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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역사를 알면 시대가 보이고 시대를 알면 사회가 보이고 사회를 알면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는 현대를 알기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역사를 아는 것은 바로 사람을 알게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반가운 책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이다. 이 책은 역사에세이인데 쉽게 읽히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이며 무엇보다도 사회구성원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의 역사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가족의 모습속에서 힘겨운 가장의 역할을 떠올리며 가장의 역할이 처음부터 힘겨웠을까? 라는 가벼운 호기심에서 시작된 조선시대의 가족의 이야기들 속에는 신분제사회였던 조선사회속에서 가족들은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많은 혁명이 일어난 시대이다. 또한 19세기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사회는 변화라는 물결이 꿈틀대는데 그 변화는 사회의 기초적인 단위인 가족의 삶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가장 큰 변화는 불교중심의 문화에서 유교문화로의 변화를 꼽을 수 있는데 조선 초 혼인의 풍습은 대부분이 처가살이였다. 사림파의 종장 김종직으로부터 성리학 부계사회의 영향으로 인해 처가살이가 퇴조하고 시집살이로 변하기 시작하며 , 인수대비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리학에 대해 생각하고 향후 성리학과 여성들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신분제도의 변화의 시도가 있었던 시기로서 서얼이었던 노수가 경제력을 키우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며 족보에서 '서'자를 제거하고 문중에서 위치를 확보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조선 후기 서얼들의 신분 상승 과정을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럼 조선시대의 여성의 지위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생각했던 조선시대 여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보여지는 것은 유명한 칠거지악으로 인해 부인이 쫓겨난 경우는 없었으며 중국의 전족이라는 제도에서 보여지는 중국여성의 지위와는 달리 처라는 지위가 확고부동한 지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확고한 지위로 인해 첩을 시기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게다가 중화사상에 젖어 있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전족만은 예외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확고부동한 지위였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무척 재미있는 사실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또한 제사의 변화를 빼놓을 수 없는데 현대 사회에서 제사라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를 조선 시대 제사의 권한을 가진 총부를 통해 조선시대의 제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제사는 엄청난 권한과 막중한 힘을 발휘하는 권력을 가진 자로서 거의 맏며느리에게 전수된다.조선시대에 총부자리를 두고 갑론을박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총부가 가진 절대적 권력의 힘 때문이었는데 아마도 현대 사회에도 맏며느리에게 제사만 강요하지 않고 그에 따른 권한 또한 주어진다면 아마도 제사는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조선 시대가 유교적이거나 타문화에 배타적인 모습때문에 한 때는 조선 시대를 무척 한심하게 바라본 적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속으로 들어가보면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시대와 달리 자신의 뜻을 가지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시대와 함께 생생히 살아숨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시대를 살던지 시대를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불행한 역사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역사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조선 사회에 대해 막연하게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역사에세이면서도 그 안에 가족과 사회의 메커니즘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아주 재미있는 역사를 말하고 있다. 또한 가족들의 사는 모습에서 우리의 사는 모습을 반추해보며 역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과 현대를 사는 우리 또한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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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소중함을 말해서 무엇 하랴.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성, 감성적 따질 것 없이 최고의 사랑을 나누는 관계다. 가족에게는 무엇이든 자신의 능력이 닿는다면 다 해줄 것이라 생각된다. 심지어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관계가 가족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은 조선 시대를 통해 글 속에 혹은 이야기 속에 나타난 가족의 모습을 다각도로 살피고 있다. 