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프랑스 작가 중에서도 몇 안되는 믿고 읽는 작가이다. 이미 다른 작품을 읽은 적이 있고 그 작품에 매료되어서 이 역시도 작가의 이름만으로 선택했으니 말이다. 프랑스 작품이지만 스릴러 장르여서 그런지 난해하지 않고 오히려 가속도가 붙어서 슥슥 잘 읽히는 편이다. 중간중간 역사적인 요소도 집어 넣어서 사실감을 더한다. 그런 역사적 사실은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그리고 범인으로 하여금 왜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되게 한다. 이 역시도 그러하다. 카스단은 매일 두가지 약을 조합해서 먹고 불로킨은 마약중독이다. 이 완전치 못한 조합이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가족이 없는 그들이 오히려 더 가족같은 느낌을 준다. 불로킨은 적진으로 뛰어 들고 카스단은 그를 구하겠다고 거의 람보급으로 무장을 하고 그를 뒤따른다. 물론 그를 막아세우는 것이 있다. 지금 사건을 막고 있는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카스단의 불법적인 사건 해결을 막고자 한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달라고 한다. 불로킨을 구하러 가야 하는 이 바쁜 와중에 웬 태클이냐 하고 종종걸음 쳐보지만 이 모든 것이 다 미리 계획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 큰 그림을 보지 못했구나 나는. 괴츠가 남긴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며 계속 그의 집을 들락날락 하면서 증거를 찾는 둘. 그리고 그들이 만났던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죽임을 당한다. 사건 현장은 언제나 늘 비슷하지만 뒤로 갈수록 더욱 흉폭해진다. 장기들을 손에 쥐여 놓는 행위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제 고삐는 바짝 조여들었다. 볼로킨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이름을 바꾸는 등 나름의 변장을 하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그들의 소굴로 향했다. 마약 중독자는 당연히 마약을 끊어야 하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이라면 충격요법을 강행했다. 그가 알아낸 그의 과거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저기 증거를 찾아서 다니는 그가 왠지 잘 풀린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런 끝에 다가오는 것은 반드시 협박과 막다른 길이다. 생각지 못한 숨겨진 인물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급변하고 나 또한 마음이 급해진다. 이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나라는 것을 알아내고 이렇게 하려고 그를 말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미세레레라는 제목이 참으로 낯설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프랑스 단어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미세레레는 미사곡의 제목이었다. 성가대원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많은 미사곡들이 나온다.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미성. 파리 십자가 소년합창들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아날두를 에두아르도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스릴러 또한 이 책을 읽으면 반드시 연상되는 책이다. 다시 읽어볼까. 173쪽에는 사이비 종교집단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있었노라면서 위험성을 강조한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전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이 생각이 났다. [명탐정의 제물]이라는 책이다. 그 이야기 역시도 사이비 종교집단에 관련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유독 이 부분에서 교차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레이다에 걸리면 어디선가 본 건데 하면서 연상되기 마련이다. 읽었던 책의 경험을 즐기는 순간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을 공격한다. 자살을 종용한다. 집단 자살을 명령한다. 사이비 종교집단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
