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개의 물체를 공중으로 던지고, 그것을 다시 받아서 연속적으로 던짐으로써 허공에 원 모양의 궤적을 유지하는 저글링(Juggling). E.L. 닥터로의 [빌리 배스게이트]의 표지에 그려진 한 소년이 저글링을 하는 모습은 실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악명 높은 갱단의 두목 '더치 슐츠'의 눈도장을 받는 계기가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 역시 저글링과 마찬가지로 부침을 반복하고 있으니, 저글링은 단순히 빌리 배스게이트와 슐츠와의 만남을 넘어서서 빌리 배스게이트의 인생 이야기로도 확장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더치 슐츠와 보 와인버그가 미국의 1930년대를 풍미한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은 이 책이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대공황 이후의 미국의 어두운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다. 1930년대의 뉴욕 빈민가인 브롱크스를 배경으로 하여 대공황 이후 어려운 상황이기에 열 다섯 살의 빌리 배스게이트가 갱단을 동경하는 것은 비극적이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보기에 충분해 보인다. 사실 이 작품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좀도둑질을 일삼던 누들스와 맥스 일당이 성장하면서 갱단을 조직하여 그 시대에 살아가기 위하여 사투를 벌인 내용은 [빌리 배스게이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사실 그 당시의 미국 뒷골목의 어두운 내용들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꽤나 무겁게 느껴진다. 주인공인 빌리 배스게이트가 꽤 영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갱단을 동경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에 비하여 열 다섯 살의 빌리 배스게이트의 시선으로만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갱스터물에 비하여 차별성을 갖게 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나간 뒤로 정신이 약간 온전치 못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빌리 배스게이트의 입장에서 갱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인 그의 삶의 대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의 맞은편에 위치한 고아원을 보면서 자신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라는 사실을 어렸을 적부터 인식하였던터라 명민한 두뇌를 가졌지만, 공부보다는 곧바로 갱단에 합류하기를 희망하였고 실제 저글링이라는 우연한 계기를 통하여 더치 슐츠의 눈에 든 그의 상황은 희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회사의 인턴 사원이 된 것처럼 뿌듯해하는 그의 모습은 미국의 대공황으로 인한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 대신 미스터 슐츠와 미스터 버먼으로부터 인생 수업을 받으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그의 모습은 분명 비정상적이지만, 당시로서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그의 상황은 오히려 동정의 시선을 쉽사리 거둘 수 없게 된다. 그래서일까? 점점 읽을수록 이 작품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보다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내지는 [허클베리핀의 모험]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마크 트웨인이 미주리 강을 배경으로 하여 소년들의 성장통을 위의 작품으로 묘사하였다면, 닥터로는 뉴욕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빌리 배스게이트의 인생 수업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직접적으로 거친 갱단의 불법 행위에 가담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둡고 딱딱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묻히지 않는 느낌이든다. 더구나 드루 프레스턴 부인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주인공의 심리는 이 작품이 그저 거친 폭력적인 느와르물이 아님을 지적해준다. 비록 범죄 집단의 두목과 실력자로부터 당시의 거친 삶에 대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빌리 배스게이트이지만, 미스터 슐츠에게 살해된 보 와인버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의 애인이었던 드루 프레스턴에 대한 연모와 의리는 열 다섯 살의 시기에 볼 수 있는 사랑에 대한 풋풋한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하였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에 대한 그의 걱정과 마음 씀씀이는 확실히 빌리 배스게이트의 삶이 그의 어드바이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갱단은 물론이거니와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빌리 배스게이트의 모습은 비록 그가 갱단을 동경하고 있지만, 그들로부터 배운 것을 단순히 범죄가 아닌 그의 삶을 개척하는 수단으로 탈바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점점 몰락하는 슐츠의 갱단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영민한 빌리 배스게이트는 갱단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이 남긴 유산을 획득하면서 색다른 인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야기의 말미에서 등장하는 빌리 배스게이트의 고백과 더불어 그에게 전달되는 뜻밖의 존재(?)는 갱단을 동경하였지만, 거꾸로 너무나 올바른 인생을 개척한 그의 모습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해 보인다. 날것의 이야기가 온전한 한 남자의 성공한 이야기로 탈바꿈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빌리 배스게이트]의 시작은 사실 무거웠다.