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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비밀은 해마와 대뇌피질 사이의 강화에 있다. 우리가 원하는 기억은 주로 수리적, 언어적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단기기억과 상관이 있는 해마와 장기기억과 관련 있는 대뇌피질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 30분 정도만 기억할 수 있는 해마에 저장된 지식을 대뇌피질로 보내기 위해서 1시간 정도 이후에 복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뇌피질에 있는 기억을 다시 해마로 끄집어내어 사용하고 다시 대뇌피질로 보내는 과정을 되풀이하는데 이런 과정을 강화라고 부른다. 보통은 3회 정도 반복하면 이런 기억은 대뇌피질에 안전하게 보존된다. 보통 우리는 이런 지식을 안다고 말한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 보여주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옳은 방법일까? 만약 위의 내용이 완전히 옳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하루에 4시간 이상씩 보내는 것은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 즉 학교에서 배우고 그 배운 지식을 학원에서 복습하며 방학 중에는 학교에서 배울 것을 미리 선행학습한다면 이것보다 좋은 시스템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위의 방법은 전혀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공부방법이 아이들에게 효과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기억에 대한 상식은 해마-대뇌피질 관계 정도지만 우리의 뇌는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만약 어디선가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보고서 그 그래프로 스스로 공부하거나 아이를 공부시키고 있다면 정말 위험한 일이다. 기억의 메커니즘은 해마, 대뇌피질, 변연계, 편도체, 전두엽, 측두엽이 모두 관계하고 있다.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는 변연계와 상관이 있다. 변연계는 감정두뇌인데 만약 공부하는 사람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되면 변연계가 활성화되지 않아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공부가 재미없어지고 도파민이 활성화되지 않게 되는데 해마-대뇌피질의 강화에 가장 핵심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도파민이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공부는 강화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에 있어 해마-대뇌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변연계가 될 수도 있다. 변연계는 공감능력과도 상관이 있는데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보통 공부를 더 잘한다. 하버드 학생들이 약 80%가 첫째 아이인데 첫째 아이가 둘째나 셋째보다 지능이 더 뛰어나다는 통계는 없다. 그러나 보통 형이나 누나가 공감능력이 뛰어나게 마련이다. 또한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능력이 남성의 능력을 초월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도 여성들의 공감능력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쯤 되면 변연계가 오히려 해마-대뇌피질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시를 짓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었다. 그래서 시를 잘 짓기만 하면 관리로 등용했는데 시 작문 능력과 관청의 실무 능력과는 얼핏 보기에는 아주 동떨어져 보이지만 실제로 백성을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조선시대 최고 천재라 일컬어지는 김시습이나 이이도 어린 나이에 뛰어난 시문을 지어 이름을 날렸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은 이렇듯 단순히 좌뇌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우뇌 능력도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편도체는 어떨까? 편도체는 공포에 대한 기억과 상관이 있는데 만약 우리가 공포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교통사고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죽을 확률이 현격히 높아진다. 편도체는 휴리스틱과도 상관이 있는데 수리적, 분석적 사고와는 달리 휴리스틱은 직관적 사고를 통하여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수리적, 분석적 사고가 훨씬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휴리스틱이 더 빠르고 안전한 길을 제공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성을 사귈 때도 분석적인 접근보다 휴리스틱으로 접근했을 때 더 낳은 결과를 제공하기도 한다. 항상 분석적, 확률적 사고가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분석적 사고와 휴리스틱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된다. 만약 편도체에 이상이 생겨 휴리스틱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아무런 선택도 못하고 계속 분석만 하고 있을 것이다. 잘못된 선택보다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는 더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공부를 할 때 보통 눈으로 공부한다. 눈과 관련 있는 뇌는 후두엽인데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아이들이 공부를 할 때 주로 후두엽을 쓴다. 눈으로는 열심히 보는데 책을 덮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경우다. 