# 작가의 다른 작품
검은 선 늑대의 제국 (..) # 읽고 나서. 미스터리/스릴러에도 트렌드가 있다면, 그랑제의 소설들은 확실히 철 지난(?) 스릴러인 거 같다. 요즘 유행하는 소설들은 좀 더 가볍고 가독성에 초점이 맞춰진 데 반해, 그의 소설은 (두 편 읽어봤을 뿐이지만) 무겁고, 역사, 과학, 정치 등 주로 전쟁, 스파이, 종교를 배경으로 깔린다. 나같이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우와!' 할 포인트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포인트가 많아서 그런지 내 스타일에 딱 맞춤이다. 물론, 좀 오글하고 오바한 설정이라던가, 막판 서스펜스를 위해 과하게 포장하는 유치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쫄깃해진다. 파리 내 아르메니안 교회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성가대 지휘자 빌헬름 괴츠가 살해당한다. 현장에 있던 은퇴 형사 카스단은 자신의 성전을 더럽혔다며 살인자를 스스로 잡고자 개인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남자는 귀를 무언가를 통해 관통당해 엄청난 고통과 함께 살해당했고, 현장에는 240mm 사이즈의 어린이 (청년?)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아동범죄에 분노와 사명감을 느끼는 젊은 형사 볼로킨이 카스단과 합류하고, 그들은 빌헬름 괴츠가 담당하던 파리 곳곳의 성가대 아이들이 실종되었다는 것, 그의 성적 취향과 함께 그가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으로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에서 그들은 <미세레레>에 힌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수사를 계속한다. 단순한 아동 성범죄라고 생각했던 사건은 이를 넘어 정치, 종교의 더 큰 비밀로 이들을 이끈다. <미세레레>는 분명 성악 분야의 히트곡이다. 녹음된 횟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알레그리가 이 곡을 쓴 것은 17세기 전반기였다. 당시 알레그리는 바티칸 궁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 성가대의 일원이었다. <미세레레>는 오로지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그것도 일 년 중 성주간에만 불리던 노래였다. 그 연례행사는 두 세기 넘게 지속되었다. 카스단은 곡명과 작곡자 이름의 대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미세레레라는 제목은 비통한 느낌을 주는 데에 반해서 알레그리라는 이름은 명랑함, 축제, 환희를 연상시켰다. - 72쪽 이야기는 <몬스터>, <20세기 소년>을 떠오르게 한다. 아이들이 관련되었다는데 소름이 돋는다. 당시의 고문과 인체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감 있고, 그만큼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혐오감에는 눈을 감고 싶어진다. 인간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아니, 한 사람, 혹은 작은 그룹의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사람들을 오염시킬 수 있는가. 정치적 혹은 경제적 안전을 위해서 사람들은 또 얼마나 쉽게 눈을 감아버리는가. 비현실적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더 혐오감이 인다. 두 주인공도 비밀을 안고 있다. 일반적인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면 이 정도 비밀이 주어지진 않겠다 싶을 만큼 충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그들의 행동이 더 이해가 가기도 했다. 마지막 결말의 격한씬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고, 갑작스러운 전개에 좀 어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이분의 작품은 될 수 있으면 다 챙겨 보고 싶어졌다. *미세레레 1 - 밑줄 "그 살인자는 우리 영토를 더럽혔어. 그자를 내 손으로 잡을 거야. 우리 성전은 내가 지켜." "자네는 성전을 지키는 사람이라기보다 골칫덩이 중의 골칫덩이야." - 42쪽 <미세레레>는 분명 성악 분야의 히트곡이다. 녹음된 횟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알레그리가 이 곡을 쓴 것은 17세기 전반기였다. 당시 알레그리는 바티칸 궁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 성가대의 일원이었다. <미세레레>는 오로지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그것도 일 년 중 성주간에만 불리던 노래였다. 그 연례행사는 두 세기 넘게 지속되었다. 카스단은 곡명과 작곡자 이름의 대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미세레레라는 제목은 비통한 느낌을 주는 데에 반해서 알레그리라는 이름은 명랑함, 축제, 환희를 연상시켰다. - 72쪽 "의사들은 나를 굽어보며 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길이 하니 있다고 했어요. 자기들의 물음에 정확하게 답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설명은 이러했어요. 우리가 곧 수술에 들어가서 네 몸의 기관 하나를 잘라낼 것이다. 그런 다음 마취 효과가 사라지고 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러면 너는 어디가 아픈지를 보고 어떤 기관이 잘려나갔는지 알아맞혀야 한다. 대답이 맞으면 네 목숨을 살려주겠다. 만약 틀리면 다른 기관들을 잘라낼 것이다. 그때는 마취도 하지 않을 것이고 네가 죽을 때까지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302쪽 고결함을 모르는 인간쓰레기들은 그저 우세한 편에 붙어 있을 때만 강자 행세를 했다. - 365쪽 카스단은 서랍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서랍마다 비열한 괴물들이 숨어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독한 바이러스와 세균으로 가득 찬 표본병들에 둘러싸인 기분이 들기도 했다. 