인간의 기저에 숨어 있는 이런 보편성이 이 글 속에서도 함유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 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길 전개해 흥미를 느끼게도 만들어 준다. 흥미 있게 읽은 책이다. 16c 이전의 가족은 여인 중심이었음을 말한다. 사림파의 원조로 불리는 김종직, 그리고 현모양처의 표본이라고 알려진 신사임당, 명문장가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의 가족 등을 들어 그 사실을 증명해 간다.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결혼을 하면 신부는 친정 가까운 곳에 살고 신랑이 그곳과 본가를 왕래하면서 살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남귀어가혼이라 한다. 가정이 여성이 중심이 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말이 되겠다. 신사임당의 경우, 37세까지 그녀의 고향인 강릉에서 살다가 본댁의 살림을 맡기 위해 서울로 떠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었다. 그 시는 그렇게 살았던 고향 그곳을 떠나는 아쉬움 마음이 방영되어 그렇게 절절하게 그려진 것이다. 이 시를 보더라도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삶보다 얼마나 딸로서의 삶이 강했는가를 말하고 있다. 그분의 삶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현모양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다. 지식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하고, 남편을 성실히 내조하는 여인을 현모양처라고 할 때 말이다. 17c 후에는 김종직에 의해 성리학의 개념을 도입해서 중국의 부계중심사회를 수용해야 한다는 사상이 일반화되었다. 그것이 가문 중심, 사회 중심으로 나아가면서 남성 중심의 가족이 형성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온다. 그런데 김종직도 그의 아버지 김숙자가 결혼하여 고향 구미에서 산 것이 아니고 부인의 고향인 밀양에서 살았기에 밀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도 결혼하여 아내의 집이 있는 김천에서 살았다. 이런 것들이 당시 얼마나 여성 중심의 가족으로 형성되었는지 보여 준다. 이 여성중심의 사회가 차츰 힘의 논리에 의해 구심점을 남자로 옮겨 가면서 여성성들이 힘이 미약해졌다. 그것이 제사 같은 곳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여성들이 제사를 지낼 수가 있었고, 자녀들 중에서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제사를 모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받들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조선 후기부터는 장남에 의해서 제사를 모시게 되고, 또 남자들만 제사에 참여하도록 되었다. 이 제사를 중심으로 한 남성본위 가족사회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여성들은 그 권위가 상실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가정에서 그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인수대비가 성리학을 취해, 내훈을 작성한 것도 여성들이 더욱 현실을 직시하고 똑똑한 위치에 서도록 하고자 함이었다고 말한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여성들이 자생의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며느리 윤씨를 폐비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남편이 죽은 맏며느리를 총부라 한다. 이 총부의 권세가 조선조 중기까지 대단했다고 한다. 총부는 가문을 재정립할 수 있는 권세까지 있다고 보여 진다. 만일 양자를 들여 기존의 차자들이 가진 권한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이 당대의 현실이었다고 하고, 판례도 그런 것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현세자의 부인 강씨도 총부였다. 소현세자가 죽고 난 후 인조는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그런데 총부인 강씨가 살아 있고 소현세자의 자녀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 속에서 인조는 위기를 느꼈다. 그래서 역사에도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인조는 강씨에게 사약을 내렸다. 강씨의 힘을 의식하지 않았으면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사실 당시의 많은 선비들이 소현세자의 장남이 세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었다. 세종의 부인인 심씨의 부친이 되는 심온도 외척 가문의 힘에 부담을 느낀 태종에 의해 제거되는 비운을 맞는다. 이런 것들은 모두 가족의 끈이 얼마나 단단하였던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이처럼 가장에서 여인들의 힘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은 어떤 상태에서든 면면히 능력을 지닌 존재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이 가문이 되고, 집단이 되었을 때 남자를 앞세웠지, 가정에서는 여인들이 집안을 다스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반증으로 오늘날 여인들이 집의 통장을 관리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한 집안의 질서는 우리가 기존의 알고 있던 남성본위의 사고와 많이 다름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사실을 그려내면서 가정에서의 여성의 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조선 사회는 가족을 중시했다. 교육과 복지의 많은 부분 가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심지어 조선 후기엔 국가는 없고 집안만 있다고 할 정도로 집안이 중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안을 다스리는 여인들의 힘이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 사회가 우선시된다면 남성들의 권위가 더욱 드러날 수가 있다. 