반면에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전두엽을 쓴다. 사실 전두엽이 강화되는 것은 훈련의 결과인데 소위 1만 시간의 법칙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주로 전두엽을 사용한다. 어떤 일에 몰입하면 전두엽이 활성화되는데 전두엽이 활성화되면 일이나 공부가 아주 쉬워지게 된다. 일을 하거나 공부할 때 전두엽이 활성화되는 사람이 바로 ‘달인’이다. 전두엽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이렇다. 책을 본 다음에 눈을 감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을 깊게 하면 된다. 이런 훈련을 오래 하면 책을 한 두 번만 읽어도 깊은 내용을 파악하고 비판 능력이 높아진다. 물론 우리의 엄마들은 책에서 눈을 떼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을 공부 안 하고 딴 생각한다고 표현하겠지만... 측두엽은 글을 쓰는 능력과 상관이 있는데 글을 쓰는 능력은 종합 능력과 상관이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은 측두엽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다.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시대에 단순암기된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앞으로 만물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아무리 기억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스마트폰의 검색 능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글과 아이폰의 검색 능력은 측두엽의 종합능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모아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통해 배우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깨달음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암기된 지식을 가지고 대학을 가고 대학에서 나와 사회에 나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대학에서는 제대로 된 논문을 쓸 수 없을 것이고 사회에 나와서는 창조적인 생산물을 내어 놓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조화로운 뇌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저자는 이미 유명해진 실험들을 사용한다. 만약 심리학이나 뇌 과학, 철학에 관련된 책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 나온 실험이나 예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런 유명한 실험결과를 인용했다고 해서 식상한 내용의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며 나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각각의 뇌의 부분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있고 우리는 그런 존재 이유를 잘 사용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삶은 더 풍부해지고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조화로운 사회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내가 나의 아들의 한자 공부를 시킬 때 사실 한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다. 한자는 공부의 도구이고 공부는 행복한 인생의 도구이다. 공부를 잘 하려면 영리해야 한다. 여기서 영리하다는 의미는 단순히 암기력이 뛰어나단 의미와 완전히 다르다. 그냥 암기한 것을 말하는 공부는 기문지학(記聞之學)에 불과하다. 들은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학문은 진짜 공부가 아니다. 배운 지식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며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암기하는 것은 해마-대뇌피질이지만 의미를 되새기고 이야기로 만드는 뇌는 다른 쪽에 있다. 즉 좌뇌와 우뇌를 조화롭게 사용해야 진짜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헛똑똑이는 진짜 똑똑이가 아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나 사람들을 보고 과감히 멍청이라고 부른다. 그런 멍청이들은 진짜로 똑똑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 큰일을 맡기게 되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들의 뇌를 조화롭게 만들어야 하며 우리의 자식들도 조화롭게 키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도 행복해지고 우리 자식들의 삶도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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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과학이나 의학분야에서 비교적 많이 다루고, 관심을 가지는 주제인 뇌. 무엇보다 우리 존재에 의문이 많은 우리들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가 아닐까? 우리는 뇌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이지만, 뇌에 대한 지식은 많이 부족하여, 많은 배움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일반인들이 지닌 뇌에 대한 상식은 얼마나 될까? 흔히 뇌 그림에서 명칭과 기능 정도를 배웠고, 대부분 다 지워졌을 것 같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만 어려운 부분이다. 대부분 뇌에 관한 책들은 번역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이중에서 올리버 색스나 라마 챤드란 의 책들이 비교적 다양한 사례를 쉽게 풀어내는 것 같다. 