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갱단의 불법적인 내용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그것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빌리 배스게이트의 성장 과정은 열 다섯 살이라는 그 짧은 기간 속에서 엄청난 변화와 반전을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 속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실제 사실이었다는 점은 이 작품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뉴욕은 물론 뉴욕주의 오논다가라든지 새러토가와 같은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과 미스터 슐츠와 미스터 버먼으로 대표되는 갱단의 모습, 그리고, 드루 프레스턴을 통한 상류층 사회의 일상의 모습, 어머니를 통한 빈민촌의 힘겨운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열 다섯 살짜리 소년의 성장통과 더불어 1930년대의 미국의 모습을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라는 점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미 1992년에 더스틴 호프만과 니콜 키드먼, 심지어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하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으니 책과 더불어 영화와의 만남 역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때로 어떤 시스템이 움직이는 것은 여러개의 공으로 돌리는 저글링 같다. 어느 하나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또 어떤 것은 올라가고 올라간 건 내려오고 내려오던 공은 다시 현란한 손바닥 힘의 반동으로 최고점을 향해 올라간다. 그렇게 여러 개의 공들이 아슬아슬 균형을 잡으며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동시에 떠서 움직이는 것.이것이 궁지에 몰린 갱스터 더치 슐츠가 가진 지하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이다. 잠시동안 자신과 같은 부류에 대한 의리가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인 희망을 느꼈을 것이다. 언제든 기회는 온다는 희망.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미국은 하나의 거대한 저글링 같아서 우리는 모두 어떻게든 공중에 떠 있을 수 있고 결국 신의 우주 안에서 손에서 손으로가 아닌 빛에서 어둠으로 밤에서 낮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희망을 135 빈민가의 빌리는 이 화려한 저글링 기술로 갱스터 더치 슐츠의 눈에 띈다.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그 작은 환경에서 보고 느낀 만큼 꿈꾼다. 미국이 불황의 늪을 건너던 1930년대 갱스터와 정치권력이 아슬아슬하게 저글링을 하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동네 고아원에 사는 고아들보다 더 낫지도 않은 삶. 엄마는 반쯤 미쳤고 아빠는 오래 전 집을 나간 가정과 갱스터들이 활개치는 브롱크스 마을에서 빌리와 동네 친구들이 꿈꿀 수 있는 최상은 저 검은 갱스터의 무리들의 눈에 띄어 거기에 멤버로 합류하는 것이다. 거기에 도사린 위험과 두려움은 차고 넘치는 에너지의 분출이 어느 방향으로든 필요한 아이들에게 경외감을 준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과 안정된 전문직에 종사하고 싶은 오늘날의 세속적 비젼 만큼이나 그 아이들에게 유일한 비전이다. 끝이 없어 보이는 궁핍과 빈곤을 빠져 나와 누구라도 겁내고 두려워하눈 존재가 되어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근사하고 뽀대나는 차를 타고 활개치는 인생.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폭력적이고 비열한 세계에서 칼과 총과 배신으로 상흔을 안고 살거나 혹 단명해도 상관없다. 그게 바로 바라는 바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개인의 시간이라는 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 대기업에 우선은 취업하는 것이 먼저인 우리의 청년들처럼. 나는 범죄 조직의 이야기를 별로 안좋아한다. 거기 실려 있는 범죄자들의 삶이 아무리 보편적 인간의 진실을 다룬다고 해도 폭력과 그 폭력을 지지하는 고단한 개인적 삶의 편린을 독자가 이해해야 할 필요성도 폭력의 기술에 노출되며 받는 스트레스를 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소비하는 독서를 통해 감당할 필요가 왜 있겠는가.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원하는 독자가 원하는 걸 주기 위해 더욱 잔인해지고 화려해진 액션 영화처럼 범죄 조직을 다룬 소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손한 느낌이 들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시놉시스를 보았다면 이 책은 치워놨을 터였다. 이같은 이유로 처음에 실망했던 이유가 어떤 유명한 평론가 혹은 작가가 범죄 소설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는 한마기 평가 때문이었다. 어? 나는 범죄 소설을 읽고 싶지 않은데. 폭력을 목격하고 싶지 않은데.. 독서를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책을 읽게 된다. 대가의 작품은 달랐다. 처음엔 진도가 아주 아주 천천히 나갔다. 농익은 문장의 밀도, 단단하게 채워진 글자들의 틈으로 필연적으로 범죄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국이란 나라의 시스템이 1930년대의 깊은 불황 속에서 겉으로 보이는 합법과 속으로 움직이는 불법이 교묘히 저글링해 앞으로 나아가는 시스템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그래서 뭐. 역사의 일부가 폭력이라면 그건 역사 소설이 되는거 아니겠어? 똑똑한 빌리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조직의 리더인 더치 슐츠와 그 두뇌인 버먼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슐츠의 충실한 부하들 모두 실존 인물이고 같은 발법으로 죽었다. 실화를 재현하는 소설은 어떤 역사를 보는 방식을 제안한다. 교과서에 쓰여진 역사와 영화나 소설 속에서 재현된 허구는 무엇이 다를까. 교과서는 진실을 영화나 소설은 가짜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은 그 정의 상 허구이고 가짜다. 진짜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진짜 인물의 삶의 깊이가 모두 작가의 상상 속에서 나왔으므로 인물의 윤곽만 비슷할 뿐 실제로 그가 어떤 인물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이라 믿고 있는 역사가 고작 우리에게 얼려주는 것은 몇개의 단어로 압축된 힌트일 뿐이어서 현재적 해석이라는 주관적인 시각이 개입되지 않으면 역사는 성립될 수 없음을 상기한다. 