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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악을 제일 많이 들었던 때는..그러니까 고3때였다. 매일 밤마다 집에서 '소리**'에서 다운로드를 받고, CD를 클리핑해서 CD하나에 200여 곡을 꽉꽉 채워서 나만의 씨디를 하나씩 제작했고 다음 날 야자시간 짝꿍과 이어폰을 나눠서 듣고, 또 들었다. 소곤소곤, "이건 코나 노래야, 진짜 좋지?" 다른 친구들이 잘 안 듣는 음악을 찾아 듣고, 유희열의 라디오에 열광하며 이승환 콘서트를 쫓아다니는 '문화적얼리어답터'를 나름 흉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가사에 그다지 신경쓰지도 않고, 음악은 오가며 듣는게 다인데, 그건 내가 사춘기가 아니라 그런게 아닌가 싶다. 차우진의 <청춘의 사운드>를 읽으며 내내, 그때가 생각났다. 쨍한 겨울 하늘고, 볼을 스쳤던 차가운 바람, 그리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던 '사춘기의 사운드'들... 지금 내가 그때처럼 성실한 리스너가 아닌 것은 어줍잖은 사춘기도, 어설픈 청춘도 아니기 때문일까. 그래서 '음악'과 '청춘'을 긴밀하게 엮은 이 책이 내게는 매우 영민하고, 똑똑하게 느껴진다. 청춘과 사춘기를 관통하고 있는 사람에게 음악만큼 훌륭한 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남들은 '풋'하고 비웃고 말 싸구려 가사에 마음 한 곳이 저릿저릿해 본 경험이 누구에겐들 없겠는가.
차우진이라는 필자는, 이를테면 다작하는 조연배우 같은 작가다. 여기저기 많은 글을 기고하고 있어서인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그의 글은 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고, 나는 이름을 보지 않아도 그것이 '차우진'이 쓴 것을 이내 알아본다. 그의 글은 언제나 자신이 무얼하고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를 알고 있다. 애둘러 돌아가지 않으며, 명확하고 기민하게 할 말을 하고, 그럼에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남자가 이런 감수성을??이라고 다소 징그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여전히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배회하고 있으며, 그래서 항상 읽는 이의 어느 부분을 쿡쿡하고 찌른다. "너도 이런 생각하고, 이런 고민하지 않았어?"...이렇게 말이다. 씨네21이나 한겨례같은 잡지에도 글을 쓰고, 갑자기 어느 백화점의 사보 비슷한 잡지에서도 그의 글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그가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어떤 작품이나 사람, 사물을 섣불리 판단하고, 평론하지 않으려 하는 안감힘이다. 그의 에세이집 <청춘의 사운드>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제목은 챕터 4의 '너와 나의 21세기'일 것이다. 그는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21세기의 음악을 통해 때론 시대를 묘사하고 그 순간을 비겁하지 않게 살기 위해, 나만의 속도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어느 누군가를 위무하려 노력한다. 그것은 어떤 감수성을 가졌거나, 어떤 음악을 많이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중문화에 대해 적당한 안테나를 세우고, 자기 안의 철학과 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사람이기에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순간들이, 이 책 안에는 있다.
무언가를 읽고, 보고, 들었을때...무어라 그 느낌을 설명하고 감상을 표현하고 싶지만 잘 안 될 때가 있다. 내 마음 속에 동그랗게 말려서 차마 말로, 글로 표현이 안 되는 그 어떤 정서와 감성을 차우진은 적절히 표현한다. 때론 나의 감상을 쪽집게처럼 표현해내서 '이 남자 뭐야?'하고 놀랄 정도다.ㅎㅎ
어쨌든, '청춘' 타령이 넘쳐나는 지금, 거의 유일하다싶게 청춘의 어떤 순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변두리 아웃사이더 청춘들의 어떤 소외감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 어떤 문장들 때문에 몇 면 울컥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에세이집. 꽤 슬프고 서정적이고, 우울하다.
책속에서...
새삼 상기하자면, 젊음은 열정도 뭣도 아니다. 그저 어떤 시간일 뿐이다. 그 시간은 때론 고통스럽지만 때론 환희에 차 있으며 또한 무기력하다. 결국 그걸 어떻게 지내느냐가 관건이다.
