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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극진보에 가까운 사상을 가진 청년입니다. 하지만 내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 내 편(이라고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없는 수구세력으로 매도하는 사람들도, 나처럼 그 사람 나름의 선의와 철학에서 비롯된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그 신념을 알기 위해서 처음으로 보수의 사상에 대한 책을 구입했습니다. 배송에 일주일이나 걸려서 투덜댔는데, 품절 마지막 득템이었습니다! 재미없지만, 배운 게 너무 많아서 재밌네요. 솔직히 어디서부터 말해야 될 지도 모르겠는데... 대단한 책입니다. 보수 사상에 대해 너무 노베이스 상태라.. 생각나는 대로 써볼게요.
- 그래서 일단 거두절미하고 한국에 (긍정적으로 비춰지든 부정적으로 비춰지든) 일관적인 보수 정신이 있나요? 흠 전 무식해서 잘 모르겠네요. 누군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보수주의의 굳건한 기둥인 철저한 사유재산권 옹호에 대한 또다른 발견도 이 책을 읽는 재미입니다. 권리에 따른 의무를 특히나 강조하는 보수의 특성상 유산자의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법적 의무 또한 분명하니 보수든 진보든 꿀만 빨 수는 없는 노릇이네요. 인생 쉽지 않군요ㅠ - 보수주의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 신중하고 샅샅이 고려된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도 재미있는 점 중 하나입니다. 단 여기에서 '다양성'이라는 말은 현대 한국정치에서 쓰이는 맥락과는 다릅니다. '다양성에 대한 추구'가 다양한 층위의 불평등, 즉 재산뿐만 아니라 정치권력, 문화자본, 지성, 도덕적 지위 등에서의 불평등을 옹호한다는 점에서의 추구라는 걸 분명히 해야 하겠지요. 이 책에서 많은 말들이 일상적 의미와는 좀 다르게 쓰이는데, '다양성', '불평등'과 같은 단어들이 그것입니다. 흠, 왜 그럴까요? 보수나 진보나 그 사상의 기원으로부터 꽤나 멀어진 걸까요? 아니면 아전인수 격으로 용어를 차용하느라 시원의 뜻은 안중에도 없게 되어버린 걸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저처럼 편향된 독서를 했던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보수주의에서 의외의 매력, 심지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스스로 생각컨대 전 보수주의자가 아니지만요) - 보수주의자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종교성; 여기에서 저는 종교성이라는 말을 통상의 의미로, 또는 종교인들이 비합리적이라며 비웃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저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무신론자 또한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저는 종교적 체험이라는 것이 단순히 강력한 인격적 신에 대한 복종이 아닌, 초월적 실체에 몸을 떨며 느끼는 경외,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한 겸손함, 타인에 대한 진정한 공명과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용서의 자세, 존재에 대한 깊은 동정과 진실로 긍휼히 여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영성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을까요? 누군가는 견강부회라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러한 의미의 종교성의 측면에서는 보수주의의 관점에 찬사와 깊은 공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습니다. - 더불어 저는 꽤 개인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그런 의미에서 따져본다면 저는 더더욱 (이 책에서의 보수주의의 도덕적 엄격성 측면에서) 보수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수냐 진보냐, 양자택일을 하라면 당연히 진보로 자처하는 이유는, 개인이 도덕성을 발휘할 기회가 처한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사려깊고 고결한 천성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동기의 학대 때문에 소중한 유산이 영원히 짓밟힙니다. 타인의 행복에 기뻐하고 슬픔에 눈물 흘리며 기꺼이 손을 뻗는 성정을 가진 사람이, 가난과 그로 인한 지속적인 기회의 박탈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것에 시시때때로 눈을 돌리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쓰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버리기도 합니다. 물론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시를 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개인의 도덕성에 그의 선행 혹은 악행을 귀인시키고 책임을 지우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습니다. -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귀족정치. (여기의 "귀족"이라는 단어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뜻과 좀 동떨어져 있으니 벌써부터 도끼눈을 뜨기엔 좀 이릅니다.) 상속받은 재산을 충분히 소유하고 있어 사욕에 초연하고, 공익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여 공동체에 최선의 선택지가 무엇인지 판단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안정된 과두정. 그러나 그러한 정체가 존재한 적이 있을까요? 만약에 그러한 체제가 존재했더라면 책에서 무수히 나타난 보수주의 사상가들이 개탄한, 프랑스대혁명으로 대표되는 급진 자유주의 혹은 민주주의 혁명이 처음부터 일어날 필요도 없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필자가 그리워하는 귀족정 또한 일종의 (진보세력이 언제나 지나치게 과격하게 추구해온) 유토피아, 이상향에 지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이고 골이야... 다시 읽으니 너무 피상적인 감상평인 것 같은데 리뷰 포인트 받고 싶어서 횡설수설이라도 해봤습니다 ㅋㅋ 물론 제 의견과 일치하지 않아 (완전히 일치했다면 저는 이미 보수주의자였겠지요) 눈살을 찌푸리며 읽은 대목도 있었지만, 정말 대단한 책이었습니다. 이런 심도있는 보수 사상을 다룬 책을 더 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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