객관적이고 지극히 사실적인 단어들의 그 성긴 틈을 메우는 시각과 관점과 해석들,그것들 역시 허구이며 추측이다. 다만 학문적 근거라고 말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이 그것들을 단단하게 지탱하기 때문에 그게 진실이라는 옷을 입을 뿐이다. 아무리 더러워도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그것이 시대를 지배했다면 그것은 역사이다. 불황으로 이미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사람들은 이들의 결탁에 의해 이중 삼중고를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원인도 결과도 이해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줄줄 새어 나가는 돈이 향락과 부패로 저글링을 계속하는 결탁자들을 더욱 견고하게 지지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그 위험한 세계에 발을 딛는 장면은 마치 영화를 본듯 선명하고 생생하다. 하루하루 어떻게 하면 그들의 눈에 띌까 어떻게 하면 저들의 일부가 될까를 고민하며 기차에 매달려 무임승차를 해서 출퇴근 하듯 그들의 본거지를 엿보던 빌리가 그들이 종이봉투에 무언가를 담아 들어가면 문이 열리고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한 꼬마 아이가 자기도 봉투를 사서 그 속에 케익을 넣어 자신도 거래를 하러 온 것처럼 그 범죄 소굴을 들어가는 장면이다. 이게 어찌 보면 굉장히 코믹한 상황이긴 한데 동시에 그 어떤 장면보다도 긴장된 순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목숨을 걸고 미래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아마 거기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빌리는 막차를 타고 있는 중이었고 궁지에 몰린 슐츠는 살인이 장난도 아니었다. 결국 인생의 멘토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한 우뚝 선 사람 경외의 대상 그의 말이라면 죽기라도 할 충실한 신하가 되고 광기어린 그의 모습 숫자를 다루고 인생을 가르치는 버먼과는 좀 더 실용적인 삶의 철학을 배운다. 범죄소설에서 역사소설에서 결국은 성장소설일까. 그럴 수도 있다. 아이의 시점에서 아이가 배우는 것은 누가 가르쳐서 배우는 게 아니다. 그가 맞닥뜨린 현실 속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삶과 시간의 문맥을 알아차리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매번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상황에서 알아차리은 동안에도 그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갱스터 조직에 뒤늦게 몸담았고 이제는 자신이 버기에도 누가 보기에도 확실하게 자멸을 향해 더욱 더 광적인 판단을 재촉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조차도 그는 거기에 의지하고 그곳에 충성한다. 빠져나올 궁리를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범죄 조직에는 보통 '보스의 여자'라는 '예쁜' 스테레오 타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그녀들은 이리 저리 권력에 따라 애정을 의탁하는 대상을 바꾸지만, 주인공과 아슬아슬한 관계에 놓인다. 그런 점에서는 다른 범죄소설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소설은 이렇게 여성 비하적이고 야비한 규칙마저 버리지 않고 전면에 내세웠는데 결국 그 여성의 존재 자체가 모순적이게도 전체 스토리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유지시키다가 클라이막스적인 장면을 연츌한다. 그녀를 지켜준다던 약속과 그 약속이 슐츠에 대한 충성에 위배되는 모순 사이에서 조금도 망설임이 없던 아이는 충성과 맹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타며 결정을 내릴 때 다 자랐다. 경마장에서 수많은 꽃에 둘러 쌓인 채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상황이 그녀를 향한 암살을 불가능하게 하는 아이의 연출이었음을 버먼이든 슐츠든 그녀를 제거하려던 자들이 알아차렸을까. 참으로 영리한 선택이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내가 그들을 보는 일이 적을수록 그만큼 더 위험해 무방비로 노출되는 상황이었다 매우 상반된 발상이지만 물리칠 수 없는 예감이 기도 했다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그가 없으면 내가 언제 도망쳐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때 나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150 나는 내가 도와 살해하고 있는 대상을 부축하고 있다. 224 그녀는 청부업자들 앞에서, 물 앞에서, 태양 아래에서 옷을 벗었다. 삶이 그녀의 옷을 벗겼다...그들처럼 섹스하고 살인하는 이들이 사는 곳은 사랑의 우주가 아니었다. 그곳은 공포가 울리는 크고 텅 빈 울림통의 성년기였다. 233 수입과 지출이 조수처럼 부단히 진행되고 있었다.전체 시스템 내에서 조용히 자전하는 지구처럼 지속적으로 멈추지 않고 말이다. 386 나가는 돈도 마찬가지로 중요했다. 그 돈으로 무기와 식량을 사고 변호사와 경찰, 가난한 사람들의 호의를 사고 부동산 비용을 지출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썼다. 계속해서 돈을 벌려면 돈을 써야 했다. 계속해서 벌어야 살아 남아 더 많은 돈을 벌 것이기 때문이다 387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우선 이 책은 문학동네의 신간이지만, 신작은 아니다. 1989년에 발표되었던 소설로 영화로도 개봉된 적이있다. 그리고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의 시기이다. 이런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하는 이유는 텍스트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 책이여서이다. 거의 30년 전의 텍스트가 다시 신간으로 나왔다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지역을 넘은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 있을 것이고, 그 힘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안타깝게도 내겐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정말 없다. 옮긴이의 말에서 친절하게 1980년대의 탐욕 문화의 시대, 탐욕을 승인하고 심지어 찬미하기까지 하는 풍조가 만연한 호황 시대를 작가가 비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설명해 주지만 그에 대한 지식도 없다.