29p 젊은 날의 불확실성과 지속가능성, 장기하 [싸구려커피]
"오늘은 무엇을 해야 슬프지 않을까"란 가사처럼, 집으로 가는 길에도 우리는 슬프다. 이것저것이 죄다 슬프지만, 슬픔 자체보다 이 슬픔이 지속되리라는 게 더 슬프다. 이 지속을 막을 길 없으므로 또한 비극이다. 그래서 노래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 때 나는 기껏 열 몇 살이었다. 어둠 속에서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 무서웠다. 이제야 깨닫는다. 때마침 기타도 높은음자리로 솟구친다. 돌아갈 곳을 정한 자들은 어쨌든 나아간다. 마침내 가 닿는다.
따뜻한 그 곳, 보드랍고 안전한 거기, 당신에게로. 110p 무얼해도 슬펐던 시절의 풍경 황보령 [Shine in the dark]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위성 통신망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고 이러저러한 삶의 조건들이 각각의 시대마다 달라지고 우리들 삶의 속도가 거기서 전혀 자유롭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속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온전히 자기 속도로 살아가는 일은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기준에 부합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다.
117p 다른 속도로 살아가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Infield Fly]
창작자에게 클리셰는 말 그대로 함정이다. 아무리 노련해도 빠지기 쉽다. 그런데 문제는 함정이 아니다. 그걸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요컨대 뻔한 문장을, 뻔한 수사를, 뻔한 멜로디를 어떻게 세련되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139p 어른이부르는 사랑노래, 양양 <오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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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오감을 최대한 사용하라고 한다. 그래서 공부의 왕도에 나오는 모범생들의 공부비법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오감을 거의 다 사용한다. 어떤 학생은 이렇게 공부를 했다. 영어를 공부했는데, 영어 단어와 문장을 읽고 그 뜻을 읽은 뒤에 그 읽은 것들을 녹음을 한다. 그리고 아까 녹음했던 단어들과 문장들을 쓰면서 듣는다. 그리고 그 것들을 본다. 이 학생은 오감 중 4개의 감을 확실하게 이용했다. 역시 공부의 왕도에 나올만한 자격이 있는 학생이었다. (나는 공부의 왕도에 나가지 않는 것이다. 못 나가는 게 아니라. 흑흑.) 미각, 촉각, 후각, 시각, 청각. 총 오감. 나는 이 오감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이 오감을 뛰어넘을 수 있는 또 다른 감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생각’이다. 사실 이 오감은 바로 생각이라는 또 다른 감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맛보는 것도, 만져보는 것도, 맡아보는 것도, 바라보는 것도, 듣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생각이라는 최후의 감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 오감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한다는 나의 생각은 서서히 정설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 비평이나 분석을 할 때도 나의 신념이 되어버린 생각은 적용된다고 굳게 믿는다. 오감을 최대한 사용하여서 어떠한 대상을 비평과 분석을 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생각이 가장 훌륭하게 정리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음악을 비평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영화나 요리를 비평할 때는 최대한 두 개의 감이 사용된다. 가령, 영화는 시각과 청각이, 요리는 시각과 후각과 미각이 그 영화와 요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주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음악은? 한 개의 감이다. 오직 청각. 볼 수도 없고, 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맛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영화와 음악의 비평 수준의 차이가 아직도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음악을 비평하는데 오감이 아닌 또 다른 것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과거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음악을 연관 지으며 특정 음악이 주는 추상적인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준다. 덕분에, 스치듯 들었던 음악들에 대해서 ‘아 이 음악에는 원래 또 다른 의미가 있었고, 또 다른 관점으로 들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들을 다시 들게끔 한다. 물론, 가끔씩은 ‘이 음악과 자신의 옛 기억이 어떤 관련이 있는 거지?’ 하며 의구심을 들게 하는 내용들도 있지만, 아직은 내가 어려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 이해를 하려나. 어찌됐든, 그는 자신이 규정한 ‘청춘의 사운드’ 안의 곡들을 청각과 과거를 통해서 자신의 글로 완성시켰다. 그래서 어떠한 노래에 대해서 심한 비판의 내용과 스스로 ‘이 음악은 이렇게 들어야만 맞는 음악이야!’라고 규정짓는 내용이 없는 이 책은 이미 들었던, 또는 듣지 못했던 음악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고 듣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노래를 자신의 언어로 바꾸는 것. 내가 아는 평론의 분야 중 가장 힘들고, 그래서 가장 개척해야 할 부분이라고 믿는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도저히 음악에 대한 글은 제대로 쓸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두 번 했다.) 