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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그의 노년의 가르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귀가 기울여 지는 그런 책인 것이다. 또한 그가 풀어 들려주는 성경 사무엘 편과 다윗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 왔던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더 재미가 있고 표현력 또한 풍부하여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감동이 있다. 조금은 두껍다 싶은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분명 새로운 해를 맞는 우리의 삶에 큰 지침이 될 것이다. 신앙은 사치스러운 장신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처음 시작은 자기 인생의 한 부분으로만 선택했을 것이다. 적당한 부분에서 가끔씩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진리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끊임없이 연단하신다. 오늘도 하나님께 내가 드린 것은 나의 의를 좆은 극히 적은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완전히 내어드리지 못하는 불순종과 내 멋대로 하고 싶은 교만한 마음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은 모두 잊으시고 또 다시 우리를 순전하게 하시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완전하게 되길 원하신다.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다윗, 그가 증명해 보인 삶처럼… 우리는 교회에서 은헤를 잘 받는다. 설교에서도 받고, 말씀 중에도 찬양 중에도 교제 중에도… 그렇다고 은혜대로 살기 위해 조심조심 교회만 왔다 갔다 할 순 없다. 아니 이건 웬걸 … 교회라고 은혜만 충만한 곳이 아님을 알게 될 때 받는 상처는 세상에서 받는 그것보다 더 크게 우리를 좌절시킨다. 그러니 우리는 무균실의 미생물처럼 살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으로 자신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야 할 수 없지만 우리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세적이긴 해도 저속하지는 않았던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나’ 다워 질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교회는 성소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성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의 성소가 되지 않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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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윗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유치원에 다니던 때로 기억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야기. 조그만 어린 아이였던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커다란 거인을 이길 수 있었는지, 성대묘사까지 해가면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하던 유치원 선생님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 흥미진진하던 아이들의 눈망울까지도... 하지만 그렇게 평소에는 보지 않는 성경까지 찾아가면서 즐겁게 보았던 다윗의 이야기는 내 가 커감에 따라 그냥 옛날 이야기일 뿐이었다. 더 이상은 골리앗 앞에선 다윗의 모습에도 긴장감을 느낄 수 없고, 자기 아들에게 쫓겨가는 다윗의 아픔도, 세상에서의 삶이 바쁜 나에 게는 아무런 감동이 없는,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연히 "사회"라는 현장에 부딪치면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절대로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비단 나 뿐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많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도 발견하게 되었다. 같이 대학의 선교단체에서 주님을 찬양하면서 주를 위해 젊은 나의 인생을 헌신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아파하며 눈물로 기도하던 우리의 모습들이 "현 실"이라는 문 앞에서, 직장문제, 결혼문제로 무너져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공동체의 비전은 결혼과 직장문제라는 선배의 이야기에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 내 젊은 날을 살았는 가라는 회의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나의 삶 속에 주님께서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다윗이란 인물을 다시 보여주시기 시작했다. 모함을 받아 광야에서 쫓겨다니며 성소에서 자신의 생명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다윗, 자신 의 원수인 사울과 둘도 없는 친구였던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밧세바를 범하고 죄 를 감추기 위해자신의 충복인 우리아를 죽이는 다윗, 자신의 아들에게 쫓겨 도망치는 다윗... 다윗... 그의 모습은 나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는 철기 시대에 태어나 당시의 문화와 환경의 제약 속에서 살다 간 평범한 인간이었다. 파란 만장한 그의 삶은 이 땅의 일 들로 가득할 뿐 기적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삶 언저리에는 언제나 하나님 이 계셨다. 그리고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성이 그 가운데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좋아하던 골리앗과의 이야기도 다시 볼 수 있었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은 모습으로... 다윗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대를 양쪽에 두고 잠잠히 시냇가에서 조약돌을 줍고 있다. 한쪽에 있는 이스라엘 군대는 과연 어린 다윗이 블레셋과 싸워 이길 수 있을지를 기대와 의 심으로 쳐다보고, 블레셋의 군사는 그의 연소함을 비웃고 있다. 하지만 다윗은 그저 잠잠히 시냇가에서 조약돌을 줍고 있다. 전장을 울리는 군대의 함성소리, 햇빛에 반짝이는 수많은 창과 방패... 저 앞에 그를 비웃고 선 거대한 거인 골리앗... 사방에서 그의 목을 졸라오는 차 가운 두려움... 다윗 앞에서 그것들은 현실이었다. 눈을 감아봐야 피해지지 않을 냉혹한 현실이었다. 