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경우 다양한 지역의 언어가 조금씩 다르다는 이유로, 공용어로 사용하기 위한 규범으로 ‘표준어 사정(査定) 원칙’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더욱이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그 원칙의 제1항이다. 각 지역어로서 방언(方言)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이 책에서는 표준어를 ‘19세기의 제국주의 또는 국가주의 시대의 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을 포함하여 서양의 제국주의 국가에서 표준어가 “국민의 의사 전달 수단을 통일하여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국에 대한 침탈을 도모하기 위해 제안”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가 종식되면서 이들 나라에서는 효력이 다한 표준어 개념을 폐기 혹은 유보”하였지만, 오히려 “광복 이후에 우리는 산업화를 위해 그러한 표준어를 정책적으로 수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표준어 정책이 지니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언어의 사용은 언중(言衆)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방언(方言)’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말’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것”이기에, 저자는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표준어든 사투리든 자신이 원하는 말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흔히 ‘방언’은 특정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로서, 사투리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사투리’는 표준어와 대립되는 용어이며, ‘방언’은 표준어와 사투리를 포함해서 특정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
학교와 방송 등에서 표준어 사용이 강요되던 시기에, 흔히 사투리는 사용하지 말아야 할 말로 잘못 인식되어 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표준어의 사용이 강조되면서, 한동안 방송매체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각 지역의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방언에 대한 인식과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근대 전환기를 거쳐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조선총독부에 의해 ‘표준어가 대두’되었던 역사적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말 사용이 엄격하게 제한되었던 일제 강점기에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던 연구자들이 ‘우리말을 바로 쓰는 데 없어서는 안될 책’으로서 <표준말 모음>을 발간하였던 사실도 소개하고 있다. 비교적 글을 읽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비율(문맹률)이 높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한글의 보급과 함께 각 지역어(방언)을 수집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처럼 조선시대의 문헌에서 '방언'이 사용되었던 흔적에서부터 일제 강점기 표준어가 강요되던 현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나아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된 표준어 정책과 그로 인해 대중매체에서까지 천덕꾸러기 취급 내지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사투리에 관한 시각들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언중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정책적 필요에 의해 없앴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방언이란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보편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방송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도 사투리는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제는 사투리로 인해 더 각광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대이기에, 오히려 사투리를 보존하고 그 용법을 기록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전국 각지에 사투리 경연대회를 열어서 그것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방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사투리는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될 수 없기에, 저자의 말처럼 '방언의 소멸 속도 늦추기'는 우리의 현실에 매우 시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방언의 사용이 늘고 있는 이러한 추세에 주목하여, ‘방언의 희망’이라는 마지막 항목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방언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일은 단지 학문적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어생활에서도 지속되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 ( https://cafe.daum.net/Allwithbooks )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사투리가 곧 고향이며 과거 삶에 대한 생생한 추억을 기억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사투리를 쓰며 서울생활을 하다보면 의례 위축되는 경험을 하게되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서울말이 표준어라는 지나친 의식이 사투리 사용자들에게는 촌사람, 지방사람이라는 무시와 천대로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직까지도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의식이라 더욱 그러한듯 하다. 저자는 방언의 발견이라는 이 책을 통하여 지방사투리인 방언의 중요성과 보호의 필요성등을 역사적 관점과 자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해주고 있다. 사투리가 왜 멸시받고 천대를 받아왔는지와 이러한 사투리를 왜 보존하고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하여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말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 받는 것이기에 그것을 틀렸다라고 하며 쓰지못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표준어든 사투리든 자신이 원하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즉 방언 사용권이 존중되는 사회가 지금이라도 만들어져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시대의 방언과 근대의 계몽운동과 방언, 근대화의 희생양이 되어온 사투리, TV나 라디오, 영화등에 등장하여 대중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게된 사투리등을 잘 소개해 주고 있다. 지방사투리는 그 지역의 지형이나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탄생되어진 그 지역의 유일한 말이기에 표준어와 함께 더불어 차별없이 사용되어져야 하는 언어임을 느끼게 되었다. 요즘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왔던 표준어도 그 위엄이 많이 퇴색되고 변질되어가고 있는 시대다. 새로운 신조어들도 세대간의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는 이러한 시대에 구세대, 신세대의 언어를 배워가며 서로 교통하듯 지방사투리 역시 무시되거나 천대받는 일 없이 잘 섞여 우리들의 언어소통에 커다란 유익을 줄 수 있어야함을 느끼게 된다. 언어도 지역도 차별없이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을수 있는 그러한 꿈을 품게 해주는 책이었다. |