나는 언제쯤 멀쩡한 글을 쓸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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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차우진의 글을 접한 것은 인터넷 웹진 웨이브(http://www.weiv.co.kr/)를 통해서였고, 그렇게 접하게 된 이후로 그가 발표한 모든 글들을 접하진 않았지만 되도록 그의 글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빼놓고 읽지는 않는 수준으로 그의 글들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아주 분석적이거나, 매우 세련된 글을 쓴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인 정서와 생각들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글로써 드러낸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인 글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글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우진 산문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청춘의 사운드’는 저자의 서문처럼 대중음악(이기 보다는 한국의 인디 음악과 몇몇 대중음악)을 통해서 이 시대의 청춘(들)이 어떤 존재들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존재들이 생활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시대는 어떤 사회-시대인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접근을 위해서 크게 세 가지의 방식으로 다가가보려 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저자 본인의 여러 기억들과 추억들을 통해서 지금을 접근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고, 두 번째는 그가 선택한 여러 앨범들과 노래들을 통해서 해보고 있고, 마지막으로는 2000년대 한국 사회를 통해서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하든 바라보고 있든 역시나 ‘청춘의 사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고, 음악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그리고 청춘을 바라보려고 하고 있거나, 한국 사회를 통해서 음악과 청춘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자는 어떤 경우에는 음반을 통해서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하고 있고, 어떤 경우는 노래를 통해서 이해를 해보려고 하고 있는데, 몇몇 앨범들은 아쉽게도 들어보질 못한 음악이거나 들었어도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은 앨범-노래들도 있기 때문에 저자의 평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동의를 넘어서 좀 더 세심하고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감탄하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떤 경우는 어째서 그 앨범이 혹은 노래가 누락이 되었는지 아쉬울 때도 있었고, 조금은 다른 평가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혹은 지금 현재의 처지를 얘기하며 자기 자신에게 응원과 다짐을 하기도 하고, 지금의 청춘들에게 위안을 보내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기도 한 것 같지만 어떤 경우에는 생각보다 단호할 때도 혹은 냉정함을 보일 때도 있다.
저자의 음악을 음악으로서만이 아닌 사회와 시대와 관련지어서 생각해본다는 점에서는 무척 의미 있는 방식이고 시도일 것 같다. 저자가 어떻게 그런 방식의 접근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접근이 무척 필요하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저자의 접근에 대해서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물들에 대해서 옹호하게 되고 동의하게 된다. 조금은 다른 의견을 내세울 수는 있을지라도 기본적인 입장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어떤 위로를 혹은 다짐을 원한다면 이런 책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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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글을 처음 본 건 아마도 꽤 오래전이었던 것 같은데
한동안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걸 잊었었는데,
무엇보다 음악과 영화, 티비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그의 말은
그런 다소 편파적인 독자의 입장에서 그의 첫 번째 책을 읽었다.
차우진답고,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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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소원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음악'이 세상의 전부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어떤 취미, 놀이보다도 즐겁고 행복했던 그 시절. 영혼을 위로하고 사랑을 키우고, 나를 성장시켜줬던 음악들.
어쩌면 그 시절을 흘러왔던 세대들에게는 누구나 '내 청춘의 사운드'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을 정도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의 '청춘의 사운드'는 바로 그런 책입니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하는 것인지, 그저 어른이라는 그릇에 갑자기 담겼을 뿐, 어른이 아닌. 그래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그런 자신에게 누구도 '넌 잘 하고 있어'라고 말해 주지 않는 시기. 그래서 그 혼란이 열정과 뒤섞여 끝없는 열병 속에 지나쳐버리는 그런 청춘들에게 차우진의 글은 일관되게 '넌 잘 하고 있어'라고 말해줍니다. 그의 장기인 '음악'을 통해서 말입니다.
