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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케이블 그리고 SNS 등을 통한 언론활동이 급증함에 따라 언론 등 미디어의 책임과 윤리의식이 다시 재조명 및 강화되고 있고 김영란법의 언론인 포함 때문에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최근에 정권에 좌우되는 모습을 보인 방송사의 블랙리스트 와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에게 전달된 언론사의 임직원들의 청탁과 보도방향을 보고하는 문자들이 공개되어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언론과 미디어에 과연 윤리는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 책은 20여 년 전인 1997년에 미국에서 쓰여진 미디어 윤리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법에 대한 책이지만 미디어 윤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고민조차 없어 보이는 한국 언론들의 심각한 비윤리적인 일단의 행태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이자 철학적 분석으로서 의미가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이 책은 미디어 윤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윤리란 사전적으로 철학적 전통에서는 좋음, 옳음, 쾌락 등 이상적 가치나 규범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당위이고, 국내에서는 언론윤리강령과 실천요강으로 언론인들이 지켜야 할 윤리 기준을 정해 놓았습니다. 특히 이 책은 저널리즘과 도덕적 순수함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제4부로 기능하는 언론의 역할과 규제적 이상으로서의 저널리즘의 객관성과 공평성과 사생활과 성과 섹슈얼리티 묘사 그리고 폭력물과 관련된 미디어 윤리에 관해서 사례를 들어 논하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케이블방송의 우후죽순처럼 증가하는 상황 등 언론의 변환시점에 윤리에 대한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을 검토한다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큰 의미가 있겠습니다. 철학적 분석이다 보니 읽기에 쉽지 않은 내용도 있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언론 상황과 결부시켜 읽어 보니 더욱 실감나고 유용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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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윤리_철학적 접근] / 매튜 키이란 지음 / 김유란 옮김 / 도서출판 씨아이알 펴냄 미디어의 윤리를 철학적으로 접근함에 있어 이 책이 논하고자 하는 바를 서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변증술을 이용하여 제시된 사안과 논쟁을 파헤쳐 보았으며 독자 스스로 논쟁이나 결론을 학습하는 것이 아닌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참여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미디어는 정보의 발달과 함께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은 광범위하다. 논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개인의 사고와 윤리적인 면 외에도 미디어의 입김도 작용한다. 철학적 접근을 통해 미디어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디어는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만큼 규범과 책임의 무게를 지닌다. 대중의 알 권리를 위시한 미디어 관행으로 행동 양식에서 벗어난 정보가 제공하는 '사생활 침해'의 심각성을 경시할 수 없다. 저널리스트가 제공하는 정보의 도덕성을 규정짓는 것이 단지 미디어와 저널리스트의 윤리만을 요구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인 논란도 이슈화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 버린 지금, 논란의 정당성을 규정함에 있어 제공자와 습득자 모두 보이는 것과 숨겨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저널리즘과 관련된 윤리적 요구가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 반드시 이들과 구분되는 철학적 고찰을 끌어들어야 한다. ..... 이론적 고찰의 측면에서 철학은 우리의 실제 경험과 행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따져 묻는 것을 적절하게 포함하고 있다.' (p.6 본문 발췌) 몇몇 기사를 통해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보도를 예로 들어 미디어와 기자의 비윤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저널리즘과 미디어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의 중요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을 추구하면서 윤리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해야만 한다.' (p.35 본문 발췌) 대중적 관심과 인간적 이해를 충족할 수 있는 보도의 중요성을 철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 무엇을 보도하느냐에 따라 뉴스의 효과를 분류하는 사회학적 정의와 제4부(3부-입법, 행정, 사법)로서의 전통적인 언론의 개념을 소개한다. 