그러나 가문과 가정의 힘이 두드러지면 여성들이 힘의 우위를 우리가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많은 부분 이야기 되고 있다. 그 외에도 조선 시대에 여성들의 사랑, 욕망, 지혜 등이 어떻게 가정 속에서 나타났는가를 그려주고 있다. 한 번쯤 귀를 기우려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조선 시대의 여러 가족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교 사회에서의 가문과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그들의 참모습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가족의 면면을 보여주면서 일관된 흐름을 이야기해 나가는 이야기 전개 방식을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이미 배워진 지식으로 알고 있는 문제들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겠다. 칠거지악으로 인해 여자가 쫓겨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양자 제도가 이었음은 그 대안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은 여인들의 집안에서의 위치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든다. 집안에서 종부 등은 위세도 대단했고, 집안을 좌지우지할 수가 있었다 한다. 그것도 여성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조선의 가족 얼굴을 그려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가정에서 보여준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준다. 그리고 여성들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려나간다. 조선 시대 가정을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책이다. 예화를 통해 조선의 많은 표정들을 읽을 수 있어 마음에 흡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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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그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의 묘미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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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북스에서 출판된 [조선의가족 천개의 표정]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보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는데 읽어야 할 책들도 밀려있고 수준에 안맞는 책을 읽다가 페이지를 넘기느라고 아주 죽을고생을 한 기억이 잊혀지지않아 나중을 기약하고 말았다. 그런데 드림모노로그님의 리뷰를 보니 생각보다는 읽기 수월할것도 같고 다루고 있는 내용도 재미있을것 같아 댓글에 읽어볼껄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글을 남기자 드림님께서 선뜻 보내주신다는 연락과 함께 [보노보의집]과 [조선의가족천개의표정] 두권을 보내주셔서 이책과 연을 맺게 되었다. 읽고싶다는 말에 성큼 책을 보내주신 드림모노로그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좋은 인연을 만나는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국한된 책읽기를 즐기다보니 아무래도 소설에서 벗어난 방향의 독서는 조금 꺼리는 면이 있었는데 역사를 주제로 한 에세이라 그런지 모르던 사실을 알게되는 재미며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우리나라의 오만원권 지폐도안에 들어갈 인물로 누가 적당한지 상당히 많은 논의를 거쳐 지금의 신사임당으로 결정된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신사임당이라는 인물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일단은 현모양처의 느낌이다. 아들인 율곡때문인지 몰라도 내조를 잘하고 자식의 양육을 바르게 한 인물이라는 생각에서 현모양처와 신사임당을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알던것처럼 신사임당이 자신을 뒤로 놓고 남편과 자식의 교육에만 헌신했느냐하면 그것은 아니라는것이다. 신사임당은 스스로에게 몰두하며 자기안의 성취감을 느끼며 산 인물이라는 것이다. 신사임당은 며느리로 살기보다는 딸로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알던 조선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는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알기로는 조선의 여자에게는 삼종지도가 전제되어 있고 한번 출가하면 시집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그시대에서는 부계의 혈통 못지않게 모계의 혈통 또한 중시해서 남자가 장가를 들어 처가에서 생활하는것이 흉이 되지않던 시대라는것이다. 고려의 생활에서는 여자의 지위가 조선시대보다는 높았다는것을 알았지만 조선의 여자들에게도 시집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친정에서의 생활이 가능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지못할경우 대를 잇기위해서 양자를 들이던 풍습 또한 오해하고 있었는데 남자쪽의 권유가 아니라 여자쪽의 필요에 의해 양자를 들였었다는 사실은 이번 기회에야 알게 되었다.
조선의 신분제를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이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나오듯 서얼이라고 할것이다. 호부호형을 하지못하고 양반가의 자식이라고 하나 과거라는 제도안으로 들어가지못했던 그들은 조선시대에서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울분을 참지못하고 서얼도 문과를 볼 수 있게 하라는 '서얼허퉁'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새로운 이상국 '율도국'을 꿈꾸는 이들이 있기도 했지만 다수의 서얼인 홍길동들은 그저 묵묵히 자기의 삶을 이어가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갔다. 그들에게 경제력은 서얼들의 신분과 지위를 높여줄수 있는 또다른 도구였다.