|
책읽기 삶읽기 348 제국주의·독재가 빼앗은 말 ‘사투리’ ― 방언의 발견 정승철 창비, 2018.3.30. 전남 고흥이란 고장에서 살며 이웃을 만나면 ‘고흥말’을 듣기 몹시 어렵습니다. 고흥 이웃님은 ‘고흥에서 나고 자란 사람’ 곁이 아니라면 고흥말을 좀처럼 안 씁니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나 할아버지쯤 되면 고흥 텃사람 곁이 아니어도 더러 고흥말을 쓰지만, 이분들도 되도록 고흥말 아닌 서울말을 쓰려고 애씁니다. 광주나 대구나 부산 같은 고장에 마실을 가도 그곳에서 마주하는 분들 입에서 광주말이나 대구말이나 부산말은 좀처럼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광주에서도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그 고장 텃사람 곁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서울말을 쓰려고 하지요. ‘표준어’는 19세기의 제국주의 또는 국가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그것은 서양 제국주의 국가(일본 포함)에서 국민의 의사 전달 수단을 통일하여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국에 대한 침탈을 도모하기 위해 제안되었다. 그러기에 종전 후 제국주의가 종식되면서 이들 나라에서는 효력이 다한 표준어 개념을 폐기 또는 유보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보면 광복 이후에 우리는 산업화를 위해 그러한 표준어를 정책적으로 수용한 것이 된다. (6쪽) 《방언의 발견》(정승철, 창비, 2018)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사투리를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표준말 정책을 왜 세웠’는가를 짚으면서, 한국하고 일본을 뺀 모든 나라는 제국주의·식민지 다툼이 저문 뒤로는 나라에서 표준말 정책을 걷어냈다고 밝힙니다. 일본조차도 나중에는 표준말 정책을 모두 걷어냈다지요. 한국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등쌀에 밀려 서울말을 표준으로 삼아 윽박지르는 물결이 처음 일었다고 합니다. 해방 뒤 군사독재가 선 뒤로는 낡은 제국주의마냥 사투리를 깔보고 서울말을 높이는 교육 정책까지 섰다고 해요. 일제강점기에 표준어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사투리(나아가 지방문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사회 표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학교교육 현장에서조차 사투리를 ‘틀린 것’이거나 심지어 ‘야만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견이 툭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67쪽) 그러한 가운데 전국의 지방 사투리는 전근대적이며 국가 분열을 조장하는 말, 나아가 국어를 오염시키는 바르지 않은 말로 여겨졌고, 결국 표준어로 고쳐져야 하는 말이 되었다.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편파적 경쟁 선상에서 우세한 표준어를 마주해 열세의 사투리가 서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1990년대 중반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44쪽) 제가 하는 일이 한국말사전 짓기이다 보니, 여러 고장으로 이야기를 펴려고 마실을 곧잘 다니는데, 이때에 으레 그 고장에서든 그곳 교사하고 어른하고 푸름이한테 “왜 제 앞에서는 사투리를 안 쓰시나요? 저는 사투리를 듣고 싶어요.” 하고 여쭙니다. 이때마다 저한테 “어릴 적부터 사투리를 쓰면 촌스럽고 나쁘다는 꾸중을 들어서, 서울말 쓰는 사람하고 있을 적에는 사투리가 저절로 안 나와요” 하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이분들이 저한테는 서울말을 쓰셔도 이분 옆에 있는 텃사람한테는 사투리를 써요. 한창 서울말로 얘기를 하시다가도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사투리로 바꿉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에서는 부산이나 대구에 사는 분들조차 부산말하고 대구말을 서울말 밑에 두는 셈입니다. 이렇게 큰 도시에 사는 분마저 서울말을 높이 여기고, 서울말을 안 쓰면 ‘시골스럽다는 놀림을 받고 꾸중을 듣는다’고 여기니, 대구 곁에 있는 구미나 청도라든지, 광주 곁에 있는 화순이나 보성이라면 사투리 말씨 때문에 얼마나 놀림을 받았을까 어림해 볼 만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전남 고흥에 살며 가만히 지켜보면, 고흥말은 고흥 곁에 있는 큰도시 순천에 밀려 ‘시골말 놀림’을 받습니다. 고흥군에서는 면소재지 사투리가 읍내 사투리에 밀려 ‘시골말 놀림’을 받아요. 다시 작은 마을(행정구역 ‘리’인 곳)은 면소재지 사투리에 밀려 ‘시골말 놀림’을 받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서울말은 다른 큰도시를 내리누리고, 여러 큰도시는 군을 내리누르며, 군에서 읍은 면을 내리누르는데, 면조차 작은 마을을 내리누르는 얼개입니다. 현대의 선진국 중에 헌법에 공용어를 아예 명시하지 않은 나라는 영국과 미국뿐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언어정책을 전담하는 국가 공식 기관도 물론 없다. 언어 규범화는 권위가 인정된 문법서나 사전 등의 출판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183쪽) 한국사람들은 오랫동안 격식적 상황, 즉 공식적 자리에서는 표준어를 쓰도록 교육받아 왔다. 사투리 화자들에게 격식어로서 표준어를 강요해 온 것이다. 그런데 방송에서 사투리라니! 특히 뉴스 및 시사평론과 같은 보도 프로그램에서 일상적 사투리란 더욱더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212쪽) 《방언의 발견》은 옛 신문·잡지, 방송·영화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사투리가 얼마나 놀림이나 따돌림을 받았는가를 차분히 짚습니다. 이러면서 오늘날 사투리를 잘 살려서 쓴 방송이나 영화나 책을 몇 가지 보기를 들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사투리를 잘 살려서 쓰는 책·잡지’ 가운데 하나를 빠뜨렸습니다. 열 몇 해째 사투리로 잡지를 엮는 《전라도닷컴》이 있습니다. 2000년에는 웹진으로 처음 나왔고, 2002년 3월부터 종이책으로 나온 잡지입니다. 저는 《전라도닷컴》을 다달이 받아보면서 전라말을 눈하고 입에 익혀 보려고 아장걸음을 걷습니다. 한국에서 고장말로 책이나 잡지를 엮는 일이 매우 드물 뿐 아니라, 고장말을 썼다가는 책이나 잡지가 안 팔린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인데, 《전라도닷컴》은 2002년부터 씩씩하게 ‘사투리 잡지’ 한길을 걸어요. 여러 고장에서는 이 잡지를 지켜보면서 ‘경상말 잡지’, ‘제주말 잡지’, ‘충청말 잡지’, ‘강원말 잡지’를 내자는 기운을 얻는다고 합니다. 나라나 지자체에서 안 하거나 못 하는 일을 작은 고장에서 작지만 야무진 걸음으로 일구는 만큼, 앞으로 《방언의 발견》이 2쇄를 찍는다면, 이처럼 사투리를 알뜰하며 곱게 밝히는 발자국을 더 찬찬히 살펴서 담아 주기를 바랍니다. 2018.5.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