다행이 최근 들어 국내 책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 눈을 끈 책, ‘나쁜 뇌를 써라’, 궁금 반 걱정 반이었다. 과연 얼마나 알차게 꾸몄을까? 외국의 사례를 한번 더 나열하는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기대는 한국적 예를 많이 들어서 한국적인 뇌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 왜 과학이 사람들에게 어렵게만 다가올까? 아마 과학자들의 전달기술이 부족하고, 대중들이 가진 편견, 하지만 이런 편견도 교육자나 과학자들이 자초한 일이 아닐까 한다. 다행이 최근 과학자나 의학자들의 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소통에 대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도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술이 부족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병이 주는 행복은 역설이다. 뇌졸중 등으로 건강을 잃음으로써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행복을 찾게 되다니 참으로 인생의 역설이다. 우리의 인생이 이런 것 아닐까! 뇌의 양면성이 가지는 신비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조화와 균형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실수, 인간이기에 우리는 늘 실수의 그늘아래서 웃거나, 자신을 자책하거나, 슬퍼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실수는 늘 하는 행동에서 특별한 주의가 할당되지 않고 무의식적인 자동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시각(사고)를 아주 넓게 본다고 자부하겠지만, 사실 아주 편협 된 시간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사물을 볼 때도, 우리는 대상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본다. 실수의 주된 이유는 일하는 시스템, 엄부의 프로세스가 잘 못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관심 가질 것이 많기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기에, 집중보다 무엇을 무시가 중요하다. 멍하니 다른 생각하기는 자신도 모르게 즉각적인 목적지와 장기적인 목적지 사이를 오가고 있다. 잠재억제, 새롭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자극을 무시할 수 있다. 잠재억제를 의식적으로 약화시키는 훈련, 집중과 부주의는 둘 다 삶에서 필수적인 능력 아닐까. 합리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미션으로 삶을 낭비할 순 없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엎질러 진 물, 이미 저지른 행동에 따라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안도한다. 선택. 사실은 마음 가는 쪽으로 이미 결정해놓고 그 결정에 합당한 이유들만 찾고 있었던 건지 모른다. 실패의 아픔을 평생 곱씹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왜곡. 사건에 대한 강렬한 감정 때문에 더 뚜렷이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섬광기억). 하지만,기억은 흘러간 시간에 비례해서 왜곡한다. 우리의 과거지만, 우리는 과거를 확신할 수 없다. 자신의 기억과 기록을 대조해 보라. 우리가 얼마나 기억을 왜곡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의 내용이나 형태 속에 숨어있는 암시가 사람들의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 상태에 달려있다. 우리의 뇌가 알고 있는 지식의 출처를 정확하게 회상하지 못할 때 기억은 쉽게 왜곡될 수 잇다. 우리 뇌는 상상한 사물과 실제 본 사물을 구분하지 못한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변형된다. 아니 자신의 생각에 맞게 수정한다고 해야 할지. 기억은 현시점의 정보와 겹겹이 중첩된 과정들이 함께 모여 현재를 이룬다. 기억. 우리를 행복 또는 불행하게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현재 우리의 태도와 해석에 달려있다. 대부분,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무엇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망각하는 뇌. 가끔 보는 천재나 공감각자들, 공감각은 뇌 영역간의 비정상적인 연결이다. 너무 부러워 말기를. 기억하는 일을 억제하는 기능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태도의 문제 기억은 좋은 것, 망각은 나쁜 것 왜? 기억은 일종의 능력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표현, 망각은 부정적인 의미와 증세이다. 나이가 들수록 신경 쓸 일이 많아지다 보니 새로운 정보는 쉽게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나쁜 기억에서 사건은 해마에 기억, 사건에 관여 된 감정은 편도체에 기억한다. 아픈 기억을 폐기학습 하는 과정은 그 기억을 불러내어 생생하게 체험한 뒤 떠나 보내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망각은 용서다. 결정. 우리는 결정의 수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 죄수의 딜레마에서의 배신과 협동, 당신은 어떤 쪽을 선택할까요? 의사결정은 복잡한 논리에 의존하기보다는 문제를 단순화시켜 도식적으로 처리하는 지름길을 택한다. 어리석게 우리가 가진 통제환상, 위험이 초래되는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과연 그럴까요 프레임이 달라지는 것에 따라 판단이나 선택이 달라질 수 있는 현상이다. 인간은 숫자에 약하다. 보통 숫자가 앞에 나올 경우 정확한 추론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뇌이지 인간의 의식적인 마음이 아닌 것이다. 이성에 앞서 감정이 존재했다. 우리는 감정의 노예이다.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공감. 