그밖에도 집안의 중심인 여자와 가족들의 생활상등 다양한 실례들을 들어가며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던 역사적인 사실들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책이라고 하면 자칫 무겁고 진지하게만 느껴져서 거리감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끌어가니 지루하지않고 즐겁게 읽을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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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에세이'라는 특별한 부제 때문에 일단 저자가 어떤 입장에 있는지 관심이 생겼다. 같은 사료라도 해석하는 자가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천차만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저자는 여성이며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이 책은 중앙일보(선데이)에 '이순구의 역사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실린 글들을 보완해서 엮은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에 대한 선입견 이전에 이미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그리고 나도 가장 궁금해했던) 마지막장의 논조가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 색채를 띠고 있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중앙일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너머북스의 '너머의 역사책' 시리즈나 거기서 나오는 다른 책들의 제목은 진보적인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을 출간해주었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레이코프의 "도덕, 정치를 말하다"라는 책에 따르면 진보주의 기독교인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수주의 여성주의자가 존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진보-보수주의를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이면서 여성주의자인 것 같아보이는 저자는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상태에서 조선의 미시사적 사료를 가지고 여성사를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자신도 모르게 모순을 드러낼 수도 있는 아주 복잡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조선의 여성과 도덕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저자의 논조가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저자는 조선 시대의 여성이 성리학적 도덕성을 내면화함으로써 성인을 향해 자아를 실현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화는 남성이 강요했다기보다는 인정이나 자기만족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성리학을 받아들인 여성을 마치 현대의 몸짱처럼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앞서간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조선 여성들이 성인이 되기 위해 실천해야할 내용은 인수대비의 "내훈"이나, 집에서 여성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등으로 여겨졌다. 위계 질서를 인정하고, 있어야할 위치에서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은 성리학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현대 보수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능력에 따른 차등을 인정해줄 것'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이 대목에서 미학을 보수주의적 논리에 활용하는 박정자가 떠올랐다. 독자가 이 대목을 읽고 납득을 할지 불편해할지 궁금하다. 도덕성, 성인, 자아실현이 그렇게 얄팍한 것이었는가 싶어서 나는 불편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기해보고 싶다. '오늘날의 몸짱 아줌마는 조선 시대의 열녀이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나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자로부터 안 보이기 위한 것인데 말이다. 의문은 당연하다. 그러나 가만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기만족을 얻고 또 동시에 뭔가 인정을 받기 위해 그런 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도덕적인 여성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여성들이 열녀를 지향했고, 오늘날은 건강하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 인정받기 때문에 몸짱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중요한 것은 바로 노력 그 자체다." 219-220쪽
나는 다음을 평등 의식을 깎아내리면서 능력주의를 피력하는 것으로 읽었다. "도덕성만큼 자기주장을 펼치기 좋은 것도 없다. 거기에는 절대 기준이 없다. 누구나 각자의 도덕성을 갖는 게 가능하며 항상 상대방보다 내가 더 도덕적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저 잘난' 맛에 살게 됐다. 우리의 대단한 평등 의식은 여기에 연원을 두고 있다. 평등 의식은 개개인에게 엄청난 자존감을 주었지만, 한편으로 다른 사람의 능력을 잘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을 준 것도 사실이다. 우리 인터넷에 유난히 악성 리플이 많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제 그 도덕성에 싫증이 날 만 하다. 언제까지 결판 없는 도덕성 경쟁을 하겠는가? 변화의 조짐은 이미 보이고 있다. 몇 해 전, "하얀 거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장준혁을 미워할 수 없었다... 장준혁에게서 도덕성보다는 의사로서의 능력 혹은 총체적인 인간을 봤던 것이다. 400년 가까이 해온 '도덕성' 경쟁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도덕성'을 포기해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도덕성보다는 능력'이라는 논의도 함께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는 필요하다고 본다." 223쪽
그리고 다음은 저자가 인사청문회의 도덕성 검증을 비판하고 싶어서 쓴 것 같아보인다. "여전히 도덕은 모든 평가의 기준이다. 장관이나 총리 후보 청문회는 항상 능력보다 도덕성 검증으로 일관한다. 그런데 사실 도덕성이란 애매모호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더 도덕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성에 근거한 자신감은 많은 일을 하게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덕성 논란 그 자체 때문에 일이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28쪽