거기에는 죽음이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누구보다 가장 정확히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겠지 만 그 앞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참 많은 것들이 그의 눈을 가리려 했지만 그는 그 상황을 이끌어 가시고 그 모든 상황의 주인 되신 주님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앞에 펼쳐진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직 주님만 나와 함께 하신다면... 오직 주님만 나와 함께 하신 다면...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 참 많은 것들이 나의 시야를 가리는 것을 보게 된다.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내 앞에서 나를 삼키려는 사단이 표호... 내 눈을 가리는 아름다운 세상의 것들.. 이것들은 피할 수 없 는 현실이다. 바로 내가 감당하고 책임져야할.. 하지만 분명하고 중요한 것..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배.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 앞에 내 삶을 순종하여 드리는 것이 중요할 뿐. 그대로 다윗의 모습을 오늘 내 상황에 놓고싶다. 오늘 나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나는 내가 믿고 있는 주님의 주권을 오늘 이 시간 인정해 드리고 있나. 내 입으로, 행동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하고 있나... 아니 무엇보다 오늘도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느끼고, 바 라보고, 듣고 있나... 주님과의 동행. 어쩌면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힘든 짐과 같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내가 살아가는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다시 한번 주의 얼굴을 구하고 싶다. 믿음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 나를 통해 오늘 을 이루어 가시는 그 분 안에서 오늘의 의미를 구하여 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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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의 신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으로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일대기를 조목조목 씹어보면서 다윗이 일관되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그와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다윗의 이야기가 성서 속에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닌 오늘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일깨우는 역작이다.
신학적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유진 피터슨의 다윗의 삶에 대한 해석이 이론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을 갖게 되는 대목도 없지 않았지만 (골리앗과 일전을 위해 시냇가에서 돌을 고르는 다윗을 무릎꿇은 경건한 다윗으로 해석하는 첫부분에서부터 아비삭을 다윗의 죽음을 직시한 영적인 사람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마지막 부분까지) 유진 피터슨의 상상력은 "다윗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셨다"라는 믿음 위에 펼쳐진 것이기때문에 약간의 무리가 있더라도 크게 성서적으로 벗어난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자신, 내 아이, 내 환경을 연거푸 돌아보고 이따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회개와 감사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에 저자의 뜨거운 신앙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런 감동이 가능한 거 같다.
예전에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 어떤 삶일까..하는 고민으로 사무엘상하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다윗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을텐데.. 그런 고민에 열정적인 동반자가 되어줄 만한 책으로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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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니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가 집이다. 천국의 백성들이다. 장차 다가올 그날에 또한 그곳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자칫 이 개념들이 너무 미래 지향적이어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터전과 시대에 대한 무책임...소홀,방관으로 이어질까 걱정된다. 우리는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셔서 다스리시는 영광을 봐야한다. 우리는 저기보이는 나무와 날아다니는 새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봐야한다.바로 여기서! 그때를 바라보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세계 곳곳에 폭발의 내음이 가시질 않는 바로여기다. 도둑질이 난무하고 모략과 이기에 젖어있는 바로 여기다. 하루에도 원치않는 일들을 겪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지구다. 이 세계다.바로 여기다. 바로 내 앞이다. 바로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처해있는 환경이다. 현실이다.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곳 바로 여기다.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는곳 바로 여기다. 신앙은 여기에서 뿌리내리고 자란다. 믿음은 믿을 것이 없어 보이는 우리 삶 가운데서 행하여진다. 기도는 바로 지금까지 우리를 모략했던,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들이 사는 이땅에서 들려진다. 우리의 찬양은 한쪽에선 건물이 폭파되고 충격의 소리가 있는, 한쪽에선 배고픈 자들의 울부짖음이 너무나 큰 그것들과 같이 울려 퍼진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있다. 이곳에서 기도하고 있다.
우리 현실을 둘러싼 모든 영역들, 어제 만났던 사람, 오늘 만난사람, 또 다음에 만날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들 또 우리에게 닥쳐오는 많은 문제들 삶의기쁨과 슬픔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 차가운 현실 속에서 예수님을 경배해야 한다. 또한 정말 부끄러운 죄의 문제들 가운데서 기도해야 한다. 바로 다윗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