공감의 힘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공감은 상상력의 힘,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대는 이성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동감과 공감, 타인의 고통을 느끼기와 이해하기, 나와 너, 우리는 수많은 다른 나이다. 보통 우리는 대화에서 말을 중시하지만,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요소는 약 10%, 나머지는 얼굴표정, 눈, 시선, 목소리, 몸동작 등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와 ‘사정이 있겠지.’ 우리가 어떤 입장에 서는가가 중요하다. 열정 없이는 합리적인 결정이 불가능하고, 냉정을 유지해야만 진정한 공감이 이루어진다. 남의 시선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몰입. 최근에 많이 나오는 말, 그럼 중독과 몰입은 어떤 차이를 가지지. 중독대상을 기대하는 것만으로 우리 뇌가 기쁨을 느낀다. 오래된 습관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겨울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중독은 만성적으로 재발하는 질병이다. 물론 담배중독도 미국에서는 질병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우리는 담배를 안 피고는 베길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금연은 언제 시작하더라도 결코 늦지 않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떠나 보내는 것이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가슴이 원하는 것을 따르십시오.’ 창조. 인간에게 창조성은 과연 어떤 능력일까? 고흐는 전형적인 하이퍼그라피아, 측두엽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다. 그의 천재성도 이런 병에 의해 좌우된 것이다. 이러면 예술이 좀 초라해지려나. 극한 감정, 조증과 우울증이 창조성에 각각 다른 형태로 기여하는 것 같다. 치매 후 예술적 능력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는 경우, 두정엽의 역설 과연 두정엽이 예술의 능력을 좌우할까 아마추어 글 쓰는 이, 리뷰어들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부분 글쓰기에 관한 내용 “전문 작가들은 자유롭게 초안을 작성하고 이후 여러 차례 걸쳐 논리, 일관성, 같은 수정을 가하여 글을 완성한다.”, 우리나라 글쓰기 교육의 문제, 고치기보다는 처음부터 맞춤법과 문법을 맞추어야 한다는 글쓰기 교육은 창의성을 사라지게 하는 것 아닐까? 내게도 ‘특별한 재능’이 있다. 요즘 많은 TV프로에서 재능을 발굴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많은 재주를 선보인다. 과연 재능이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끝없는 노력과 연습이 그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자신의 자녀에게도 어떤 재능이 있을까? 비교는 재능발굴의 장애요소이다. 비교를 하지 말고,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8가지 행위(행동)을 통해 본 우리의 뇌. 뇌는 아직까지 많은 미지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쉽게 풀어낼 수수께끼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전공지식적으로 뇌를 알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스스로를 좀 더 이해하기에는 이런 류의 지식도 필요한 것 같다. 스스로를 너무 확신하지 말자. 이 책을 읽다 보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책은 흥미로운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어 읽기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도 우리가 가진 딱딱한 의사의 이미지를 우리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것 같다. 뇌의 그림들을 새롭게 그린 것이 이 책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의 사례나 이야기가 적은 점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척박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만한 책 하나 쓰기도 쉽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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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를 지키는 삶. 균형잡힌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는 우리는 잘 안다. 자건거를 타면 균형을 중요성을 알 수가 있다. 균형을 잘 잡아주어야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균형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뇌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뇌가 좌뇌와 우뇌, 앞쪽 뇌와 뒤쪽 뇌의 긴장과 협응속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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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뇌를 분석하여 과학적으로 , 병리학적으로, 정서적으로 제시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놓고 있다. 그들을 읽으면 모두 분석이 주가 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뇌가 과연 분석으로만 그 기능을 모두 이야기할 수 있을까? 뇌는 우리의 생각을 이루는 중추적인 공간이다. 이 생각은 매우 유동적이고 상황에 따라, 상태에 따라 각기 달리 나타난다. “단순한 분석 방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고는 논리적인 사고도 있고, 직관에 의한 사고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다. 이 글도 역시 직관보다는 논리적인 분석에 그 맥락을 두고 전개해 가고 있다. 