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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근 시인의 강물 속에 핀 꽃과 제자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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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올해 첫 리뷰는 신승근 시인의 『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였습니다.학창시절의 벗이었던 시인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벗이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해서 반가웠고요.오늘 벗들의 카톡에서 신승근 시인의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오늘 너무 가열찬 글을 읽었다. 물론 이런 헌사를 받을만한 삶을 살아왔다고는 자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글이 남은 내 생에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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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올해 첫 리뷰는 신승근 시인의 『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였습니다.

학창시절의 벗이었던 시인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벗이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해서 반가웠고요.

오늘 벗들의 카톡에서 신승근 시인의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오늘 너무 가열찬 글을 읽었다.

물론 이런 헌사를 받을만한 삶을 살아왔다고는 자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글이 남은 내 생에 밑줄을 그어줄 것이라 믿는다.

후생가외를 넘어 그가 내 스승이다."

 

제자가 쓴 리뷰를 보고 느낀 감동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글이기에' 라는 생각에서

그 제자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문학에 대한 이해, 스승에 대한 사랑에 놀라면서

제 블로그에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시인의 허락을 받고 이곳에 올립니다.

------------------------------ 

이제는 지는 꽃잎에도

이제는 지는 꽃잎에도

눈길 머무네.

퍼지르듯 주저앉은 모란꽃이나

깨끗하게 순절하는 산목련, 그

어느 것인들 목숨 건 생이

아니었으리.

 

그림자도 지쳐 시드는 햇살 속으로

작렬하듯 살 뿌리는

꽃잎을 보네.

멸망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하기로 저

혼절하는 꽃잎에야

어이 견주리.

 

생애의 절정에서 폭발하는

영혼만큼, 아름다운 것 또

어디 있으리.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 걸까. 난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들이 사람들이 보지 않거나 못 보는 것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는데 삶이라는 게 지극히 산문적이고 다큐에 가까우니 특히 언어를 벼리고 또 벼려내는 시인이야말로 운명이다 싶다. 결이 섬세하고 예민한 시인들은 늘 시대와의 불화에 괴로워하며 그 사이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생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이 아니던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공간일 수도 있고 특정한 표정이나 목소리 같은 신체적인 특징이 될 수도 있다. 또 드물게는 그의 가치관, 언어습관인 경우도 있다. 화인(火印)이 강렬하다면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마치 곰삭은 식혜나 홍어처럼 웅숭깊은 맛으로 남아 이리 말하든 저리 말하든 다 통하게 되기도 한다. 달리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아 애매하면 다 선생님이라 하지만 내게 生의 自存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단 한 분 신승근 선생님이셨다.

 

여고생이 반백의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선생님은 큰 얼굴과 큰 키, 무심한 듯 말씀하시며 때때로 먼 데로 가있는 시선을 황망히 잡아오시던 교단에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엔 시인으로 사시는 선생님들이 참 많았었다. 지금도 동시와 동화를 쓰시는 외삼촌도 중학교 교단에서 정년을 마치셨는데 어쩌면 학생들이어서 야만의 시대에도 시인의 감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시인 교사와 시인을 선생님으로 둔 학생들은 시대를 딛는 내밀한 동거인이었으니 서로에게 든든한 배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88년 교육민주화를 외치시는 선생님들께 힘을 드리려고 대학 간 친구들과 강릉에서 일일찻집을 한 적이 있었는데 2집 시집에 사인을 받은 걸 보면 그때 한번 뵀던 모양이다. 까마득하게 잊고 나는 나대로 시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망각하며 살았다. 졸업 후 교육현장으로 나간 친구들에게 선생님과 함께 근무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어떤 느낌일까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작년 가을이었나 우연히 페북에서 선생님을 뵙고 너무 반가워 인사를 드렸는데 차마 친구 신청하기 송구하여 멀찌감치 근황을 짐작하기만 했다. 세 번째 시집은 품절이라 아쉽다 하던 차에 시선집을 내셨다기에 주문하여 읽다가 1,2집을 꺼내 읽다 보니 몸은 언어도 기억하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한달음에 시를 읽던 그때의 내 마음과 그리운 친구들까지 소환하게 한 것이다.

 

邊方에서

새가 한 마리 날아오른다. 邊方에서,

비 내리는 산 마루턱 등잔불이 떠오른다.

풀들이 눕고. 여름이 가고 있다.

젖은 땅 젖은 붙이들은 모두 오너라.

누가 외로운 山 하나를 불러서

邊方에서 맞아 죽은 새 한 마리를 줍겠느냐.