보코브자는 악의 감염원을 감시하는 파수꾼이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죠?" "저는 인간이고 인간들 속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 386쪽 * 미세레레 2 - 밑줄 "트라우마를 억압하면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어. 인간의 영혼은 육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능해. 만약 외부에서 들어온 어떤 이질적인 요소가 생래적인 방어기제를 통해 배척되지 않으면, 부패나 괴저 같은 것이 생겨나게 마련이지." "그러면 그때 가서 잘라내면 되겠네요." "네 정신에 관한 얘기야. 정신을 잘라낼 수는 없어." - 24쪽 "당신은 인간에 대해 낭만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소. 당신은 인간이 선하고 너그럽고 지혜롭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할 거요.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오. 인간은 기형적인 존재요. 자연이 빚어낸 사악한 존재란 말이오. 과학의 목적은 단 하나, 인간을 바로잡고 가르치고 순화하는 거요. 새로운 인간, 그게 유일한 목표요." - 43쪽 "미친 건 내가 아니라 전쟁이야. 분명히 말하지만 아프리카에 가기 전까지 나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젊은이였어. 그 전쟁은 나에게 전기 충격과도 같았어. 내 뇌의 화학적인 구조를 뒤죽박죽으로 만든 거야. 그 저주받은 날들 이후로 나는 발작과 악몽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이런 말을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한 사람의 피해자야. 특별한 사건의 평범한 피해자라고. 아니면 그와 반대로 범상한 사건의 유별난 피해자일지도 모르지. 내가 겪은 일이 그저 인간의 추악함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흔해빠진 사건들 가운데 하나라면." - 239쪽 "또 다른 해결책이 있긴 하죠." "뭔데?" "아순시온에 잠입해서 하르트만을 찾아내는 거요. 우리가 보기에 그 자는 분명 코스 매장 고원에 살고 있어요. 그자를 납치해서 프랑스 영토로 데려온 다음 비밀리에 심판을 내려야 해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치들을 상대로 했던 것처럼요." - 473쪽
|
|
가장 순수하고 보호 받아야 할 어린이들을 이용해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아무거리낌 없이 행동하도록 세뇌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니... 분명 픽션으로 이루어진 소설인줄 알고 있지만 왠지 섬뜩하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세레레 1'권에서 아내가 죽고 그로인해 아들과는 연을 끊고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예순세살의 퇴직 형사 카스단과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자들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잘 생긴 젊은 형사 볼로킨... 두 사람은 서로의 감추어진 내면 깊이 새겨진 상처를 들여다보고 위로하며 계속되어 일어나고 있는 연쇄살인과 실종된 아이들에 대한 탐문을 계속해 나간다.
진실에 문에 다가갈수록 살인자로 지목되는 것은 연약한 소년들이지만 그들의 딱딱하고 감정 없는 표정 뒤에 숨겨진 거부하지 못할 악의 존재는 카스단과 볼로킨을 두렵게 한다. 살인을 막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볼로킨은 자신이 그토록 보호해주고 구해주고 싶었던 대상에게 커다란 해를 입게 된다. 카스단은 이런 볼로킨을 포기할 수 없다. 카스단은 볼로킨을 보며 아들과의 연결고리라는 생각에 그를 살려내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잠도 잊은채 매달리는데.... 카스단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비밀의 실체가 모습을 보이고 볼로킨 역시 왜 마약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으며 아동범죄에 매달리게 됐는지 실체가 드러난다.
악의 근원이 만들어낸 곳은 프랑스 정부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인정 받은 장소이며 모든 죄악의 비밀은 그 속에 있다. '미세레레'가 가지고 있는 진실 속으로 한걸음씩 발을 내 딛는 두 사람은 결국 이 모든 일의 창시자와 그의 아들과 만나게 된다.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의 한판 승부가 시작되고 모든 것의 시작은 나치 수용소의 유태인들의 죽음 속에서 발견해 낸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현실로 이끌어 낸 남자의 그릇된 광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적인 무기를 소지한 소년은 누구인지... 의문부호만 남기며 스토리는 끝이난다. 사실적인 묘사와 흥미진진하고 짜임새 있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는 줄곧 몰입하게 만들었으며 매혹적이지만 잘 모르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재미 있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광기에 빠져든 사람들의 사실적인 묘사는 실감나게 섬뜩했다. '미세레레'가 출간과 함께 아마존 프랑스 1위에 오르며 영화화로 결정이 났다고 하는데 영화 또한 책 못지 않는 재미를 선사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