분석적인 내용이 아닌데도 분석을 해나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삶이 모두 양면성을 지닌다는데 착안을 하여, 뇌가 가진 기능 중에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의 양면성을 언급해 나가고 있다. ‘부족한 부분의 긍정성’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이 글 전체가 한꺼번에 조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의사인 화자가 환자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고 있다. 환자의 상태에 따른 반대 급부적인 생활이 중심으로 화자의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많은 예화와 그림을 섞어 가면서 내용 전달이 용이하게 하고 있다. 표현과 자료적인 측면에서는 참으로 잘 읽혀지는 글이다.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내용도 자료가 충분하니 잘 따라갈 수 있다. 특히 그림들이 많이 제시되어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게 나타난다. 책이 잘 엮여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용은 8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산만함을 보여주는 실수하는 뇌, 의심의 요소로 나타나는 합리화하는 뇌, 거짓의 모습을 보이는 왜곡하는 뇌, 잊기를 잘 하게 만드는 망각하는 뇌, 감성이 우위가 되어 모호성을 드러내는 결정하는 뇌, 차가운 이성을 보여주는 공감하는 뇌, 중독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몰입하는 뇌, 뇌질환의 요소로 나타나는 창조하는 뇌 등을 제목으로 그리고 있다. 화자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뇌의 속성들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상대적으로 긍정성을 찾아내고 있다. 집중, 합리화, 긍정, 기억, 이성, 열정, 몰입, 창조 등이다. 이것들이 그 너머에 있기에 ‘나쁜 뇌를 써라’고 화자는 강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로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그것에 억지로 좋은 것을 가져다 붙여 조화를 만들고 긍정적으로 이끌어 나갈 필요가 없는 듯하다. 단순한 예로 미치광이였던 화가, 고흐를 소재로 하여 그의 창조성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특별한 경우다. 보통의 미치광이들은 정신병원에서 그들의 삶을 보낸다. 포기라는 말도 모른 채 포기된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을 억지로 창조성으로 대신할 이유는 없는 듯하다. 단지 창조적인 속성은 긍정의 뇌에 소속시키면서 보다 가치 있게 보면 된다. 책의 제목이 자극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로서의 박학다식한 이야기와 다양한 예화는 우리를 즐겁게 만든다. 보통 뇌의 이야기가 딱딱함과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어려운데, 책은 너무 손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 예화가 많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재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읽어 가다보면 긍정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진다. 나도 참으로 즐겁게 읽었다. 책은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쪽에서 생각의 전환을 이루게 한다. 그것이 이렇게 부정적인 용어를 긍정적으로 만든 요인이 아닌가 한다. 세상일들도 모두가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예를 많이 든다. 물이 반 컵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반 컵이나 남았다면서 행복해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반 컵밖에 없다고 하면서 짜증을 낸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책의 화자는 전자와 같이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것이 조화요 긍정으로 갈 수 있게 만든다. 그러기에 그에 의해서 어떤 부정적인 용어가 사용되더라도 그것은 결과적으로 긍정이 된다. 그의 긍정성이 이런 부정적인 용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의학과 뇌, 어려운 논제들이다. 그런 어려운 논제들을 가지고 조화의 삶, 화평의 삶을 찾아낸 화자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서두에 말했듯이 너무 분석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뇌의 성격상, 한 면만을 이야기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직관적인 요소도 간과할 수 없는 뇌의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왜 그러냐? 그 질문에 답을 잘 할 수 없더라도 ‘그렇다’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잘 읽었다. 생물학과 의학, 그리고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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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과 불안한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인간 심리를 파악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울였던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뇌과학, 뇌심리로 이어지면서 최근 몇 년 간 뇌 관련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뇌 관련 서적들은 뇌의 신비로움을 찬탄하면서 학문적이고 학술적으로 접근해온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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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하고 태교 책을 읽고 마음을 다룬 책을 읽는 것은 모두 뇌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뇌와 신비주의의 관계를 다룬 책은 깊이와 종교성을 갖추었고, 뇌가소성 개념은 희망과 의지를 갖게 하는 등 뇌과학 책들은 모두 고유의 특성이 있다. ‘나쁜 뇌를 써라’는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오류와 실수들로부터 뇌의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속성을 가려내 그러한 면들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책이다. 