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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남긴 말이다. 이 말이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니체의 가장 대표적인 말이 되어버렸다. 니체는 어째서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그 내막을 알아보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니체가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책 “이수영 저, 『니체를 읽는 아홉 가지 키워드』(파주 : (주)동녘, 2011)”을 통해 니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전하고 싶다.
‘신은 죽었다’이 말이 유명해진 탓에 니체를 종교에 대해서만 말하는 철학자로 오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니체가 얼마나 많은 영역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게 되었다. 니체는 그가 남긴 글로 음악을 만든 많은 작곡가가 있고, 현대 미술의 탄생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철학에서도 그가 남긴 말들이 많은 사상들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통해 수많은 해석을 낳게 하기도 하였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니체가 남긴 아홉 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니체가 추구한 명랑한 삶이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알려준다. 니체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나는 이 삶을 제대로 즐기면서 살고 있는가? 과거를 돌아보면 후회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다. 나는 앞으로의 삶에 후회 이외의 다른 것을 새길 수 있을까?
후회를 하지 않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옳은 선택만 할 수 없고, 모든 일에 긍정적일 수도 없다. 니체는 우리에게 삶의 목표로서 ‘위버멘시’(Ubermensch) 라는 인간상을 제시한다. 영어로 overman, 혹은 superman이라고도 번역되는 이 단어는 한국어로 ‘초인’, ‘극복인’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것에 긍정하고 고통을 통해 성장하며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 나가는 사람을 의미 한다.
니체는 모든 사람이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위버멘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되 그 과정에서 좌절하더라도 삶에 긍정을 잃지 말라고 니체는 말한다. 니체는“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 말 또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꺾이지 않는 자세를 강조한다. 니체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을 심어주려 하고 있다.
이 책에는 니체가 남긴 많은 키워드를 전해준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 ‘위버멘쉬’에 관한 내용만을 남긴다. 이 짧은 글에 그가 남긴 사상들을 전부 서술하려 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인류에게 남기고 갔는지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내돈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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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철학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니체 저작 원전을 읽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니체 저작을 쌩으로 읽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비유나 상징이 꽤 엄정하다고 하는데 나혼자 그것들을 찾아 맞추는 일을 혼자 하는건 정말 어려웠다. 중기 저작을 넘어가면 아포리즘 형태라서 뼈대를 잡아내는 건 정말정말 어려웠다. 이럴 때 필요한 게 해설서- 보조텍스트일텐데, 이것저것 들춰봐도 쌈빡하게 어려움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니체를 읽는 아홉가지 키워드 - 명랑철학은 간명하고 단호하다. 국문학을 공부했던 지은이의 이력을 짐작할 수 있는 섬세함도 있다. 무엇보다도 삶으로서의 철학을 찾아나서려는 이에게 니체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지은이의 학문적 연구, 사유,그리고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감동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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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대해서 궁금했다기보다 '명랑철학'이라는 모순형용적 어법에 호기심이 끌려서 읽게 되었다. 그래서 니체에 대한 책이란 걸 알게된 것은 그 다음이다. 니체에 대해서는 초반에 나오다시피 오해가 진실을 가리고 있다. 나도 또한 어줍잖게 들어온 초인과 권력에의 의지라는 니체의 개념에 대해, 이상이나 환상을 좇는 추상적인 사유를 하는 철학자인 줄 알았다. 그닥 논리적이지 않은 서술에 이성이 주가 되는 철학을 좇던 개괄적인 내용 외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증오, 위계, 양심의 가책, 사유, 질병, 공부 등의 키워드를 대상으로 하여 풀어나가는 니체의 이야기는 사실 솔직히 어렵다. 철학에 다가가기 위해서 원전보다는 2차 저작물을 많이 접해온 나는 이해하기 위해 경계하고 머리를 많이 굴려야 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니체의 사상이 복합적이고 많은 비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해석도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활자를 마주하는 순간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말로 나를 속이려는 지적 허영이 아닌가하면서 계속 읽고, 쉬는 과정중에 내가 이해하는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걸 느낀다.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을 속여온 그 내면의 것을 파헤치기 위해 모순적인 구성을 취하는 가 싶지만, 그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때로는 그 경계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낯설고 혼란스럽다. 지금도 내가 이해하는 니체의 철학이 바로 니체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 탁월한, 하지만 삶의 긍정은 포기하지 않은 본인만 좀 명랑한 철학을 접근하는 새로운 책을 보았다. 니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푸코가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파헤친 것이 듣도보도 못하게 갑자기 나타난 사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으며 상식과 관습에 물든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쉽지만은 않지만 세상 문제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잡해진 세상을 풀어갈 앞선 위버멘쉬(초인)를 꿈꾸고 알리려 했던 사람의 이야기에 세계의 해석을 맡겨도 좋을 듯 하다. 자신은 세상의 선구자이기 때문에 2000년 경의 사람들은 자신의 책을 보고 있을 거라는 자신감 넘치는 예언의 한 실현이 되어준 나는 계속 책을 볼 수 박에 없다. |