또 번역 역시 자연스러워서 번역작품 특유의 어색함으로 내용이 끊기는 일은 없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독특한 시각으로 보는 문장들이 흥미로웠는데 작가 E.L.닥터로의 성장 배경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1931년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계 러시아 이민 2세대 가정에서 태어나 철학과 희곡을 공부하고 군에 징집되어 2년간 독일에서 복무했다. 뉴욕에서 영화사 일을 하다 소설을 출간하게 된다. 노벨문학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고 한다.
<빌리 배스게이트>에서는 역사적 사실들이 동원되는데 소설 초반부에 갱단의 보스 더치 슐츠가 보 와인버그를 살해하는데 이는 1935년 뉴욕에서 보 와인보그가 소설에 나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더치 슐츠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사건의 이면에 있는 내용들을 소설로 풀어낸다. 그래서 이 시대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계속 언급하지만... 내게는 이런 지식이 없다. 심지어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가 요즘 일본문학 한국문학에 국한해서 독서를 했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주변 인물들도 많이 헷갈리고 지역명도 자꾸 확인 해야했다. 앤 타일러가 자정에 딱 한 페이지만 읽고 자자고 다짐하다 새벽 세시가 되는 책이라고 했지만 다 읽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등장인물들과 배경 장소가 익숙해진 후반부는 정말 단숨에 읽힐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빈민가 소년 빌리가 성장 후 회고록을 쓰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그래서인지 사건들이 시간적 순서대로 나열되지 않고 뛰어넘었다가 다시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 빈민가에 사는 소년 빌리는 갱 조직의 보스 더치슐츠의 눈에 들어 갱단에 입단하여 성공하고 싶어한다. 똑똑하고 야망있는 소년은 큰 그림을 그린다. 광장에서 저글링을 하며 더치슐츠의 시선을 끌려고 한다. 계획대로 그의 눈에 띄게 된다.
p.44 나는 나의 왕을 마주보고 섰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더니 두께가 호밀빵 절반만한 새 지폐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10달러짜리 하나를 뽑아 내 손에 탁 놓았다. 지폐에 인쇄된 18세기 초상화 양식의 뾰족한 타원형 안에 잘 모셔진 알렉산더 헤밀턴의 차분한 얼굴을 들여다보다 나는 처음으로 낭랑하면서 거친 슐츠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순간 멍해진 나는 만화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해밀턴이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상황이 파악되자 그 소리가 바로 내가 동경해온 거물급 갱의 목소리였음을 깨달았다. "유능한 녀석이군."
동경하던 대상을 마주하고 그에게 유능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에도 빌리는 큰 그림 그리기를 놓치지 않는다. 주변 아이들이 그 10달러를 뺏아갈 상황에 대비하여 "저기봐!"라고 외치며 미친듯이 뛰어 몸을 숨긴다. 그리고는 그 돈을 신발 속에 깊숙이 집어넣는다. 그러고 나서 학교도 열심히 다니며 지내는 철저함을 보인다. 이 대목에서 주인공 빌리가 얼마나 똑똑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빌리는 그 돈을 쪼개 엄마에게 주기도 하고 옆 고아원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돈을 주고 잠자리를 함께 한다. 그러면서 돈의 힘을 느낀다.
빌리가 자신의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p.47 나는 아파트 건물 외벽에 붙은 비상계단 층계참에 앉아 밤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며 나답지 않은 생각의 사슬을 쫓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맥주 은닉처 앞에서 저글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내 갈망의 속성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건은 어떤 지역에 사느냐에 달린 문제였다. 내가 만일 양키 스타디움 근처에 살았다면 야구 선수들이 어디로 해서 옆문으로 들어가는지 알았을 것이다. (생략) 그것은 각자가 사는 곳의 특유한 문화의 문제였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대부분 그에 미치지도 못했다.
즉 갱 조직 보스를 동경하는 것 갱에 들어가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빌리와 같은 빈민가에 사는 아이들에겐 어쩌면 문화와도 같은 것이라는 얘기이다. 빌리 주위의 아이들은 갱단에 입단하고 성공한 모습을 보이는 그를 경계하면서도 동경한다.
하지만 애석한 것인지 어쩐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빌리가 더치슐츠를 만난 그 때는 더치슐츠의 시대가 지는 시기였다. 맥주에 물을 타 팔고 소위 말하는 양*치 짓을 많이 하던 그에게 등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진다. 그가 뇌물을 써가며 위기를 모면하려하지만, 그 뇌물 조차 받아주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빌리는 뇌물을 전해 주는 임무를 맡는다. 뇌물을 거절하면서 민주당 태머니파 지구장 제임스 J.하인스는 빌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p.381 진심 어린 마음을 보증하는 이런 큰돈을 보내야하다니 정말이지 이렇게 애석할 수가 없구나. 화폐 중에 가장 고귀한 단위이자 아주 멋진 빳빳한 지폐야. 잘 들어라. 내가 이 돈을 받고 입을 씻어도 그는 어쩔 수 없을 거야. 내 말 알아듣겠니? 하지만 그러지 않겠다. 그에게 잘말해. 제임스 J.하인스는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는 걸. 너무 늦었어,비언 군. 콧수염 난 그 작은 공화당원 때문이야. 상상력이라곤 전혀 없는 자이지. (생략) 돈의 흐름이 끊기는 건 심각한일이야.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 친구가 자기성찰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미스터 와인버그같이 사람들이 높이 하는 동료가 있었지. 그게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그가 너를 발견한 날이 시작이었는지도.
