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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으면 후회할 작품이긴 하나 이 씁쓰레함을...(여섯살)
"읽지 않으면 후회할 작품이긴 하나 이 씁쓰레함을...(여섯살)" 내용보기
왜 이 책 <여섯 살>이 읽고 싶었을까? 까맣게 침잠한 뒤표지에 <2006년 프랑스 페미나 상 수상작>이란 문구와, "탄탄하게 짜인 이 야심찬 소설은 네 세대를 다루고 있다. 탐정소설 같은 심리적 긴장과 탁월한 문학성을 갖춘 소설, 읽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추천평 때문이었다. 읽지않으면 후회한다는데 어찌 안읽을 수 있나. 전체적으로 상당히 신선한 플롯
"읽지 않으면 후회할 작품이긴 하나 이 씁쓰레함을...(여섯살)" 내용보기

왜 이 책 <여섯 살>이 읽고 싶었을까? 까맣게 침잠한 뒤표지에 <2006년 프랑스 페미나 상 수상작>이란 문구와, "탄탄하게 짜인 이 야심찬 소설은 네 세대를 다루고 있다. 탐정소설 같은 심리적 긴장과 탁월한 문학성을 갖춘 소설, 읽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추천평 때문이었다. 읽지않으면 후회한다는데 어찌 안읽을 수 있나. 전체적으로 상당히 신선한 플롯이다. 특이하게도 한집안 4세대의 이야기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여섯살 아이들의 시각으로 시대를 풀어내고 있는데 구성적으로 매우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하나 문제 또한 많은 작품으로 와닿는다. 얼른 말하기 힘든 이슈를 문학적 짜임과 호소력있는 감성으로 다루었기에 수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비뚤어진 성의식의 표현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이 든다. 일단 페미나상(Prix Femina)이 어떤 상인지 찾아본다. 1904년 여성 문인들이 주축이 돼 주로 여성 문제를 다룬 작품을 조명하기 위해 제정한 상이란다. 그 성향이 어떤지 대충 감이 온다.

 

첫 이야기는 2004년 여섯 살 '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을 관통하는 전쟁에 대한 기류와 오늘날 인터넷 문화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읽는 내내 구토가 인다. 이게 어떻게 여섯살 아이의 시각인가? 무슨 여섯살 짜리가 자위행위를 하고 난리야. 여기까지는 삼류 쓰레기같은 소설이건만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이 보여준 잔인한 학살과 차마 인간으로서는 못할 성적학대는 실제 팩트를 다룬다는 점에서, 또한 명색이 프랑스 4대 문학상 중의 하나인 페미나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쓰레기통으로 얼른 던져버리지 못하고 읽어나간다. 왜 쓰레기 같은지 한부분만 소개하면... 아니다, 차마 못적겠다. 불편하지만 저자의 의중을 알기위해 '솔'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외아들을 애지중지하는 엄마 덕분에 지나치게 오만하고, 인터넷을 통해 너무나 손쉽게 접하는 폭력과 성에 집착하며, 어른들의 세계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무시하는가 하면, 엄마의 사랑을 이용할 줄도 아는 영악한 아이(출판사 리뷰에서...)"이다. 오늘날 미국의 문제가 뭔지 대충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솔'의 아버지 '랜돌'이 여섯살 되는 1982년이 두 번째 이야기로, 주된 이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다. 샤브라와 샤틸라 학살은 첫사랑 팔레스타인 소녀와의 이별을 가져왔고,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던 엄마와 아버지의 불화를 지켜본 랜돌의 트라우마는 그가 방위산업체에서 만들어내는 전투용 로봇에 그대로 투영된다(이 이야기는 '솔'의 이야기편에 나온다). 이 로봇무기에 대해 설명을 들은 외할머니 크리스티나는 그 로봇이 바로 완벽한 나치당원의 묘사와 똑같다며 '그만둬!'라고 소리치는데, 바로 여기서 저자의 전쟁과 인간성에 대한 메시지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세 번째 이야기는 1962년 랜돌의 엄마 '세이디'의 여섯살때 이야기이다. 세이디의 엄마 크리스티나는 유명한 가수인지라 딸을 돌보지 못한다. 유년을 엄마의 부재와 외가의 냉정함 속에 불우하게 보낸 세이디는 엄마의 연인인 피터로 인해 잠시 밝은 뉴욕생활을 하지만, 어느날 나타난 엄마의 어릴적 인연 '야넥'의 등장으로 엄마가 '독일인'이었다는 사실(음... 주요한 장치이므로 그냥 넘어가자)에 혼란과 강박의 트라우마에 빠져버린다. 그의 마음 속의 악마가 말한다. "이제 네가 왜 사악한지 알겠지, 너는 태어날 때부터 거짓된 삶을 살아온 거야(269쪽)". 수많은 복선과 암시로 모든 것은 크리스티나에게 클라이막스의 무대를 넘기고 있다.