사금파리 하나가 하늘에 떠서

죽은 새의 깃털만 자르고 있다.

-1집 <<바람이 접시에 닿고 있을 때>>, 1981

 

세상과 인생은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는 걸 깨달아가던 즈음 선생님을 만났고 시대와의 불화에도 ‘변방에서 새 한 마리 줍는’ 시적 화자와 조우함으로써 만용하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았다.

 

“아우라지 강뚝에 와서/굽이치는 물이 되어 휘돌아보라//가슴부터 하얀 자갈밭에 와서/맨발의 바람 되어 머물러 보라”거나 “뼈가 있다면/그 뼈로 말하라//죽은 뒤 흔들리는 달빛. 물풀처럼 우리도 흔들린다. -중략- 푸른 마타리꽃 하나가 허리를 접고, 어디메 어디메 불려가는 곳. 오,/아름답다.” ('정선아라리 4,2')

 

어쩌면 시인도 간신히 땅과 시대에 그 자신을 붙들어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엔 핍박받는 것이 분명한데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존엄을 잃지 않으셨다. 그것은 얼마나 큰 울림이었던가.

 

그러다 야자가 끝나고 가끔 바바리맨이 숨어있던 골목을 지나 달이 휘영청 떠오른 남대천 다리를 건널 때면 “아아, 달빛에 가슴 썰리는/패랭이꽃 하나야.” ('정선아라리 1')를 읊으며 덩달아 패랭이꽃이 되고 했더랬다. 어릴 땐 자신이 가장 빛나는 존재이므로 세상의 중심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내가 서 있는 곳도 변방일 수 있겠구나, 어쩌면 세상의 참된 진리는 패랭이꽃이나 마타리꽃, 강가에 자갈 같은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시인의 1집 시집인 <바람이 접시에 닿고 있을 때>는 그렇게 나의 고3과 함께 했다. 세로 편집인 데다 활판 인쇄를 하던 시절이라 마치 점자처럼 뒷장에 활자의 흔적을 남기는데 다시 시집을 펴니 그 시절 뒷면의 오돌토돌한 글자를 더듬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어, 저랬어 하시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항상 “그건 무슨 뜻이냐?”, “이건 어떠냐?”하시는 것이 고아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레테의 강은 심연이 깊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 시절의 선생님보다 더 허연 머리가 되었어도 기억을 대체하는 징검다리들이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내 삶의 원천이 되어준 게로구나 싶다.

 

2집 <<그리운 풀들>>(1988)은 이미 대학생이 된 후에 나온 시집인데도 한편 한 편 마치 어제인 양 기억이 새롭다. 학과가 아닌 학보사에 파묻혀 허구한 날 밤샘 아니면 술과 세미나로 살면서도 시는 꽤 열심히 읽었었구나 싶어 내 머리를 쓰담쓰담 해줬다.

 

풀꽃 · 1

걸어서 갔지만 큰 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들레, 패랭이, 꽃다지만 작열했다.

숨죽이며 작은 손을 접어

인사를 했다.

공기 같았다.

 

시인의 <풀꽃> 연작시는 약한 생명에 대한 경외와 연민, 그리고 그리움이다. ‘각시풀만 홀로 있었다/아주 작은 상처의/영혼들만/홀로 있는 거’라며 상처받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물에 빠진 구름에도/눈이 아파’하며 ‘보고도 보이지 않는다고/꽃 하나도 제 자리에 못 두는 이 땅’의 절망을 ‘닿을 수 없는 나라/그리운 풀들’이라며 체념인 듯 기다림인 듯 무심하게 펼쳐 놓는다. 마치 쟁기질하느라 흙 묻은 손 성급히 바지에 닦아내고 칭얼대는 아기 토닥거리듯. 혁명가는 내일을 위한 오늘을 말하고 시인들은 정지된 시간 속으로 살며시 들어가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들일까.

 

여고에는 처음 부임하셔서 적응이 잘 안 된다시던 선생님은 꽤 오랫동안 눈 둘 데를 찾지 못하곤 하셨는데 그래서 더 시선이 먼 데를 향했는지도 몰랐다. 한 번은 왜 선생님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수업하느냐 여쭤본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내가 팔도 길고 손도 큰데 한 손에 책을 들고 한 손을 내리고 있으면 큰 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덜렁거리는데 그것이 멋쩍고 안쓰러워서 주머니에 넣는다고 대답하셨더랬다. 그때 시인들은 다 저런가? 하고 생각했던 것까지 떠오른다. 그 후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의 덜렁거리는 팔이 길긴 길었다.