정말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우리가 도덕성에 열광하는 이유' 장은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불편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이 장을 제외한 앞의 나머지 부분들은 참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쉬운 문체가 역사 이야기와 잘 버무려져서 술술 읽혔다. 미시사라는 포멧을 가진 어떤 책도 재미있게 읽히곤 한다. 특히 요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재미있게 보고 있어서 세종 이야기만 나오면, 또 평소 정조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정조 때 사람인 노상추의 일기만 나오면 반가웠다. 사료에 대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저자는 참 많은 힘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나와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책을 좋게만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저자의 여성주의적 시각은 책 전체에서 드러난다. 고려와 마찬가지로 조선 초기에도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는 '남귀여가혼' 같은 결혼제도에서 드러난다. 여성이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장가가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결혼제도였던 것이다. 이는 제사나 상속과도 맞물리는데 딸은 친정에서 분리되지 않고 계속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성리학에 기반을 두고 조선이 자리를 잡은 17c 이후 우리가 아는 조선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러한 부계 중심의 사회상은 중국보다 훨씬 심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선진국으로 여겨졌던 중국을 충실히 따라가고자 했던 이유도 있지만, 저자는 이러한 부계 중심의 사회가 사실 적처인 여성과 그 쪽 가문이 원했기 때문에 정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적처와 첩을 엄격히 구분하고, 첩의 자식인 서얼이 과거를 볼 수 없게 만들어야 정부인의 입지가 굳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성과 성리학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성 성리학자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생소했다. 성리학의 도덕성을 내면화한다는 것이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현모양처'가 되는 것, 살림에만 전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비판적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강정일당 같은 여성 성리학자가 '이치를 탐구'하고자 노력했으며 성인의 도덕성을 열망했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더불어 그가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살림을 하면서 짬짬이 어깨 너머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저자는 인수대비가 조선이 성리학적 질서로 돌아갈 것임을 미리 간파하고 "내훈"을 지었다는 점에서 앞서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것을 짓기 위해 인수대비가 다양한 책을 공부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아래 내용에 대해서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훈"은 모든 딸과 며느리가 새로운 유교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인수대비의 "내훈"을 생각할 때 대개는 통제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인수대비의 의도가 통제에만 있었다면 굳이 '성인'이라는 주제를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성인 되기'는 통제가 아니라 내면화와 자발성을 통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 되기'를 요구했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성리학의 본질에 접근하는 길을 열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 사회의 특성을 파악하지 않고는 그 사회의 주류로 살아갈 수 없다. 성리학으로 전환해가는 조선 사회에서 성리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곧 주류 사회 편입을 의미했다. 인수대비는 여성들이 뒤처지지 않으면서 보다 원만히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바랐다." 95쪽
책이 조선과 성리학을 이야기하고 있다보니 상례, 제례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항상 흥미로운데, 상례와 제례에 있어서도 그 변화가 컸다. 조선적인 도덕성을 만들고자 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던 것이다. 고려나 조선 초기의 상례 분위기는 마치 서양의 '죽음의 춤' 그림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고대, 중세, 근대 각각의 세계관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동양과 서양은 어떤 점을 공유하고 있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조선은 이것(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분위기)이 고려에서 온 비루한 풍속이라고 했다. 그러면 고려에서는 어떻게 장례를 치렀다는 말인가? 고려 왕실에도 유교적 상례가 있었다. 관직자에게 유교식 상복을 입게 하고 상례 기간을 지키게 했다. 그러나 실제 민간 풍속은 달랐다. 불교나 무당에 의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조금도 애통해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무겁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그것은 세계관이 달랐기 때문이다. 불교나 민간 신앙은 유교와 달리 죽음을 삶과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죽음은 그렇게 슬픈 것이 아니며, 그래서 죽은 사람을 심지어는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이다." 161쪽
"고려 시대에는 남녀가 비교적 평등했는데 조선 시대에는 불평등해졌더라는 상식은 누가 무엇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것인가요. 유교적인 가부장제 가족이라고 쉽게 생각해왔던 조선 시대의 가족이 사실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니, 차례를 훑어보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 상식에 제동을 걸어봅니다. 특히 '6장 우리가 도덕성에 열광하는 이유'가 너무 궁금합니다. 그 강요되고 왜곡된 도덕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오랫동안 천천히 새겨졌던 것인지가요. 조선, 근대 미시사 책 정말 좋아하는데,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내가 남긴 이 책 리뷰어 신청글이었다. 애초에 리뷰어 신청을 할 때 나의 키워드는 '평등'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거꾸로 조선 시대 여성의 '능력'을 앞세우고, 그들의 성리학적 도덕성 역시 일종의 능력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방향과 반대되는 내용이었기에 책을 덮으면서 찜찜함이 남는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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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권씩 쏟아지는 책 가운데 선택의 갈등을 벗어나려는 방편으로 신문의 신간 소개 혹은 저명한 분의 추천사, 베스트셀러 순위에 의존하기도 한다. 타인에 의한 인정이 갈등 상황에 대한 손쉬운 해결의 변명이 되면, 무엇보다 선택한 사람은 자기 잘못을 타인에게 돌릴 수 있어 편하다. 며칠 전에 읽은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 / 이순구 / 너머북스> 역시 타인의 인정에 기대어 선택했다. 인문학 관련 팟캐스트에서 대표적인 암기 과목이라고 오해받는 역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으로 소개했다.