 

1944년 크리스티나의 여섯살. 모든 슬픔의 출발은 독일의 아리안민족의 우월성과 생물학적 순수성 유지 정책이 배경에 깔려있다. 크리스티나의 이야기까지 풀어버리면 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하다. 이 네 번째 이야기는 읽을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다만 G.G. = 에라 = 클라리사 = 크리스티나로 불리우게 되느니 만큼의 고난한 인생역정이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이게 한다.

 

근현대사 아이의 눈으로 읽은 세계사적 아픔과,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크리스티나 집안의 유전적 공통인자들이 짙은 여운으로 남는 작품이다. 특이하게도 네 주인공은 모두 몸 어딘가에 반점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팔 안쪽의 둥근 반점에서 나온다고 믿었으나, 그의 딸 새비아는 왼쪽 엉덩이에 있어 거기에 악마가 깃들어 자신을 추하고 더러운 존재라 여긴다. 새비아의 아들 랜돌은 어깨에 반점이 있는데 마음이 넉넉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친구로 생각하나, 그의 아들 '솔'은 관자놀이에 반점이 생겨 '옥의 티'로 여겨 수술하지만 수술실패로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만다. '반점'이란 외면할 수 없는 인연의 '카르마, 業'를 통해 각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하는 정과 반의 장치가 이 소설의 가치매김에 방점(傍點)이 된다. 이와 함께 '혀 내밀고 코만지기'등 가족간 공유의 공통요소가 만들어내는 기억의 장치 또한 절묘하게 배치되어 캐릭터간 연기적 독존(緣起的 獨尊)_獨存이 아니고 獨尊이다_의 이미지를 거부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이 책이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주제와 얼개가 정말 탄탄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각 시대를 직접적이고 단순한 아이의 눈과 목소리로 두려움과 강박 관념을 풀어나가는 플롯이 아름답기까지 하며, 시대를 거슬러오름으로써 크리스티나의 삶에 '독일'이라는 비밀코드가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 점층적으로 궁금하게 하는 기법이 너무나 괜찮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낯선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성의식을 작품에 꼭 적나라하게 삽입하여야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물론 우리의 성적 관념과 서구의 섹슈얼리티가 다르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를 아무리 감안 하더라도 여섯살의 눈에 zoophila나 oral의 표현을 담는다는 것은 나에겐 너무나 과한 역겨움이다. 물론 크게보면 전쟁이 야기한 황폐화된 인간성과 인터넷의 역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고, 작게보면 캐릭터들의 심적 동인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요소이며 장치가 되겠지만 씁쓰레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만 아니면 정말 괜찮은 읽을꺼리인데... 수상작으로 정말 어울리기는 하나 이 찝찝한 마음을 어이하지 못하여 그만 별 하나를 빼버리고 만다. 아마도 나는, 문학도는 천성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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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 낸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 낸" 내용보기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성인이 된 후에야 가능하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존재와 가족에 대해 불만과 의문을 가진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형제나 부모에 대한 원망 같은 것 말이다.  때문에 새로운 가족을 선택하는 과정인 결혼에 대해 신중을 기하는 것이리라. 절대 그들과 같은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아이의 모습에서 부모나 형제를 발견하게 될 때 스스로 놀라곤 한다.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 낸" 내용보기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성인이 된 후에야 가능하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존재와 가족에 대해 불만과 의문을 가진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형제나 부모에 대한 원망 같은 것 말이다.  때문에 새로운 가족을 선택하는 과정인 결혼에 대해 신중을 기하는 것이리라. 절대 그들과 같은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아이의 모습에서 부모나 형제를 발견하게 될 때 스스로 놀라곤 한다. 외형적인 부분이 아니라 성격이나 사고까지 닮은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여섯 살』에도 이처럼 놀라운 대물림이 있는데 그건 바로 반점이다. 

 

 소설은 2004년 현재 여섯 살인 소년 솔을 시작으로 네 명의 여섯 살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솔과 솔의 아빠인 랜돌, 랜돌의 엄마 세이디, 세이디의 엄마인 크리스티나의 여섯 살 시절을 들려준다.  