 

‘망치에게 묻는다, 외로움에 관하여’ 연작시는 또 어떠한가.

 

“한 줌의/공기로 머문다. 세상에//주먹을 펴면/이름 모를 별들이/와 쌓인다./가슴빛 깨끗한/돌이 반짝인다.//한 줌의 공기로 아름답게,/아름다움이 아름다움처럼./세상에”라며 그리움과 외로움은 한 몸이며 결국 유리알 같은 순수함만이 빈 곳을 채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줌의 공기로 머무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충만한 것인지, 聖과 俗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부드러움만이 세상을 아니, 당신과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장난기를 감춘 무뚝한 얼굴로 넌지시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오월 저문 하늘가에/칼을 디민다./상처뿐인 감수성에/칼을 디민다.”면서 “갈매기 상처가, 내 상처보다 아름답다는//수평선 끝에 묻어있는/갈매기 눈썹이 아름답다”고 위로를 건네는구나.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을 시인학교로 돌아간 것이 틀림없을 김종삼 시인의 부고를 받은 후였을까, “절룩이는 마음들이 모여/날아가는 푸른 깃의/그대를/보았다 한다” (‘金宗三’) 했던 시인은 그토록 원하던 대로 "유년이 불쑥 해맑은 얼굴로/너른 강을 건너오고 있"('귀향')는 정선 아우라지 강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땅을 섬기고 사신다 한다. 그곳에서 “봄 파종은 대추나무에 앉은 참새가 안 보일 때까지는 해도 된다”는 기막힌 삶의 진리에 무릎을 치고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그리하여 부드러운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흙으로 돌아가 그 자신이 자연이 되고 풍경이 되어 종내는 詩가 되기를 소원하며 사시는 듯하다.

 

신승근 시인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 속으로 빠져들던 열아홉에게 어른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해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이후에 많은 책들이 나를 키웠지만 그 누구보다 삶을,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시다. 주어진 일상이기에 충실했던 국어시간과 두 권의 시집이 나의 뿌리가 되고 잎을 틔워올릴 수 있는 자양분이었음을 지금 문득 돌아보니 잘 알겠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시가 있어 감수성에 상처받지 않고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감히 아는 바 없이 내 멋대로 선생님의 시를 이리저리 끌고 다녀 송구하지만 詩의 소비가 아닌 詩와의 만남이 어떻게 거름으로 삶에 스며드는지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師父曲이니 널리 혜량하여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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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에 신승근 시인에게 국어를 배운

강미숙 님이 신승근 시인의 페북에 남긴 글입니다.

 

좋은 시를 쓰는 좋은 시인이 되었고,

좋은 제자이면서 좋은 독자를 둔

나의 좋은 벗 신승근 시인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y******3 2020.02.06.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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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근 시인의 생애에서 느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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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육신의 집이 흔들린다창문을 열고 오랫동안 들녘의 바람 맞았다.   생애가 빛나는 집들의방문에는 포도주 빛 나날들이오랫동안 담겨 있었으나   뿌리를 드러낸 채언덕배기에 걸렸던 집들은 모두철거되었다.   생애가 온통 허름했던 내게도 이제철거반들이 다녀가리라   그날이 언제일까. (15쪽 「생애」 전문)   신승근 시인의 시집『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의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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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육신의 집이 흔들린다

창문을 열고

오랫동안 들녘의 바람 맞았다.

 

생애가 빛나는 집들의

방문에는 포도주 빛 나날들이

오랫동안 담겨 있었으나

 

뿌리를 드러낸 채

언덕배기에 걸렸던 집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생애가 온통 허름했던

내게도 이제

철거반들이 다녀가리라

 

그날이 언제일까. (15생애전문)

 

신승근 시인의 시집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의 두 번째 작품인 생애이다. 아마 10년쯤 전에 이 시를 보았다면 나는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어오는데 그만큼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글을 보면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슬픈 시를 보고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기쁜 시를 보고 뭉클한 감정에 잠기기도 한다. 이 시도 내 흥대로 풀어보려고 한다.

 

내 육신의 집이 흔들린다 ?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제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더 많이 흔들릴 나이가 된 듯하다.

 

창문을 열고 / 오랫동안 들녘의 바람 맞았다 ? 방안에 있다고 세월이 비껴가고, 들판에 서 있다고 세월이 더 빨리 몰아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방안에도 선풍기는 있지 않나. 그러고 보니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더 많은 세월을 견뎠고, 돌이켜 보니 고생도 많았다.