빌리는 특유의 영리함으로 조직에서 점점 인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몰락해가던 더치슐츠의 끝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총을 맞는 것이었다. 빌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던 다른 조직원들도 한 순간에 총격으로 다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숨이 간신이 붙어 있던 조직원 미스터 버먼은 오른쪽 3,3. 왼쪽 두 번 2,7. 오른쪽 두 번. 3,3.이라는 말을 남긴다. 영리한 빌리는 더치슐츠의 몸에서 열쇠를 하나 찾아 꺼내든다.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제대로 쓰지도 않던 더치슐츠의 현금이 보관된 금고의 열쇠와 번호였던 것이다. 세상에는 그의 돈이 어디있는지도 파악을 못하고 사라졌다고 여겨졌지만, 그 돈은 빌리의 것이 되었다. 영리한 빌리는 다행히도 더 이상 갱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아이비 리그 대학에 진학하고 현찰로 등록금을 낸고, 육군 소위가 된다.
결말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큰 돈이 빌리에게 생김으로써 그의 환경은 바뀐다. 영리하고 현명한 그였고, 갱단의 비참하고 허망한 마지막을 보았기에 더 이상 그 세계를 동경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과 연결짓게 된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조직폭력배 조직원으로 들어가 연결되어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있다. 그들도 어쩌면 이 소설 주인공 빌리처럼 그런 환경에 있어 그게 문화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그 화려한 세계의 끝은 권총으로 쏘면 한 순간에 생각도 없이 끝날만큼 짧고 허망함뿐이다. 빌리처럼 아이들이 그래도 나중에는 한 사회의 좋은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인상적이었던 문구
P. 134 여하튼 나는 그날 밤 엄마 지갑에 40달러를 넣었다. 나에게 남은 돈은 25달러와 잔돈 조금이었다. 문득 내가 자질을 타고난 듯 큰 단위 지폐들을 다루고 큰 금액에 곧잘 익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란 돈에 금방 익숙해질 뿐 아니라 돈에 대한 신기한 느낌이 사라지면 결국 특별해 보이지도 않게 된다. 그렇지만 엄마가 세탁공장에서 받는 주급은 고작 12달러인데도 내게는 여전히 놀라운 금액이었다. 다시 말해 종전대로 보자면 가치있는 돈이었다. 반면에 내가 번 돈은 많아도 그렇지 않았다. 그건 아바다바 버먼의 생각이었다. 나는 내가 넣어둔 돈이 엄마의 주급 봉투에 든 돈과 같은 가치를 띠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P. 166 신뢰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아는 건 독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신뢰받을 이유와 내가 처한 위험의 깊이를 비교하며 평가하고 있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런 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298 나는 예전에 비해 더 강인했고, 허리에는 진짜 권총을 차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무엇이든 고마워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건 당연한 내 몫으로 취해야 함을 알았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대가가 따를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 대가는 목숨과 바꾸기엔 너무 비싼 통화로 치러져야 하는 만큼 나는 본전을 뽑고 싶었고, 그녀에게 은근히 화가 났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그걸 보면 자연스러울뿐더러 이치에도 맞는 듯해서 나라고 그렇게 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부서지고, 찢어지고, 벗겨진
것을 사랑하는 것. 고장난 것을 사랑하는 것, 그 누구도
더럼을 씻어 그게 무엇인지 확인해보려 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것. 형체가 분명하지 않고, 용도를 알 수 없고, 기능이 뚜렷하지 않은 것을 사랑하는 것. 그것들을 사랑하고 보관하는 것.
1930년대 뉴욕 빈민가 브롱크스,
빌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미스터 슐츠의 눈에 띄어 갱이 될 자질을 인정받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궁리했다. 그때 빌리는 줄곧 저글링을 연습했다. 스폴딘 고무공, 돌, 오렌지, 빈 초록색
코카콜라 병 등 무엇이든 사용해서, 예사로 했기 때문에 저글링을 하는 아이로 알려졌고, 어디서나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열다섯 소년인 빌리가 당대의
가장 악명 높은 갱단 두목인 더치 슐츠의 눈에 띄게 된 것도 바로 저글링 때문이었다.