의식의 창발적 속성, 뇌가소성 등을 다룬 책과도 다르고 기억력이나 공부 능력 향상 비법을 귀띔해 주는 실용서와도 다른 ‘나쁜 뇌를 써라’는 실수나 자기합리화, 왜곡 등의 잘못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지혜에 착안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의사 특히 신경과 의사에게 환자와의 만남은 특별한 성찰이나 배움의 기회가 되는 듯 하다. 신경과 의사로서, 뇌졸중을 앓고부터 오히려 성격이 밝아지고 관대해진 환자나 언어장애와 마비증세를 겪으면서도 행복해 하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지혜를 터득한 저자의 사례가 바로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나쁜 뇌란 부정적인 뇌 기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쓸모 없이 여겨지지만 착한 뇌(뇌의 긍정적인 기능)가 가지지 못한 매력이 있는 뇌이다. 우리는 ‘나쁜 뇌를 써라’를 읽음으로써 정상인들과 뇌 병변자(病變者)들이 본질적으로 다르기는커녕 닮은 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정상인들이 범하는 실수, 자기합리화, 왜곡 등은 흔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나쁜 뇌와 창의성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잠재 억제 기능이 낮은 사람들 즉 주의력 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가득한 잡음들 속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찾아내는 분석능력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창의적이라는 검사 결과가 있다. 그리고 건강한 자기합리화란 잘 활용된다면 삶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으며 다수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의 내면과 직관을 따르는 것도 창의성을 발휘하는 한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곡하는 뇌는 어떤가. 기억의 왜곡이 부정적인 기능만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나간 사건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말하는 대신 내게 좋았던 일은 항상 언제나 모든 경우에 일어난다고 해석하고 나쁜 일은 일시적이고 특수한 이유 탓으로 돌리는 긍정심리학 역시 과거를 왜곡해 해석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망각 역시 많은 의미를 지녔다. 기억을 잘 지워야 새로운 것들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각은 중요하다. 어느덧 고정관념이 되어 나의 발목을 잡는 정형화된 패턴도 지워야 하며 분노, 적대감, 회한 등의 감정도 잘 잊어야 한다. 부정적 감정들을 지워낸 빈 자리에 연민, 공감, 동정, 사랑 등의 감정을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정서 역시 명시적 기억이나 절차적 기억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 (저자의 말대로 "가장 아름다운 망각이 바로 용서"이지만 "그런 용서를 실천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노를 떠나보내는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뇌과학 책들의 주요 이슈들은 기억과 망각의 관계, 이성과 감정의 관계, 창조성과 고통의 관계 등이다. 저자는 집중과 산만함을, 그리고 기억과 망각을 각각 동반자로 정의한다. 망각과 기억을 동반자로 정의한 저자는 “집중이 한곳에 에너지를 모으는 이성적인 동반자라면 산만함은 감수성 예민한 동반자”라는 주장으로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한편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사람은 감정이 없으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존재이다. 이 뿐 아니라 감정은 공감하는 데에도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저자는 빈센트 반 고흐를 광기로부터 창조성을 길어올린 화가가 아니라 측두엽 뇌전증 - 하이퍼그라피아와 계획과 치밀함 사이를 오간 사람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고흐는 그 두 극단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룬 사람이다. 나는 ‘나쁜 뇌를 써라’를 통해 고흐가 보였던 유형의 균형 말고도 여러 종류의 다른 균형에 대해 배웠다. 그것들은 망각과 기억, 집중과 산만, 이성과 감정, 확산과 수렴, 창조성과 고통 사이의 균형이다. 실로 오랜만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또 가슴을 뛰게 한 책을 만난 셈이다. 내 안의 창조성과 재능을 발견해 갈고 닦으라는 충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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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가치를 많이 느끼네요. 얻어갈 게 많은 책입니다. 관점을 바꿔줍니다. 여러모로요. 그리고 저자의 직접 경험도 담겨 있어서 생생하고 살아있습니다. 깊이와 유용함을 동시에 잡았네요. 