 

생애가 빛나는 집들의 / 방문에는 ? 생애가 빛나는 집, 대통령이나 장군 정도 되는 사람을 생애가 빛나는 집이라고 했을까? 대통령 중에서 행복한 이는 거의 없었던 듯하니 그 빛은 광채는 아닌 듯하고, 장군 중에는 똥별도 많던데…….

 

포도주 빛 나날들이 / 오랫동안 담겨 있었으나 ? 포도주 빛 나날은 무엇일까? 오래된 포도주는 비싸다고 하던데, 생애가 빛나는 집 같은 인물이라면 로마네 꽁띠나 리쉬브르 같은 고급 와인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막걸리를 더 좋아하니 큰 의미는 없다.

 

뿌리를 드러낸 채 / 언덕배기에 걸렸던 집들 ? 언덕배기에 걸렸던 집이라면 막장인생 아닐까? 뿌리를 드러낸 채? 이제 살 만큼 살았고, 갈 때가 된 인생이 떠올랐다.

 

모두 철거되었다 ?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가 아닐까? 갑자기 먼저 떠난 친구들이 생각된다.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시골에서 걸어서 5분 이내에 살던 우리 반 친구가 다섯 명 있었다. 그중 세 명이 떠났고, 한 명은 소식을 모르며, 확실히 남은 친구는 한 명 정도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친구들은 생애가 빛나는 집이라기보다 나처럼 언덕배기에 걸렸던 집에 가까운 듯하다. 모두 떠난 것은 아니지만 떠난 이가 더 많으니 공연히 울적하다.

 

생애가 온통 허름했던 / 내게도 ? 내 생애가 허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다 하게 부귀공명을 누린 것 같지 않으니, 공연히 기분이 안 좋다. 같은 말이라도 허름이 뭔가, ‘겸손이라고 해주면 안 되나?

 

이제 / 철거반들이 다녀가리라 ? 인정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내 나이만큼 살지 못하셨다. 철거반이 온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그날이 언제일까 ? 인명은 재천이라니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만은 다짐하고 있다. 언제라도 나를 부르러 오는 사람이 있다면, 웃으면서 따라가리라. 지금까지 언덕배기에서 뿌리를 드러낸 채 허름하게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당당하고 싶다. 속으로는 두려울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웃으리라. , 그 사람은 내 마음까지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마음도 담담해질 때까지 좀 더 살아야 하나.

 

이 시집의 제목이 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저승에는 다섯 개의 강이 흐른다고 한다.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 시름의 강 코퀴토스(Cocytus), 불길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 망각의 강 레테(Lethe), 증오의 강 스틱스(Styx)라던가. 그곳에 어떤 강이 있던 꽃이 되어 건너고 싶다. 거기까지 갔는데 두려울 게 무엇인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나. 어느 강을 건너든 꽃이 되어 건너고 싶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예전에 리뷰를 쓴 바 있다. 그때 이렇게 쓴 기억이 난다.

 

중학생에게는 좀 어려울까? 고등학교 이상이라면 마치 소설을 읽듯 작품의 배경을 떠올리면서 시인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보다는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한 세대가 더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하니 고교생 이상에게도 좀 어려울지 모르겠다. 시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지금은 생각을 하지 않는 시대가 아닌가?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책인 듯하다.

y******3 2020.07.30.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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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근] 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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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품고 구입한 책이다. 저자인 신승근 시인은 학창시절 동문으로 그 시절에도 시를 썼다. 대학 4학년 때 신춘문예에 시인으로 당선되었으며 지금까지 여러 권의 시집을 냈고, 지역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는 시인으로 일가를 이뤘다.   내가 미안한 마음을 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의 시를 한 번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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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품고 구입한 책이다. 저자인 신승근 시인은 학창시절 동문으로 그 시절에도 시를 썼다. 대학 4학년 때 신춘문예에 시인으로 당선되었으며 지금까지 여러 권의 시집을 냈고, 지역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는 시인으로 일가를 이뤘다.

 

내가 미안한 마음을 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의 시를 한 번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와 어떤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를 모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는 시험공부와 관계없는 시는 거의 읽지 않았고, 교단에 나온 이후에는 교재연구를 위한 시 외에는 읽지 않았을 정도로 시에 대한 문외한이니 동문임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을 생각을 안 했던 것이다.