대공황의 여파로 실직한 어른들은 거리에서 빈둥대기 일쑤였던 그 시절, 빌리의
아버지는 오래 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는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둘이서 브롱크스 빈민가에
살고 있었다. 엄마는 머리가 약간 이상했지만, 빌리는 타고난
민첩함과 영민함을 가진 소년이었다. 매일 저글링을 연습하다 마치 운명처럼 더치 슐츠의 눈에 띄어 자신이
그토록 꿈꾸고, 동경하던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범죄 조직에서
간단한 심부름과 배달 등을 하다 살인이 벌어지는 현장에 참여해 공모자가 되기도 한다. 그 시절을 빌리는 '태양이 빛나면 너무 밝게 빛났고 밤이면 칠흑같이 어둡게 보였던, 자신
주위의 당연한 것은 무엇이든,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어쨌건
그건 자신이 바라던 바였으며, 스스로 정상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기회는 온다는 희망,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미국은 하나의 거대한
저글링 같아서 우리는 모두 어떻게든 공중에 떠 있을 수 있고, 결국 신의 우주 안에서 손에서 손으로가
아닌 빛에서 어둠으로, 밤에서 낮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성장 소설이자, 미국의 대공황과 뉴욕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보여지는 갱스터들의 삶을 다루는 범죄 소설이기도 하다. 특히나 흥미로운 것은 극중 갱단 두목
더치 슐츠와 갱들이 실존 인물이고, 소설 속 사건들 또한 대부분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닥터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도시에서 보고 겪었던 사건과 당시의 분위기들을 고스란히 이 작품 속으로 그려내고
있다. 너무도 어린 시절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려 기억도 할 수 없었던 아버지 대신, 빌리는 더치 슐츠를 아버지처럼 우상으로 여겼다. 연방정부가 탈세
혐의로 슐츠를 수배 중이었고, 갱단 사업에서 범법 증거를 확보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던 위기를 이용해
빌리는 갱단의 정식 멤버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아무리 영리하고, 기민하더라도 빌리는 15세 소년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겪고, 목격하는 수많은 어른들의 세계는 그에게 성숙한 여인과의 사랑과 막대한 돈과 부에 대한 가능성도 가르쳐 준다. 하지만 그는 정신이 약간 이상한 엄마에 대한 책임감을 버리진 않았고, 쾌락과
공포의 세계 속에서도 집을 잊지 않는다. 시종일관 암흑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누아르, 범죄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열다섯 소년을 화자로 그의 생각과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성장 소설의 분위기가 더 지배적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이
특별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통속
범죄물을 예술로 승격시킨 작품'이라 평가 받는 이유 또한 주인공 빌리의 언어에서 기인하는 것일테고 말이다. 그리고 후반부의 반전 또한 빌리라는 인물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며, 특별한
성장 소설의 대단원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E.L. 닥터로는 제게 생소한 작가인데요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굉장한 유명한 소설가로 보입니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유대계 러시아 이민 2세대 가정에서 자란 닥터로는 제대 후 서른 살에 첫 소설을 냈다고 하네요. 이후 9년동안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소설 짓는 능력도 향상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007시리즈의 창시자인 이언 플레밍과 함께 작업을 했다고 하니, 어쩐지 글에 대한 열망이 더 돋보이는 듯 합니다. 첫 소설 이후 9년동안의 훈련기를 거치고 드디어 작가의 명성을 높여줄 '다니엘서'라는 소설을 내놓았습니다. 이 소설은 로젠버그 스파이 부부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부부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스파이 혐의때문에 사형을 당했다고 하네요. 아직 읽지 못했지만 '빌리 배스게이트'만큼이나 흥미진진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펜/포크너 상을 한 번 받기도 힘든데 여러차례 받았다고 해요. 국가인문학훈장과 케니언 리뷰상도 받고 뉴욕주의 작가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네요.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꾸준히 올랐다가 폐암 투병후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빌리 배스게이트'는 1930년대의 뉴욕 빈민가인 브롱크스를 무대로 15살 주인공이 더치맨이 이끄는 갱단에서의 생활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어요. 경제 대공황의 광풍이 몰아닥친 시대라 여기저기 실직한 사람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빌리의 처지도 매한가지였죠. 아빠가 나간 후에 엄마는 약간 정신이 이상해져 집 안 여기저기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초를 지핍니다. 하릴없이 꾀죄죄한 옷차림에 친구들과 싸돌아다니는게 전부인 빌리는, 그만이 선보일 수 있는 빼어난 저글링 묘기를 하다 우연히 갱단 두목 더치 슐츠의 눈에 띄게 됩니다. 슐츠는 빌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행운의 마스코트를 떠올렸었나 봐요. 빌리는 슐츠 패거리에 들어가 온갖 잡일과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패거리의 끔찍한 범죄 현장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야기의 큰 가지는 뻔한 범죄소설인 듯 보여도 빌리의 체감영역에 들어가면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흡입력과 통찰력으로, 흉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더랬어요. 풍요와 빈곤 그리고 범죄라는 극단의 경계를 오락가락했던 빌리는 소설 밖에서는 과연 어떤 인물로 변해있을런지요. 