 

 첫 번째 내레이션의 주인공인 솔은 캘리포니아에 살며 가정적인 엄마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아빠를 둔 매우 영특한 아이다. 솔에게 유일한 결점은 왼쪽 관자놀이에 있는 반점이다. 솔은 이 반점을 제거하므로 완벽해지려고 한다. 그 반점은 솔의 아빠인 랜돌, 할머니 세이디, 아빠의 외할머니인 크리스티나도 있는 유전적 특징이다.   

 

 솔의 이야기를 거슬러 1982년 랜돌의 여섯 살로 이어진다. 뉴욕의 랜돌에겐 자기 중심적인 엄마 세이디가 있고 그런 엄마를 대신 해 자상한 유대인 아빠가 있다. 엄마에게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랜돌의 여섯 살은 우울하고 슬프다. 랜돌의 가족은 엄마의 연구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이파에서 1년을 보낸다. 랜돌은 새로운 언어를 익히고 그곳에서 누자라는 소녀를 만난다. 누자를 통해 랜돌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알게 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누자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게 슬플 뿐이다.  

 

 이제 1962년의 세이디 이야기다. 여섯 살 세이디는 캐나다에 살고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가수인 크리스티나가 어린 나이에 세이디를 낳았기 때문이다. 어리광을 부릴 대상도 없고 그리운 엄마는 항상 바빠서 자신을 보러 올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런데다 왼쪽 엉덩이에 있는 반점 때문에 자신이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엄격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섯 살 소녀가 아닌 이미 철이 다 들어버린 아이다. 엄마 곁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지만 함께 살기를 원한다. 엄마가 결혼을 하고 뉴욕으로 오면서 세이디는 드디어 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친 아빠는 아니지만 세이디는 피터가 맘에 든다. 그러나 행복은 루트라는 엄마가 이름을 에라고 바꾸고 루트라는 사람이 찾아오면서 불행으로 변해버린다. 루트와 에라는 어떤 사이일까.  

 

 에라가 크리스티나였던 시절, 크리스티나의 여섯 살인 1944년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리스티나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다. 호기심이 많고 영민한 아이다. 전쟁에 참전한 아빠가 있고 자상한 조부모와 우아한 엄마가 있고 언니와 오빠 있다. 모든 게 완벽하다. 왼쪽 팔에 있는 반점까지 말이다. 군대에 간 오빠 죽고 요한이라는 남자 아이가 입양되면서 크리스티나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요한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언젠가 그레타가 했던 입양아라는 말을 떠올린다. 요한은 자신의 이름이 야넥이며 폴란드인으로 독일군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말한다. 크리스티나는 혼란스럽지만 야넥의 말을 믿고 그를 따른다. 독일이 패망하고 야넥과 크리스티나는 자신들의 부모를 찾아 그 집을 떠나게 된다.  

 

 “나는 너와 같이 있을 거야ㅡ여기서. 그리고 이제부터 내 진짜 이름은 루트가 될 거야. 우리 아버지가 슈체친에서 현악기 가게를 하셨거든. 우리가 어느 나라 말을 하게 되든, 이 악기 이름은 내 이름이 될 거야. 네가 이 반점을 만지거나 생각만 해도, 나는 루트의 현처럼 네 안에서 네 노래의 반주를 할 거야. 루트, 루트, 루트. 발음을 해 봐.”

 “루트. 루트, 루트.” 내가 속삭인다.

 “자 이제 네 이름을 골라.”

 그러자 갑자기 한 이름이 떠오른다. “에라.”

 “에라. 에라. 그래, 좋아. 나는 에라를 포즈난으로 데려가고, 너는 루트를 토론토로 데려가는 거야. 됐지? 에라와 루트.”

 “루트와 에라.”

 “그리고 나중에…… 내가 너한테 갈게. 우리가 어른이 된 다음에. 가능한 한 빨리. 네 노래로 너를 찾을 거야.” p. 354  

 

 크리스티나가 평범한 독일인이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에라라는 이름을 간직하지 않았다면, 반점을 없애버렸다면 말이다. 아니, 그 시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여섯 살 소녀는 어떻 아이로 자랐을까.  