 

내가 시를 읽은 것은 취미생활로 시작한 리뷰어의 인연 때문이다. 소설과 수필을 주로 읽었지만 가끔은 시집도 펼쳤고, 어떤 감흥이 일 때면 리뷰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의 작품만 읽을 것이 아니라 지인들의 글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런 마음으로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성서 말씀이 떠올랐다. 루카 복음서던가. 예수님은 엘리야 때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의 과부와 엘리사 시대 시리아 장군 나아만의 예를 들면서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를 알고 있다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인 듯하다. 저 사람은 누구 아들이고, 누구의 형제라는 눈으로 보니 그의 신성이 보이지 않고, 예언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나의 동문들 중에는 시인이 서너 명이 있고, 그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아주 가깝게 지내는 벗도 있지만 나는 그들의 작품을 읽을 생각을 안 했다. 학창시절을 함께 한 것만 떠올랐지 그의 문학성은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펼치면서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렇게 깊은 생각과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글들을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예전에 이 작품들을 읽었다면 나는 그를 시인으로 보았을 것이다.

 

둘째, 첫 작품부터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첫 작품은 이제는 지는 꽃잎에도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제는 지는 꽃잎에도

눈길 머무네.

퍼지르듯 주저앉은 모란꽃이나

깨끗하게 순결하는 산목련,

어느 것인들 목숨 건 생이

아니었으리.

 

그림자도 지쳐 시드는 햇살 속으로

작렬하듯 살 뿌리는

꽃잎을 보네.

멸망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하기로 저

혼절하는 꽃잎에야

어이 견주리.

 

생에의 절정에서 폭발하는

영혼만큼 아름다운 것 또

어디 있으리. (이제는 지는 꽃잎에도전문)

 

무엇을 말하는지 느껴지는 듯했다. 모란이나 산목련뿐일까? 이름 없는 들꽃이나 풀들도 목숨 건 삶을 살았을 것이다.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지는 꽃잎의 혼절이 눈물겹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영혼의 아름다움에 공감했다. 모란이나 산목련을 우리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도 인다.

 

나와 차원이 다르다고 한 것은 내용에 공감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14~5, 24~5, 32~3! 나라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어느 것인들 목숨 건 생이~

혼절하는 꽃잎에야~

어디 있으리.

 

산문적으로 생각하면 나와 같이 쓰는 것이 정석이 아닐까? 그래야 문장이 순조롭게 이어질 것이다. ‘, , 를 앞 문장에 붙일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시인과 같은 생각은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듯해서 무릎을 쳤다.

 

셋째, 잘 쓴 시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시임을 느꼈다. 시인이 아닌 나는 잘 썼다, 못 썼다를 구별할 능력이 없다. 문득 중학시절 국어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분은 문예반을 지도하면서 어려운 글은 잘 쓴 글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글은 아니라면서, 좋은 글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보여준 작품이 황순원의 소나기와 이상의 날개였다. 중학생인 우리는 당연히 날개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나기야 우리 또래의 이야기니 알 수 있었고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두 작품 모두 뛰어난 한국문학이고 잘 쓴 글이다. 나는 그중에서 날개보다 소나기가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소나기의 세계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지만, 날개는 문학에 대해 상당한 능력이 있는 사람만 이해할 것이다. 날개는 잘 쓴 글인 것은 분명하지만 좋은 글은 아니라고 본다. 너희들은 지금은 잘 쓴 글보다는 좋은 글을 써라.”

 

국어선생님의 말씀이 문학적으로 옳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공감한다.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은 내 기준으로 볼 때 좋은 시였다. 작품을 읽으면서 대부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넷째, 시인의 작품세계를 잘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집에는 시인이 예전에 펴냈던 언젠가는 저 산에 문을 열고에서 45편을 뽑아서 1부로 하고, 그리운 풀들에서 21편과 다른 두 권의 시집에서 15편을 뽑아서 37편으로 2부로 했다. , 이 시집에는 시인이 지금까지 펴낸 4권의 시집에서 뽑은 82편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 시집의 성격은 신승근 시인 선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1부와 2부에서 느껴지는 색깔이 다른 듯도 하다. 그래도 공통점은 좋은 시라는 것이다. 나와 같이 시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 기준으로 좋은 글임이 분명할 것이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좋은 시들이다. 중학생에게는 좀 어려울까? 고등학교 이상이라면 마치 소설을 읽듯 작품의 배경을 떠올리면서 시인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보다는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한 세대가 더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덧붙임 : 나는 이 시집의 제목이 '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로 보았다. 표지를 보면 그렇게 읽히지 않는가? 나와 같은 생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y******3 2020.01.0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