압도적인 서사의 힘으로 정신없이 읽었던 소설이었습니다. 1930년대 미국 뒷골목 이야기에 관심있는 분들은 이 책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네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택배가 도착할 즈음 나는 이 책을 검색해보았다. 같은 이름의 영화가 있었다. 그것도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엄청난 배우들이 출연한!! (비록 잘 만들어져서 흥행한 영화는 아니였지만) 게다가 이 소설이 퓰리처상 최종 후보였다니 기대감이 차올랐다. (퓰리처상 수상 소설에 꽂힌 경험이 많은 관계로) 그렇게 받은 책은 뒤편에 적힌 문구부터 심상치 않았다.게다가 첫장의 이야기는 무려 부둣가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조폭 영화에서 늘 나오는 그곳, 부둣가에서 사건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1930년 대공황 시절에 뉴욕 빈민가에서 홀어머니와 살던 15살의 어린 소년이다. 범죄가 난무하고 삶이 팍팍했을 그 시기에, 빈민가의 사람들은 갱단의 창고가 마을에 있는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아이들은 그 갱단에 들어가는 것을 꿈으로 삼으며 생활한다. 주인공 소년 역시 그 중 하나였는데 어느날 저글링을 하다가 갱단 두목 더치 슐트의 눈에 띄게 된다. 비록 슐츠는 그냥 쳐다보고 지폐를 한장 쥐어준게 다 였지만 그게 빌리로써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것같다. 그 후에 슐츠 갱단을 직접 찾아 들어간 간 큰 주인공은 슐츠 갱단에서 일원인듯 일원이 아닌듯 일원같이 지내게 된다. (찾아 들어갈때는 내가 다 간이 떨려서 원) 빌리는 아주 영리해서 그 어린 나이에 무서운 어른들 그것도 갱들 사이에서 잘 버텨나간다. 심지어 정식 멤버로 인정받기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책을 어느정도 읽을 때까지는 마치 첫페이지 살인사건에서 나오던 파도가 계속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범죄소설을 읽을 때 늘 그러는 것 처럼 폭풍이 휘몰아치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종반부에 가서는 모든 파도와 폭풍이 멈춘 이후인것처럼 잔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이것이 다른 범죄 소설들과 꽤나 다른 점이라고 생각됐는데, '시작은 범죄 느와르 소설이였으나 결말은 성장소설이리라.'하는 느낌이랄까. 아, 그래서 주인공을 어린 소년으로 설정했었나보다. 사실 소설속에서 나오는 빈민가의 모습, 은밀한 암흑가의 모습은 대공황 시기만큼 극심하진 않겠지만 세계 어느곳의 어느시대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어릴 때는 힘에 이끌린다. 늘 자신보다 강한 어른에게 주눅들어서 그런 것인지, 어리다고 어른들에게 이런 저런 한계를 많이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힘에 대한 동경만큼 유년을 흔드는 게 없는 건 사실이다. 특히 소년들이 슈퍼 히어로나 거대 로봇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동경을 어릴 때 한 번쯤 품어보았다면, 세 번째로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닥터로의 소설인 '빌리 배스게이트'의 주인공 빌리의 심리가 훨신 더 가깝게 다가올 듯 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데도 제목이 어쩐지 친숙하다고 느껴진다면 아마도 지금은 작고한 로버트 벤튼이 감독하여 1991년에 발표한 동명의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더스틴 호프만이 더치 슐츠 역을 맡고 그런 더치의 정부가 되며 빌리가 사랑에 빠지는 드류 역을 니콜 키드먼이 맡으며 브루스 윌리스가 소설 초반에 더치에게 살해당하는 보 와인버그로 분했던 그 영화는 흥행과 비평 양쪽 모두 실패했는데, 소설을 읽고나니 그게 참 뼈아프게 느껴진다. 영화가 성공했다면 분명 우리는 이보다 훨씬 빨리 '빌리 배스게이트'를 만났을테니까. 그 엇갈린 시간이 자못 안타까울 정도로 '빌리 배스게이트'는 정말 좋은 소설이다. '자정에 한 페이지만 읽고 자자고 다짐하지만 끝까지 다 읽게되고, 시간을 보니 어느새 새벽 세시인 그런 종류의 책, '빌리 배스게이트'는 바로 그런 책이다.'라고 우리들에게도 '종이 시계'나 '우연한 방문객'으로 유명한 소설가 앤 타일러는 말했다는데, 개인차가 있겠지만 정말 그런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의 미국이다. 맞다. 대공황 시대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시대다. 이 시대의 패션, 분위기를 좋아한다. 타임머신이라는 게 있다면 꼭 한 번 가서 온 몸으로 경험해 보고픈 시대다. 물론 당시의 미국 사람들은 정말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 대한 내 점수를 이미 절반은 주고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소설은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는다. 배에서 보 와인버그가 더치 슐츠에게 고문 당하는 장면이다. 도시와 바다의 경계선인 부두, 그 바깥의 밤 바다의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둥둥 떠 있는 배에서 난무하는 폭력과 비명은 이 소설이 장차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강력하게 예고하고 있다. 그 사건을 가져온 것은 빌리의 밀고였고, 이 때문에 빌리는 아무리 강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삶도 조그만 실수로 끝장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보 와인버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슐츠의 야만성은 빌리에게 강한 힘이 있으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걸 일깨워주었다. 빌리는 뛰어난 저글링 솜씨로 슐츠의 눈에 들었다. 사실 '배스게이트' 거리에서의 그의 삶은 저글링과 판박이였다. 받쳐주는 손이 없으면 언제든 나뒹굴, 한없이 연약하고 불안한 삶이었던 것이다. 그런 빌리에게 슐츠의 강력한 힘은 저글링을 받쳐주는 든든한 손으로 보였다. 매혹되었고 자신이 나아갈 길이 열렸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절대란 것도 없다. 강한 자 위엔 더 강한 자가 있고 늘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인생이란 찰라의 실수와 한 번의 오판만으로도 여지없이 붕괴되어 버리는, 태풍 앞의 민들레 홀씨와도 다를 바 없이 연약하다. 보 와인버그가 살해 당한 뒤 한달 반 동안 빌리는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강하기에 동경했던 슐츠의 삶을 지켜본다. 