최근에 출판되는 뇌과학 서적들보다 많은 면에서 낫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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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부정성조차 긍정적으로 활용한다'라.... 사실 뇌의 부정성이라는 말조차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뇌의 부정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게다가 '나쁜 뇌'를 쓰라고? 나쁜 뇌는 또 뭐지? 결국 이 책은 이런 호기심으로 읽게 된 책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다! 좀 속된 말로 하자면, 대박이다! 이 책을 받고 페이지를 훑으며 '꽤나 지루하고 따분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그런데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 그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정말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뇌라는 부분을, 이 기관에서 일어나는 오류들을 이렇게도 쉽고 단명하게 적절한 예화와 예시를 들어 썼는지 놀라웠다. 게다가 전문성까지.
이 책의 분류를 보니 '자기계발'이다. 그런데 이 책의 의도가 '자기계발' 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문, 과학 서적으로 봐도 무관할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내 머릿속 호두모양의 기관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뇌는 아주 과학적이고 뇌의 결과는 응당 옳은 줄만 알았는데 뇌는 때로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것들을 뇌의 부정성, 다시 말해 나쁜 뇌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책은 뇌에 대해 아주 묵직한 학술적인 부분을 다루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집필되어 있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봐도 되겠다. 저자 강동화 박사는 저술가로도 상당히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실수하는 뇌, 합리화하는 뇌, 왜곡하는 뇌, 망각하는 뇌, 결정하는 뇌, 공감하는 뇌, 몰입하는 뇌, 창조하는 뇌 8가지로 구분되어 뇌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단지 뇌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는 이러한 뇌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뇌의 특성들에 구체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데 실수하는 뇌에서는 '산만함은 과연 쓸모없는 뇌 기능일까?', 합리화하는 뇌에서는 '자기합리화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일까?', '왜곡하는 뇌에서는 '기억의 왜곡은 부정적인 기능만 할까?', 망각하는 뇌에서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불행할까?', 결정하는 뇌에서는 '감정적인 결정은 잘못된 것인가?'. 공감하는 뇌에서는 '냉정한 사람은 공감능력이 떨어질까?', 몰입하는 뇌에서는 '중독을 몰입으로 전환할 수는 없을까?' 끝으로 창조하는 뇌에서는 '뇌 질환은 사람을 불행하게만 할까?'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예전에 올리버 색슨의 <뮤지코 필리아>라는 책을 읽은 일이 있다. 글자를 읽으며 냄새를 맡고 맛을 볼 수 있는 사람들, 무엇이든 다 기억하는 사람들, 또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 사고 후 뇌를 다치고 비상한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에 대해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그책을 읽으면서도 '이처럼 영화 같은 일이 가능한가' 싶었는데 어떤 부분들이 손상되거나 훼손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도 이 책은 아주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마치 영화에서 일어날 법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의 뇌로 인해 가능해진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이 책 <나쁜 뇌를 써라>를 통해 뇌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고 있는지, 이로 인해 행동과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단순히 사고하는 기관으로만 생각해왔는데 뇌의 각 부분들이 얼마나 성실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뇌 각 부분의 역할 조합으로 나는 지금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보며 내 생각을 타이핑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인간의 뇌의 신비를 독자에게 소개하고 더불어 뇌의 이런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의 한계와 뇌의 속임수(?)를 잘 다스리자라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메시지를 함께 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이 자기계발서로 분류된 것이리라.) 무엇보다 이 책은 참으로 창의적인 발상으로 쓰인 책이다. 뇌의 특성을 뇌의학자가 다루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러한 뇌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고 그의 사고는 참으로 유연하다.
읽는 내내, 깔끔한 필치와 뇌의 신비에 경탄하며 읽었다. 책의 내용도 재미있었고 소재와 이 소재를 다루는 저자의 기술에도 정말 놀랐다. 개인적으로는 단연코 2011 베스트 도서로 꼽고 싶다.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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