가 '평균'이라는 허상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그 기원과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저자는 이제 평균이 아닌 개개인에 집중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3가지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들쑥날쑥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 (개인적으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부분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2부의 내용만 읽어도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개개인에 집중하여 성과를 낸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그러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나의 고민에 대한 답의 실마리는? 한 명의 학생이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찾고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데 교사 한명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다. 그에 못지않게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사회적 분위기는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에 있어서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 교사인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은 무엇인가? 기존의 평균주의적 시각을 버리고 학생들 개개인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지켜봐주는 것이다. 비록 공부를 조금 못하더라도 분명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있는 분야가 있을테니.. 나의 역할은 천천히, 그리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는 것. 이것이 교사인 나에게 요구되는 자세와 태도라고 본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한 무엇을 잘 하는지도 모르고 막연한 기대감으로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대학교에 진학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그나마 늦게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다행이지만..)
저자는 말한다. '모든 것은 하나의 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개개인을 소중히 여기기로 마음먹는 일이다'
이 한마디에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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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생각의 틀을 깨주거나 이건 아닌데 했지만 왜 그런지 몰랐던 것에 대해 명쾌하게 말해주는 책은 너무 반가운데... 이 책이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평균을 기준으로 자신을, 남을, 세상을 판단하며 살아왔다는 걸 알게됐고 평균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 것일 수 있는 지 알려 주었습니다~ 참고로 평균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잘못 하고 있는지 설명해줍니다. 나 자신의 문제점을 찾고... 사회의 문제점... 정보판단에서 문제점 등등..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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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들과 비교를 하며, 비교를 당하며 살아간다. 내가 남들과 떨어지는지, 내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우리는 평균보다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세상에 평균적인 사람은 없다. 평균이란 것은 항목마다 모두 변화한다. 키,몸무게,발 사이즈, 허리 둘레, 단순 암기 점수, 시사상식 점수 등, 많은 항목이 있지만 이들을 종합하면 아무것도 없다. 즉 nothing. 말 그대로 평균적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힘들게 살아가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균적인 사람이 없는 이 순간부터 우리는 개개인의 장점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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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재능을 발견했고, 주입식 수업 대신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찾아 흥미로운 분야를 공부했고, 이제는 교육학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세계적 인물이 되어 자신과 같이 평균이라는 허상에 가려져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평균적인 재능, 평균적인 지능, 평균적인 성격이란 실재하지 않으며, 탄탄한 과학적 이론을 통해 심지어 그 같은 개념이 완전히 잘못된 허상임을 밝힌다.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 암기력이 좋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상황 판단이 빠른 아이가 있고, 수리적 이해가 높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있다. 그러나 공교육은 그 같은 다차원적인 개개인성을 무시하고, 연령별 평균적 지능이라는 기준에 따라 학습 과목과 난이도를 정해놓고는, 그 아이의 점수가 평균 점수보다 높은지 낮은지만 보면 모든 재능을 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저자는 시대가 바뀌면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학교를 지배하는 평균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 아이들 각자를 창조적 인재로 키울 수 있도록, 혁신적인 교육법과 평가법을 제안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창조적 인재가 필요한 지금, 창의성을 죽이는 주입식 교육도, 재능을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해 능력을 발휘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교육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데 견고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