슐츠는 안전해지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종교에도 귀의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붕괴를 막지 못했다. 개인 위에 시스템이 있었다. 슐츠는 엣 이야기에 나오는 생쥐처럼 폭력과 야만으로 스스로 사자로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시스템 안에서 그는 여전히 생쥐였다. 빌리는 이것을 본다. 그 역시 슐츠를 모델로 사자가 되고자 했지만 결국 생쥐로 남을 것임을. 아주 조그만 신의 장난으로도 삶 전체가 곤두박질치는 생쥐의 삶을 살게 될 거란 걸. 그렇게 그는 교훈을 얻었고 보다 현명해진다. 슐츠 죽음 후의 이야기는 빌리가 얼마나 더 영리해졌는가를 보여준다. 한껏 자신을 드러내던 슐츠와 달리 그는 계속 자신을 감춘다. 슐츠와 함께 할 때는 도시 전체를 집 안마당처럼 활보했던 그였으나 이제 그는 '배스게이트' 거리를 엄마와 함께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삶은 도시에서 가족으로 좁아졌고 그만큼 삶 역시 작게 줄어들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빌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찾고 있던 안정을 비로소 발견한다. 슐츠를 통해 얻으려 했던 구원이 바로 여기 있다는 것을. 그것을 통해 닥터로는 보다 분명하게 독자에게 보여준다. '작은 것 때문에 휘청거리는 삶이 불안해 큰 것에 기생하여 그 불안을 털어내고자 하여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이전보다 더 큰 요동을 가져다 줄 뿐이다. 그 보다는 그럴수록 보다 작은 것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소중히 다지는 게 나을 것이다. 타인의 힘을 빌거나 뺏어 자신의 삶을 튼튼히 하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손바닥만한 텃밭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전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일군다면 폭풍 속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반석이 되어주리라.'고 말이다. 실존했던 인물과 실제 일어났던 사건으로 가득한 소설이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내게는 이러한 닥터로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 보다 훨씬 거대한 삶. 나는 그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지금부터 천천히 생각해보려 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1930년대 뉴욕 빈민가 브롱크스. 그곳에서 저글링 하나라 한 시대를 휘저은 갱단 두목 더치 슐츠의 눈을 사로잡은 한 15세의 소년 빌리 배스게이트라는 소년의 이야기다.
간단히 말하면 범죄 스릴러 소설? 15살의 빌리 배스게이트의 성장 소설? 하지만 대부분이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역사 소설?
어느 쪽이든 몰입도가 강한 소설이었다. 특히 밤에 읽으니 좀 더 어두운 뒷골목의 분위기를 더 실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어쨌든 주인공이 10대 소년이기에 범죄를 다루어도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처럼 담담하게 흘러가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러기엔 빌리는 너무 유능한 아이였다. "지구가 커다란 매춘굴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고 15살에 말할 정도로.
그리고 더치 슐츠 아래 빌리는 빈민가 소년 빌리만이 아닌 화려한(?) 도시 배스게이트처럼 살기도 한다. 살인, 배반, 섹스 등 세계 대공황 아래 더욱 더 통제가 힘들어진 갱들 사이에서 이를 보고 듣고 겪으며 자랐다. 물론 로맨스도. (다행인 건 로맨스 부분이 흔한 신파처럼 흐르지 않았다는 거?)
하지만 마지막은 그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란 고백처럼 하는 걸로 마무리된다. 어머니와 살고 있는 평범한 삶에 찾아온 자신의 아들인 한 갓난아기와 함께. 그리고 빵을 굽는 등 활력에 넘치는 일상들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마치 더치 슐츠 시대 같다고 했다. 일상이 화려하다고도 할 수 있었던 그때와 같다니. 결국 빈민가 소년 빌리는 평범한 일상을 위해 그렇게 살았을까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옮긴이의 말을 보았다.(꼭꼭 읽는 부분)
저자 닥터로는 이 책을 통해 1980년대의 레이건 정부 시대를 비판하고 있다고 했다. 호황 시대임에도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군사력 증강을 내세워 문화, 복지부분의 예산 삭감을 초래했던 당시 정부의 행정 정책을 "갱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자원을 지키려고 그 자원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던 형태와 다르지 않다고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빌리가 "훨씬 더 큰 갱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했듯이, 어떤 의미에서는 갱들보다도 더 부패하고 탐욕스럽다고 레이건 행정부와 열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금 읽었던 내용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래서 단순한 소설이 아닌 역사서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정치 조폭(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등 오히려 빈민층보다 권력층이 더 추악한 면모를 보인 적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라면 다소 형태는 다르더라도 다 있지 않을까.
어쨌든 닥터로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1980년대를 비판하고 싶었단 말이다. 그렇다면 빌리 배스게이트는 너무나도 탁월한 저자의 대변인이었다. 물론 그런 관점에서 보지 않고 단순한 범죄 스릴러 이 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웹소설에 비하면 가독성이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몰입도만큼은 종이책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이끌어낼 정도로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