"청춘의 시절에는 자주 속았다. 사랑도 분노도 절망도 바닥까지 몰아가야만 직성이 풀리고 고통스러워도 그래야만 진짜라고 생각했다. 진이 빠질 때까지 울며 뛰며 소리치며 스스로를 닥달했다. 스스로 경계 지어 놓은 진짜와 진짜 아닌 것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판독하기에만도 늘 시간이 모자랐다." - 김선우 시인의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서문에서
음악평론가라는 직업상 여러 곳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으고 정리해서 펴낸 책인 만큼, 참 수많은 음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 음악들의 소개로 끝이라면 개인적으로는 그냥 관심있는 음악만 읽어보고 그냥 접었을 것 같습니다만, 앞서 언급했던 청춘의 BGM이라는 성향과 음악 평론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은 적절히 두 가지 니즈를 모두 만족시켜주고 있습니다(하물며 약간은 멜랑꼴리하고 조금은 자기비하적인 그의 글 스타일이 정신 없이 느껴지면서도 치밀한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글발이 좋달까요. 부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재'의 장점은 반대로 감성적 노스탤지어와 학술지향적 고리타분함의 한 쪽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면(예컨데 저는 예전 앨범을 사면 들어있던 깨알같은 글씨의 앨범 평론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이런 걸 왜 넣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누군가 청춘을 겪고 있거나 그 시절을 지내왔던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정서와 같은 색으로 흐르는 음악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그리고 그의 청춘, 누군가의 청춘을 엿듣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1. 위태롭게, 아름답게
개인적으로 제 나이와 굉장히 비슷하고, 그래서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아왔을 저자이지만, 제가 들어왔던 음악들과는 꽤 결을 달리 합니다. '곧 죽어도 락(Rock)'이라며 락음악을 좋아했지만 그야말로 천대받으며, '락 밴드'와 '인디'라는 단어가 동의어로 느껴지는 대한민국 음악계가 싫었는지, 아님 그냥 포기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예 무관심했었지요.
그러던 중 최근 '탑 밴드'라는 공중파의 밴드 서바이벌, 그리고 이런 책을 통해서 다시 듣게 된 국내의 락음악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물론 이 책에 락음악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음악들이 소개되어 있고, 그런 가운데에도 놀랍게 좋은 음악이 많았어요. 무려 '아이돌'도 있구요).
청춘에 이어지는 세상살이에 대한 현실적인 두려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텁텁함, 삶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마찰력. 이런 이어짐의 공감대는 이미 청춘이 지나버린(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지만서도요) 사람들에게도 공감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이미, 저자의 말대로 삶에는 음악보다 좋은 게 100만개쯤은 더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음악이 주는 공명은 더 이상 예전만큼의 강력함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의 팍팍함과 쉽지 않음을 경험한,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이들, 그리고 '한 때는 나도'라는 감정이 살아나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또한 우리 모두에게 럭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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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 기차여행과 함께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 가벼운 산문집이나 에세이가 좋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청춘의 사운드>를 여행 가방에 담아 왔습니다. 여행을 함께하는 동행인도 있었지만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몇 시간을 음성으로 채울수는 없으니 , 잠시의 수다와 잠시의 잡다한 생각들과 그리고 잠시의 책 넘김을 함께 했습니다. 오랫만에 타는 밤 기차는 꽤나 매혹적이기도 하네요. 스스로 인디 문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깊이감이 얕다 보니 , 영화나 음악, 공연을 보고 난 후, 제대로 내가 느끼지 못했구나.. 라고 늘 생각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음악 역시 그러하지요. 얼마전 블로그에도 끄적였던 것처럼 취향이 변한다는 것은, 스스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낭랑 18세적에는 랩이 들어간 노래나 발랄한 대중가요에 매료되어 늘, 워크맨과 어쩌면 불법 테이프인 노점의 최신인기 가요 테이프를 사들고는 오래된 카세트에 플레이어를 수없이 했습니다. 아직도 제 방 어느 한 곳에는 오래된,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의 가요 테이프들이 고스란히 먼지를 머금은채 꽂혀 있어요. 이제는 하나의 추억의 편린이 되어버렸지만.. 