 

 소설은 세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점점 더 빠져드는 매혹적인 소설이다. 6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각기 다른 여섯 살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 슬픔과 상처를 만든 건 결국 그 시대의 어른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시작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과 이라크 전쟁, 2004년 현재 핵이 존재하는 모습까지 말이다. 여섯 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분쟁과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졌지만 유려한 문장으로 담아낸 아름답고 매력적인 소설이다.

r*********s 2011.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섯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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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 머리부터 풍기는 인상은 여섯살 천재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인가? 였다. 하지만 나의 이 생각도 책 48페이지부터 조금씩 틀렸다는 것이 서서히 증명된다. <여섯 살>이라는 책은 4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단순히 4대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하나의 주제가 관통하고 있는 큰 수맥이 있다. 우선 각 챕터의 주인공들은 혈연관계에 있다. 모두 그의 자식이거나 손자거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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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 머리부터 풍기는 인상은 여섯살 천재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인가? 였다.

하지만 나의 이 생각도 책 48페이지부터 조금씩 틀렸다는 것이 서서히 증명된다.

<여섯 살>이라는 책은 4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단순히 4대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하나의 주제가 관통하고 있는 큰 수맥이 있다. 우선 각 챕터의 주인공들은 혈연관계에 있다. 모두 그의 자식이거나 손자거나 딸이거나 아들이거나. 모든 시점에서 주인공들은 여섯 살이다.

 

여섯 살. 지금 내 큰 조카가 한국 나이로 여섯 살이다. 지금 이 책에서 말하는 여섯 살은 우리가 예전부터 흔히 말해왔던 '미운 일곱살'에 해당할 것이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나이로 설정되어 있으니말이다. 한창 세상 물정 모른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부모 모르는 곳에서 세상을 터득한 솔. 그가 가진 성에 대한 욕망과 하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은 그가 자신이 천재이며, 하느님이라는 존재와 같다고 생각하는 우월감에 빠지게 해 준다.

여섯 살이 대체 뭘 알까? 나도 분명 여섯 살이라는 나이를 지나온 사람이지만 그 당시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보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다섯 살때에 '나는 다섯살이다. 나는 다섯살에 이사를 온 집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사온 이 집은 내가 다섯살때 온 집이다.'라고 스스로 기억해 둔 것은 아직도 확실히 생각난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그것이 여섯 살에 일어난 일인지 초등학생이 되고서 일어난 일인지 제대로 기억을 잘 못하는 것들 투성이다.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섯 살의 설정으로 시점이 통일 되어 있다. 여섯 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는 그 윗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록 암울해지고 어두운 과거, 그리고 나치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이 나오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인구수가 줄어든 독일의 무성의한 정책에 희생된 16만명의 어린이 중 하나인 크리스티나. 그녀가 겪었던 좋았던 추억, 두려운 순간들이 여섯 살의 눈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딸이 가진 불안한 감정도 여섯 살의 감정으로 나타나며, 솔의 아버지인 랜돌 역시 여섯 살때 아버지가 해주는 식사를 먹고 자라는 아이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 네 명에게 공통적으로 나오는 상징이 있다. 바로 반점이다. 제각각 다른 신체 부위에 있고 그것이 행운의 상징이 되기도 불길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또한 서로가 다들 유명해지거나 성공하는 케이스로 자라나게 되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4세대에 걸쳐 모두가 성공하고 유명해지기는 힘든일이지 않은가.

독특한 구성에 서로가 얽히고 설키는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며 읽은 소설 <여섯 살>은 내용의 흡입력이 꽤 높은 소설이었다. 글을 쓴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걸 느꼈던 것은 앉은 자리에서 책을 펴고 그냥 정신없이 책을 나도 모르게 읽어 나갔던 것에서 나타났다. 조금도 지루한 부분이 없었으며, 내가 지금 여섯 살짜리 꼬마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동등한 시선에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작가의 설정은 성공했다고 보고싶다.

나치의 잔인함과 비인간적인 면을 폭로하는 영화나 소설은 정말 많다. 이것도 그 중의 하나인데, 그 많은 것들을 접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전혀 지겹지 않다는 점이다. 통렬하고, 점점 더 나치의 잔혹함을 알아가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그들의 삶을 알게 되었다. 전쟁이 가져오는 참혹함과 그 영향력은 지금 내가 숨쉬고 있는 2011년에도 있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내전과 교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다. 미국이 그토록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려고 목매었던 것 처럼 말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어린이들도 성선설이 아닌 성악설로 보는 것이 마땅한 세상이다. 그런 시니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 <여섯 살>은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괜찮은 소설이었다고 추천해 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b*********1 2011.1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