역사를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역사는 권력관계의 산물이며 당대 힘을 가진 자의 기록이란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권력관계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변하니 그때마다 권력을 가진 집단의 시대관, 인간관, 지배이념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권력집단의 목소리는 비슷하게 기록되었고, 읽는 이의 눈에는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으로 비쳐 역사를 반복하거나 순환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렇게 역사를 보면, 힘없는 개인은 무력하기 그지없고 역사를 공부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기록의 수단은 문자언어이고, 역사상 권력의 언어에서 소외된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없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제 목소리를 담을 수 없었던 집단은 ‘여성’이었다. 오죽하면 역사는‘Hi(s)story – 그의 이야기’일까. 그러나 이 책은 ‘그의 이야기’ 가운데 조선 시대 양반 가족을 중심으로 가족 안에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당대 5%에 불과했던 ‘특별한 이’들의 역사를 다룬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소개하는 ‘여성’의 삶을 조선 시대 전체 여성의 삶과 비교해서는 안 될 것이다.
16 ~ 17세기 전반까지 조선은 고려 시대 삶의 방식이 혼재한다. 그래서 혼인은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라 하여 여자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신랑은 자신의 본가와 처가를 주기적으로 오가는 형태였다. 시집살이가 없었고, 딸도 제사를 지내고 재산을 똑같이 상속받아 결혼 전 친정집에서 누렸던 딸의 권한을 계속 유지했다. 양반의 혼인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으로 일종의 세 불리기였다. 그러니 최대한 경제적, 문화· 사상적 배경이 맞는 가문끼리 인연을 맺었고, 남편과 아내의 공간도 분리되어 갈등의 요소를 줄였다. 더구나 힘 있는 계층의 여성이니 그에 상응하는 적처(嫡妻)로서 배타적 권리도 누릴 수 있었다. 신사임당이 ‘어진 어머니’로 부각된 것은 이율곡을 계승한 송시열에 의해 예술가 신사임당의 이미지가 삭제되고부터였다. 불리는 이름에 걸맞게 여성은 ‘어머니’이거나 ‘며느리’로서 살 때, 안정적인 사회가 된다는 공자의 ‘정명(正名)’은 21세기에도 유효하게‘어머니와 아내의 이름으로’ 여성을 옥죄고 있다. ‘~ 답게’ 산다는 것은 호명된 이름에 충실하게 답하는 것으로 개인의 개성이나 다양한 차이는 배제된다. 그러나 책 속의 여성은 혼인관계에 의해‘어머니’와 ‘며느리’로 불리기 전 아버지의 ‘딸’로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고 지은이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래서 조선의 양반 여성은 아버지의 딸로서 가문의 이익을 위해 남편과 자식도 배반하는 순간을 맞게 되며, 대표적으로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와 영창대군의 어머니 인목대비를 예로 들었다. 하지만 마치 ‘반정’이 단지 왕의 얼굴이 바뀌는 것에 불과하듯 ‘아버지’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으로 변한 관계의 대상에서 힘은 여전히 남성에게 속한다.‘아버지의 딸’이란 배경은 대통령이 탄생하는 데도 신화로써 이야기를 생산하여 딸과 아버지를 동질화시킨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딸이 며느리와 아내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은 남성과 관계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하여 여성은 남성이 아니면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철학자의 말이 떠올라서 씁쓸함을 떨칠 수 없었다.