뉴스에서 파헤치고 보도하는 사건들이 3부의 역할을 보좌하거나 미디어의 보도로 인해 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4부로서의 순기능을 벗어난 오류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철학적인 면으로 접근한 '미디어 윤리'라는 주제가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으나 실제 사건과 보도된 기사를 통해 설명하고 있어 미디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다만,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정보 전달자로서 정보 수집에 있어 가져야 할 공평성, 정보 전달의 가치중립을 통해 진실된 보도가 주를 이룬 좋은 뉴스가 갖는 규범적 의의를 생각해본다. 뉴스 미디어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뉴스 정보원과 기자, 저널리스트와 편집자의 신뢰를 통해 '사실'에 입각한 뉴스가 대중에게 알려진다. 그러나 윤리적인 면을 벗어나 미디어를 통해 악의가 선의로, 때론 선의가 악의로 뒤바꿈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정보를 습득함에 있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을 향해 대중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요즘은 걸러지지 않은 채 양상 되는 '가짜 뉴스'를 식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악의적인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풀려지고 허위로 알려진 기사 하나로 연관성이 없어도 피해를 볼 수 있다. 뉴스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기사 짜깁기로 내밀기에 바쁜 인터넷 뉴스의 경우는 그 폐해가 더 크다. 정보를 습득함에 있어 '사실' 관계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비판적인 논리로 정보를 골라내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의 윤리적 규범과 대중의 비판적 시선 속에서 '진실'된 미디어의 기능이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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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반댓말은 무엇일까? 소설가? 작가? 아니다. 좋은 저널리즘은 과학보다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훌륭한 기자와 훌륭한 소설가는 그리 다르지 않다. 예컨대 저명한 소설가 조지 오웰과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재능 넘치는 저널리스트 출신이었다. 기자는 객관적인 보도로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사건의 진상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의무가 있다. 소설가 역시 시대적 문제의식을 허구적인 이야기로 풀어낼 뿐 글쟁이로서의 사명감은 기자와 그리 다를 바 없다. 그럼, 기자의 반댓말은 과연 무엇일까? 기자의 반댓말은 바로 '조작자'다. 즉 미디어 윤리를 망각한 거짓말쟁이, 저널리스트의 진정한 책임을 망각하고 언론을 조작하는 속물 방송인이 바로 기자의 진정한 적이다. 언론인은 기업, 정치인, 조직범죄, 유명인사들의 부정부패 사건을 파헤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도 뇌물수수, 사기, 선정성, 위조와 조작, 과도한 범죄보도 등의 반윤리적인 행동을 범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만약 기자나 저널리스트라면, 오늘날 미디어 관행과 뉴스 생산의 어떤 측면에 보다 관심을 쏟을까.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놀라운 변증술은 미디어 윤리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될까. 혹자는 철학이 우리 실생활에 도움이 되었던 적이 있나, 하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 특히 윤리학은 거시적으로는 미디어 산업의 본질을 파악하고, 미시적으로는 기자가 현장 실무에서 맞닥뜨리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도덕적으로 말하자면 저널리스트들이 해야만 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공적인 유명 인사의 성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싣는 것이 정말로 뉴스인가? 그들이 이야기를 얻기 위해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은 정당한가? 공익의 이름으로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언제나 정당화되는가? 성적으로 노골적인 영화를 TV에서 상영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미심쩍은 것인가? 우리는 불필요한 폭력을 남용하는 영화를 걱정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검열을 정당화하는 데 정말 타당한 근거가 있는가?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가?" 언론과 방송의 신뢰도가 문제시 되고 있는 요즘이다. 영국의 철학자 매튜 키이란의 『미디어 윤리』(씨아이알, 2018)는 미디어 산업과 미디어 종사자들의 윤리적 쟁점을 철학적으로 접근한 고전이다. 그동안 사회학적 접근법과 정치경제학적 접근법이 미디어 비판과 방송 윤리 연구의 대세였다면, 매튜 키이란의 이 책을 시발점으로 삼아 철학적으로 접근한 뉴스 미디어 연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책이 번역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번역이 너무 아마추어 수준이라서 좋은 평을 내리기는 힘들다. 재번역은 피할 수 없고, 전문가의 감수가 요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