급속히 변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그리고 그에 따라 나의 감성이나 취향도 급속히 그 발빠름에 맞춰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대중가요를 즐겨 들었던 나는 어느순간, 언제였을지도 모르게 음악적 취향도 인디밴드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었네요. 대중음악과는 다른 독특한 멜로디와 현실적인 청춘을 노래하는 가사들이 , 제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노랫 가사말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청춘들, 그러니까 20~30대들이 겪고있는 많은 고민들을 담고있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산문집 <청춘의 사운드>는 음악 평론가 차우진이 지금의 청춘들에게 전하는 ,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아니 오로지 '음악' 이야기로 텍스트를 꽉 채운 책이였다면, 아마 저도 중간에 읽다가 책을 한 구석에 던져 버렸겠지요. 차우진 평론가는 다양한 장르를 이 책 속에 담고 있습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와 ‘보편적인 노래’,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가을방학의 ‘가을방학’ 등 인디그룹의 음악부터 샤이니의 ‘JOJO’, UV의 ‘집행유애’, 노라조의 ‘카레’,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ABRACADABRA’ 까지 다양한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비해 지금의 청춘들이 느끼고 있는 사회적인 관점과 청춘들의 입장,관점에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인디 음악들을 들으면서도 아직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인디밴드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그리고 어느 한 밴드 음악의 음성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설명함으로써 '도대체 어떤 느낌이지?' 라는 궁금증이 생겨 뮤직 앱을 실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그 중 인디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나' 이기도 하지만, 늘 표면적으로 들리는 그들의 음성과 멜로디에만 빠져 지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또는 자신의 팬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스마트폰 플레이 리스트에 수두룩히 담긴 노래들을 전과는 다른 생각과 느낌으로 다시 플레이 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청춘의 사운드>라는 제목처럼 어쩌면 많은 청춘들은 현실에 지친 심신을 조금이나마 음악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이 없는 세상, 노래가 없는 세상은 단연코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지금,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적막하고 삭막한 공기를 어떻게 버티고 견뎌 낼수 있을까요..
<청춘의 사운드>는 음악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면 꽤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산문집이 될 것입니다. 더욱이 인디음악에 관한 이야기라면 말이지요. 저도 차우진 평론가의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공감 백 하는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읽게 된 계기는 인디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듯한 기대감에서였지요. 분명히 이 이야기는 그러했습니다. 그동안 줄기차게 지겹도록 들어왔던 어느 인디밴드의 노래에 대해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솔솔했지만, 때로는 관심없는 특정 그룹이나 밴드의 이야기에선 건성 건성 텍스트를 눈으로만 훑어내렸으니 말입니다. 이 산문집은 음악에 관해 관심과, 무관심으로 갈라짐으로 호 불호도 또한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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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려고 이 책을 산건 아니었다. 읽다보니, 저자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 같기도 하다. 대중음악을 재료로 삶의 에세이를 쓰고 싶은 건지..우리시대 청춘송에 대해 논하고 싶은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제대로된 음악비평가로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은건지.. 도통 갈피를 못잡고, 산으로 간다. 애초에 각 잡지나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것이라도 하더라도, 어느 챕처에서는 특히나 마지막 챕터,, (흡사 대중음악비평론 특강을 들은 듯 함.) 에서는 아예 대중음악비평론과 음악비평에 대한 대한민국에서의 애달픔과 고민을 늘어놓고 있었다. 물론 좋은 생각들이고, 한번쯤은 되새김해볼만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내 기대에 찬 책은 아니어서 그런지,,아쉬움 맘 뿐이다. <청춘의 사운드>라는 제목에 맞게, 난 솔솔한 에세이를 겸한 시시콜콜한 음악애기를 기대했었기에,, 삼성라이온즈 투수 차우찬과 이름이 비슷한 차우진은 GQ 잡지에서 기고한 글들을 본적이 있어서 내심 기대했었기에 더 아쉽기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