조선 시대 양반 계층의 여성은 권력층으로서 권리도 누렸지만 그에 따른 의무도 만만치 않았다. 전 시대 고려와 비교하면 후기 조선으로 갈수록 여성의 삶은 더욱 힘겨워졌다. 역사는 변화한다.‘더 나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조선 여성의 삶은 고려보다 퇴보했다. 하지만 ‘도전과 응전’이란 서양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 여성은 조선이란 시공간 안에서 나름의 응전을 도모했다. 유교 이데올로기를 체화해서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실천했는가 하면, 기생이란 천한 신분을 십분 활용해서 예술로 저항하거나 남성을 희롱함으로써 불합리를 몸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역사학자 주경철 선생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의식이 없어서는 안 되고, 역사학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려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역사 공부는 몇 마디 말로 요점 정리한 과거 사실을 읽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우리 나름대로 다시 해석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비록 권력의 언어로 쓰인 역사라도 행간을 읽고, 상상하고, 오늘의 우리 삶과 견주어 ‘해석’하는 것은 역사를 새롭게 쓰는 것이며 이른바‘대화’하는 것이다. 이 책이 썩 만족스러운 선택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역사는 쓰는 사람의 ‘해석’뿐만 아니라 읽은 이의 ‘해석’도 한 몫을 차지한다. 저자의 해석과 독자의 해석이 만나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경험을 불만족스러운 책을 통해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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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조선 시대의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각양각색으로 다양하여 마치 '천 개의 표정'을 담고 있는 듯하고 궁금증을 충분히 자아내는 이야기를 넌지시 던지는 이 책의 특별함! ^^ 이 책의 매력발산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독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의 가족사로 지금 우리의 모습, 즉 현대를 재조명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우리네 가족 이야기, 거기다 더욱 다양해진 가족의 이야기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어떤 반성과 새로운 정비가 필요한지 고민해보는 의미있는 시간까지 선물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선 시대, 그때 그 시절에도 참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있었으며 지금 생각해도 기발해보이는 모습들도 분명히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니 그 시절에도 지금에도 사람살이의 모습이 그렇게 크게 다르거나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구나, 그러니 과거 조선 시대의 가족 이야기 모습에서 현재의 가족 이야기와 가족 문제를 풀어내는 힌트를 충분히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니 더욱 얻을 것이 많은 책이다 싶더라고요.
과거와 대화하면서 지금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고 즐겁게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얻어가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는 책어어서 요즘 소소하게, 그리고 그 갈등의 골이 깊고도 넓어 힘이 드는 현대의 가족 문제를 좀더 쉽게 풀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가족의 이야기가 앞으로 더욱 꽃피워지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살포시 담아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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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기 전에는 무슨 가족사들이 나올까? 도대체가 감이 안왔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왜이리 재미있는 것인지......ㅎㅎ 소설보다 재미있는 역사 에세이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배웠습니다. 그것도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기본적인 시간대별로 된 통사를 배웠지요~ 그러나 자세한 그 시대 생활상에 대해선 잘 모르고 그냥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를 배웠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조선사~ 특히나 그중 일부분에 해당하지만 조선시대 주로 양반계층의 가족사를 발췌해서 이야기 형식으로 왜 그랬는지~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장가들기 남자가 움직이는 혼인 처가 또는 외가의 위력 집안의 중심,여자 가족들의 생활상 조선 가족의 마이너리티 우리가 도덕성에 열광하는 이유
결혼하여 장인어른댁에 살아 장가가기라는 말.. 예나 지금이나 친정가까이 또는 친정에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았나 봅니다.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보면 더 그러네요.. 생활기반이 여자쪽에 있었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더 의아합니다. 우리는 사극을 통해보면 다 시집살이를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ㅎㅎ 그리고 여자들의 재산 자체를 인정해줬다는 점.. 와 부부 별산제를 조선시대엔 당연시 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부부가 서로 존중하는 집구조~ 오히려 그 덕에 더 애틋함이 크지 않았나 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ㅎㅎ 요즘 너무 붙어 살아서 ㅋㅋ 이혼율이 높은가요?? 무튼~ 성리학이 점점 정치와 학문의 원리에서 가정사회로 까지 퍼지면서 조금 가부장적 사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성리학의 발원지 중국과는 또 다른 문화로 자리잡음을 볼 때 많은 부분에서 합리적인 면이 많음을 봅니다.
우리가 잘 알지못하는 조선시대의 사람들 이야기와 아는 분들의 이야기.. 그 상황이 참 현실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들도 많네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것에는 시간의 차이가 별 소용이 없는 듯도 합니다. 오히려 조선초에는 지금보다 더 여성들의 권리가 컸던 것 같아 부럽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가 알기는 그저 성리학의 영향으로 여성들은 진짜 죽어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입니다. 참 역사를 배우면서 단면만을 그리고 남자들의 역사만을 배웠나 봅니다. 요즘은 예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거니 하면서 따랐는데... 조선시대까지도 여성의 권리가 강했다는 것.. 우리도 자세히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거기에 따른 의무도 있지만은요..ㅎㅎ 이렇게 가족사를 통해서 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재미있게 풀어주는 역사책들이 좀 많이 나왔음 하는 바램을 더 가져봅니다. 너머의 역사책 1-4권을 마저 찾아 읽어야겠습니다~ 6권에는 어떤 내용이 실려 나올까요?? 기대가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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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이 책은 가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리들을 찾아 오네요.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조선 시대의 영향력은 살아온 역사적, 문화적 배경으로 우리의 의식과 삶 속에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을 보면 우리 조선의 역사는 물론이고 그 시대의 가족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들어볼 수 있는 귀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굵은 역사적 사건은 그 스케일에서 압도를 하고 빠져들게 만들지만 소소한 가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지금의 우리들의 가족 모습도 생각해보면서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가 주는 소소한 정겨움들이 있어서 이 책에는 저절로 집중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에서 놓지 않고 즐겁게 책을 보도록 해줍니다. 시대적이고 역사적 배경이 결국은 그 시대의 문화를 만들고 또한 이것이 우리의 가족 문화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우리의 역사와 그 시대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접해볼 수 있어서 꾸준히 책장을 넘기면서 역사 속 가족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소소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여서 마치 나의 소소한 일상을 만나듯이 더욱 쉽게 빠져들고 매료될 수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서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봅니다. 이 책의 위대한 매력이라고 하고 싶거든요.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은 무겁고 힘겹게 생각하던 역사책보다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고 바라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일상으로 접근하면 훨씬 역사를 재미있게 만나고 즐겁게 빠져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도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훈훈하게 우리의 역사와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이 책의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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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일기를 바탕으로 살펴본 생활상을 통해 보여지는 조선시대 가족의 가치는 국가 차원에서도 큰 뿌리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교육과 복지의 상당 부분이 가족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가 중시되었다. 국가는 가족의 안정을 위해 이혼이 사회 안정에 도움이 안돤다고 판단해서 허락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조선 초기의 가족에서 여성의 위치는 상당한 힘을 가졌는데 그럴 수 있었던 데는 혼인 시스템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라는 여자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신랑은 자신의 본가와 처가를 주기적으로 오가는 형태의 장가들기 혼인 관행은 조선의 가족 형태에 많은 영향을 줬다. 공간적으로는 안방과 사랑방이 분리돼서 시간적으로는 오고 가는 혼인 형태는 동거 비율이 낮아서 부부 갈등을 줄여주는 역할도 했다.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살면 여자 집의 경제적 부담이 커졌지만 두 집안의 공조라고 생각했었고 남자도 여자 집안의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서라도 부인의 위치를 존중해서 남자 집안과 여자 집안이 대등하게 결합할 수 있었다. 중국처럼 되기를 바랐던 조선이 중국의 부계 중심 가족 제도가 혼인에서 남자 집안과 여자 집안이 공조하며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재산 상속권과 제사 의무도 비교적 균등했다. 첩의 자식이냐 적처의 자식이냐의 구별은 있어도 상속에 있어서는 아들과 딸에 차이가 없었고 상속받은 재산은 여자들이 결혼 후에도 자기것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혼인한 여자가 자식 없이 죽어도 여자의 재산은 남편이나 시댁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친정으로 돌아갔다. 16세기 이전까지 조선은 혼인한 남자가 처가에서 생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 상례 절차에 처가쪽 사람들이 참여하고 주축이 되는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17세기까지도 딸이 친정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이 중국처럼 부계 사회가 되면서 제사가 장남에게 맡겨지고 장남과 맏며느리는 집안의 핵심적인 존재가 되고 여성의 정체성이 딸에서 며느리로 바뀌었는데, 딸로서의 권리는 잃고 며느리나 적처로서의 권리와 위치는 더 강하게 보장받게 됐다. 책의 전반부가 남귀여가혼이라는 결혼 형태에서 비롯된 생활상이었다면 후반부는 여성의 도덕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성리학의 이치를 공부하여 여성들도 인륜 도덕을 실천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도덕적 주체성을 갖게 되었다. 조선은 성리학적 도덕 사회로 가기 위해 여자에 대한 처벌이 언제나 더 무거운 가중처벌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는데 여성 역시 열녀라는 도덕성을 이용해서 자신을 지키는 단계까지 갔다.
유교적 현모양처를 며느리라는 위치로 판단했을 때 신사임당을 조선의 여성들의 생활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사료들이 담겨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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